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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박해가 끝나고 교회의 전통에 따라 서소문 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약현성당을 세웠습니다. 중림동 약현 성당은 본래 1887년 수렛골(현 순화동)에서 한옥공소로 출발하였습니다. 이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이래 무수한 박해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숨어 살던 교우들이 도성 문 밖만 해도 수백을 헤아렸습니다. 이에 제7대 조선대목구장(교계제도 설정 전의 교구를 대목구라 합니다) 블랑 주교는 1887년 지금의 중구 순화동 지역인 남대문 밖 수렛골에 집 한 채를 마련해 교리 강습을 위한 강당을 차렸는데, 이것이 약현본당의 시작인 약현공소입니다. 공소가 설립된 뒤 신자가 나날이 늘어나자, 종현 본당(현 명동성당)의 두세 신부는 뮈텔 주교의 허락을 얻어 1891년 약초가 많아 약초고개, 즉 약현이라고 불리던 언덕을 매입해 성당 건축의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1891년 10월 27일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설립 기념일에 성당 정초식이 거행되고, 같은 해 11월 9일 두세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함으로써 약현본당이 정식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종현(명동)본당에서 분리되어 서울에서 2번째, 전국에서 9번째로 설립된 본당입니다.
당시 약현본당의 관할구역은 서울 도성의 외곽 지역뿐 아니라 경기도와 멀리 황해도 백천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이었습니다. 명동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는 명동성당의 설계의 핵심을 담아 1891년 10월 건축을 시작, 착공 1년만인 1892년 약현성당을 건축하였습니다. 1898년 종현에 세워진 명동성당 보다 6년 먼저 세워진 약현성당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 교회 건축물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사적 제252호). 당시 교구장이신 뮈텔주교님께서는 견고한 성당을 짓기 위해서 좋은 흙이 필요했었는데, 당시에 가장 좋은 흙은 왕궁의 기와를 굽던 와서현(지금의 국군 중앙성당)의 흙이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새남터에서 순교하신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해서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하신 남종삼 요한 성인과 최형 베드로 성인의 시신이 약 43년간 묻혀있던 곳입니다. 그곳의 흙으로 세워진 약현 성당은 바로 순교성인의 살과 피로 세워진 성당이며 서소문 형장을 바라보는 서소문 성지 기념 성당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건축되는 벽돌식 성당의 원형(prototype)이 되었습니다.
완공된 지 4년 뒤인 1896년 4월 26일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사제 서품식이 두 차례 거행되어 강도영 마르코, 정규하 아우구스티노,강성삼 라우렌시오 신학생 3명이 사제로 서품되고, 1년 뒤인 1897년 12월 18일에는 두 번째 사제 서품식이 거행되어 한기근 바오로, 김성학 알렉시오, 이내수 아우구스티노가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종현(명동)성당은 4대문 안 선교를 담당했다면, 약현성당은 4대문 밖, 경기도부터 멀리는 황해도까지의 선교를 담당하면서 넓게 퍼져있는 신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이후 교회의 발전 속에서 약현성당은 약 90여개 성당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또한 초대 주임인 두세 신부는 남달리 교육열이 높아 1895년 약현서당을 세워 어린이들을 가르쳤고, 이후에도 교육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1901년에는 성당 구내에 여자 어린이들을 위한 가명학교(可明學校, 가명은 두세 신부의 본명인 가밀로를 한자로 표기한 것)를 세우고, 1906년에 건물을 신축해 남자 어린이를 위한 약명학교(藥明學校)를 설립했습니다. 1909년에는 교사를 증축하고 남녀 학교를 통합한 가명학교를 만들었다. 두세 신부의 후임 비예모 신부는 성당 내부의 남녀 칸막이 철거하고 벽돌기둥을 돌기둥으로 대체하는 등 대대적으로 보수공사를 했으며 1920년 9월 30일에는 최종철 마르코가 본당 출신 첫 번째 사제로 탄생했습니다.
1938년 11월 3일에는 언구비(현 논현동)에 있던 약현 묘지에 순교비를 건립했습니다. 한국 전쟁 후 1954년 3월 19일 서울대목구와 가톨릭자선회의 지원으로 본당 구내가명학교 자리에 병상 62개 규모의 성요셉의원을 개원했고, 5월에는 성요셉 간호고등기술학교를 세워 전문 인력 양성과 극빈자 진료에 힘썼습니다. 이후 이 학교는 1955년 가톨릭대 의학부와 부속병원인 성모병원이 되었습니다.
1968년 2월 24일에는 서울시 도시개발 계획에 따라 잠실에 있던 언구비 본당 묘지가 폐쇄되고,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분수리에 임야 43,050평(142,314㎡)을 매입해 이듬해 6월 분묘 이장을 완료했습니다. 1979년 5월 주일학교 교실을 이용해 평일 야간에 고등학교 과정과 타자 교육을 실시하는 성이냐시오 학교를 개설해 환경이 어려워 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교육의기회를 제공했고, 1982년 5월에는‘우리 신학생은 우리 힘으로 키운다’는 신자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약현장학회를 설립했습니다.
1984년 12월 22일 순교 성인 44인의 명단과 순교 역사를 수록한 7개의 조각물을 세운 높이 18m의 순교자 현양비 제막식이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거행되었으며 1986년에는 전례음악을 역사적으로 수집하고 보호, 발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가톨릭종교 음악연구소를 본당 구내에 이전하였습니다. 1989년에는 본당 설정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결성해 100주년이 되는 1991년까지 기념사업과 성역화 사업을 전개하기로 했고, 1990년 4월 22일 서소문순교자기념관 기공식을 거행했습니다. 1997년에는 서소문공원 재개발로 순교자 현양탑을 본당 내 14처 기도동산으로 옮겨 왔습니다. 1998년 2월 11일 본당 건물에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훼손된 것을 복원하여 2000년 9월 17일 정진석 대주교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2000년 10월에는 ‘정하상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2007년 7월 19일 중림동성당의 명칭이 중림동약현성당으로 변경되었습니다. 2009년 9월 13일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을 개관했고, 2010년 3월 5일부터는 서소문 순교성지 현양탑에서 매주 금요일 성지 미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부주임신부 : 손우성 미카엘 신부 Rev. Michael Son Woo Sung
서울성가소비녀회
주보 : 성 요셉-서소문 밖 순교성지 기념성당
주일전례:06:00, 09:30, 11:00, 18:00가명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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