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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룩스 불교 :: CYLOOKS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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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전씨영각(全氏靈閣)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봉원사 전씨영각(全氏靈閣)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부처님당시의 기원정사(祇園精舍) 즉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잘 알려진 유명 이야기다. 급고독이라 불리는 장자는 제타의 소유인 원림(園林) 구입해 승가에 기증하는데, 원림을 구입을 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급고독 장자에게 제타는 원림의 넓이와 같은 양의 금을 요구하여, 급고독장자는 전 재산을 황금으로 바꾸어 땅에 깔고 팔라고 한다. 이에 제타는 연유를 묻고 감동하여서 나머지 원림도 기증했다고 한다. 봉원사에 전씨 부부는 부처님 당시의 급고독 장자라 하겠다. 부부가 한 평생 모은 재산을 모두 기부를 했다. 그래서 봉원사에서는 전씨 부부를 위해 매년 기일에 제사를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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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만월전(滿月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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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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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봉원사 만월전(滿月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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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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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만월전은 대웅전 가람과는 다소 거리 및 높이 차이가 있으며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주불로는 약사유리광여레불을 봉안하였고 협시불로는 독성님(오백나한 중 한분)이 모셔져 있다. 1904년 산신단을 봉안하였고 내부에는 4점의 탱화가 있다. 그중 산신탱화 및 독성탱화 2점은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일부 부식된 부재는 신재로 교체되었으나 건물의 규모 및 형식에는 변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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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칠성각(七星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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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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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봉원사 칠성각(七星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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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주불로는 약사여래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내부에 조성되어 있는 탱화들도 대단히 좋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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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미륵전(彌勒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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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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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봉원사 미륵전(彌勒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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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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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미륵전은 현대식 건물로 조성되어 내부에는 미륵부처님의 입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인등을 모신 인등각으로도 사용되어지는 전각이다.

    미륵부처님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뒤 56억 7천만년이 되는 때에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화림원(華林園)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미륵보살이 성불하고, 3회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하게 되는데 이 법회를 '용화삼회'라고 하며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기 이전까지는 미륵보살이라 하고 성불한 이후는 미륵불이라 한다.
    미륵보살의 미륵이란말은 범어로는 마이트레야(Maitreya)이며,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지타(Ajita, 阿逸多)로서 성인 미륵이 자씨(慈氏)로 번역되어 흔히 자씨보살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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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명부전(冥府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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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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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봉원사 명부전(冥府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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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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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이 건물 전면에는 명부전 편액과 4개의 주련이 있는데 편액은 600년전 유학자 정도전의 친필이고 주련은 친일파로 지탄받는 이완용의 친필이다. 내부에는 지장보살을 주불로하고 협시불로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봉안하였으며 십대왕이 좌, 우에 모셔져 있고, 내부에 불상 및 십대왕은 목조각품(木彫刻品)으로 빼어난 형상과 가치가 보물급 수준으로 평가된다. (현재 옮겨 짓는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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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극락전(極樂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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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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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봉원사 극락전(極樂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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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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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주불로는 아미타불 협시불로는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다. 천장은 우물반자로 비교적 화려한 단청이며 전면 문살대 위에는 대나무, 국화, 연꽃 및 각종 화초를 덧붙여 화려함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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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대방(大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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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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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봉원사 대방(大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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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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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이 대방은 원래 염불수행을 전통으로 해온 봉원사의 염불당(念佛堂)이다. 이 건물은 본래 조선말 흥선 대원군의 별장인 "아소정(我笑亭)" 본채 건물을 이건하면서 일부 변형 및 축소되어 건립되었다. 주불은 아미타불이고 300년전 북한 철원군 소재 보개사 (심원사)의 불상을 백련사와 몇개의 사찰에 모셔놓았는데 영험이 있다하여 모셔놓은 불상이다. 이 건물은 1966년 ~ 1967년 주지 최영월 스님, 도화주 김운파 스님에 의하여 복원되었다.

    형식은 팔삭지붕 민도리집 형식이며 중앙(中央)대중방과 마루사이는 벽이 없어서 행사시 전체를 한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서도가 추사 김정희가 쓴 "청련시경(靑蓮詩境)" , "산호벽루(珊湖碧樓)"와 추사의 스승인 옹방강(翁方綱)의 행서체현판 "무량수각(無量壽閣)" 있고 부엌문의 신장도는 인간문화재 이만봉 스님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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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삼천불전(三千佛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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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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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봉원사 삼천불전(三千佛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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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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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1945년 화주 김기월 스님과 화주 김운파 스님의 연력과 전 사부대중이 원력을 합하여 46간(間) 대규모의 광복기념관으로 건립한 바 있으나 불행히도 1950년 9월 25일 6.25사변중 한강 도하작전대 소실되었다. 이때 영조의 친필 "봉원사" 친필을 비롯한 "이동인, 김옥균"의 유물 등 중요 문적(文籍)이 소실되었다.

    1986년 주지 조일봉 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건물허가 및 준비 과정을 거쳐 1988년 삼천불전의 복원불사가 시작되었고 주지 김성월스님, 주지 김혜경 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을 합하여 단일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의 (210평) 건물로 9년여만에 완성하였다. 대들보 무게 7톤으로 알라스카산 수령 227년된 나무들을 사용하였고,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내부에는 비로자나불과 삼천불을 봉안하였다.

    부처님 진신사리탑
    봉원사 대중스님과 신도 75명은 불연으로 불기2535년 7월 22일(서기 1991년 음력 6월 21일) 스리랑카 공화국 초청을 받아, 캔디의 불치롬보 소재의 강가라마사의 그나니사라 대승정배려로 사리 1과를 모셔오게 되었다. 여러 사정으로 사리를 탑에 모시지 못하고 있던중 구대 이구품행 회장의 원력과 여러 신도님의 원력으로 사리를 모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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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대웅전(大雄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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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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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봉원사 대웅전(大雄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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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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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내부(內部) 공간구성에 있어서는 내부 고주없이 중앙불단을 뒤로 후퇴하여 설치함으로서 예불공간을 크게 확보하였다. 즉 고대의 탑(塔)중심의 의식에서 불상(佛像)의 등장으로 인한 법당중심의 가람(伽藍)이 구성되어 근세(近世)에서는 법당내부에서 불상(佛像)에 직접적인 의식과 예불이 많아졌다.

    깊이가 깊은 예불공간의 구성(構成)은 의식(儀式)의 원활성과 많은 불자(佛子)들이 들어올 수 있는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 대웅전은 내부공간이 예불중심의 공간으로 전환된 조선말(朝鮮末)후기의 사찰(寺刹)의 특징을 대변하는데 봉원사(奉元寺)대웅전 내부구조(構造)가 좋은 실례(實例)이다.

    이 건물은 영조(英祖) 24년(1748년)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이건(移建)전의 모습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보이고 외9포 내11포 위에 5량 5포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대웅전에는 영조대와의 하사품인 "대웅전" 현판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었고, 1991년~ 1993년 도화주로 김혜경 스님과 대중스님들의 원력으로 재건하였다.

    법당안의 보물급 탱화들은 그때 소실되었으며 지금의 탱화와 단청은 인간문화재 이만봉 스님의 작품이고 법당안의 범종(梵鐘)은 충남 덕산 가야사에 있던 종인데 조선시대 억불정책(抑佛政策)을 수행하던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쓰기 위해 가야사를 불태웠고 그때 타지 않고 있던 종을 옮긴 것이다. 대웅전 건물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6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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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대한불교조계종 옥천암 옥천암 보도각백불 普渡閣白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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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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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7
    옥천암 보도각백불 普渡閣白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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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4-17

    보도각백불 普渡閣白佛
    보물 제 1820호(2014년 3월 지정)

    보도각 백불의 정확한 명칭은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서울 玉泉庵 磨崖菩薩坐像)'이다. 흰색의 호분(胡粉)이 전체적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기 때문에 백불(白佛) 또는 해수관음(海水觀音)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불상에 호분을 칠하여 백불로 부르고 있는 예로는 이 불상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서울 안암동 보타사 마애보살좌상과 안성 굴암사 약사여래 좌상 등이 있는데 특히 보타사 마애보살좌상과 양식적으로 유사하다.

    홍지문 아래 홍제천 개울가에 위치한 보도각 백불은 신라시대 절인 장의사(藏義寺)의 경내로 추정되나 현재는 옥천암이라는 작은 암자만 남아있다. 현재 마애불상은 근래에 세워진 정면 1칸, 측면 2칸의 보도각이란 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마애보살상은 커다란 사각 형태의 바위면에 저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바위의 남면은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내곡(內曲)된 구조로 되어 있다. 바위의 왼쪽 면과 뒷면에는 소원을 빌면서 바위를 갈았던 붙임바위가 남아 있어 민간 신앙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구제하는 매우 대중적인 보살로 관음보살의 보살행에 대해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에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그 내용은 무고한 형벌을 받을 때,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맹수에 쫓길 때, 화재를 만났을 때 등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관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도움을 주는 자비의 보살행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관음보살은 민간에서 많은 신앙을 받고 예배되었던 불상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이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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