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조선시대(1727년)
보물 제1563호
대웅전(大雄殿)은 보물 1563호로 동화사를 대표하는 당우(堂宇)이다.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가공하지 않은 나무를 그대로 활용하여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전각이다.
임진왜란 후 1606년 사명대사가 학인(學仁)에게 명하여 중창하게 하고, 1677년 개창하였다.
이후 1725년 을사년의 큰 불로 인해 1727년 천순(天順), 낙빈당 홍제(落賓堂 弘濟), 홍우(弘雨), 의심(義心) 등이 화주가 되어 중수하였다.
대웅전의 문짝은 어칸과 협칸 모두 빗솟을살에 활짝 핀 연꽃과 국화꽃, 금강저를 새겨놓았다.
심지왕사가 절을 지었을 때 겨울임에도 하늘에서 오동꽃이 흩날렸다는 창건 설화는 이 꽃살문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의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1728년 왕준이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웅전 안에는 여러 점의 불화가 걸려 있는데, 삼존상 뒤에 있는 후불탱화는 1620년에 조성되었고, 삼장탱화와 지장탱화는 대웅전이 건립된 무렵인 1728년에 제작되었다.
대웅전을 오르는 계단의 좌우에는 괘불대와 함께 2기의 노주(露柱)가 설치되어 있다.
괘불대는 영산재, 수륙재 등의 야외 법회를 개최할 때 괘불을 걸어 고정시키는 데 사용되는 석조물이다. 석조로 된 괘불대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야외 법회가 자주 있었음을 보여준다.
대웅전의 편액은 일주문에 〈八公山桐華寺鳳凰門〉이라 쓴 기성 쾌선스님의 글씨와 흡사하다.
주련은 영남 서화의 맥을 계승한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1862~1935)가 썼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