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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고성사

061-434-3710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고성길 260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353 고성사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2교구 대흥사 말사

주지 : 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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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사(高聲寺)가 자리한 보은산(報恩山)은 강진읍을 굽어보고 있는 강진의 진산이다.
제일봉은 멀리서 보면 소가 풀을 뜯어먹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 해서 우두봉(牛頭峰)이라 한다.
고성사에 오르는 길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면 좌ㆍ우측에 천연 녹차나무와 리기다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강진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절로 가는 길은 충혼탑 에서 돌샘에 이르는 오솔길로 이른 아침 그윽한 솔 내음이 그만이다.

강진은 봄철 보리 싹이 돋아 오를 때 가족과 함께 찾으면 더할 나위없는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주변에 모란향내 그윽한 영랑생가와 금곡사, 다산 정약용 선생이 보은산방에서 머물렀던 고성사 등이 답사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는 여느 어촌처럼, 사람들이 농업 반 어업 반의 생활을 이어가는 소읍(小邑)에 지나지 않았다.
먼 타지 소식이라야 어쩌다 광주나 목포, 여수를 갔다 오는 사람을 통해 듣는 것이 전부일 정도였다.
오죽 했으면 다산의 18년 동안 유배지였을까? 이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 옛날에는 금릉(金陵)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이 풍광 좋고 살기 좋은 마을 금릉의 여덟 가지 아름다운 자랑거리를 만들어냈는데, 백련사의 누각에서 굽어보는 구강포보다도, 무위사에서 올려다보는 월출산보다도, 제일 먼저 꼽은 것이 바로 고암모종(高庵暮鐘) 즉, 백성들이 아침저녁으로 듣던 고성사 종소리였다고 한다.
고성사는 <천불산화엄사사적비>에 1211년(고려 희종 7) 백련결사를 이끌었던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 1163∼1245)스님이 인근에 있는 만덕산 백련사(白蓮寺)를 중창할 때 함께 지은 말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1799년(조선 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고성암(高聲庵)이라 되어 있다.
특히 1805년(순조 5) 가을 강진군에 귀양 온 정약용(丁若鏞)이 머물며 혜장(惠藏)선사와 교우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05년 다산정약용은 주역 연구 자료가 담긴 경함을 고성사(高聲寺)로 옮겼으니, 여기에는 그를 위한 혜장선사의 깊은 배려가 스며 있었고 이로부터 두 사람의 인연은 날로 깊어갔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요사가 남아 있다.
이 중 대웅전에는 조선시대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목조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후불탱화로는 영산회상도와 지장탱화·감로탱화·신중탱화가 있다.
이 중 지장탱화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33년 제작된 것이다. 칠성각에는 4점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고성사 목조삼존불상중에 한 분은 십여 년 전, 일본으로 팔려갈 뻔한 기구한 운명을 맞기도 했다.

도굴꾼들이 그때 돈 350만 원에 일본에 팔아 넘기기로 하고 부처님을 부산까지 옮겼었다고 한다.
이틀만 늦었어도 영영 일본으로 가버렸을 텐데 다행히도 발각되어 다시 모셔지게 되었다.
고성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성보(聖寶)인 부처님마저 없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고성사는 일찍이 금릉팔경의 첫 번째로 꼽혔던 저녁 종소리를 잃었다.
3∼40년 전까지만 해도 들을 수 있었던 종소리가 언젠지 모르게 종이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진 것이다.
그때 종이 없어진 것을 가장 아쉬워 한 사람들은 강진의 백성들이었다고 한다.

강진이 발전하려면 고성사의 종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야 한다고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가장 잘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유서 깊은 절 고성사는 행정구역상으론 강진읍내에 있다.
30리 밖 구강포 바다에 떠있는 배에까지도 은은하게 울려 퍼졌을 종소리를 들으며 강진 사람들은 고성사를 마음의 안도를 얻는 영원한 귀의처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도 읍내의 연세 많으신 분들 가운데서는 강진의 대표적인 사찰로 고성사를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고성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다산 정양용에 얽힌 일화다.
고성사이 발전해야 강진도 발전한다는 말이 강진에는 스스럼없이 회자되고 있다
산신각 자리가 바로 다산 선생이 보은산방(報恩山房)이라는 초당을 짓고 기거했던 곳이라고 한다.
다산의 두 번째 기거처가 되었던 고성사. 지금의 산신각 자리가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보은산방(報恩山房)이라는 초당을 짓고 기거했던 곳이라고 한다.
산세가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인 보은산, 꼭대기는 소의 머리에 해당하는 우두봉(牛頭峰)이고, 고성사가 자리 잡은 곳은 소의 목 아래 방울을 다는 부분에 해당된다.
근래에 새로 주조한 종이 다시 강진 읍내에 울려 퍼지고 있다.
강진의 희망과 중생들의 발원을 담은 종소리가 도솔천의 그것보다 더 아름답게 들릴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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