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령각(山靈閣)
산령각(산신각)은 삼성각의 동북쪽에 거의 붙어 있다. 정면과 측면이 단칸으로 남향하고 있는 아주 작은 건물로 맞배집이다. 처음의 건립은 영조 37년(1761)이며 哲宗代 : 1850 - 1863)에 중수(重修)를 거쳤으나 현 건물은 1986년에 소실되었다가 당시 주지 원명(圓明)화상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건물 내부에는 일반적으로 산신탱을 안치하였으며 산신은 옆에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어 산신(山神)과 호랑이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1600여 년이 흐르면서 불교는 토속신앙(土俗信仰)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예가 바로 사찰(寺刹)안의 산신각이나 칠성각(七星閣) 등이다. 산신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산악신앙(山岳信仰)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으로서 산속에 위치하는 사찰의 일각에서는 별도로 산신각을 지어 신앙하게 된다.
통도사에는 일종의 호랑이 혈맥(血脈)이라 할 수 있는 호혈(虎血)이 있다 하여 사내(寺內) 두 곳에 이를 진합할 호혈석(虎血石)을 배치하고 있는 것도 산악신앙과 함께 흥미로운 일이다. 이 호혈석은 현재도 응진전 바로 옆 남쪽과 하로전(下爐殿)의 극락전(極樂殿) 옆에 위치한다. 이처럼 산신은 산악숭배사상(山岳崇拜思想)에서 나왔고 칠성(七星)은 도교신앙과 관련이 깊은데 이러한 것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조선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殿)이란 명칭을 쓰지 않고 대개 각(閣)이란 명칭을 쓰고 있다. 산신각은 불교와 토속신앙이 융합되어 있는 좋은 예(例)라 할 수 있다.
탱화
산신탱화(山神幀畵)
산신은 가람의 외호신(外護神)인 까닭에 사찰의 뒤쪽 외각에 산신각(山神閣, 또는 山靈閣)을 짓고 그 안에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산신상이나 산신탱화를 봉안한다. 산신탱화는 독성탱화와 도상면에서 일견 유사한 면도 있으나 엄격한 이미지의 독성과는 달리 산신은 인자한 미소에 복스러운 모습으로 호랑이와 함께 나타나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산신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오해가 적지 않다. 즉 산신이 원래는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속신 이었으나 불교가 재래 신앙을 수용할 때 호법신중의 하나로 삼아 불교를 보호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부여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견해가 나름대로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는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 일컬어지는 산신에 대한 개념의 근거는 화엄법회에 동참했던 39위의 화엄신중 가운데 제 33위에 엄연히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신을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앙만으로 보는 견해는 재고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석문의범』의 산신청(山神請) '가영(歌詠)'에서는 산신은 "옛날 옛적 영취산에서 부처님의 부촉을 받으시고, 강산을 위진하며 중생을 제도하고 푸른하늘 청산에 사시며, 구름을 타고 학처럼 걸림 없이 날아다니시는 분(靈山昔日如來囑 威鎭江山度衆生 萬里白雲靑障裸 雲車鶴駕任閑情)" 이라고 찬탄하고 있는 것으로도 이를 더욱 뒷받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2/3가 산이기에 선조들에게 있어서 산은 곧 생활의 터전이었다. 산을 의지하여 살았고 또 죽어서는 그 곳에 묻혀야 했던 사람들이 산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산악 숭배가 전국의 곳곳에 산신당(山神堂)을 짓고 숭배한 것은 사실이겠으나 그런 이유만으로 불교의 수호신으로 수용된 것이 아니라, 주지하였다시피 화엄경 등의 교의적 근거가 있었기에 소재강복(消災降福: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내리는)의 외호신으로 무리없이 습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산신은 조각상보다 탱화로 도상화하여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19세기 말에 조성된 문경 김용사(金龍寺)의 산신탱화를 보며 산신의 위의를 교의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산수와 노송을 배경으로 가운데 큼직이 앉아서 인자한 미소와 눈빛을 보이는 산신은 왼손으로는 수염을 만지며 오른손에는 백우선(白牛扇)을 잡고 있다. 산신청 '거목(擧目)'에, "만 가지 덕을 갖추고 뛰어난 성품을 한가롭게 가지고 계시며(萬德高勝性皆閑寂山王大神)", '사찰이 자리한 산에 항상 계실(比山局內恒住大聖山王大神)'뿐만 아니라 '시방법계에서 지극한 영험을 나타내시는 분(十方 法界至靈至聖山王大神)'임을 한눈에 느낄 수 있도록 덕성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이렇듯 가서 의지 하고픈 생각이 들 정도로 넉넉한 산신의 왼쪽에 있는 호랑이는 무섭고 위엄스럽기보다는 애교스러운 자태로 표현되어 친근감을 주고 있다. 산신의 왼쪽에는 차를 준비하는 동자와 오른쪽의 경서를 든 동자 그리고 산신의 뒤로는 힘찬 소나무의 뻗은 가지와 잎이 화면의 상단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청록산수 기법으로 표현된 화려한 산수에는 장수와 청정을 의미하는 소나무, 해 등이 있고, 새들이 노닐고 있으니 이런 기쁨과 즐거움이 항상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드러나 있는 것이다. 오른쪽의 주렁주렁 달린 복숭아는 다자(多子)를 뜻한다. 동자와 동녀의 모습은 산신에게 올리는 기원의 시각적 표현이기도 하다.
이 같은 불화의 많은 도상들은 그 자체의 의미와 함께 신행자의 심중소구(心中所求)를 담은 복합적, 동시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의 산신탱화가 전국의 사찰에 모셔져 있다는 것은 토속신으로서의 소박한 수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교적으로도 교리적 근거가 분명하며, 나아가 각종 공해로 강산의 폐해가 심한 요즈음 산신신앙의 재조명을 통해 환경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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