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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늪마을 용늪마을 찾아가는 길
- 작성일
- 2024-08-06
용늪마을 찾아가는 길- 작성일
- 2024-08-06
승용차
서울→양평→홍천→인제(164km, 2시간 30분)
시외버스
서울(상봉, 동서울)→인제버스터미널→원통버스터미널(3시간30분 소요)
시내버스
인제→원통→서화리 방면(30분 간격) -
인제자작나무숲 인제자작나무숲 임시 부분 개방
- 작성일
- 2024-08-05
인제자작나무숲 임시 부분 개방- 작성일
- 2024-08-05
기간 : 2024년 5월 4일~별도 안내 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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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자작나무숲 인제자작나무숲 탐방로
- 작성일
- 2024-08-05
인제자작나무숲 탐방로- 작성일
- 2024-08-05
1코스(자작나무코스), 거리(km) 0.9, 소요시간 약 50분, 순백의 자작나무 숲 집중 생육지역
2코스(치유코스), 거리(km) 1.5, 소요시간 약 90분, 자작나무와 낙엽송이 어우러진 지역
3코스(탐험코스), 거리(km) 1.2, 소요시간 약 40분, 작은 계곡이 함께 있는 지역
4코스(위험코스), 거리(km) 3.0, 소요시간 약 120분, 천연림과 자작나무 숲이 조화를 이룬 지역
5코스(힐링코스), 거리(km) 0.86, 소요시간 약 30분, 천연림과 자작나무숲을 볼 수 있는 지역
6코스(하드코스), 거리(km) 2.24, 소요시간 약 1시간 50분, 천연림과 자작나무숲을 볼 수 있는 지역
7코스(숏코스), 거리(km) 1.0, 소요시간 약 50분, 천연림을 탐방할 수 있는 지역
안내소∼자작나무숲, 거리(km) 3.2, 소요시간 약 60분, 자작나무 숲 안내소에서 임도를 따라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길 -
인제자작나무숲 인제자작나무숲 이용안내
- 작성일
- 2024-08-05
인제자작나무숲 이용안내- 작성일
- 2024-08-05
탐방객 입산시간 준수 : 동절기(14:00까지), 하절기(15:00까지) 입산가능
동절기 결빙으로 인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장비(아이젠, 등산스틱 등) 필수착용
폭설, 폭우 등 기상이변으로 입산이 통제될 수 있으니, 탐방전 자작나무숲 안내소(033-461-9696) 문의 후 입산하시기 바랍니다.
겨울철 적설 및 결빙시 등산화, 스틱, 아이젠 착용은 필수입니다.
적설과 결빙시에는 원대임도와 3, 4, 5, 6, 7코스는 통제됩니다.
※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주차장에서 3.2km떨어진 산중턱에 있으며, 걸어서 약 50분 ~ 1시간 20분 소요됩니다
탐방객 주의사항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의 보전과 원활한 운영을 위해 아래의 사항을 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차량이용 금지(원대리 자작나무 숲 주차장 이용, 45인 버스주차 가능)
애완동물 출입금지, 음식물 반입 및 야영 금지, 인화물질 및 담배 반입 금지, 자작나무 및 산림훼손 금지, 기타 산림 내 위법행위 금지, 동절기 아이젠 등 안전장비 필수 착용 (미착용 시 입산 불가)
※ 자작나무숲은 국민의 숲(단체의 숲)으로 지정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의 숲 내 오물 및 쓰레기 투기, 흡연, 취사행위 등에 따른 과태료 부과는 산림보호법 제57조 제3항~6항의 조항에 따라 20만원 ~ 100만원 과태료 부과됩니다 -
인제자작나무숲 인제자작나무숲 찾아가는 길
- 작성일
- 2024-08-05
인제자작나무숲 찾아가는 길- 작성일
- 2024-08-05
자가용
서울 : 서울춘천고속도로(78km) → 설악로(33.6km) → 원남로(7.5km) → 자작나무숲 입구
대전 : 중부고속도로 (76.1km) → 영동고속도로(50.5km) → 중앙고속도로(43.8km)→ 홍천IC → 설악로(48.7km) → 원남로(7.5km) → 자작나무숲 입구
대중교통
동서울 터미널 → 인제시외버스터미널 : 06:30 ~ 19:50분. 약 30분 간격
홍천 터미널 → 인제시외버스터미널 : 06:40 ~ 21:00. 약 30분 간격
시내버스
인제 시외버스터미널 → 원대리 마을회관 : 11:20분, 하루에 한 차례 운행. 마을회관에서 자작나무숲까지(약 3.8km) 40분 도보 이동
인제 시외버스터미널 → 원대수변공원행(버스 소요시간 35분) : 08:10, 10:00, 12:40, 14:00, 15:10, 16:00, 17:30, 18:30, 19:40, 수변공원에서 자작나무숲까지 (약 5km) 1시간 도보 이동 ]
※ 원대수변공원행 인제시내버스 운행시간은 변동이 있을 수 있으므로, 자세한 운행시간은 인제시외버스터미널로 문의 바랍니다.
※ 인제시외버스터미널: 033-463-2847 -
자작나무마을 자작나무숲 코스
- 작성일
- 2024-08-05
자작나무숲 코스- 작성일
- 2024-08-05
1코스(자작나무숲) : 0.9km, 40~50분 소요
- 자작나무숲을 탐방하는 코스
2코스(치유코스) : 1.5km, 1시간 30분 소요
- 자작나무숲을 지나 혼요림과 천연림을 탐방하는 코스
3코스(탐험코스) : 숲길 1.1km, 원대임도 2.7km, 2시간 소요
- 숲속 계곡과 임도를 함께 탐방하는 코스
4코스(힐링코스) : 숲길 2.4km, 절골임도 2km, 4시간 소요
- 2코스를 지나 원대봉 능선을 따라 자작나무 숲을 탐방하는 코스
1일차 프로그램
07:30~09:00 동서울 - 인제
09:00~09:30 정중앙 휴게소 집결, 인원파악 후 자작나무숲 출발
09:30~12:00 자작나무숲 도착 후 트래킹 출발
12:00~13:00 남전리 체험마을 식당 식사
13:00~16:00 필례약수터 및 한계령 탐방
16:00~17:00 티타임 및 휴식시간
17:00~ 마무리 및 귀가
매주 월,화요일은 휴무입니다.
자작나무숲 트래킹은 09시에 출발합니다. 늦지않도록 시간을 지켜 주세요.
점심은 12시에 농촌마을 농가밥상에서 제공 됩니다.
기상이변 따라 출발이 취소 될 수 있습니다.
동서울-인제 간 버스이용은 개인이 따로 오시는 경로이며, 자가용을 타고 오셔도 됩니다.
식사는 제공되며 솔라티나 스타렉스 차량으로 인솔 직접 해드립니다.
정중앙 휴게소는 인제 터미널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최소인원 미달 시 출발이 불가합니다 -
한국은행화폐박물관 한국은행화폐박물관 건물 소개
- 작성일
- 2024-07-27
한국은행화폐박물관 건물 소개- 작성일
- 2024-07-27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은 국가중요문화재(사적) 입니다. 우리나라 초기 근대 건축물로서 대한민국 금융의 역사와 함께 해온 유서 깊은 화폐박물관 건물은 1981년 국가중요문화재(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1907년 일본 제일은행이 사용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으나, 1909년 대한제국의 중앙은행으로 (구)한국은행이 설립되어 준공 이후에는 (구)한국은행 건물로 사용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구)한국은행이 조선은행으로 개칭되고, 1912년 건물이 완공된 뒤에는 조선은행 본점 건물로 이용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르네상스 양식의 석조 건물로 실용성과 견고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외관상 형태는 위에서 내려다 볼 경우 ‘井(정)’자 모양이고, 정면에서 볼 경우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입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외벽은 화강암으로 마감하였습니다. 이 건물에서 느껴지는 역사적인 분위기는 화강암이 지닌 견고하고 육중한 이미지에서 비롯됩니다. 건립 당시 내부 바닥은 목재로 천정은 석고로 마감하였고, 건물 지하에는 대형금고가 있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던 건물입니다.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으로 창립되면서 한국은행 본점 건물이 되었으며, 한국전쟁 때에는 내부가 거의 파괴되었는데 1958년 복구되었습니다. 1987년 이 건물 뒤편에 한국은행 신관(현 본관)이 준공되면서 원형복원 공사를 착수하였습니다. 외벽은 이전과 같이 복원하였으나 내부는 대리석으로 마감하는 등 현대적 건물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변경하여 1989년 완공하였습니다. 이후 2001년 한국은행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화폐박물관으로 개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
암사동선사유적박물관 암사동선사유적박물관 시설안내
- 작성일
- 2024-07-26
암사동선사유적박물관 시설안내- 작성일
- 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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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박물관 쉼박물관 휴관
- 작성일
- 2024-07-26
쉼박물관 휴관- 작성일
- 2024-07-26
휴관 기간 : 2023. 8.1 ~ (미정)
개관일 : 미정, 홈페이지 공지 사항 참고
휴관 사유 : 박물관 재정비 -
서울올림픽기념관 서울올림픽기념관 장기 휴관 안내
- 작성일
- 2024-07-26
서울올림픽기념관 장기 휴관 안내- 작성일
- 2024-07-26
휴관기간 : 2018.7.1 - 2026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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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 경교장 1~2층 재현 전시실
- 작성일
- 2024-07-25
경교장 1~2층 재현 전시실- 작성일
- 2024-07-25
1층 응접실
임시정부의 국무위원회 등 대표적인 회의들이 개최되고, 김구가 국내외 주요 인사들을 접견하던 곳
1층 귀빈식당
1945년 12월 2일 임시정부의 공식 만찬이 있었던 곳이며, 김구가 서거 했을 때 빈소로 사용되었던 곳
1층 선전부 활동 공간
임시정부의 홍보 및 언론을 담당한 선전부가 활동한 곳
2층 응접실
환국 후 김구와 국내 정당대표들과의 회담 및 국무위원회가 개최되었던 곳
2층 김구 거실(집무실)
김구 주석이 평상시 공무를 보거나 접견 장소로 사용하던 곳이며 1949년 6월 26일 서거한 곳
2층 임시정부 요인 숙소
1945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과 수행원들이 환국해 머문 곳 -
경교장 경교장 지하 전시실
- 작성일
- 2024-07-25
경교장 지하 전시실- 작성일
- 2024-07-25
제1전시실 - 경교장의 역사
죽첨장(竹添莊)시기
1938년 죽첨정(竹添町, 오늘날 서대문구 충정로)에 금광업자 최창학(崔昌學, 1891~1959)의 저택으로 건립되어 죽첨장(竹添莊)으로 불렸습니다.
경교장(京橋莊)시기
1945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해 경교장으로 입주하면서 임시정부 청사이자, 김구(金九, 1876~1949)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로 사용되었습니다.
훼손 및 복원기
1949년 김구가 경교장에서 서거한 후 중화민국대사관 사택과 월남대사관으로 사용되었고, 1968년 고려병원(강북삼성병원의 전신) 개원 후에는 병원시설로 사용되면서 원래의 모습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후 경교장을 복원·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2010년부터 복원하기 시작해 2013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개방되고 있습니다.
제2전시실 -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내·외의 독립운동을 총괄 지휘하였습니다. 1945년 광복 후 11월과 12월에 두 차례에 걸쳐 입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은 경교장에서 활동하며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펼치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제3전시실 -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
1945년 11월 입국한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은 경교장에서 자주통일의 구체적인 방안을 완성하기 위한 국무위원회를 개최하면서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추진하였습니다. 또한 김구는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남북협상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던 중,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대한민국 육군 소위이자 주한미군방첩대 요원이었던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였습니다. -
경희궁 경희궁 역사
- 작성일
- 2024-07-25
경희궁 역사- 작성일
- 2024-07-25
조선후기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의 집이 있던 곳으로 광해군 때 왕궁을 지어 경덕궁이라 부르다 1760년에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꾸고, 280여년 동안 동궐인 창덕궁, 창경궁과 더불어 서궐의 위치에서 양대 궁궐의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西闕)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東闕)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입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탄 후 대원군이 중건하기 전까지는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이 되었고, 서궐인 이곳 경희궁이 이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이곳 경희궁을 이궁으로 사용하였는데, 특히 영조는 치세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고종 때에는 숭정전, 회상전, 흥정당, 흥정당 등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은 경복궁 중건을 위해 훼철되어 경복궁으로 옮겨졌습니다.
경희궁과 경운궁을 잇는 홍교, 1902년경숭정전의 옛모습(현재의 동국대학교 정각원)
일제강점기
경희궁은 일제가 조선을 병합하면서 경복궁과 더불어 총독부 소유로 넘어갔습니다. 1907년 일제는 경희궁 안에 통감부 중학교를 세웠으며, 지형도 높은 곳을 깎아 낮은 곳을 메우는 등 크게 변형시켰습니다. 이후 숭정전, 회상전, 흥정당, 흥화문, 황학정 등 얼마 되지 않은 건물들마저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이전되고,또 경희궁 부지 2만 5천여 평을 떼어내어 전매국 관시를 지음에 따라 경희궁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한 때 이곳에 경희궁이라는 궁궐이 있었다는 의미인 '경희궁터'로 인식되었을 뿐이었습니다.
통감부중학교를 짓기위해 헐리는 경희궁 , 1907년경
사적 지정
1980년 9월 경희궁터가 사적 제 271호로 지정된 이후, 1985년 6월 건설부 고시 제258호로 공원지정이 되었고, 서울시립박물관 · 미술관을 이곳에 짓기로 결정함에 따라 서울시에서는 1986년 현대건설로부터 경희궁터를 교환 방식으로 취득하였습니다. 그리고 경희궁 복원 및 박물관 · 미술관 건립 공사에 앞서 여러 차례에 걸쳐 경희궁터의 유구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복원 가능한 건물과 박물관의 위치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경희궁지의 옛모습 (1972년 항공사진)
시굴성격의 경희궁터 발굴조사
서울시에서는「경희궁지 복원과 시민사적공원 조성계획」에 따라 1985년과 1987년 두 차례에 걸쳐 경희궁터 유구발굴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두 차례의 유구발굴 조사는 단국대학교 박물관에서 담당하였습니다. 1차 유구발굴 조사는 1985년 8월 7일부터 11월 20일 사이에 진행되었는데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위한 시굴'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아직까지 옛 서울고 건물들이 남아 있는 상태여서 이를 제외한 지역을 대상으로 유구발굴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발굴조사를 통해 숭정전의 상하 월대 중 하월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장대석 일부와 어계(御階), 동쪽 행랑의 초석2점, 서쪽 회랑 아래쪽의 암거(暗渠) 배수구, 숭정문터의 적심석 6기와 숭정문의 계석지(階石址)등 여러 유구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발굴과정에서 기와 조각과 자기 조각 등 1,000여 점의 유물을 출토하였습니다. 1차 조사에서는 숭정전 일대의 복원 가능성을 확인한 점이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유구발굴 조사는 1986년 6월 홍익대학교 부설 환경개발연구원에서 수행한「경희궁 근린공원조성 기본계획」에 따라 1986년 12월 29일부터 1987년 6월 30일 사이에 진행하였습니다. 1차 발굴지역을 제외한 경희궁터 전역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2개의 건물지, 담당지, 배수지를 확인하였습니다. 두 차례의 유구발굴 조사를 통해 확보한 유물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것으로 17세기에 해당하는 유물이 많았습니다.
숭정전, 자정전, 태령전터 발굴조사
숭정전과 숭정문, 동서남북 회랑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발굴조사는 1985년부터 7차례 실시하였습니다.
1985년과 1987년에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단국대 박물관에서 수행하였으며, 이후 1988년부터 1994년까지 5차례의 발굴조사는 명지대학교 부설 한국건축문화연구소에서 담당하였습니다.
한국건축문화연구소에서는 1988년 12월~1989년 5월 사이에「숭정전 건립부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단국대 박물관의 조사 때 발굴하였던 월대석을 노출하였고, 당시까지 계단으로 사용하고 있던 어계는 숭정전 건물과는 축을 달리하고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또한 애초의 추정과 달리 숭정전은 옛 서울고의 신관 건물이 아니라 식당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동 연구소에서는 1989년 10월~12월 사이에 숭정전의 동서 월량과 상하 월대의 유구를 발굴하기 위해 '경희궁 숭정전 발굴조사'를 행하여, 상하 월대의 일부분과 동서 월량의 주칸 및 칸 사이를 알려주는 초석을 발견하였고, 월랑이 복랑(複廊)으로 되어 있으며 숭정전으로부터의 거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1990년 3월~5월에는, 이전 발굴 때 철거되지 않아 발굴하지 못했던 강당 건물이 철거되었기 때문에 숭정문과 그 주위의 기단, 동쪽과 남쪽의 월랑 위치를 확인할 목적으로 '숭정문지 및 남회랑지 발굴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숭정문 앞 하월대의 최하단 및 2단을 구성하는 1열의 장대석들과 계단터 동쪽 모서리에서 동쪽으로 향해 있는 화계를 발굴하였습니다.
1991년 11월~1992년 8월에는「자정문지 및 북회랑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숭정전의 서북쪽 회랑 터 아래로 장대석으로 잘 조영된 암거(暗渠)배수구가 지나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이 외 적심석 몇 개를 발굴하였습니다.
1993년 11월~1994년 2월에는 YMCA건물과 유류고가 철거됨에 따라 숭정전의 서쪽과 북쪽의 회랑 터를 발굴하기 위해 '자정전지 및 숭정전 서북회랑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발굴 결과 숭정전 북쪽 회랑 터에서 초석 4기를 비롯하여 적심 5기 등 화방벽으로 구획된 건물 터를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건물 터 좌우에서 초석 7기를 비롯하여 바닥에 전돌이 깔린 양호한 상태의 천랑(穿廊)터를 발굴하였습니다.
자정전 터에 대한 발굴조사는 한국건축문화연구소에서 1991년 11월~12월, 1993년 11월~1994년 2월과 1995년 7월~1996년 1월에 걸쳐 세 차례 진행하였습니다. 1차 조사에서는 자정문 터 아래로 암거 배수구가 지나고 있다는 사실과 자정문의 서쪽 기단이 잘 남아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2차 조사에서 자정전이 있었음을 확인해주는 기단의 장대석을 일부 발굴하였습니다. 3차 조사에서는 자정전의 앞마당에 해당하는 부분과 서쪽 부분, 그리고 자정전 북쪽에 해당하는 옛 서울고 소운동장을 발굴하였으나 큰 소득은 없었습니다. 다만 숭정전 서쪽 회랑으로부터 약 11m 떨어진 곳에서 회랑 터로 추정되는 1칸의 구들자리를 발굴하였습니다.
태령전 터에 대한 발굴조사 역시 한국건축문화연구소에서 1996년 10월~1997년 4월 사이에 실시하였습니다. 10개의 줄구덩이를 파서 유구의 상태를 확인하고자 하였으나 태령전의 위치와 규모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배수로와 적심 3기, 적심석 등을 발굴한 것과, 옛 서울고의 신관과 화장실을 세우면서 설치했던 콘크리트 옹벽에 묻혀 있던 영렬천(靈洌泉)을 발굴한 것이 나름의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희궁 복원사업
이같은 발굴 결과와 문헌 고증을 거쳐 경희궁내 각 전각을 복원하는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1987년에는 흥화문을, 1991년에는 숭정전을, 자정전과 회랑은 1998년에, 태령전과 그 일곽은 2000년에 각각 경희궁내에 복원하였습니다.
다만 흥화문은 원 위치에 구세군회관이 위치한 관계로 원위치에 옮길 수가 없어 서쪽으로 100여m 이동하여 복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