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화엄사의 말사로, 전라남도 순천 계족산 중턱에 자리한다.
보물 제804호로 지정된 대웅전의 단아한 모습과 어울리게 정혜사는 오래된 사찰이라는 뜻에서 현지에서는 고사(古寺)라는 사찰명으로도 불린다.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에 혜조(慧照)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설,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설, 원감국사 충지(冲止)의 스승인 혜소(慧炤)국사가 742년(신라 경덕왕 1년)에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혜소국사 창건설이 맞는 것으로 여겨진다.
송광사 제6세 원감국사인 충지의 문집에 있는 ‘혜소국사제문(慧炤國師祭文)’의 기록에 의하면 혜소가 자신이 늙었을 때 머물려고 정혜사를 창건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뒤를 이어 제자들이 사찰을 완성하고 큰 도장을 이루었다 한다.
그 후 난리와 흉년이 들어 사찰이 황폐해지자 고려시대 선승인 원감국사 충지(1226∼1293)가 정혜사를 부흥시켜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한다.
<동국여지승람>, <승평지>, <범우고> 등의 문헌에 충지가 정혜사에 주석할 때에는 대찰(大刹)이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나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으며 소규모 사찰로 변했다.
그 후에는 중창기나 중수기 등의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아 후대의 내력은 알 수 없고 현재 남아 있는 전각 등을 통해 정유재란 후에 다시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순항쟁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국보급 괘불 등 귀중한 문화재가 화재로 소실되었다 한다. 사찰은 두 개의 석축을 쌓아 조성하여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 계단을 오르면 공양간 건물이 있고, 다시 계단을 오르면 정면에 대웅전과 명부전이 나란히 배치되었으며 좌우에 요사가 1동씩 자리 잡고 있다.
그밖에 삼층석탑과 석등이 조성되어 있다.
정혜사 대웅전은 조선시대에 지어졌으며,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1984년 11월 30일 보물 제804호로 지정되었다.
명부전은 정면 3칸·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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