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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심원사 심원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5
심원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5
[문화재명]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지역] 성주
[조성연대] 통일신라
[형태사항] 폭 43cm, 세로 51cm
[지정사황] 경북지방문화재자료 525호
[수량] 1개
[관리자] 심원사
화재에 의해 돌이 깨진 것인지, 임의로 훼손 한 것인지는 정학히 알 수 없으나 불상이 취하고 있는 수인(손 모양)으로 보아 비로자나부처님의 모습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며, 가야산 일대의 해인사와 법수사 등과 함께 화엄도량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통일신라시대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
대한불교조계종 심원사 심원사 석조불상광배/석조불상대좌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5
심원사 석조불상광배/석조불상대좌-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5
[문화재명] 석조불상광배/석조불상대좌
[지역] 성주
[조성연대] 통일신라
[형태사항] 광배 : 가로 108cm, 세로134cm / 대좌 : 폭 75cm
[지정사황] 경북지방문화재자료 525호
[수량] 1개
[관리자] 심원사
심원사 복원을 위해 발굴조사를 한참 진행하고 있을 때 회주스님의 꿈에 은현 중 나투신 비로자나부처님의 좌대 광배의 유물이다. 우리가 넓은 의미로 불상이라고 할 때 불신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대좌와 광배를 구비한 즉 삼위일체를 이룬 것을 불상이라 한다. 그 세 가지는 불가분의 관계요, 실제로 불상을 만들 때는 불신뿐만 아니라 대좌와 광배를 반드시 함께 만들기 때문이다. 핵심을 이루는 불신은 '깨달은 사람'이며 곧 진리이다. 그는 우주에 충만한 대 생명력의 화신이며 반드시 연화대좌 위에 있다. 연화란 인도에서 만물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며 물과 관련이 있다. 물에서는 모든 것이 싹트고 성장하지만 한편 빛이 없으며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에서 자란 연꽃 위에 부처가 탄생하고 진리가 성립된다. 그리고 그 진리는 빛을 발한다.
실제로 훌륭한 인간은 강한 기를 발산하며 우리는 그것을 빛으로 나타낸다. 따라서 불신과 대좌와 광배는 삼위일체로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으며 천개를 연화로 삼는 것도 그런 연유다. -
대한불교조계종 심원사 심원사 배례석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5
심원사 배례석-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5
[문화재명] 배례석
[지역] 성주
[조성연대] 통일신라
[형태사항] 가로 115cm, 세로 115cm
[지정사황] 경북지방문화재자료 525호
[수량] 1개
[관리자] 심원사
예경을 위한 종교행사에 사용되는 일종의 판석으로 불을 켜거나 향을 피우고 또는 음식을 차려 놓는 판돌로 그 앞에서 배례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정례석(頂禮石)이라고도 부른다.
배례석들은 대부분 옥외의 노천, 그중에서도 법당의 정면이나, 석등 또는 석탑의 바로 앞에 놓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 형태는 모두 직사각형의 판석으로 대부분이 배례석이 법당과 평형으로 놓인다. 절을 하기 위한 장소(법당/석탑)에 놓여 수많은 대중들의 업의 무게를 뭇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풀어준 심원사 도량의 귀중한 성보이다. 흐르는 세월에 중생과 마음은 정처를 알 수 없지만 어그러진 배례석은 도량에 상주하고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심원사 심원사 석조유물(신방석과 기단갑석)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5
심원사 석조유물(신방석과 기단갑석)-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5
[문화재명] 석조유물(신방석과 기단갑석)
[지역] 성주
[조성연대] 통일신라
[형태사항] 신방석 가로75cm, 세로171cm
[지정사황] 경북지방문화재자료 525호
[수량] 1개
[관리자] 심원사
일각문(一角門)의 지대(址臺) 위에 기둥 및 용지판(龍枝板)을 받친 돌 -
대한불교조계종 심원사 심원사 소개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5
심원사 소개-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5
사자암자락 대자연의 품에 자리한 천년고찰심원사는 신라시대 때 창건되다.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가야산 동쪽 자락에 위치한 심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입니다. 가야산은 예로부터 해동의 8승지 중 하나이며 수많은 시인 묵객의 영감의 원천지였습니다. 가야산은 1972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백운동 심원사는 성주읍으로부터 27k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주봉인 칠불봉은 해발 1433m입니다.
멀리 앞에 보이는 팔공산 위로 솟아오르는 황금빛 세상을 안으며 가야산의 하루는 장엄한 일출로 문을 엽니다. 힘차게 솟은 장군봉과 연이어 있는 만물상과 칠불봉의 신령스러움은 남성적인 가야산의 정수를 느끼게 합니다. 가야산 백운동으로 들어서면 넓은 주차장 옆으로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까지 검을쏘냐. 겉 희고 속 검은 건 너뿐인가 하노라'라는 시조를 지은, 조선 태종 때의 영의정을 지낸 이직(李稷) 선생의 시비가 있고, 그 옆으로 심원사 표지가 보입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높은 축대 위로 웅장한 사찰이 나타납니다. 정면 중앙 계단을 올라서면 가운데에 보이는 고탑과 그 뒤에 화려한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왼편으로는 극락전, 오른편으로 목탑형식의 아름다운 약사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밑의 중앙에는 9세기 초에 조성된 심원사 삼층석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16호)과 아름다운 형식의 광배, 석조 유물 일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525호) 등 다수의 문화재가 있습니다. 탑의 양 옆으로는 똑같은 형식으로 건축된 관음전, 문수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웅전 뒤로 무문관 및 선문화체험관이 자리잡고 있어 많은 수행자들이 정진중이며, 가야산신을 모신 숭모전이 사찰의 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심원사는 고려 때 도은 이숭인 선생의 심원사 장로께 드리는 시에서 '심원고사 재야산(深源古寺 在倻山) 심원사 옛 절은 가야산 속에 있는데' 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고려 때에도 옛 절로 불리웠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입니다. 주변 가야산 일대에는 용기사지, 신라 거찰(巨刹) 법수사지, 백운리사지, 일요암지의 육대신장 등의 불교유적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심원사에서 10분 거리에는 한가로운 대가천가에 자리한 회연(檜淵)서원도 있습니다. 영남 5현 가운데 한분인 한강 정구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입니다.
가야산 식물원에는 온갖 꽃들과 나무가 있어 학생들의 현장 학습장으로 각광 받고 있고, 가야산 산신의 이름을 딴 정견대는 가야산의 장관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전망대입니다. 영남의 영산인 가야산은 운무가 가득한 산수화로, 화려하게 치장한 가을날의 얼굴로, 순결한 설산의 모습으로 사계절 내내 많은 이들의 발길을 부릅니다.
용기골과 칠불봉으로 오르는 등산로 코스가 또한 인기 있습니다. 용기골은 웅장하고 남성적인 가야산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등산로입니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맑은 계곡은 등산의 묘미를 더해줍니다. 이곳은 노각나무와 조릿대 군락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다람쥐, 토끼 등이 제 세상을 만난 듯 뛰놀고 있습니다. 자연학습장으로도 손색이 없어 어린이가 딸린 가족동반 등산로로도 아주 좋아 사시사철 많은 이들이 찾고 있습니다. -
대한불교조계종 청곡사 청곡사 역대 고승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4
청곡사 역대 고승-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4
도선국사
도선국사(道詵國師)는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2년에 전남 영암군(靈岩郡)·구림촌(鳩林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신라 왕족의 후손 김씨요, 어머니는 강씨(姜氏)였다. 강씨 부인이 도선국사를 잉태할 때에 꿈에 어면 사람이 구슬 한 개를 주는 것을 받아 삼켰더니 그날부터 태기가 있어 낳으니 이분이 바로 도선국사였다. 도선국사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영리하여 모든 점이 범상한 어린이들 보다 뛰어났다. 15세 때에 구례군(求禮郡) 월유산(fT遊山) 화엄사(華縱寺)에서 예월화상(隸月褙尙)을 모시고 스님이 되었다. 이곳에서 5~6년간 대승경교(大乘經敎)를 연구하여 대의(代議)에 통하고, 20세 되던 해에 혜철국사(惠徹國師)에게 나아가 배우고, 동리산(桐裏山)의 서당 지장선사(西堂努葬禪師)를 찾아서 법을 묻고 도를 배웠다. 우리나라 풍수도참의 효시로 고려를 건립한 왕건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신라(新羅) 49대 헌강왕(憲康王) 5년(879)에는 도선국사(道詵國師)는 전국 500여군데에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기위하여 비보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하는데 남강변에서 청학(靑鶴)이 날아와 서기(瑞氣)가 충만함을 보고 이곳 청곡사를 창건하였다.
진감국사
혜소선사의 시호(諡號)는 진감(眞鑑)이며 속성(俗姓)은 최씨로서 비교적 늦은 31세의 나이로 출가하였다. 804년(애장왕 5)에는 당나라에 유학하여 창주(滄州)에서 신감대사 (神鑑大師)의 제자가 되었고, 810년(헌덕왕 2) 당나라 숭산(嵩山)에 있는 소림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혜소는 종남산(終南山)에 들어가 선정과 지혜를 닦으며 참선하고 실천적 선수행을 통해 독자적 선사상을 형성하였다. 830년(흥덕왕 5년) 선사는 귀국하여 국왕의 환대를 받으며 상주(尙州) 장백사(長栢寺)에 주석하였고, 이후 지리산에 쌍계산문을 개창하고, 남종선의 소개와 확산을 위해 노력하였다. 선사는 우리나라 범패의 선구자라고 칭송된다. 선사는 화엄경의 유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화엄종의 포교방식과는 달리 범패를 통해 선사상을 확대하였다. 이후 범패는 수행의 한 방법으로 선사들이 많이 사용하였으며, 신라 말기 선종이 염불사상을 수용한 것도 범패가 가져온 결과였다. 850년에 나이 76세, 법랍 41세로 입적하였다. 헌강왕(憲康王)대에 이르러 진감이라 시호하사 하고 대공영탑이라 하여 비를 세웠다. 하동쌍계사에 고운 최치원이 쓴 진감국사 대공영탑이 세워져 있다.
상총대사
고려말,조선초 선승(禪僧). 고려말(高麗末) 우왕 때 실상사장로(實相寺長老)로서 청곡사를 중건(重建)했다. 1397년 태조 6년에는 왕명으로 향로를 만들어 신덕왕후의 명복을 기리고, 정릉(貞陵)에 흥천사(興天寺)를 개원, 조계종(曹溪宗)의 총본산으로 삼았으며 초대주지로 임명되었다.
일타 대종사
(율사(律師). 법호는 동곡(東谷) 또는 삼여자(三餘子). 1929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일타스님은 42년 통도사에서 고경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후 49년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스님은 조계종 1∼3대 중앙종회 의원과 해인사주지, 은해사주지, 해인총림 율원장과 율주등을 역임했으며 93년에는 조계종 전계대화상에 위촉되어 계율을 진작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53년 통도사 천화율원 (千華律院)에서 자운율사로부터 율장을 전수받았으며 이어 <범망경보살계><계율과 수행> 등 계율 관련 서적을 출간하고 해인총림 율주 등을 역임하면서 율사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또 46년 송광사 삼일암에서 수선안거를 시작한 이래 전국의 제방선원을 두루 거치며 화두일념으로 참선 정진과 중생교화에 매진해 온 선승으로 더욱 유명하다. 지난 54년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매일 3천배씩 7일간 기도끝에 오른손 네손가락 12마디를 연비한 후 태백산 도솔암에 들어가 6년 동안 용맹정진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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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청곡사 청곡사 역사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4
청곡사 역사-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4
청학이 날아와 앉은 명당 대한불교조계종 청곡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 말사
靑谷 寺 : 전통사찰 제 74호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연기조사인 도선 국사 스님에 의해 월아산 청곡사를 창건되었다. 이후 고려 우왕 6년(1380년)에 실상대사가 중수 하였으며 조선 태조 6년(1397년)에는 신덕왕후의 원찰이자 비보사찰로 상총스님에 의해 중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선조 35년(1602년)에 계행, 극명 두 스님이 다시 중수하였다. 광해군 5년(1612년)에는 고명스님이 불보살님과 보물 1232호인 제석천왕과 대범천왕을 새롭게 조성하였으며 현종 2년(1661년)에는 인화스님이 업경전 10왕을 조성하였다. 또한 경종 2년(1722년)에는 국보 302호인 괘불탱화가 조성되었으며 조선 말기에 포우대사가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으나 6·25전란에 대부분 소실되고 2000년부터 서강스님이 대대적인 중수를 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청곡사 대웅전 건물의 특징은 앞이 화려하고 뒷면은 간결하며 부처님은 서부 경남에서 제일 크고 섬세하게 조성되어 있으며 또한 다른 건물들은 앞처마는 겹처마인데 뒷처마는 홑처마로서 업경전, 칠성각, 나한전이 그렇다.
문헌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남강 변에서 학이 이곳으로 날아와 앉으니 성스러운 기운이 충만한 산과 계곡이 있어 이곳을 살펴본 즉 천하에 명당이라 이곳에 절터를 잡았다고 한다. 청곡사의 특징은 두 줄기의 물길이 한 곳에서 만나 못을 이룬 위에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터라, 학이 알을 부화한 뒤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묶어 놓았다는 뜻에서 탑을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자리에 세워놓았으며 탑 정면은 앞산 노적 봉우리에 맞추어 먹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탑을 세운 것이 특징으로 많은 풍수학을 배우는 사람들이 실습 사찰 터로 자주 찾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전설에 의하며 학이 찾아와 먹이를 먹는 계곡에 징검다리가 있어 이 곳에서 학을 날려 보냈다하여 방학교가 있고 학이 목욕을 했다하여 학영지가 있다.
청곡사에는 15동의 건물이 있으며 국보 302호인 괘불탱화, 보물 1232호인 제석천왕, 대범천왕이 있으며 3층 석탑, 대웅전, 업경전, 괘불함, 금강역사상, 영상회상 탱화 등 많은 성보가 있는 옛스런 사찰이다.
청곡사 연혁
873년 신라 헌강왕 5년에 연기조사 도선국사께서 비보선찰로 청곡사 창건
1380년 고려 우왕 6년 실상대사 상총스님께서 중창
1397년 조선 태조 6년 왕비인 신덕왕후가 서거하자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고자 이곳에 청동은입사향완을 만들어 위패를 모시함
1602년 선조 35년 계행,극명 두스님께서 대웅전 중수
1612년 광해군 5년 고명스님께서 대웅전 삼존불과 제석천왕 대범천왕 조성
1661년 현종 2년에는 인화스님께서 업경전 10왕 조성
1681년 숙종 7년에 금고 반자를 주조하고 청곡사 봉안
1693년 숙종 19년 업경대 조성
1702년 숙종 28년 수갓 연당 조성
1722년 경종 2년에 괘불탱화 조성
1750년 영조 26년 삼존불개금,대범제석천왕,업경전 보살 및 시왕개분
1873년 후불탱화, 삼장탱화 조성
1877년 칠성각 및 칠성탱화조성
1979년 나한전 후불탱화 조성 및 나한전 신중탱화 조성
1995년 불기 2539 병자년 청곡사 사적비 조성
1999년 종각 신축
2007년 삼성각 조성
2008년 청곡사 성보 박물관 개관
2016년 대웅전 삼존불 개금불사
2016년 설선당 복원 -
대한불교조계종 청곡사 청곡사 전각 배치도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4
청곡사 전각 배치도-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4
1.대웅전 / 2.적묵당 / 3.칠성각 / 4.나한전 / 5.선불장 / 6.업경전 / 7.설선당 / 8.응향각 / 9.천왕문 / 10.환학루 / 11.범종각 / 12.산신각 / 13. 성보박물관 / 14. 요사체 / 15. 삼층석탑 / 16. 해우소 / 17. 서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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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청곡사 청곡사 대웅전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1호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4
청곡사 대웅전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1호-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14
경남 진주시 금산면(琴山面) 갈전리(葛田里)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광해년간에 복원한 것으로 대웅전은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신라(新羅) 49대 헌강왕(憲康王) 5년(879)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創建)한 것으로 사찰(寺刹)을 창건하게 된 동기는 문헌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진주를 지나가시다 남강변에서 청학(靑鶴)이 날아와 서기(瑞氣)가 충만함을 보고 이곳을 살펴본즉 천하에 명당이라 절터로 정하였다고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이 절터의 특징은 두 줄기의 물길이 한곳에서 만나 못을 이룬 위에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터라 학이 알을 부화한 뒤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학 목을 고리로 채워놓는다는 뜻에서 탑에 원형 고리와 원주를 새워놓았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다 깨어지고 나머지 형태만 갖추고 있으며 탑 정면은 앞산 노적 봉우리에 맞추어 먹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탑을 새운 것이 특징이라 많은 풍수학을 배우는 사람들이 실습 살찰터로 자주 찾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전설에 의하면 학이 찾아와 먹이를 먹는 계곡에 징검다리가 있어 이곳에서 학을 날려 보냇다 하여 방학교가 있고 학이 목욕을 했다하여 학영지가 있다.
그후 고려말(高麗末) 우왕때 실상사 장로(實相寺長老) 상총대사(尙聰大師)가 중건(重建) 하였으나, 임진왜란(壬辰倭亂)때 불탄 것을 선조, 광해년간에 복원(復元)한 것으로 대웅전은 경남(慶南)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건물의 형식은 단층 팔작지붕와가(瓦家)로서 다포계(多包系) 계통(系統)을 따르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활주(活柱)를 받쳐 보강하고 있다. 청곡사 대웅전은 경남 유형문화재 제 51호로 임진왜란때 불탄것을 조선시대 실상스님과 보우스님등이 보수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대웅전은 처마선이 매우길어 처마를 바처든 보조기둥이 돗보이며 대웅전 전면은 화려하나 뒷면은 매우 간결하고 수수하게 지어졌다. 내부의 석가모니 부처님과 문수 보현보살님의 등상은 미우 단아하며 섬세하고 그윽한 모습이 경외감을 갖게하고 근래에 보기드믄 미소를 지니고 있다, 건물 내부의 장식은 불보살님이 돗보이도록 아주 검소하게 지어졌으며 내부 그림은 아주 아름답고 섬세하게 단청된게 특징이다.
청곡사에는 15동의 건물이 있으며 국보 302호 괘불탱화, 보물1232호 제석천왕, 대범천왕이 있으며 3층석탑, 대웅전, 업경전, 괘불함, 금강역사상, 영상회상탱화등 많은 성보가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에 처마선이 아름답고 네 귀퉁이에는 처마받침이 있어 웅장해 보이며 주심포(柱心包) 집으로 활주[活柱 : 추녀 뿌리를 받친 가는 기둥]를 세워 외부의 지붕 무게를 일부 받치고 있다.서부 경남 일원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고 크고 섬세하게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대웅전에 봉안한 석가삼존상(釋迦三尊像)은 1615년(광해군 7)에 조성되었는데, 임진왜란 이후 불상으로는 비교적 대작에 속한다
佛身普遍十方中 (불신보변시방중)
부처님은 모든 곳에 두루 함께 하셔서
月印千江一體同 (월인천강일체동)
천 갈래 강에 비친 달이 모두 같네.
四智圓明諸聖本 (사지원명제성본)
지혜가 원만히 밝은 모든 성인들의 근본 같아
賁臨法會利群生 (분임법회이군생)
법회에 임해서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시네.
* 四智 : 大圓鏡智(대원경지), 平等性智(평등성지), 妙觀察智(묘관찰지), 成所作智(성소작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