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보각(海藏寶閣)
이 건물의 창건은 영조 3년(1727)이고 그 후 고종 4년(1900)에 고산대사(古山大師)가 중수하였다. 자장율사의 진영을 봉안한 해장보각은 정면 3칸, 특면 2칸의 맞배집으로 앞쪽에 툇간을 달은 형식을 취하고 있어 내부 앞쪽에 내진(內陣 : 안두리)기둥이 배치 되어 있다.
이 전각을 해장보각이라고 한 것은 불경의 보관처를 용궁(龍宮)에 두기도 하고 또 대 장경(大藏經)진리의 내용이 바다 속의 수많은 보배에 비유되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 다. 즉 용궁보각(龍宮寶閣)에서 유래된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자장스님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을 해장보각(海藏寶閣)이라고 한 것은 『삼국유사』에 이미 기록된 바와 같 이 자장스님이 중국으로부터 가지고 온 대장경을 통도사에 봉안하였다는 사실에 기인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정관(貞觀) 17년(643)에는 자장율사가 삼장(三藏 : 經藏, 律藏, 論藏) 400여 상자를 싣고 돌아와서 통도사가 국내 최초의 대장경 봉안하였다. “(『삼국 유사』전후소장사리조)고 한 내용은 이미 삼국시대에 통도사가 국내 최초의 대장경 봉안(奉安) 사찰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 대장경이 다른 사람 아닌 창건주 (創建主) 자장율사에 의하여 봉안되었던 사실을 감안하여 그 전각에 들어오는 문을 개산조당이라 하였고, 전각 자체를 해장보각이라고 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장보각 자장율사진영(海藏寶閣慈藏律師眞影)
통도사의 개산조(開山祖)인 자장율사의 진영이다. 좌팔분면(左八分面)의 의자상이나 가부좌한 자세이며, 왼손에는 불자(拂子)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불자의 술을 만지고 있는 모습이다. 배경은 크게 2단 구성을 보여 준다. 상단은 짙은 녹색이고 하단은 돗자리를 묘사하고 있는데, 백색이 어서 강한 색채대비를 준다. 이 진영의 봉안처인 개산조당(開山祖堂)이 1727년(영조 3)에 건립되었으나, 진영의 조성연대는 1804년이므로 이 진영에 앞서는 자장율사의 진영이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홍색 가사와 녹색 장삼이 강렬한 색채대비를 보여주나, 같은 농염의 채색을 반복해 사용하고 있고, 음영이 표현된 필선은 힘이 빠져 조성연대가 조선후기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안면(顔面)에서 풍기는 인상은 고승의 위엄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화사(畵師)는 성인(成仁)과 계한(戒閑)비구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