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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영산전 목조삼존불상 전북유형문화재 제 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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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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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영산전 목조삼존불상 전북유형문화재 제 28호-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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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대웅보전 서편의 영산전에 봉안된 목조삼존상으로서, 석가모니불 좌상을 주존으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 입상이 양쪽에서 협시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높이는 3m, 협시보살의 높이는 2.4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이며, 주존은 16각의 난간을 두른 목각연화대좌(木刻蓮花臺座)에 모셔져 있다.
가운데 석가여래좌상은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육계는 없으며, 얼굴은 방형(方形)에 가깝다. 목부문 아래에 삼도(三道)가 좁게 표현되어 있고, 통견납의(通肩衲衣)의 간략한 의습에 가슴 밑 군의상단(裙衣上端)이 직선적이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서 손 등을 위로 하여 중지(中指)를 무릎에 접하고 있고, 왼손은 손 등을 밑으로 하여 제2지(第二指)와 무지(拇指)를 맞대고 있다.
양 협시보살은 화려하게 장식된 보관(寶冠)을 쓰고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이 삼존상은 목조불로서는 희귀한 우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육층석탑 전북유형문화재 제 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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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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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육층석탑 전북유형문화재 제 29호-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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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대웅전 앞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방형의 축대 안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정사각형의 돌 윗변을 둥글게 처리한 하대석을 얹었다. 그 위에 다시 방형의 중석(中石)을 세우고 중석의 네 귀는 우주(隅柱)로 조각하였다.
갑석(甲石)은 방형으로 되어 있는데, 아랫면은 수평으로 다듬고 중앙에는 1단의 받침을 새겼으며 윗면은 약간의 경사를 이룬 채 중앙에 1단의 옥신(屋身) 괴임이 있다. 각 층의 옥신은 하나의 돌로 만들고 네 귀마다 우주를 조각하였으며, 추녀는 수평을 유지한 채 하늘을 향해 약간 반전되어 있고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2층 옥신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3층 옥개석 역시 2층에 비해 폭이 좁아져 체감률이 심한 편이며, 3층 이상부터는 동일한 체감률로 이루어져 있다. 6층의 옥개석 위에 노반이 있고 노반 위에 복발(覆鉢)이 남아 있으며, 그 위에 팔각의 귀꽃으로 각출된 보개(寶蓋)를 얹어 놓았다.
사적기에는 조선 성종 때 행호선사(幸浩禪師)가 홀로 우뚝 솟은 이 9층 석탑을 보고 사찰의 중창을 도모하였다고 적고 있어, 현재의 탑은 성종 이후 3층이 유실된 것으로 추측된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범종 전북유형문화재 제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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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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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범종 전북유형문화재 제 31호-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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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천왕문 2층에 걸려 있는 조선 후기의 범종이다.
종신(鍾身)의 높이는 103㎝, 구경(口徑) 93㎝, 견경(肩徑) 56㎝이며,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를 포함한 전체의 총 높이는 129㎝이다.
이 범종은 한국 범종의 특징인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이 없는 대신 윗면에 1개의 구멍을 뚫었고, 용뉴는 2마리 용으로 만들었다. 어깨부분에는 2줄의 선을 둘렀는데 선 안쪽으로 명문(銘文)을 새겼다. 몸체 중앙에는 3개의 돌출된 선을 둘러 위와 아래로 구분해 놓았고, 윗부분에는 연화당초문대(蓮花唐草紋帶)로 사각형 유곽대를 만들었으며, 그 안에 가운데가 돌출된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서 있는 보살을 양각하고, 머리 위로 8개의 작은 원을 만들어 원 안에 범자(梵字)를 하나씩 새겨 넣었다.
용추는 머리부분이 외방을 향한 쌍두용(雙頭龍)을 투각하였고, 복잡한 세부처리는 주조한 다음 동편(銅片)을 잘라 부착시키는 수법을 사용하였다. 이 범종에는 음각된 '茂長縣禪雲寺大鍾重六百五十斤 嘉慶二十三年戊寅九月日 改鑄 都片手 嶺南 權東三 副 李命還…'이라는 명문이 있다.
이를 살펴보면 순조 18년(1818)에 도편수 권동삼과 부편수 이명환에 의해 개주(改鑄)되었으며, 이때 선운사 주지인 처영(處英)스님이 도감으로서 주조를 감독하였음을 알 수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백파율사비 전북유형문화재 제 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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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백파율사비 전북유형문화재 제 122호-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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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백파율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이 비석은 선운사 입구로 들어서서 오른쪽 숲 속의 부도 밭에 세워져 있다.
조선 철종 9년(1858)에 건립한 것으로 비명(碑銘)은 조선시대의 대명필가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필적이다.
조선조의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오랜 침체기를 헤치며 조선후기 불교의 참신한 종풍(宗風)을 일으킨 화엄종주(華嚴宗主) 백파율사의 업적이 적혀 있는 이 비석은, 율사의 업적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비석은 네모난 받침 위에 몸통을 세우고 지붕돌을 씌운 모습으로 되어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사적기 전북유형문화재 제 1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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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사적기 전북유형문화재 제 155호-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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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적(禪雲寺蹟)」ㆍ「참당사사적기(懺堂寺事蹟記)」ㆍ「운사고적(雲寺古蹟)」의 3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선운사의 규모와 연혁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적이다.
「선운사적」은 조선 영조 22년(1746)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70㎝ 47㎝의 크기에 표지를 포함하여 총 29장이다.
내용은 선운사 각 건물의 규모와 전각ㆍ요사에 봉안된 불상ㆍ탱화ㆍ기물(器物)ㆍ경전 등의 물목(物目)을 기록하였다.
「참당사사적기」는 77㎝ 57㎝의 크기에 표지를 포함하여 총 21장이며, 참당사와 선운사의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임상우(林相雨)가 정조 18년(1794)에 쓴 「도솔산대참사고사」와 『대참사법당기」, 호월자(浩月子)가 숙종 39년(1713)에 쓴 「대참사사적기」, 능허후인(凌虛後人)이 숙종 33년(1707)에 쓴 「선운사창수승적기」 등이 실려 있다.
「운사고적」은 70㎝ 47㎝의 크기에 표지를 포함하여 총 31장이다. 숙종 33년(1713)에 능허후인이 쓴 「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와 계사년 5월에 쓴 「사중대종명(寺中大鍾銘)」, 광해 6년(1614)에 쓴 「전각요사창건연대방명열목」 등이 실려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참당암 동종 전북유형문화재 제 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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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참당암 동종 전북유형문화재 제 136호-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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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조선 정조 12년(1788)에 조성된 범종으로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 안에 있다. 총 높이는 100㎝, 구경 50㎝, 복경(腹經) 60㎝, 구연(口緣) 두께 4.4㎝의 전형적인 조선시대 범종이다.
종신(鐘身)에는 사방에 보살입상이 있는데, 섬세하고 우아한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보살상 사이마다 유곽(乳郭)을 양각하였으며, 넓은 유곽 안에는 굵은 거치문대(鋸齒文帶)를 새겼다. 종의 어깨 부분에는 12개의 원권(圓圈)을 두르고 각 원권 안에 범자(梵字) 1자씩을 양각하였다. 보살입상 외곽하연(外郭下緣)에 접하여 돌대(突帶)를 두르고, 구연(口緣)과의 중간에는 한줄기의 돌대가 있는데, 이 양 돌대 안에는 명문판(銘文板)이 불규칙하게 주조되어 명문ㆍ시주명 등이 음각되어 있다.
구연대(口緣帶)는 넓은 평면돌대 위에 유곽과 동일한 거치문대를 두르고 있으며, 용뉴는 빈약한 용체의 쌍룡이 꼬리를 맞댄 채 사지를 딛고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다.
명문에 따르면 이 종은 정조 12년에 내원암 중종으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내원암은 현재 내원골에 터만 남아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신중도 전북유형문화재 제 2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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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신중도 전북유형문화재 제 230호-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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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1807년(순조 7)에 수화승(首畵僧) 오봉(鰲峰)스님이 수화사로, 寶月, 玩月, 環益, 敏詵, 學允, 福順 스님 등에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 상단에는 제석천과 범천을 중심으로 좌우에 天部衆을 배치하고, 하단에는 위태천을 중심으로 천룡팔부 및 武裝의 신장들을 배치하였다.
상단 중앙에는 큼직하게 표현된 제석천과 범천은 서로 마주보며 합장을 하고 서있다. 화면 구성이 빼어나고 원만한 상호 및 인체비례의 적정 등 인물 표현이 자연스럽고 색채 표현이 조화로운 수작(秀作)으로 평가된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석상암 산신도 전북유형문화재 제 2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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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석상암 산신도 전북유형문화재 제 231호-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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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1847년 정미년(丁未年)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세로 111cm, 가로 102cm의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비단바탕에 산신이 ?杖子를 들고 호랑이 위에 올라타고 있는 모습이다. 색채가 안정적이며 조화로운 필치와 호랑이의 움직임 자연스럽고 산신의 상호 표현이 뛰어난 수작(秀作)으로 평가된다.
석상암 산신도는 산신이 호랑이 위에 半跏坐의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렸다. 산신은 긴 눈썹과 흰 수염 등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모습이다. 호랑이는 네 발로 땅을 꽉 디딘 채 꼬리를 치켜세우고 앞을 응시하고 있다. 두 눈을 부릅뜨고 꼬리를 힘껏 치켜세운 모습, 호랑이의 털 하나하나까지 그린 사실적인 묘사 등에서 마치 김홍도의 호랑이그림을 보는 듯하지만, 동그란 눈과 입 사이를 삐죽 튀어나온 이빨 등에서 民畵的인 익살과 해학이 보인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도솔암 나한전 문화재자료 제 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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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도솔암 나한전 문화재자료 제 110호-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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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의 산내암자인 도솔암에 있는 법당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건축수법으로 보아 조선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나한전 내부에는 흙으로 빚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이 협시하였고, 1910년 용문암에서 옮겨온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도솔암은 선운사의 산내암자로서 대웅전 서쪽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원래는 여섯 도솔암이 있었으나 현재는 상하 2개의 도솔암만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조선시대 도솔암 용문굴에 이무기가 살면서 주민들을 괴롭혔는데, 이를 쫓아내기 위해 인도에서 나한상(羅漢像)을 모셔와 이곳에 안치하자 이무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무기가 다시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무기가 뚫고 간 바위 위에 나한전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문화재자료 제 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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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문화재자료 제 125호-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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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험준한 바위 위에 세운 법당으로 상도솔암(上兜率庵)이라고도 한다. 조선 중종 6년(1511)에 중창하고, 숙종 20년(1694)에 3창(三創), 순조 17년(1817)에 4창(四創)하였다. 거대한 바위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기단 없이 편편한 곳에 자리를 잡아 원형초석만 두었는데, 기단이 없어 건물이 낮아지므로 하인방(下引枋)의 높이만큼 되는 장초석(長礎石)을 사용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에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고, 벽선에 아자형(亞字形) 2분합문(分閤門)을 달았다. 천장의 구조는 우물천장이며, 건물의 규모는 작지만 겹처마에 8작지붕을 올려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내원궁에는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을 봉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