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공소
선교회/수도회
파정/기도의 집
성지/사적지
-
상품 정보
상세설명
노고산 성지는 천주교 박해가 시작된 이후, 사형을 당하고 그대로 형장에 내버려진 순교자들의 시신을 신자들이 목숨을 걸고 관가의 눈을 피해 모셨던 곳 가운데 하나로 여러 처형장과 가까워 많은 순교자들이 임시로 매장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고 세 명의 외국인 사제, 곧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가 9월 21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이때 앵베르 주교의 나이 43세,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36세로 동갑이었다.
이들의 시신은 사흘 동안 버려져 있다가 한강변 모래톱에 묻혔다.
그 뒤 이십 일가량 지나서 7-8명의 신자가 죽음을 무릅쓰고 감시의 눈을 피해 시신을 거두는 데 성공하였다.
신자들은 시신을 큰 궤에 넣어 현재 서강대학교가 자리한 노고산에 매장하였다.
4년 뒤, 시신을 훔쳐낸 신자 가운데 한 명인 박 바오로가 가문의 선산인 관악산 줄기 삼성산에 유해를 이장하였다.
그 뒤 유해는 다시 이장하여, 1901년부터 현재까지 명동 대성당 지하 묘소에 모셔져 있다.
서강대학교는 순교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고자 2009년 6월 15일 가브리엘관 앞에 순교 현양비를 봉헌하였다.
-
새소식
-
변경/수정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