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프로그램 분류 : 농작물경작체험
체험프로그램 : 감자캐기
대표자 : 김대영
지정일자 : 2017-09-01
1914년 행정구역 조정때 연주리는 주암리(舟岩里)와 연지동(蓮枝同), 고성리(古城里)가 합해져 이루어진 마을이다.
향지에 나타난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1739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주암리에 63호, 고성리에 10호 등 두마을에 73호가 거주한 것으로 나와있으며 1890년 신유장적(辛卯帳籍)에는 주암리에 73호, 연지동에 5호, 고성리에 6호 등 3개마을에 84호가 모여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1914년 연지동의 연(蓮)자와 주암리의 주(舟)자를 합쳐 연주리라는 지명으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87년 홍수 피해 후 현재 위치로 이전된 `배바우’ 연주1리 전체 가구수 110호 중 점말에 거주하는 가구는 단 3가구. 따라서 연주1리 2개의 자연마을 중 배바우는 연주1리의 중심마을이면서 안남면 전체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지난 87년 배바우 주민들은 대청호의 물이 면소재지로 역류하며 홍수피해의 무서움을 경험한 바 있어 지금도 많은 비가 내리면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당시 홍수로 인해 현재 면사무소 앞 잔디밭에 위치해 있던 28가구는 수자원공사로부터 보상을 받아 위쪽으로 이동, 새로운 소재지를 구성하게 되었다.
본래 옥천군 안남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주암리, 미산리 일부, 연고리를 병합하여 연고와 주암의 이름을 따서 연주리라 하였다.
1965년 행정리동구분에 의하여 연주1구와 연주2구로 되었는데, 연주2구에는 중촌, 독락정, 고성이 속하게 되었으나, 현재는 중촌과 독락정만 남아있다.
현재 50가구에 118명이 거주하면서 논 7.2ha와 밭 22ha를 경작하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
토마토따기체험, 색깔감자캐기 체험, 배바우두부체험, 배바우청정마을김장체험
특산물 : 배바우청정서리태, 배바우 향수 밤 꿀, 배바우청청벌꿀(잡화꿀), 보리쌀, 찹쌀현미, 맵쌀현미, 찰수수, 혼합곡, 황금찰보리쌀, 유기농 배바우 토마토, 배바우 향수 아카시아 꿀, 검정깨, 녹두, 율무, 검은팥, 황금찰보리쌀
연주1리
1914년 행정구역 조정때 연주리는 주암리(舟岩里)와 연지동(蓮枝同), 고성리(古城里)가 합해져 이루어진 마을이다.
향지에 나타난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1739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주암리에 63호, 고성리에 10호 등 두마을에 73호가 거주한 것으로 나와있으며, 1890년 신유장적(辛卯帳籍)에는 주암리에 73호, 연지동에 5호, 고성리에 6호 등 3개마을에 84호가 모여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1914년 연지동의 연(蓮)자와 주암리의 주(舟)자를 합쳐 연주리라는 지명으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87년 홍수 피해 후 현재 위치로 이전된 `배바우’ 연주1리 전체 가구수 110호 중 점말에 거주하는 가구는 단 3가구. 따라서 연주1리 2개의 자연마을 중 배바우는 연주1리의 중심마을이면서 안남면 전체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지난 87년 배바우 주민들은 대청호의 물이 면소재지로 역류하며 홍수피해의 무서움을 경험한 바 있어 지금도 많은 비가 내리면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당시 홍수로 인해 현재 면사무소 앞 잔디밭에 위치해 있던 28가구는 수자원공사로부터 보상을 받아 위쪽으로 이동, 새로운 소재지를 구성하게 되었다.
연주2리
본래 옥천군 안남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주암리, 미산리 일부, 연고리를 병합하여 연고와 주암의 이름을 따서 연주리라 하였다.
1965년 행정리동구분에 의하여 연주1구와 연주2구로 되었는데, 연주2구에는 중촌, 독락정, 고성이 속하게 되었으나, 현재는 중촌과 독락정만 남아있다. 현재 50가구에 118명이 거주하면서 논 7.2ha와 밭 22ha를 경작하고 있다.
김용준 효각비
안남면 소재지 및 면내 일원에는 타면에 비해 효자비 및 효자문 등이 많이 세워져 있다.
그만큼 면민들이 선행과 효도를 많이 했다는 말이 되기도 하지만 주민들 또한 평소 덕행을 널리 알리고 기리는데 인색하지 않은 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중의 하나가 안남면 연주리 면사무소 뒷편 밭이 끝나고 야산이 시작하는 지점에 자리한 김용준 효자비각이다.
이 효자비각은 생전에 그의 효행을 후세에 남기고 뜻을 이어 받기 위해 광산김씨 문중에서 비를 세우고 두평의 다포식 목조기와 비각을 세운 것이다.
중봉조헌신도비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묘소(墓所)로부터 동남방 100m 거리에 위치한 신도비 (神道碑)로 인조 27년(1649)에 건립되었다.
좌의정(左議政) 김상헌(金尙憲)이 글을 짓고 이조판서(吏曹判書) 송준길(宋浚吉)이 글을 썼으며, 우의정(右議政) 김상용(金尙容)이 썼다.
비의 규모는 비석높이 175cm 폭 100cm 두께 32cm이며 비문에는 선생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기록하였고 특히 최후의 격전지였던 금산(錦山) 싸움에 대하여 소상히 적혀 있다.
독락정
서기 1607년 조선 선조 40년 절충장군 중추부사(折衝將軍 中樞府事)를 지낸 주몽득(周夢得)이 건립한 정자로 후에 글을 가르치는 서당으로도 사용되었다.
1772년 중수한 이래 수차례의 보수가 있었으며 이 정자가 있는 마을의 이름도 독락정(獨樂亭) 이라 부르고 있다.
안남면 배바우
안남면 연주리(蓮舟里)를 "배바우" 또는 주암이라 한다. 이는 도덕리 덕실부락에서 흐르는 냇가에 마치 배(舟)와 같이 생긴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 옛날부터 이 배바우는 물 속에 잠기게 될 것이며, 그 앞의 넓은 들은 호수가 되어 배를 띄우게 되고, 인포리에는 포구가 생긴다는 전설이 있다. 수 백 년간 이런 전설이 끈질기게 전해 왔지만, 그것이 실현되리라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기묘한 일이 생겼다. 즉, 대청댐이 이룩되고 담수가 시작되었는데, 마침 수몰선(水沒線)이 꼭 이 배바위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배바위가 물 속에 잠기는 것이 아니고 물 위에 뜨는 형국이 되었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는 "옛말 그른 게 없고, 옛말이 신기하게도 맞는다"고 한다. 행정구역의 명칭도 그전에는 주암이었는데 근래에 연주리로 고쳐 부르고 있으며, 인포리는 말 그대로 포구처럼 되었다.안남면 배바우
점말
안남면 연주리(蓮舟里)를 "배바우" 또는 주암이라 한다. 이는 도덕리 덕실부락에서 흐르는 냇가에 마치 배(舟)와 같이 생긴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 옛날부터 이 배바우는 물 속에 잠기게 될 것이며, 그 앞의 넓은 들은 호수가 되어 배를 띄우게 되고, 인포리에는 포구가 생긴다는 전설이 있다. 수 백 년간 이런 전설이 끈질기게 전해 왔지만, 그것이 실현되리라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기묘한 일이 생겼다. 즉, 대청댐이 이룩되고 담수가 시작되었는데, 마침 수몰선(水沒線)이 꼭 이 배바위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배바위가 물 속에 잠기는 것이 아니고 물 위에 뜨는 형국이 되었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는 "옛말 그른 게 없고, 옛말이 신기하게도 맞는다"고 한다. 행정구역의 명칭도 그전에는 주암이었는데 근래에 연주리로 고쳐 부르고 있으며, 인포리는 말 그대로 포구처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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