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한천정사 (永同 寒泉精舍)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
지정일 : 1999년 9월 15일
관리자 : 황간유림회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 우암 송시열이 한때 은거생활을 하며 학문에 몰두했던 자리다.
원래는 그를 배향하는 한천서원이 있었는데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된 후 후학들이 유림회를 결성, 한천정사를 건립하였다.
누각이 위치한 원촌리 일대는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이곳에 한천정사가 있어 한천팔경이라고 이름붙였다 한다.
한천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을 들이고 전면에는 툇마루를 놓았다.
자연석 주춧돌 위에 네모기둥을 세우고, 가구형식은 3량가에 주위로 막돌담장을 둘렀다.
월류봉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이 보이는 곳으로 자연을 벗하던 선비의 멋과 풍류가 남아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이 한천팔경(寒泉八景)이라 일컫는 아름다운 절경을 음미하면서 서재(書齋)를 짓고 글을 가르치던 곳으로 한천팔경은 사군봉(使君峰), 월류봉(月留峰), 산양벽(山羊壁), 용연대(龍淵臺), 화헌악(花軒嶽), 청학굴(淸鶴窟), 법존암(法存庵), 냉천정(冷泉亭)으로 이름 붙여진 그 모양이 기이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후세에 우암 선생의 제사를 모시고 글을 가르치는 한천서원(寒泉書院)이 세워졌다가 고종 초에 철폐된 후 유림들이 1910년 한천정사를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건축양식에서 옛 기법이 잘 유지되고 있으며, 소라천(召羅川), 장교천(長橋川), 중화령(中化寧)의 물이 이 부근에서 합류하여 월류봉과 어울려 선경(仙境)을 이루는 장소에 위치하여 우암 선생의 기상과 자취를 살필수 있는 곳이며, 이미 그 이전 고려시대 때 사찰이 있었던 자리로 생각되는 석탑(石塔)의 부재(部材)가 일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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