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에 위치에 있는 선학원의 총본산의 주력 사찰로써 한국의 전통불교를 수호하고 일제의 사찰정책에 대항하려는 의식의 발로에 의하여 창립된 선학원에 중앙기관인 중앙선원을 두었다.
선학원은 그 이념적 구현체로서 1922년 3월 30일 선우공제회(禪友共濟會)를 결성하였다. 선풍진작과 청정비구들의 자주·자립을 사명감으로 설치된 선우공제회는 일제의 식민지 불교정책으로 만연된 계율 파괴와 선(禪) 전통의 상실을 우려한 수좌들이 은연중 사찰령(寺刹令)의 구속을 피하면서도 일제 불교에 대한 저항을 기하려는 현실인식의 산물이었다.
선학원 창설이 일제의 불교정책에 대항하는 항일의식의 자연스러운 발로였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통의 선리진작(禪理振作)과 계율수호를 선양하고 재건 후 재정기반을 확립하고 선의 대중화에 주력하여 중흥기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한국불교의 청정전통을 사수하기 위해 1935년 3월 7일 조선불교전국수좌대회(朝鮮佛敎全國首座大會)를 개최하고, 조선불교선종 종무원을 발족시켰습니다. 이에 청정 수좌들은 조선불교선종의 종정으로 만공, 한암, 혜월스님을 추대하였습니다.
이는 선학원을 중심으로 한국불교의 청정 전통 선맥이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는 것이며, 전국선원의 중앙기관이 바로 선학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41년 2월 26일부터 10일간 선학원에서 청정승풍과 전통선맥을 선양하기 위해 만공(滿空), 석상(石霜), 서응(瑞應), 묵담(默潭), 한영(漢永), 동산(東山), 운허(耘虛), 청담(靑潭), 석주(昔珠), 한암(漢巖) 등 청정비구 34인이 참가한 유교법회(遺敎法會)를 개최하였으며, 유교법회 후 비구승으로 결성된 범행단(梵行團)을 조직하고 선학과 계율의 종지를 선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2층 대법당에는 만공스님께서 직접 창덕궁 벽토로 조성한 아미타부처님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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