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전과 명부전 사이에 자리한 진영당은 과거 용문사에 주석 했던 선사들의 진영을 봉안하는 곳이다. 현재 이전각에 <진영당眞影堂>이란 편액이 걸려 있지만 본래 기능을 상실하고 사찰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다.
편액 외에 건물 전면 고주에는 일제강점기에 작성한 진영당에 관한 현판이 있다. 이 현판 기록에 따르면이 전각은 조사전(祖師殿)인 동시에 시왕전의 노전이었다.
1681년에 희인(希仁)대사가 신암자(新庵子)를 이건한 뒤 1893년에 혜옹강백이 중수하고 1934년에 주지 이광하(李晃夏)가 중수한 후 이 어 1935년 다시 중수하였다.
이 외에 진영당으로 추정되는 건물로「속용문사적기續龍門事蹟記」에 적힌 1649~1670년에 건립된 삽삼전이 있다.
삽삼은 삼십삼명의 조사, 즉 조사전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삽삼전을 지은 행변과 신암자를 이건한 희인이 일치하지 않고 조성시기도 맞지 않는다.
용도가 비슷한 건물이 한사찰 안에 여러 채가 있었는지는 좀더 검토가 필요하다.
진영당은 정면 6칸, 측면 4칸의 건물로 향 우측 전면 2칸은 통칸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향 좌측의 전면 4칸은 앞쪽에 툇마루를 두고 있는 홑처마 납도리 집이다.
현재의 평면으로 추정해 보면, 후면의 퇴칸은 감(龕)이었을 것이며, 그 앞의 실(室)과 툇마루는 예를 올렸던 사당형 공간이었을 것이다.
현재 건물에서 보이는 선자연(扇子椽)구성수법은 조선중기까지 지속적으로 쓰이던 수법으로, 1681년에 지어진 후 큰 변화 없이 오늘날까지 유지되었다고 생각된다.
一三. 祖師殿 一名十王殿爐殿 朝鮮肅宗王七年辛酉 希仁大師新庵子移建 距今丙子二百五十五年 朝鮮高宗王三十 年癸亥 慧翁 講伯重修 距今丙子四十三年 昭和九年甲戌 住持李晃夏重修 距今三年 昭和十年乙亥秋住持○○○重修 距今二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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