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통일신라
동탑 : 높이 562cm, 기단 폭 362cm
서탑 : 높이 524cm, 기단 폭 300cm
보물 제248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보물 제248호로 지정된 이탑은 금당 극락전을 사이에 두고 동서 양쪽으로 서 있으며 두 탑 모두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1957년 탑을 해체하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탑신 윗면 사리공 안에서 99개의 공양탑(小塔)과 항아리 모양의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국립대구박물관 전시 중)
동쪽의 탑은 2단의 기단 대부분이 나중에 보수된 것이라서 돌을 다룬 수법과 끝맺음 처리 부분에서 조화를 잃고 있다.
위층 기단의 각 면에는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따로 새겨 쌓아 올렸으며,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머리장식받침), 복발(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 앙화(솟은 연꽃모양의 장식), 보주(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차례로 올려져 있다.
서탑은 위층 기단의 두 면에 가운데에만 기둥 모양을 새기고, 반대쪽 면의 기둥 사잇돌을 밀어 넣어 그 돌로 모서리기둥을 삼았다.
탑신부의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뜬 조각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돌만 남아 있고, 그 위로 머리장식부의 무게중심을 지탱하던 쇠꼬챙이가 솟아 있다.
이 두 탑은 부분적으로 없어진 머리장식을 빼고는 전반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조각의 양식이나 끝맺음 수법이 서로 비슷하고, 균형 또한 잘 이루어져 경쾌한 느낌을 준다.
기단과 탑신, 그리고 머리장식부의 세부적인 양식에서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화사 창건시기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석조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동탑 : 높이 562cm, 기단 폭 362cm
서탑 : 높이 524cm, 기단 폭 300cm
보물 제248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보물 제248호로 지정된 이탑은 금당 극락전을 사이에 두고 동서 양쪽으로 서 있으며 두 탑 모두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1957년 탑을 해체하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탑신 윗면 사리공 안에서 99개의 공양탑(小塔)과 항아리 모양의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국립대구박물관 전시 중)
동쪽의 탑은 2단의 기단 대부분이 나중에 보수된 것이라서 돌을 다룬 수법과 끝맺음 처리 부분에서 조화를 잃고 있다.
위층 기단의 각 면에는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따로 새겨 쌓아 올렸으며,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머리장식받침), 복발(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 앙화(솟은 연꽃모양의 장식), 보주(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차례로 올려져 있다.
서탑은 위층 기단의 두 면에 가운데에만 기둥 모양을 새기고, 반대쪽 면의 기둥 사잇돌을 밀어 넣어 그 돌로 모서리기둥을 삼았다.
탑신부의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뜬 조각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돌만 남아 있고, 그 위로 머리장식부의 무게중심을 지탱하던 쇠꼬챙이가 솟아 있다.
이 두 탑은 부분적으로 없어진 머리장식을 빼고는 전반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조각의 양식이나 끝맺음 수법이 서로 비슷하고, 균형 또한 잘 이루어져 경쾌한 느낌을 준다.
기단과 탑신, 그리고 머리장식부의 세부적인 양식에서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화사 창건시기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석조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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