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가 있는 국립공원 오대산에는 높은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으며, 월정사를 비롯하여 상원사, 중대 적명보궁, 북대 미륵암, 중대 사자암, 서대 수정암, 동대 관음암, 남대 지장암, 영감사, 금강사 등의 유서깊은 사암과 사적, 수많은 명소가 있다.
오대산은 본래 중국 산서성에 있는 청량산의 다른 이름으로 문수보살이 1만의 보살과 함께 상주한다고 하는 곳인데, 자장율사가 중국에 있을 때 그곳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정골사리와 가사, 발우를 얻은 곳이 기도 하다.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는 수행할만한 곳을 찾아 전국을 순례하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의 형세가 중국의 오대산과 너무도 흡사함으로 문수보살이 상주할만한 곳이라 여기고 오대산이라 했다 한다.
월정사는 643년(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慈裝律師)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 자장율사는 임시로 초암(草庵)을 얽어 머무르면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자 하였으나, 머무르던 3일 동안 음산한 날씨가 계속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뒤 유동보살(幼童菩薩)의 화신이라고 전 하는 신효거사(信孝居士)가 이곳에 머물렀고, 범일(梵日)스님의 제자였던 두타승(頭陀僧) 신의(信義)스님이 자장율사가 휴식하던 곳을 찾아와서 암자를 짓고 살았다.
신의스님이 입적 후 이 암자는 오랫동안 황폐하여 있었는데, 수다사(水多寺)의 장로 유연(有緣)스님이 암자를 다시 짓고 살면서 월정사의 사격(寺格)을 갖추었다.
그 뒤 1377년(고려 충렬왕 33년) 화재로 전소된 것을 이일 (而一)이 중창하였고. 1833년(조선 순조 33년)에 다시 화재로 전소된 것을 1844년(조선 헌종 10년)에 영담(瀛潭)ㆍ정암(淨庵) 등이 중건하여 내려오다가 1ㆍ4후퇴 당시 작전상의 이유로 아군에 의하여 칠불보전 (七佛寶殿)을 비롯한 10여동의 건물이 전소되었다.
지금의 월정사는 1964년 탄허스님이 적광전을 중건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중건하여 이룩한 것이다.
그리하여 어엿한 대가람의 모습을 되찾게 된 월정사는 화재로 많은 성물과 문화재를 잃었으나 도특한 특장을 당 우와 국보 제48호 팔각구층석탑, 보물 제139호 석조보살좌상,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 국보 제221호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보물 제745호 월인석보 등 수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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