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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5교구 봉선사 奉先寺요약정보 및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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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수국 템플스테이 031-527-9969, 사무실 031-527-1951~2, 포교국 031-529-1950, 종무소(종무행정) 031-527-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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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bongsunsa@templestay.com
  주지 서성 초격
홈페이지 http://www.bongsunsa.net/
  주소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길 32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55 봉선사
   32, Bongseonsa-gil, Jinjeop-eup, Namyangju-si, Gyeonggi-do
Tag 전통사찰
  • 상품 정보

    상세설명

    서기 969년(광종 20)에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하여 운악사라고 하였다. 그 뒤 조선 세종 때에 이전의 7종을 선교양종으로 통합할 때 이 절을 혁파하였다가, 1469년(예종 1) 정희왕후 윤씨가 세조를 추모하여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89칸의 규모로 중창한 뒤 봉선사라고 하였다. 당시 봉선사의 현판은 예종이 직접 썼다고 하며, 같은해에 현재 보물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는 범종을 주조하였다고 한다. 1551년(명종 6)에 이 절은 선교양종 중 교종의 수사 찰로 지정되어 전국의 승려 및 신도에 대한 교학진흥의 중추적 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으며, 이듬해인 1593년에 주지 낭혜가 중창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으로 다시 소실된 것을 1637년에 주지 계민이 중창하였으며, 1749년(영조 25)에는 우점이 중수하였다. 1790년 (정조 14)에는 나라에서 전국사찰을 관할하기 위한 5규정소를 설치할 때 이 절은 함경도 일원의 사찰을 관장하였다. 1848년(헌종 14)에는 화주 성암과 월성이 중수하였고, 1902년에 도성 안의 원흥사를 수사찰인 대법산으 로 삼았을 때 이 절은 16개의 중법산 가운데 하나로 지정되어 경기도의 전 사찰을 관장하였다. 1911년에 사찰령이 반포되었을때는 31본산의 하나가 되었고, 교종대본산으로 지정되어 교학진흥의 주역을 담당하였다.

    또 1926년에는 주지 월초가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수하고 삼성각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6ㆍ25사변으로 1951년 3월 6일에 법당 등 14동 150칸의 건물이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 뒤 1956년에 화엄이 범종각을 세운 데 이어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운경과 능허가 운하당을 세웠고, 1969년에는 주지 운허가 큰법당을 중건하고 1977년에는 월운이 영각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큰법당ㆍ삼성각ㆍ개건당ㆍ방적당ㆍ운하당ㆍ범종각ㆍ청풍루ㆍ요사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큰법당은 대웅전과 같은 법당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글현판을 단 것이며, 법당 사방 벽에는 한글 <법화경>과 한문 <법화경>을 양각한 동판에 새겨놓아 이채롭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397호로 지정된 범종을 비롯하여 1903년에 그린 칠성탱화, 사찰 입구으 보운당부도 등이 있다. 그리고 큰법당 앞에는 1975년에 운허가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사리 1과를 봉안한 5층탑이 있으며, 1981년에는 운허의 부도탑을 세웠다. 이 밖에도 사찰 안에는 ‘춘원 이광수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절 옆에 있는 광릉은 사적 제197호이며, 천연기념물 제11호인 크낙새가 주변 숲에 서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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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개·새소식

    소개글

    총 23 건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5교구 봉선사 소개
    1. 봉선사 큰법당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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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법당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신 법당이며, 절의 중심이 되는 전각이다
      ‘대웅전’은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 《법화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위대한 영웅 , 즉 대웅이라는 일컬은 데서 유래한다 .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의 좌우에서 협시불(脇侍佛)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인하거나 ,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기도 한다 .
      이 밖에도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
      봉선사는 특징적으로 운허큰스님께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경전을 한글번역작업을 하신분이라서 대웅전이라는 명칭을 큰법당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어서 편액을 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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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선사는 6·25전쟁으로 1951년 3월에 법당 등 14동 150칸의 건물이 완전히 소실된 후, 59년에 범종각이 건립된 데 이어 63년에는 운하당(雲霞堂)이 세워졌다. 대웅전인 큰법당은 1970년 당시 주지였던 운허스님이 중건했다.
      운허스님은 이때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 ‘큰법당’이라 이름 지어 한글 편액을 달았다. 불교 대중화의 뜻을 담은 상징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사찰의 한글 편액으로는 이것이 처음이다. 단정하면서도 원만한, 보는 이들이 모두 좋아할 글씨다.
      큰법당 내부도 3면 벽에 한글로 된 화엄경 동판(125매)과 한문 법화경 동판(227매)을 함께 부착해 놓아 눈길을 끈다.
      큰법당 편액 글씨의 주인공은 만년에 구미에서 활동한 운봉(雲峰) 금인석(1921~92)이다. 포항 출신으로 도쿄대 경제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운봉은 고등고시(행정과)에 합격, 국회 재경위 전문위원까지 역임한 관료 서예가다. 대구의 서예가 석재(石齋) 서병오(1862~1936)를 사사했다 한다. 큰법당 기둥에 걸린 네 개의 주련도 한글로 되어 있다. ‘온 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 큰 바다 물을 모두 마시고/ 허공을 재고 바람 얽어도/ 부처님 공덕 다 말 못하고’이다. 화엄경에 있는 보현보살의 게송을 운허스님이 한글로 옮긴 것이다.
      이것은 석주(昔珠) 스님(1909~2004)의 글씨다. 서예 글씨를 잘 쓰는 스님으로도 이름이 높았던 석주 역시 역경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운허와 함께 경전 한글화에 매진했다. 그는 자신이 오래 머물렀던 서울 칠보사의 대웅전 편액을 자신이 쓴 한글 ‘큰법당’으로 바꿔 다는 등 한글로 된 편액이나 주련 작품을 많이 남겼다.
      큰법당 뒤에 있는 조사전(祖師殿)의 한글 주련 4개도 눈길을 끈다. 내용은 ‘이 절을 처음 지어/ 기울면 바로 잡고/ 불타서 다시 지은/ 고마우신 그 공덕’인데, 운허와 석주의 합작품이다. 운허가 짓고, 글씨는 석주가 쓴 것이다. 아름다운 한 편의 시와 같은 글귀로, 한문 주련 글 못지않게 멋지다. 조사전 편액은 김천 출신으로 진주와 부산에서 활동한 서예가 청남(菁南) 오제봉(1908~91)의 글씨다.


    2. 봉선사 대종(보물 397호)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3

      이 대종은 임진왜란 이전의 몇 개 안되는 조선 전기 동종의 하나로, 성화 5년(1469)인 예종 원년에 왕실의 명령에 따라 주조된 종이다.
      종의 형태는 정상에 음관이 없는 쌍룡으로 용뉴를 나타내고, 종견에는 겹연꽃잎을 돌렸다. 그 바로 밑으로 도드라진 2가닥의 옆띠를 돌려서 몸체와 뚜렷이 구분하였다. 종의 몸체 중앙에는 굵고 가는 3가닥의 옆띠를 돌려 위아래로 구분하였다.
      윗부분에는 유곽과 보살상을 교대로 배치하였는데 4개의 유곽은 종견에서 분리되어 당초문으로 장식되고, 그 안에 연화로 된 화좌유 9개를 갖추고 있다. 이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원형두광을 갖추고 양 손을 마주잡은 보살입상 4구가 양각되어 있다. 또한 유곽 밑과 중앙의 옆띠 사이 공간에는 범자가 4자씩 새겨져 있고, 보살상의 위아래, 네 귀퉁이에도 같은 형식의 범자가 새겨져 있다.
      종구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파도문으로 장식한 아래띠와 비슷한 옆띠를 돌렸다. 그리고 이 옆띠와 중앙의 3가닥 옆띠 사이에 강희맹이 짓고 정난종이 글씨를 쓴 장문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명문으로 주종 연유와 화원, 주성장, 조각장, 주장, 각자목수, 노야장, 수철장, 사령 등의 인명이 열기되어 대대적인 주종공사였음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이 종은 조선 전기 동종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동종이며, 양식의 형식규명에 상당한 중요성을 갖는 대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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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봉선사 괘불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3

      큰법당 안 괘불함에 보관되어 있는 비로자나삼신불화로서, 크기는 가로 485cm, 세로 783cm이고 영조 11년(1735년)에 봉안됐으며 보물 제1792호이다.
      그림의 내용은 화엄종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이 화엄교리를 설명하는 이른바 연화장 세계를 타나낸 것으로서, 가운데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화신불과 보신불인 석가모니불,노사나불이 커다랗게 그려졌고, 그 밖에 여러 보살과 성중들이 설법을 듣는 장면을 중심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림 맨 아래에 화기가 있어 제작연도와 시주자 및 화사의 이름을 알 수 있다. 시주자는 궁중의 상궁 이성애로 영빈김씨(숙종의 후궁)를 위해 발원한 것이고, 화사는 임응 스님의 책임하에 학총,칠혜,두계,태운,갈빈 등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학총 등 4명의 직책이 도화원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도화원은 곧 조선 시대에 그림 그리는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된 관청인 도화서에 소속된 직업 화가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들이 괘불 조성에 참여한 것은 당시의 상황과 관련되어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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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봉선사 신도회 조직도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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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봉선사 능엄학림대학원
      작성자/작성일
      두레박 24-04-23

      봉선사 능엄승가대학원(능엄학림)은 한문불전관련 교과목을 학습하여 한문불전의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한문불전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한문불전교육기관입니다.
      운허스님의 홍법강원 설립 정신을 계승하여 1996년 월운스님이 설립하였으며 한문불전에 기록된 부처님의 말씀을 통한 전법도생의 원력을 실현하기 위하여 지난 20여 년간 시대적 조류에 맞는 한문불전의 수학 연구 및 전문가 양성에 매진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교종본찰 봉선사의 대표적 승가교육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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