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사 自明寺
자명사는 익산시 용안면 법성리 279번지, 금강에서 용안면 소재지로 넘어가는 길 가까이 있는 우슬산 중턱에 동북향으로 자리한다. 우슬산은 우수산 또는 법화산이라고도 하며, 서쪽으로는 금강이 바라다 보인다. 절의 역사에 대해서는 사찰의 동쪽 입구에 위치한 1944년에 세운 사적비의 내용이 현재로서는 유일하다. 이를 통해 보면, 자명사는 신라시대인 678년(문무왕 18)에 선설대사(禪說大師)가 창건했는데 당시 이름은 자웅사(自雄寺)였다. 그 뒤 조선시대 중기에 당시의 권세가인 민인재(閔隣宰)가 용안읍에 머물 때 자웅사에서 소 우는 소리가 읍내에 가득 퍼지는 꿈을 꾸고는 기이하게 생각하고 절을 ‘자명사’로 개명했다고 한다. 그 뒤 기혜(琪慧),신봉(信峯),성암(城庵) 스님 등이 이어서 중수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4 「웅안현 불우」조에 자명암(自明庵)이 소개되어있는데, 이 자명암이 곧 자명사의 전신으로 보인다. 그것은 19세기 후반에 편찬된 『호남읍지』 『용안현읍지』 등의 「사찰」조에 자명암의 위치가 용두산(龍頭山) 서북쪽 3리 지점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이는 곧 현재 자명사의 자리와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명사’가 ‘자명암’인 것은 큰 차이가 아니지만 ‘鳴’이 ‘明’으로 기록된 것은 지금의 절 이름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호남읍지』,『익산군지』 등에 박금(朴?)이 자명사를 찾은 뒤 감상을 읊은 시가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가을 되니 대나무 지팡이 짚고 가는 길이 싫지 않은데
절 찾아 떠난 길 이미 날 저물어 버렸네
절 들어가는 길엔 금모래에 대나무 숲이 조용하고
은은한 향내음 퍼져 나오는 금당에는 부처님 앞 밝은 등불 환히 켜져 있구나.
구름 마냥 산에 들어가 스님과 함께 잠자리에 누웠더니
숲과 달은 손과 더불어 맑은 기운 엿보이네.
스님과 함께 한 하룻밤 그윽한 이야기에 모든 근심 없어지고
헛된 욕심 저 멀리 훨훨 날려 보냈네.
逢秋不厭竹憺輕 古寺尋來日已傾 路接金沙靈畏靜 香生寶殿佛燈明
山雲入院同僧宿 林月窺樓與客淸 -夜玄談機事息 瓚震何必駕鸞行
근대에 와서는 1943년에 진명 대사(振明大師)가 중건하면서 절 모습을 일신했다. 최근에는 법당을 1991년에 세우고 요사도 고쳐지었다. 자명사는 근래 들어 신도 등 지역 주민에 대한 포교가 보다 활발해지고 있으며, 1999년 8월 명신(明信) 주지스님이 주석하면서부터 사찰 운영이 더욱더 원활해져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된다. 현재 사찰 경내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 소급될 수 있는 유물은 전하고 있지 않지만, 주변에서 발견되는 기와·토기편 등의 유물과 경내의 고목을 통해서 절이 오랜 역사를 지닌 고찰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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