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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정보
상세설명
이곳의 물과 산의 형태는 태극형이라고 하여 <택리지>ㆍ<정감록> 등의 여러 비기에서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의 하나로 꼽고 있다. 이 절의 창건 및 사찰명에 대해서는 두가지설이 있다. 첫번째설은 640년(선덕여 왕 9)에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이 선덕여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전 2백결로 절을 창건하기 위한 터를 물색하다가 통도사ㆍ월정사와 함께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곳의 물과 산의 형태는 태극형이라고 하여 <택리지>ㆍ<정감록> 등의 여러 비기에서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의 하나로 꼽고 있다. 이 절의 창건 및 사찰명에 대해서는 두가지설이 있다. 첫번째설은 643년(신라 선 덕여왕 12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가 선덕여왕에게 하사받은 2백결(결:통일신라부터 쓰던 토지의 면적단위, 1등결=3025평)의 전탑을 기반으로 창건했다고 한다. 낙성식 때 자장율사의 법문을 듣기 위해 온 사람 들이 마치 '삼대(麻)처럼 무성했다'고 해서 절 이름을 마곡사(麻谷寺)라 했다고 한다. 창건 후에는 신라 말 나라가 혼란스러워지면서 이곳도 약 200년 가량 폐사된 채 도둑의 소굴이 되었다. 그 뒤 고려에 들어서서 1172년(명 종 2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도둑떼를 몰아내고 절을 되찾았으며, 제자 수우스님과 함께 왕에게 전답 200결을 받아 대규모로 절을 중창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1592년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이 당우가 소실되어 그 뒤 60년 동안 폐사된 채 방치되다가 1651년(효종 2년) 대웅전, 영산전, 대적광전 등을 중건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일제강점기에 반포된 사찰령에 따라 충청남도의 100여 사암을 관장하는 본산이 되었다. 또한 구한말에는 민족의 지 도자 김구 선생이 고종황제의 비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군 중위 스치다를 죽이고 인천형무소에 투옥되었다 탈옥한 뒤, 이곳에서 출가하여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지낸바 있다. 지금 대광보전 앞에 있는 향나무는 당시 김 구 선생이 직접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현재 마곡사는 대전광역시를 비롯해서 충청남도 일대 70여개의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마곡사에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801호인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보물 제802호 대광보전, 보물 제800호인 영산전 외 충청남도 문화 재자료가 다수가 있다. 또한 보물 제269호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과 보물 제270호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6, 보물 제799호 마곡사 오층석탑, 보물 제1260호 마곡사 석가모니불괘불탱 등이 있다.
이밖에도 대광보전 마루에는 나무껍질로 만든 30평 정도의 삿자리가 있다. 이 자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조선 후기에 이름없는 앉은뱅이가 이 절을 찾아와서 부처님께 백일기도를 드렸다. 그는 불구를 고치기 위 해서 백일기도 하는 동안 틈틈이 이 삿자리를 짰다. 이 삿자리는 참나무를 한 끝에서 잇고 또 이어 한줄로 완성한 것인데, 그는 이 자리를 짜면서 법당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에게 자신의 불구를 낫게 해줄 것을 기도하였다.
백일 뒤 일을 다 끝내고 밖으로 나가는데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 법당문을 걸어나갔다고 한다. 부속암자로는 심정암ㆍ부용암ㆍ북가섭암ㆍ토굴암ㆍ백련암ㆍ영은암ㆍ대원암ㆍ은적암등이 있다. 이 절은 ‘춘마곡추갑사’라 는 말이 전해질 만큼 봄경치가 뛰어나다. 백련암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특히 빼어나며, 북가섭암의 바위 뒤에 있는 천미장군수는 뛰어난 약수이다. 또 마곡사 앞 냇가 암벽에는 부여 고란사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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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새소식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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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불교대학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28
2024년도 마곡사 불교대학 신입생 모집
종단 인가 교육과정으로 기본교육부터 전문교육과정까지 1년 과정으로 모집합니다.
불교 기초부터 교육 하니 누구나 부담없이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마곡사 불교대학 교훈은
신심 信心
수행 修行
화합 和合 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신심을 바탕으로 하는 지혜의 실천을 강조합니다.
마곡사 불교대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여 타인이 아닌 스스로가 내면의 지혜를 완성시킬 수 있도록 돕는 길라잡이가 될 것입니다.
2024년도 신입생이 되어 참된 불자로 거듭나시길 발원합니다.
교육기간
1년 2학기제 (2024년 2월 20일~ 2025년 2월)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 4시
교육장소 : 마곡사 불교회관 3층(충남 공주시 전막1길 15-6)
모집인원 :
정원 4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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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조직도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28
총무국장
대·내외 업무 총괄
교구종무 운영
종무원 교육 및 연수 실시
종무원 인사 관리 및 복리 후생
문서 관리 업무
마곡사 도량 정비 및 불사 추진
봉축 행사 총괄
기획국장
6교구 중장기 마스터플랜 기획
6교구 홍보관리
온라인·오프라인 홍보시스템 구축
교무국장
제6교구 성보 및 제적승 승적 관리
성보 및 수행청규 정비
본말사 주지 연수
행자기본교육 총괄
도제 양성을 위한 장학사업 및 수행 지원
대중 결계 및 포살 시행
수행 풍토 조성 및 수행 지원
재무국장
제6교구 재산현황 조사 및 관리
마곡사 예산 집행 관리
교구 목적기금 조성 및 운용
후원 및 관리 시스템 관리
기도 불공 활성화 관리
사회국장
자원봉사 활성화 기획 실행
환경위원회 활동 집행
지역 종교 및 사회단체 네트워크 구축 사업
승려노후복지 기금 조성 및 지원사업 복지법인 관리 감독
포교국장
6교구 포교업무 총괄
지역 중장기 포교계획수립 및 실행
지역 포교단체 관리 및 네트워크 구성
6교구 신도 수행 프로그램 개발
신도 교육 정례화 및 체계화를 위한 활동
신도 등록 업무
템플스테이를 비롯한 각종 연수 프로그램 운영
호법국장
6교구 청정수행가풍을 위한 호법활동
중법수호를 위한 호법활동
훼종행위 감찰 및 조사
복지국장
6교구 승려복지회 운영
사회복지법인 마곡 산하기관 관리
종무소
각종 법회 관련 업무 및 행사 진행
신도증 신청 접수 및 발급 업무
신도증 신청 접수 및 발급 업무
경내 문화제 및 시설물 유지보수
적제 및 직원관리 업무
승적관리
공문수발 및 보존관리 업무
마곡사 주관 각종 수련회 기획 진행 -
- 마곡사 선원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28
마곡사에는 태화선원(泰華禪院)이 있습니다.
마곡사 들어서서 해탈문(解脫門)과 천왕문 사이에 왼쪽으로 담장을 둘러친 곳이 있고 그 곳에 오래된 전각이 있는데 이를 영산전(靈山展)이라 합니다. 그 앞으로는 흥성루(興聖樓)라는 누각이 있고 그 옆으로 아담하게 ㄷ자 형의 전통건물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태화선원입니다. 태화선원은 그리 오랜 전통은 갖지 못했지만 해마다 하안거와 동안거에는 몇몇의 수좌 스님들이 찾아와 정진을 하는 곳입니다. 특히 선원 위로 군왕대(君王垈)가 있고 이곳을 세조임금이 ‘만세불망지지(萬世不忘之地)’라 부를 만큼 기가 융성한 곳이라서 장부일대사(丈夫一大事)를 해결하려는 선객들의 해안이 번쩍이는 곳입니다.
선원(禪院)은 좌선 수행을 하는곳으로 좌선방(坐禪房), 선방(禪房)이라고도 불리며 이곳에서 정진하는 스님을 수좌로 부릅니다.
한국의 불교에서는 강원(講院)과 함께 전통적인 승려 교육기관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일정한 교육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강원 수료자가 들어가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높은 단계의 평생 수행의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원은 수행이 자율적인 대신 그 규율은 엄격하여 파계나 나태한 행위는 일절 금지되며 대중이 규약한 규칙을 엄하게 지키는데, 이를 대중청규(大衆淸規)라 합니다.
선원의 전통적인 수행방법은 스스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며, 초하루와 보름에 삭발식과 함께 조실(祖室) 또는 선지식(善知識)의 설법을 듣습니다. 참구하는 도중 의심이 생기면 조실 또는 선원장에게 찾아가 질문하여 의심을 풉니다.
한국 선불교의 전통은 화두(話頭)를 가지고 이를 해결하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이는데 이를 간화선(看話禪)이라고 합니다.
화두란 한자 그대로는 ‘말 머리’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일반 범부의 사량으로는 도저히 답을 낼 수 없는 의심 덩어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두를 든 수행자는 스스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은산철벽(銀山鐵壁)에 자신을 가두고 그곳을 빠져나오기 위한 다함없는 정진을 하는 것을 말하며 이렇게 정진하는 곳이 곧 선원입니다.
우리나라의 선원은 정기적으로 일정한 기간 동안 단체로 수행하는 안거(安居) 수행을 하는데 여름철 즉 음력 4월 15일에서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라 하고 겨울철 음력 10월 15일에서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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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대웅보전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28
아들 점지해 주는 대웅보전
싸리나무 기둥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대웅보전!
무슨 말이냐구요?
2층으로 된 대웅보전은 통층으로 전각의 내부에는 싸리나무 기둥이 네 개가 있는데 여기에도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설화의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사람이 죽어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 가면‘그대는 마곡사 싸리나무 기
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많이 돌수록 극락길이 가깝기 때문이지요. 아예 돌지 않았다고 하면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생에서 아들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곡사의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고 일렀다고 합니다. 이런 재미난 전설로 인해 지금도 이 싸리나무 기둥은 윤기가 나고 손때가 묻어있습니다. 아들을 낳고 싶은 아낙이 많아서이지요.
대웅전 혹은 대웅보전은 법화경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큰 영웅이라 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석하시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마곡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801호로 1785년에서 1788년에 걸쳐 중수되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약사여래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때의 부처님들은 공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대표하므로 삼세불이라고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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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곡사 대광보전
- 작성자/작성일
- 두레박 24-04-28
앉은뱅이 업장 소멸한 대광보전
앉은뱅이, 그가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부처님의 자비를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세세생생 회향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날은 그가 부처님께 공양 올릴 삿자리를 짜기 시작하면서 앉은뱅이로서의 삶을 거두고 걸을 수 있게만 된다면, 그 자비광명을 얻게 만 된다면 이생을 넘어 세세생생 보시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맹세하고 부처님께 의지하며 생활한지도 어느덧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너무도 주제 넘는 소원을 품었던 터라 더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가진 업보가 그 얼마나 큰데 감히 부처님께 그런 소원을 빌다니! 얼마나 더 공덕을 쌓아야 그 동안 지은 억겁의 죄업을 다 씻을 수 있을 것인가, 슬프도다 슬프도다.’
지난 100일 동안의 기도 끝에 깨달은 것은 첫째도 참회요, 둘째도 참회였다. 그러한 나날이 계속 될수록 그는 걷게 되는 것을 염원하기보다는 길가에 무심히 핀 들꽃이 소중하고 그것이 살아있음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며 그 무엇에건 감사하게 되었다. 들꽃과 함께 호흡하고 나를 느끼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부처님께 감사했다. 일체의 삼라만상에 부처님의 자비를 회향하겠노 라고 다짐하는 날이 늘어갔다. 그렇게 100일이 채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삿자리가 완성되었다. 그는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치 않은 다리를 끌고 부처님께 기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올리고 법당을 나왔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그가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그는 어느새 걷고 있었다. 그는 그 파란 하늘과 푸른 숲, 무심히 흐르는 마곡천을 바라보며 부처 님의 자비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또 다짐했다. 이 같은 부처님의 자비를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숲,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이들에게 회향하겠노라고, 그리하여 나누는 삶, 자비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대광보전에는 ‘삿자리를 짠 앉은뱅이’ 전설이 담겨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법당 안에 삿자리가 깔려 있었습니다.
대광보전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1788년에 중창되었으며 보물 제80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대광보전 내부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건물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도록 특이하게 봉안되어 있습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진리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님으로, 진리의 몸이 온누리에 두루 비치는 광명의 빛을 내어 모든 이들을 지혜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대광보전의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1788년 조성된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6대보살, 10대 제자, 용왕과 용녀, 사천왕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비로자나 부처님 뒷벽에는 18세기 후반 조선회화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백의수월관음도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환희심을 불러일으키는 관음보살님으로 이름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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