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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룩스 불교 :: CYLOOKS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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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석상암 칠성도 문화재자료 제 192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선운사 석상암 칠성도 문화재자료 제 192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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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말 20세기에 호남지역에서 활용한 화승(畵僧) 금호 약효(錦湖 若效)와 그의 제자들의 화풍을 잘 보여주는 불화로 추정된다. 석상암 칠성도는 熾盛光如來三尊을 중심으로 七星如來와 七元星君, 七星童子, 太上老君, 三台六星 등을 배치하였다.

    중앙에 위치한 치성광여래는 二重輪光의 광배를 배경으로 오른손은 가슴으로 들어 올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대고 손가락을 마주잡은 채 결가부좌하였다. 안정된 구도와 색의 조화, 섬세한 표현이 두드러지는 불화로 화기(畵記)의 손상이 있어 정확한 제작년대를 알 수 없지만 조선말기 불화조성 방법 및 안료의 성분 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2.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동백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 1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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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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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동백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 1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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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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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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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동백나무숲은 백제 위덕왕 24년(577) 선운사가 세워진 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나무의 평균높이는 약 6m이고 둘레는 30㎝로서, 절 뒷쪽 비스듬한 산 아래에 30m 넓이의 가느다란 띠모양으로 조성되어 있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ㆍ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해안이나 섬에서 자란다. 꽃은 이른 봄에 피는데 매우 아름다우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ㆍ추백(秋栢)ㆍ동백(冬栢)으로 부른다. 이 동백나무숲은 아름다운 사찰경관을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사찰림으로서 문화적 가치와 동백나무숲으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3.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장사송 천연기념물 제 3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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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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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장사송 천연기념물 제 3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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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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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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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에서 도솔암을 올라가는 길가의 진흥굴 바로 앞에서 자라고 있다. 수령(樹齡)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3m, 둘레는 2.95m이다. 높이 2m 정도에서 줄기가 크게 둘로 갈라져 있고, 그 위에서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부채살처럼 퍼져 있다.

    고창사람들은 이 나무를 '장사송' 또는 '진흥송'이라고 하는데,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이름이 장사현이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며, 진흥송은 진흥굴 앞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의 모양이 아름답고 생육상태가 양호하며 보기 드물게 오래된 소나무로서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4.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송악 천연기념물 제 3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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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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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선운사 송악 천연기념물 제 3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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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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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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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벽 아래쪽에 뿌리를 박고 절벽을 온통 뒤덮은 채 뻗어 올라 자라는데, 정확한 수령(樹齡)은 알 수 없으나 보기 드물 정도의 크기로 보아 600여 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23m, 가슴높이 둘레 2.95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ㆍ서쪽이 16.8m, 남ㆍ북쪽이 16.7m이다. 송악은 두릅나무 과에 속하는 늘 푸른 덩굴식물로, 줄기에서 뿌리가 나와 암석 또는 다른 나무 위에 붙어 자라며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

    잎은 광택이 있는 진한 녹색이고 꽃은 10월에 녹색으로 피며, 열매는 다음해 5월에 둥글고 검게 익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남해안 및 섬지방의 숲 속에서 주로 자라고 있다. 고창 삼인리는 송악이 내륙에서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에 가까우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5.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4교구 선운사 선운사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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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선운사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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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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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의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577년(위덕왕 24)에 백제의 고승 검단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1707년(숙종 33)에 쓰여진 <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는 전자의 설을 취하고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창건설화를 기록하고 있다. 신라의 진흥왕은 왕위를 버린 첫날밤에 좌변굴에서 자다가 꿈속에서 미륵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중애사를 창건하고 다시 이를 크게 일으켰으니 이것이 이 절의 시초 라고 하였다. 이 창건설화는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다고 하는 사실에 부회되어 형성되었겠지만, 당시에 이 지역이 신라땅에 속했을까 하는 문제가 있다. 또, 검단의 창건설을 보면 위덕왕 24년은 진흥왕이 왕 위에서 물러난 2년 뒤에 해당한다. 그런데 검단과 해구에 있는 검단리와 관련된 설화가 있다. 즉, 옛날에 검단선사가 바닷가의 사람들에게 소금 만드는 법을 가르쳤기에 해안사람들은 선운사에 소금을 시납하였다는 것이다. 두 설은 모두 설화이기에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장 오래된 조선 후기의 사료에는 모두 진흥왕이 창건하고 그뒤에 검단선사가 중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뒤 1354년(공민왕 3)에 효정이 중수하였고, 1472년(성종 3)부터 10여년 동안 극유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극유는 1472년에 이 절에 으르러 뜰에 구층석탑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중창을 발원하였다. 그는 이듬해 2월 제자 종념과 함께 상경하여 성종의 작은아버지 덕원군이 쓴 원문을 얻어 중창을 시작하였다. 그해 여름에 나주 보을정도의 재목 1,000여 그루를 3척의 배에 싣고 왔으며, 1473년 봄부터 가을까지 기와 20여 가마를 구웠다. 그리하여 1474년에는 2층의 장륙전과 관음전을 짓고, 1475년 봄에는 선왕선가를 위한 수륙재를 크게 열었다. 1476년에는 천불대광명전을 조성하였고, 1481년에는 모든 건물이 단청을 마쳤을 뿐만 아니라, 지장전ㆍ 동상실ㆍ금당ㆍ능인전 등을 짓고, 또한 영산회 등 53불회탱을 조성하였다. 이와같이 10여년에 걸친 극유의 중창불사로 하여 선암사는 옛 모습을 되찾았는데, 건물이 189채나 되는 웅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난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에 어실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부터 1609년에 이르는 2년 동안 승려 수십명이 선방 한두개소를 먼저 지은 뒤 몇 년 동안에 법당 3칸을 지었다. 1613년(광해군 5) 봄에 태수 송석조가 일관에게 중창을 부탁하자 일관은 원준과 더불어 수많은 집을 돌며 시주를 모으고, 어실을 빙자하여 고창 문수리에서 재목을 얻어 먼저 보전 5칸을 세운 다음, 상ㆍ하 누각과 동ㆍ서 양실을 건립하였다. 이때의 중창은 6년 만인 1619년에 끝을 맺었다. 그뒤 1707년(숙종 33)에 이르기까지 일관ㆍ원준 등의 선사들이 서로 계승하여 거듭 건물을 세우고 화상을 조성하는 등의 불사를 계속하였 다. 1698년에 김우항이 쓴 <선운사중신기>에는 중수에 참여하고 당시 선운사에 살고 있던 대중 260여명을 기록해두고 있다. 이 기록은 당시의 사찰규모와 조직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것이다. 1707년에는 현익이 <도솔산 선운사창수승적기>를 지었다. 1839년(헌종 5) 비로인해 법당 오른쪽 2칸이 무너졌다. 이에 찬성ㆍ의홍ㆍ성찬 등이 법당과 향운전을 수리하고 정문의 기와를 갈았는데, 1840년 가을에 중수를 마쳤다. 이때의 중수내역을 기 정진이 <무장현선운사대법당사적기>에 기록하여 남겼다.

    선운사 사적에는 17세기로부터 19세기초에 이르기까지의 건물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전각요사창건연대방명열목>이라는 제목 아래 남아 있다. 그것은 이 시기의 선운사의 역사를 아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이를 요약하 면 다음과 같다.

    ① 법당: 1614년 봄 창건, 화주 원준. 1618년 봄 기와 및 수장, 화주 일관. 1620년 봄 향운각 창건. 1633년 봄 불상삼존 조성. 1634년 가을에 봉안, 화주 법정. 1648년 여름 불상 도금, 화주 담형. 1661년 봄 개와, 화주 의운. 1688년 봄 단청, 화주 경탄. 후불탱, 화주 일진. 별좌 법안. 1697년 봄 개와, 화주 극현, 별좌 삼정. 1839년 5월 큰 비에 법당 오른쪽 2칸 무너짐. 1840년 봄ㆍ여름 보수 및 단청, 화주 성찬.
    ② 천불전: 1618년 봄 창건, 화주 영일. 1688년 봄 천불 조상, 별좌 혜정. 개와, 화주 사준. 1677년 봄 중창, 화주 쌍운. 1678년 가을 단청, 화주 덕기. 1840년 8월 법당이 상하여 오래 보존을 할 수 없어 석상화탱을 봉안.
    ③ 시왕전: 1675년 봄 창건, 화주 덕문. 1676년 가을 개와, 화주 해준. 1669년 봄 수장, 화주 찬휘. 1670년 봄 단청, 화주 사우. 1676년 5월 시왕상 봉안, 화주 극호. 1680년 봄 중창, 화주 선열.
    ④ 나한전 및 영자전: 1677년 봄 창건, 화주 유선, 별좌 천호. 1681년 봄 나한존상, 화주 명월. 1681년 가을 단청, 화주 성해. 1694년 봄 제공전 개와, 화주 경탄.
    ⑤ 정문: 1620년 봄 창건, 화주 요의. 단청, 화주 태연. 1680년 봄 중창, 화주 혜정. 개와, 화주 사우. 1689년 봄 단청, 화주 경탄. 1690년 봄 좌우제석탱, 화주 일진.
    ⑥ 천왕문: 1624년 봄 창건, 화주 지어. 1674년 봄 수장, 화주 종민. 단청, 화주 법안. 1669년 봄 개와, 화주 지휘. 1680년 봄 천왕등사, 황주 사준.
    ⑦ 팔상전: 1706년 봄 창건, 화주 행성. 팔상탱, 화주 심경. 1707년 봄 수장ㆍ삼존등상ㆍ단청, 화주 심경.
    ⑧ 향적전: 창건 화주 숭민, 중창 화주 홍열. 1690년 개와, 화주 계순.
    ⑨ 진정당: 1658년 봄 중창, 화주 인종.
    ⑩ 약사전: 1675년 봄 창건, 화주 사준, 극락전: 1678년 봄 창건, 화주 성혜.
    ⑪ 부도전: 1619년 봄 창건, 화주 탄혜.
    ⑫ 부도암: 1620년 창건, 화주 계수.
    ⑬ 능인전: 창건 화주 각현.
    ⑭ 대승전: 1691년 봄 창건, 화주 선우, 해납료ㆍ삼선료: 1659년 봄 창건, 화주 승초.
    ⑮ 칠성료ㆍ청심료: 1682년 봄 창건, 화주 해집.
    관음전: 1705년 봄 창건, 화주 영택.
    양계료ㆍ양봉료: 1705년 봄 창건, 화주 태초ㆍ법총.
    대종ㆍ중종: 1701년 봄 주성, 화주 희원.
    상고: 1701년 봄 조성, 화주 설화ㆍ경준, 별좌 두성.
    승당: 1656년 봄 개건, 화주 육수, 1666년 가을 개와, 화주 정행. 단청, 화주 명안.
    ㉑ 지장전: 1618년 봄 창건, 화주 웅민. 1666년 가을 개와, 화주 옥능ㆍ삼각.
    ㉒ 동상실: 1618년 봄 창건, 화주 견우. 1646년 가을 중창, 화주 정학. 1711년 봄 중창, 화주 겸 별좌 영각. 현존하는 당우로는대웅보전ㆍ영산전ㆍ명부전ㆍ만세루ㆍ산신각ㆍ천왕문ㆍ대방ㆍ요사 등의 건물이 있다.

    이 가운데 대웅보전은 정면 5칸의 맞배기와집으로 조선 중기 이후의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보물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만세루는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재로는 보물 제279로인 금동보살좌 상, 보물 제280호인 지장보살좌상,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28호인 영산전목조삼존불상ㆍ삼존불좌상ㆍ보살입상ㆍ아미타삼존상ㆍ십육나한상ㆍ판관상ㆍ녹사상ㆍ사자상ㆍ십대왕상ㆍ동자상ㆍ호법신장상ㆍ팔상전석가불 좌상 등과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29호인 석탑, 제31호인 범종, 제32호인 중종과 부도ㆍ탑비 등이 남아 있다. 이들 중에서도 금동보살좌상과 지장보살상등은 미술사적으로도 주목되고 있다. 동불암의 마애불상은 높이 13m, 너비 3m나 되는 것으로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 입구에 있는 부도와 탑비 중에는 김정희 쓴 백파대사사적비와 채제공이 쓴 설파대사사적비가 있고, 절 아래 마을 입구의 오른쪽 밭 가운데 <선운사동구>라는 시를 새긴 서정주의 시비가 서 있다.

    이밖에도 절 주변에는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검단선사에게 쫓긴 이무기가 당황하여 바위를 뚫고 나갔다는 용문굴, 조망이 뛰어난 만월대,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동백나무숲 등의 명소가 있다. 19세기 전반기 까지는 이 절에 속한 산내의 암자가 무려 50여곳이나 있었다. 곧,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상도솔ㆍ기출암ㆍ천리암ㆍ수선암ㆍ연대암ㆍ성대암ㆍ수다사ㆍ동암ㆍ도성암ㆍ청풍암ㆍ천등암ㆍ광정암, 1618년에 인해가 창건 한 내원암, 1665년 학철이 중창한 석상암, 1666년에 학철이 창건한 청련암, 1674년에 영조가 창건한 백련암, 1672년 사준이 창건한 상남암, 1676년 처인이 창건한 중남암, 1693년 천성이 창건한 동운암, 1658년 한해인이 창건한 하도솔, 1702년 거사 최대신이 창건한 북도솔, 1699년 명우가 창건한 미륵암, 영조가 창건한 수도암, 1596년 정도암 등이 창건한 고암굴, 1573년 상일이 중창한 은성남, 1574년 상조가 중창한 은적암, 1582년 경신 이 중창한 상암, 1583년 성문이 중창한 월출암, 1575년 철심이 중창한 의경암, 1710년 해운이 머물던 명심암, 1709년 경문이 창건한 한산전, 1707년 지휘가 창건한 백운암, 1713년 태경ㆍ응묵ㆍ봉흠 등이 창건한 성도암 등의 30여 암자와, 이름만이 보이는 20개 암자가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동운암ㆍ석상암ㆍ참당암ㆍ도솔암 등 4개의 암자만 남아 있다. 특히, 도솔암의 내원궁에 봉안된 지장보살좌상은 보물 제280호이고, 참당암의 대웅전은 정사각형 맞배집으로 구포장식의 건축양식이 독특한데 보물 제803호로 지정되어 있다.

  6.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7교구 금산사 금산사 전각 배치도
    작성자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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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금산사 전각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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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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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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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7교구 금산사 금산사 송대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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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금산사 송대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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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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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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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대 지역의 노전 또는 지전(持殿)으로서 이곳의 불사를 관리하던 스님들이 머물던 요사채였던 듯한데 미륵전 동북쪽 언덕 위에 별도의 담장을 두르고 있다. 방등계단과 5층 석탑이 있는 일단의 언덕에 나란히 배치되어 별원과 같이 꾸며져 있다.

    현 건물은 1914년에 건립된 것으로 금산사의 큰 스님이 기거하는 곳이다.

    근래에는 보수하여 산뜻한 모습이 되었는데, 조선 말기에 건축된 다른 요사 건물들과 같이 간결하고 정초한 자태에다 고요하고 울울한 수림 속에 한적하게 자리하고 있어, 오랜 세월 고승들의 숨결이 깊숙이 배인 산사의 작은 승방과도 같다.

  8.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7교구 금산사 금산사 적멸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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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금산사 적멸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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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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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등계단 옆의 옛 나한전 자리에 세워진 예배각(禮拜閣)으로 유리벽을 통하여 방등계단에 있는  사리탑에 경배하며 예불을 드리는 곳이다. 불전 내부에는 따로 불단을 차려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예는 통도사 대웅전과 같은 경우이다.

    적멸보궁 일년등(5만원) : 부처님사리가 모셔진 보궁에 일년등을 올리고, 소원성취 기도드립니다.
    문의 : 종무소 063-548-4441

  9.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7교구 금산사 금산사 삼성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금산사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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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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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등계단과 5층 석탑의 동쪽으로 적별보궁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삼성각은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전각이다.
    산신은 재물, 칠성은 수명, 독성은 복을 관장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면적은 19.96 평방미터이고 형태를 띠고 있다.

    삼성각 인등(10만원) : 산신, 칠성, 독성님 앞에 등을 밝혀 일년 내내 자신의 안녕을 기원합니다.(12개월)
    삼성각 일년등(5만원) : 산신님, 칠성님, 독성님을 모신 곳에 일년등을 올리고 소원성취 기도를 올립니다.
    문의 : 종무소 063-548-4441

  10.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7교구 금산사 금산사 나한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금산사 나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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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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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적광전 뒤에 나한전이 있다. 소승불교의 최고의 경지에 오른 나한에 대한 신앙을 하는 전각이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준말로서 의역하여 살적(殺賊), 응공(應供), 응진(應眞)이라 한다. 살적은 수행의 적인 모든 번뇌를 항복받아 죽였다는 뜻이며, 응공은 인간과 천상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는 뜻이며, 응진은 ‘진리에 상응하는 이’라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나한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하여 보통 5백인을 모신 오백나 한전과 16나상을 모신 응진전으로 대별된다.

    원래 금산사의 나한전은 방등계단과 오층석탑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계단을 참배하였기 때문에 계단예배전(戒壇禮拜殿)이라고도 불렀다. 안에는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하여 문수, 보현보살을 봉안하였다. 또한 석가여래의 여러 제자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는 아난과 가섭을 모셨고, 16나한상과 2인의 시자상도 목조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전각이름에 걸맞게 소형의 오백나한상을 계단식의 단을 마련하여 가득히 봉안하였다.

    나한전 일년등(5만원) : 오백나한님이 계시는 나한전에 일년등을 올리고 소원성취 기도를 올립니다.
    문의 : 종무소 063-548-4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