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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새소식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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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제75호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6-04
국보 제75호 표충사 청동 은입사 향완
수량면적 : 1점
지정일 : 1962.12.20
시대 : 고려 명종 7년(1177)
소재지 : 경남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표충사 호국박물관 전시중
향완이란 절에서 의식을 행하거나 불단에 올려놓고 향을 피우는데 사용된 공양구이다. 특히 이처럼 완형(盌形)의 몸체에 나팔처럼 벌어진 자리와 원반형 받침을 지닌 형태를 향완이라 불렀다. 경상남도 밀양 표충사에 있는 청동 향완은 높이 27.5㎝, 입지름 26.1㎝의 크기이다. 향완에 무늬를 새기고 그 틈에 은실을 박아서 장식한 은입사(銀入絲) 기술이 매우 정교하면서도 세련된 작품이다.
향완의 형태는 주둥이 부분에 넓은 전이 달린 몸체와 바깥으로 벌어진 나팔모양의 받침을 갖춘 모습이,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전과 몸체가 닿는 부분을 둥글게 처리하고 받침 둘레의 가장자리에 얕은 턱을 만들어 안정감을 주었다. 높이나 너비의 비율도 거의 1:1을 이룸으로써 균형잡힌 비례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넓은 전 윗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6개의 원 안에 ‘범자(梵字)’를 은입사하였으며, 그 사이사이에 구름무늬를 장식하였다. 몸체에도 역시 굵고 가는 여러 선으로 원 안에 굵게 은입사한 ‘범자(梵字)'가 4곳에 배치되어 있다. 받침에는 구름과 용무늬를 장식하였는데, 굵고 가는 선을 이용하여 능숙하게 표현된 용의 모습에서 고려시대 뛰어난 은입사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넓은 전의 안쪽 면에는 57자의 은입사로 된 명문을 새겼는데, 내용으로 미루어 고려 명종 7년(1177)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국내에 남아있는 향완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 향완 연구에 귀중한 편년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원래 이 향완이 있었던 곳이 현재의 표충사가 아닌 창녕 용흥사였음을 알 수 있지만 언제, 어떻게 해서 표충사에 전래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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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467호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密陽 表忠寺 三層石塔)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6-04
보물 제467호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密陽 表忠寺 三層石塔)
수량면적 : 1기
지정일 : 1968.12.19
시대 : 통일신라시대
소재지 : 경남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표충사 경내
표충사 대홍원전(大弘願殿) 앞에 세워진 3층석탑이다. 탑 앞에는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석등이 있으나 이 곳은 탑과 석등이 놓였던 원래의 위치가 아닌 듯하다. 표충사의 원래 이름은 죽림사(竹林寺)인데 신라 흥덕왕 4년(829)에 두번째로 크게 확장시켜 이름을 영정사(靈井寺)로 고쳤다고 전한다. 조선 헌종 5년(1839)에는 그때까지 밀양군 무안면에 있었던 표충사(表忠祠)를 영정사로 옮기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개칭하였고, 가람배치도 큰 이동이 있었던 것이니 이 탑도 그 때에 옮긴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기단(基壇)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각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탑신부(塔身部)는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기단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형태로, 균형면에서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표면 모서리에는 매우 넓은 기둥이 새겨져 있고 다른 장식은 없다. 2층 몸돌은 1층에 비하여 높이가 급격히 줄었으며 3층도 체감되어 있다. 또한 2·3층의 몸돌 모서리에도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으나 너비는 전체가 축소됨에 따라 좁아졌다. 지붕돌은 밑에 4단의 받침이 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었으며,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흘러내리다가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치켜올려져 있다. 꼭대기에는 탑의 머리장식이 얹혀져 있으나 정돈되지는 못하고, 그 위에 1m 가량의 끝이 뾰족한 쇠막대를 세웠다.
탑신부 1층의 몸돌이 지나치게 커다란 단점이 있으나, 기단이 1단으로 구성된 신라석탑양식을 따른 아담한 탑이다. 탑의 머리장식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서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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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충사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와 장삼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6-04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와 장삼
수량면적 : 2착
지정일 : 1973.07.16
시대 : 조선시대(1544-1610)
소재지 : 경남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표충사호국박물관 소장
사명대사(1544~1610)는 임진왜란 때 의병과 승병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이 유물은 사명대사가 착용했던 가사와 장삼이다. 가사는 승려들이 입던 법의(法衣)로 장삼을 입고 그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덧 옷이다. 장삼은 검은색이나 흰색으로 만든 길이가 길고 소매가 넓은 옷으로 가사와 함께 승려가 입는 법복 중 하나이다. 사명대사 금란가사는 황금색의 중국 비단으로 만들었는데, 현재는 담황색으로 변색되고 훼손도 심하여 본래의 모습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흰색 무명으로 만든 사명대사 장삼은 상의와 하의가 연결되어 있으며, 군데 군데 훼손은 되었으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사명대사 금란가사와 장삼은 착용자를 알 수 있는 유물로서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승려들의 복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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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1944호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 (密陽 表忠寺 三層石塔 出土 遺物 …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6-04
보물 제1944호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 (密陽 表忠寺 三層石塔 出土 遺物 一括)
수량면적 : 28건34점(불·보살상 20점, 개수탑기비 1점 등)
지정일 : 2017.10.31
시대 : 통일신라시대~조선시대
소재지 : 경남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표충사호국박물관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은 1995년 실시된 삼층석탑의 해체보수 과정에서 기단 적심부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들 유물은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20구의 금동불상과 탑에 봉안된 여러 공양물, 석탑의 보수를 알려주는 조선 초기의 <개수기비>(1491년)를 포함하고 있다. 불상 중에는 머리와 대좌 등이 파손되어 완전하지 못한 것도 있으나 출토지가 분명한 곳에서 시기를 달리 하는 많은 불상이 일괄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석탑 내에 사리장엄구 이외 불상을 봉납한 사례는 통일신라시대 석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이지만, 이렇게 다양한 형식과 양식, 그리고 시대별 층위를 가진 불상이 다량으로 봉납된 사례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드문 경우이다. 또한 이는 통일신라 9세기 대에 건립된 석탑이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실증적 자료이기도 하다.
표충사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금동불상 및 청동탑편, 개수탑기비(改修塔記碑), 상평통보 등은 금동불상 연구와 석탑의 공양의식, 중수사례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판단되므로, 일괄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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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충사 제468호 아미타후불도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6-04
경상남도지정문화재 제468호 아미타후불도
유형문화재
수량면적 : 1폭
지정일 : 1908.01.10
시대 : 1861년
소재지 : 수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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