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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용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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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길 285-30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391 용문사

285-30, Yongmunsa-gil, Yongmun-myeon, Yecheon-gun, Gyeongsangbuk-do

전통사찰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8교구 직지사 말사

주지 : 청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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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는 870년 (신라 경문왕 10년) 두운 선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정벌하러 내려가다 이 사찰을 찾았으나 운무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치 못했는데, 어디선가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 하여 용문사라 불렀다고 합니다.

고려 명종 때 ‘용문사 창기사’로 개명했으나 조선 세종대왕의 비 소헌왕후의 태실을 봉안하고 ‘성불사 용문사’로 다시 고쳤고, 정조 때 문효세자의 태실을 이곳에 쓰고 ‘소백산 용문사’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시 승병들의 지휘소로 이용되었던 자운루가 용문사에 아직도 남아있어 호국불교의 기풍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윤장대(보물 684호)를 비롯해 성보문화재 10여점이 현존하며, 조선 숙종 때 조성된 목각탱화(보물 89호)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 윤장대를 돌리면 번뇌가 소멸되고 공덕이 쌓여 소원이 성취된다고 해 예로부터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용문산에 위치한 용문사(龍門寺)는 신라 경문왕 10년(870) 두운 대사(杜雲大師)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오며, 이후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거대한 사찰 규모를 형성하였다. 즉 용문사는 직지사의 말사 가운데서 고려 왕조의 비호를 가장 많이 받아온 사찰이라 하겠다.

그것은 사내에 전래되는 금석문(金石文) 또는 사적기(事蹟記) 등의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다. 한림학사(翰林學士) 이지명(李知命) 의 중수용문사기(重修龍門寺記) 또는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등의 기록을 종합하면 신라 두운(杜雲) 대사가 범일(梵日) 대사와 함께 입당구법(入唐求法) 후 귀국하여 이곳 용문산 기슭에 들어와서 풀을 엮어 두운암(杜雲庵) 이란 암자를 마련하여 거처하였다고 하였다. 이때 고려 태조가 남정시(南征時) 에 이곳을 지나다가 두운 대사의 고명(高名) 을 듣고 예방코자 하였다. 태조가 동구에 이르자 홀연히 진룡(眞龍) 이 바위 위에 나타나 어가(御駕) 를 환영하므로 산명을 용문산이라 하고 사명을 용문사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태조는 두운 대사와 후일을 약속하였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태조 19년(936) 에는 용문사를 크게 중창하여 주현(州縣)으로부터 매년 150석의 조세를 바치도록 하였다. 의종 19년(1165)에는 자엄(資嚴) 대사가 명을 받고 와서 조응(祖膺) 대사가 보시한 자량(資糧) 으로 3간 법당과 승방주고(僧房廚庫) 등 93소를 건립하였다. 또 명종 원년(1171) 에는 태자의 태(胎)를 일주문 밖의 봉두(峰頭) 에 묻고 사명을 용문산 창기사(昌期寺) 라 개칭하였다. 이에 성수(聖壽) 를 축원하는 법회를 열어 5명의 승려로 낮에는 <금광명경>을 전독(轉讀) 하고 밤에는 관음정근(觀音精勤) 으로써 항규(恒規) 로 삼았다. 대대적인 불사를 위하여 이웃 7사와 안동 10개 사찰 등에서 조 700석을 거두어 비용에 충당하였으며, 도량의 남쪽에는 9층의 청석탑(靑石塔) 을 세워 사리를 봉안하는 등 실로 대작불사를 이룩하였다. 이에 명종 3년(1173) 에 불사를 완공하고 구산선문학도 500인을 청하여 50일 간 담선회(談禪會) 를 배풀고 단속사(斷俗寺) 의 효순 선사(孝淳禪師) 를 청하여 <전등록> <능엄경> 등을 교습케 하였다.

또한 삼만승제(三萬僧齊) 를 설하고 대장전을 신축하여 당내 좌우에 윤장대(輪藏臺) 2좌를 설치하여 법회를 개설할 때는 300여 인이 모였으며, 이때는 개태사(開泰寺)의 승통 영치(潁緇)가 강연하였다.
그리고 동왕 15년(1185) 에는 불사의 완공을 기념하는 뜻에서 이지명(李知命) 찬의 중수비를 경내에 세웠다. 이 비에는 용문사의 삼이사(三異寺) 를 전하고 있는데, 그 첫째는 태조가 두운 대사를 찾을 때 진룡(眞龍) 이 출영(出迎) 한 것이라 하였고, 둘째는 처음 절을 지을 때 홀연히 고량상(古梁上) 에 무게 16냥이나 되는 은병이 출현하여 이 비용으로 절을 건립한 것이라 하였고, 셋째는 도량 남쪽의 청석탑에 사리를 안장할 때 오색 구름이 소반을 에워싼 것이라 하였다.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왕실의 지원은 계속되어 세조 3년(1457) 에는 교지를 내려 용문사의 잡역을 감면토록 하였고, 성종 9년(1478) 에는 소헌왕비(昭憲王妃) 의 태실(胎室) 을 이곳에 안장하고 성불산 용문사로 개칭하였다. 또 정조 7년(1783) 에는 효문세자(孝文世子) 의 태실을 이곳에 안장하고 사명을 소백산 용문사로 환원하고 인빈궁(仁嬪宮) 원당으로 삼았으며, 당시의 건물로는 광명전(光明殿), 지장전(地藏殿), 원통전(圓通殿), 응진전(應眞殿), 미타전(彌陀殿), 대장전(大藏殿), 응향각(凝香閣), 만월당(滿月堂), 청심당(淸心堂), 명월료(明月寮), 적묵당(寂默堂), 삼강실(三綱室), 천왕문(天王門) 등과 함께 암자로는 서전(西殿), 비전(碑殿), 양로암 등이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전각의 화재가 있었음인지, 이후 헌종 원년(1835) 에는 화재로 소실된 보광명전과 해운루를 중건하였으며, 1979년에는 대장전을 비롯한 여러 전각들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1984년 5월 9일 7시경 창고에서 발화하여 보광명전, 해운루, 응향각, 영남제일강원, 요사, 종무소 등 230평이 소실되는 참사가 있었다. 이때 진화과정에서 국내 유일의 국가지정 보물 목조건물인 대장전 및 윤장대(輪藏臺) 를 구제하기 위하여 그 사이에 있던 단하각(丹霞閣) 을 허물어 불길을 잡기도 하였다. 이후 복원과정에서 퇴락된 두운암(杜雲庵) 을 철거하여 그 목재 일부를 종무소 신축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때 용문사는 용문 일대를 사전(寺田) 으로 소유하기도 하였으나, 광복 이후 토지개혁으로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는 전답이 약 15,000평, 임야 160정보를 소유하고 있다. 현존 건물은 보광명전, 대장전, 명부전, 응진전, 원통전, 천불전, 진영각, 동향각, 산신각, 해운루, 자운루, 응향각, 누각, 천왕문, 일주문, 영남제일강원, 후원요사 등이 있다. 그리고 대웅전 전방에 위치한 누각은 정면 5간, 측면 2간의 맞배집 2층, 총 60평이며, 그 전방 아래쪽에 위치한 천왕문 역시 정면 3간, 측면 2간의 맞배집이다. 그러므로 용문사는 대웅전과 요사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전각이 맞배집 형식의 건물이라 하겠다. 이들 가운데 대웅전은 정면 3간, 측면 3간의 팔작지붕 총 33평의 건물이며, 내부에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177 X 135cm) 과 소조석가여래좌상(91 X 59cm), 그리고 소조약사여래조상(110 X 85cm), 후불탱(165 X 167cm, 1868년, 175 X 204cm, 1884년) 2점, 지장탱(265 X 246cm), 신중탱(318 X 153cm) 들을 봉안하였다.

대장전(보물 145호) 은 정면 3간, 측면 2간의 맞배지붕, 총 18평이다. 대장전 내부에는 목조석가여래조상(90 X 61cm), 목조문수보살좌상(80 X 6cm), 목조보현보살좌상(177 X 135cm), 목조후불탱(177 X 135cm) 등을 봉안하였고, 장경을 봉안하였던 윤장대(보물 681호) 가 보관되어 있다.
명부전은 대웅전 동편에 위치한 정면 3간, 측면 2간의 맞배지붕, 총 18평이다.  
응진전 역시 정면 3간, 측면 3간의 맞배지붕 7평의 건물이다. 내부에는 소조석가여래좌상(塑造釋迦如來坐像, 80 X 63cm), 소조미륵보살입상(塑造彌勒菩薩立像, 106 X 27cm), 소조제화갈라보살입상(塑造提華竭羅菩薩立像, 106 X 27cm), 소조십육나한상(塑造十六羅漢像, 57 X 47cm)을 봉안하고 있다.
진영당(眞影堂)은 정면 6간, 측면 3간의 맞배지붕, 총 25평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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