구세군아현교회는 1908년 12월 9일 제 2영으로 개영하였으며운영란에 의해 6개월만에 문을 닫았다가 그로부터8년이 지난 1916년 7월 17일에 재개영(충정로3가) 되었습니다.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나라를 잃은 국민들에게 제복과 군사적 용어를 사용하는 구세군은 상당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면서 급속한 발전을 하게 되었고 금주,금연의 절제운동과 윤락여성을 위한 여자관과 교육사업인 학교를 운영하였습니다. 그리고 선교에 못지않게 긴급구호 등 사회사업에도 활발한 활동을 펴서구세군에 대한 관심과 좋은 호응을 갖게 하였습니다.
아현교회는 1920년에 선교사관이었던 이도식(Brigadier, Richards) 서기장관이39세의 젊은 나이로 순직하게 되자 당시 캐나다 동군국의 사령관이었던 그의 부친이 아들을 추모하기 위해 44평의 기념관을 헌납하였는데이것이 최초의 아현교회 건물이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서는 일제의탄압으로 해외 사관들이 모두 귀국조치된 가운데 지하교회로 그 명맥을 이어오던 중, 해방 이후 1947년 새로운 사령관의 부임과 더불어사업이 재개되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많은 피해와 수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1960년대 이후 한국 구세군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뒤로하고 오직 십자가의 길을 걸어온 사관님들의 헌신과 순교적인 각오로 아현교회는 날로 성장을 거듭했으며 1976년에는 정성어린선배군우님의 눈물과 땀으로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였다가 3년후에 다시 북아현동에 다시 지금의 건물로 건축하면서 주변의 후생학원과혜생원 그리고 양로원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국내적으로 동두천영문과 소양영문을 개척하였고 1997년 10월 한 성도의 특별 헌금으로 블라디보스톡영문과 2012년11월 캄보디아 프놈펜 영문을 개척하며 후원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2016년 7월17일 아현영문 개영 100주년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 100년 동안 끊임없이 인도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하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기념예배 및 음악회를 부장 김필수 한국사령관 인도로 대예배당에서 진행 하였습니다.1916년 충정로 애오개에서 시작된 성령의 불이 오늘까지 북아현동 마루턱까지 타오르고 있다.이제 아현영문은 선교 2세기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땅 끝까지 임하게 하도록 전도의사명과선교의 역사를 새롭게 펼쳐 나갈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