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전은 미륵부처님을 모신 법당이다.
미륵부처님은 인도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은 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그곳의 천인들에게 설법하고 계신다.
근데 미륵전이라 하지 왜 용화전이라 했을까요?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 화림원의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여 용화세계를 건설하고 무수한 중생들을 제도한다고 한다.
또한, 미륵부처님은 아직은 부처님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미륵보살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미륵부처님이 계신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바라거나, 미륵부처님이 하루속히 이 땅에 오시기를 갈구한다.
유가사 석조여래좌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0호)
1976년 중창한 정면 측면 각각 1칸씩의 용화전에 모셔져 있었으나 지금은 보호각 안, 야외에 모셔져 있다.
불상과 대좌가 모두 같은 석질의 화강암으로 조성된 것으로, 얼굴 전면과 양 무릎을 시멘트로 보수하였으나 그 외의 부분은 비교적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인 육계가 높이 솟아 있다. 얼굴 모양은 갸름한 달걀형으로 목에 있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는 뚜렷하지 않다. 어깨는 각이 지고 힘이 들어가 있으며,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을 감싼 우견편단으로, 상반신은 가슴을 크게 열었다.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을 결하였는데 왼손은 길상좌를 하고 있는 오른발 위에 올려놓고 있으며 결가부좌한 다리에는 법의 주름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 불상은 형태면에서 석굴암 본존상과 같은 계열의 불상으로 볼 수 있으나, 불상의 어깨가 좁아지고 가슴의 탄력이 감소되는 등의 변화를 볼 수 있으며 대좌도 방형으로서 10세기 이후의 유행을 반영한 것으로 이 불상의 연대를 추정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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