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속리 정이품송(報恩俗離正二品松)
천연기념물
지정번호 : 제103호
정부인소나무(貞夫人)
천연기념물
지정번호 : 제352호
귀하디귀한 속리산 소나무, 정이품송과 정부인 소나무
“지나가는 길에 / 오래묵어 나이 많이 잡수신 느티나무를 만나거든 / 무조건 그 나무를 향해 경배할 일이다” 안도현의 시 ‘산이나 들판으로 소풍을 가면’ 중 일부 싯구절이다. 시 속의 그 나무는 아니나 속리산에는 ‘오래 묵어 나이 많이 잡수신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그 중 한 나무는 안도현의 시를 들추지 않더라도 길을 지나던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다가가 발걸음을 멈춘다. ‘천연기념물 제103호 정이품송’그것이다. 일찍이 조선의 왕과 연을 맺어 장관이 된 지체 높은 소나무다.
세조(1455~1468)가 속리산 법주사에 행차할 때 이 나무를 지나는데, 연이 걸리지 않도록 가지를 들어 올렸다는 신통한 이야기. 세조가 타고 가던 연이 나뭇가지에 걸릴 것을 염려해 “연이 나뭇가지에 걸린다!” 소리치자 일어난 이야기다. 초자연적 현상을 목도한 세조는 즉시 가마를 세워 나무에 정이품의 벼슬을 내렸고, 감투에 감복했는지 나무는 또다시 초자연적 힘을 발휘한다. 세조가 법주사에 머물다 돌아갈 때 비를 내려 쉬어가게 했다는 이야기다.
기실 전설이란 초자연적인 것이다. 거기에 사실여부를 따지면 바보가 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 그러면 다음 얘기도 재미없어진다. 은행나무도 아니고 자웅동체 소나무인 정이품송은 정부인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352호 서원리 소나무다. 자태가 여성스러워 점지한 부인이다. 나이는 정이품송 600살, 정부인 소나무 600살 동갑내기다. 사람의 왕래가 잦으니 정이품송이 있는 곳은 사랑채, 정부인은 인적 드문 산골짝 서원리에서 지내고 있으니 안채라 할 수 있다. 안채는 사랑채에서 직선거리 4km 남쪽, 물 좋고 경치 좋은 양지바른 곳이다.
그 생김새만 보아도 귀하디귀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속리산의 두 소나무. 바깥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정이품송은 병들어 아프다. 안채의 소나무는 젊기도 하지만, 산 좋고 물 좋고, 인적 드문 데서 살아 그런지 건강하다. 아픈 남편의 씨를 받아 후손을 잉태하니 더욱 귀하디귀한 나무다. 속리산에 가거든 두 나무의 숨결을 느껴보라! 수 백 년 묵은 고목을 마주하며 그 내력 쫒아보면 전통문화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Photo #01 말티재 너머 속리산 어귀에 서있는 정이품송
속리산의 랜드마크 정이품송
세조가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현재의 장관급인 정이품의 벼슬을 내렸다 해서 ‘정이품 소나무’라 부르는 정이품송은 천년고찰 법주사를 품고 있는 국립공원 속리산의 관문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 세조가 법주사로 가고자하여 어가행렬을 위해 내었다는 말티재를 넘어가면, 속리산이 보이는 길목에 나무는 서있다. 관광객들은 이 나무에서 사진 두방을 날린다. 들어갈 때 반가워서 찍고, 나갈 때는 아쉬워서 찍는 것. 수백 년 비바람, 엄동설한에 우아한 자태 상처 입었지만 정이품송은 여전히 속리산의 랜드마크다.
세조와 얽힌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정이품송은 임금을 섬기는 조선시대의 시대상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문화적 가치가 있다. 더욱이 곧게 뻗은 우람한 줄기에 우산을 펼쳐놓은 양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모양새가 아름다워 생물학‧유전적 가치도 인정받았다. 수령 600살은 훌쩍 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이 소나무는 높이 14.5m, 어른 가슴높이 둘레 4.77m이다. 1980년대 초 솔잎혹파리의 피해 때문에 집중 치료를 받기도 했다. 1993년에는 폭설과 강풍으로 서쪽 큰 가지가 부러져 단정하고 아름답던 그 모습 상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Photo #02 정이품송의 아침 풍경. 정이품송 정면의 모습이다. 멀리 속리산이 조망된다. 정이품송이 가지를 드리운 곳으로 세조의 어가행렬이 지나간 속리산 옛길을 자연석으로 표시해놓았다.
Photo #03 측면에서 바라본 정이품송.
Photo #04 정이품송 근경.
Photo #05 정이품송 풍경. 보는 시각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나무 옆 안내판에 건강했을 때 찍은 정이품송의 사진이 걸려있다.
Photo #06 정이품송의 일출.
Photo #07 정이품송을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
정이품송의 후손을 탄생시킨 서원리 소나무
속리산국립공원의 남단 외곽에 위치한 서원리는 정이품송과 부부사이라 하여 ‘정부인송’이라 불리는 소나무가 있다. 정이품송의 외줄기 곧게 자란 모습이 남성적이고, 이 나무의 생긴 모습이 여성적으로 비유되기에 그렇다. 나이는 정이품송과 같은 600살, 키는 15.2m. 정이품송보다 작다. 밑동의 둘레 5.0m, 정이품송의 어른 가슴높이 둘레보다 약간 더 두꺼운 줄기는 밑동에서 두 갈레로 갈라져 두 줄기 모두 가지가 무성해 보기에도 건강하다.
문화재청과 산림청은 2002년부터 정이품송 후계목을 길러내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실제 정이품송의 수꽃가루를 정부인송의 암꽃에 인공수분 시킨 후 1년 뒤 씨앗을 받아 2004년부터 키워오고 있는 것. 후계목 400여 그루는 충북 산림환경연구소에서 자라고 있다.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부인 소나무에게 마을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 태고적 부터 이어온 우리 고유 민속신앙의 실체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정부인송은 우리 민속의 한 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자원으로서,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공식 명칭은 ‘서원리 소나무’이다.
Photo #08 서원리 소나무 전경. 풍성한 가지와 잎을 자랑한다.
Photo #09 두 줄기에서 사방으로 길게 뻗은 가지는 줄기 전체를 가릴정도로 무성하다.
Photo #10 마을의 신목인 이 나무에 마을사람들은 해마다 제를 지낸다.
Photo #11 둘레 5m의 소나무 밑동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Photo #12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의 줄기는 하늘을 찌를 듯 힘차다.
Photo #13 오래 묵어 나이 많이 잡수신 서원리 소나무의 품은 넓고도 넓다.
Photo #14 서원리소나무 가지에 열린 솔방울. 보기에도 건강하고 탐스럽다.
Photo #15 정부인소나무 서원리소나무를 찾은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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