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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위봉사 威鳳寺요약정보 및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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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사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7교구 금산사
대표전화 063-243-7657
   063-243-6996
  주소 전북 완주군 소양면 위봉길 53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21 위봉사
   53 Wibong-gil, Soyang-myeon, Wanju-gun, Jeonbuk-do
Tag 사찰

  • 상품 정보

    상세설명

    추줄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위봉사(威鳳寺)는 일제강점기까지만 하더라도 이 지역을 대표하는 거찰이었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모든 사찰을 30본말사로 구획할 때 위봉사는 전북 일원의 46개 사찰을 관할하는 본사(本寺)의 위상을 갖추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각종 화재로 인해 수난을 당하면서 거의 모든 전각이 없어졌다가 근래 들어서 다시 중창불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곳은 해발 524m로 전주 8경의 하나인 위봉폭포와 1675년(숙종 1)축조된 위봉산성이 위치해 있어 전북지역의 대표적 명산으로 꼽힌다. 특히 동학혁명 때는 퇴락한 위봉산성의 행궁(行宮)을 대신하여 위봉사가 행궁의 기능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위봉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먼저 『범우고(梵宇攷)』에 수록되어 있는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자.

    위봉사는 ‘圍鳳寺’라고도 한다. 속전에 의하면 산의 형세가 사방이 둘러싸여 있고, 처음 창건할 때 마침 봉황새의 이적(異蹟)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려 초 전주의 최용갑(催龍甲)이 명산을 유람하다가 이 터를 얻고 처음 암자를 건립하였다. 이후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이곳을 지나다가 지형의 아름다움에 탄복하였으며, 석잠(釋岑) 스님이 구조를 고쳤다가 승숭(僧崇) 스님이 거찰로 만들었다. 산내에는 북암(北唵)달마암(撻摩唵), 승가암(僧伽唵), 익수암(益水唵)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지정년간(至正年間, 1341~1367)에 창건된 것들이다.다소 후대의 자료이긴 하지만 『범우고』에서는 최용갑이라는 인물이 처음 암자를 세웠으며, 이후 고려 후기의 고승인 나옹이 중창한 것이라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현존하는 「위봉사 극락전 중수기」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1868년(고종 5) 포련(布蓮) 스님이 지은 이 중수기에서도 정확한 창건시기는 알 수 없으나 최용각(催龍角)이라는 인물이 신라 말에, 보제존자 나옹이 고려 말에 각각 중창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범우고』의 ‘최용갑’과 중수기의 ‘최용각’이라는 인명이 조금 다르고 그 시기도 신라 말과 고려 초라는 차이가 있다. 아무튼 절은 늦어도 고려 초에는 창건되어 있었고, 1359년(공민왕 8)나옹이 대규모로 중차하여 그 규모는 전사(殿舍)가 28채, 외암(外唵)이 10여개에 달하였다고 한다. 위봉사는 이미 고려말부터 거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보광명전 앞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이 이 무렵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나옹은 고려 후기 불교를 이끌어간 위대한 고승이었다. 이러한 위상 때문인지 「추줄산위봉사사적사병서(崷崒山威寺事蹟詞幷序)」에는 나옹을 창건주라 기록하였다. 무경 자수(無竟子秀) 스님이 지은 『무경집(無竟集)』에 수록된 이 자료 역시 절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인데, 이상의 자료를 종합해 볼 때 위봉사와 나옹화상과의 관계는 상당히 밀접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최용갑’ 또는 ‘최용각’이라고 표기되는 인물은 위봉사 창건시기의 시주자로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편 최근 들어 각종 자료에는 604년(백제 무왕 5) 서암대사(瑞巖大師)라는 분이 이 사찰을 창건하였다는 내용이 서술되고 있다.

    완주 위봉산성 (完州 威鳳山城)
    조선 후기 변란을 대비하여 주민들을 대피 시켜 보호할 목적으로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숙종 원년(1675)~숙종 8년(1682)에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 둘레는 약 8,539m, 성벽 높이는 1.8~2.6m 이고 관련 시설물로는 성문 4개소, 암문지 6개소, 장대 2개소, 포루지 13개소, 추정 건물지 15개소, 수구지 1개소가 확인되었다.
    일부 성벽을 제외하고는 성벽 및 성문, 포루, 여장, 총안, 암문 등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다른 산성과는 달리 군사적 목적뿐만이 아니라 유사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시기 위한 행궁을 성 내부에 두는 등 조선 후기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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