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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불교태고종 백련사 백련사 매점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백련사 매점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일주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백력사 매점이 있습니다.
    불교용품 및 조,향 등을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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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역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봉원사 역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창건~조선시대

    봉원사(奉元寺)는 신라(新羅) 51대(代)(서기 889년) 진성여왕(眞聖女王) 3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년)가 현 연세대(연희궁)터에 처음으로 지었던 것인데 이후 고려시대에는 고려말 공민왕대에 활약한 태고(太古) 보우(普愚)스님이 크게 중창하여 도량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조성하여 당시 사람들로 부터 크게 찬탄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한산군(韓山君)이 이색(李穡)에게 명하여 태고국사의 비문을 짓게 하고 스스로 국사의 문도(門徒)임을 자처하여 봉원사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태조 5년(1396)에는 원각사(圓覺寺)에서 삼존불을 조성하여 봉원사에 봉안하였고, 태조 사후에는 전각을 세워 태조의 어진(御眞)을 봉안하였다.

    제14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당시 전각이 소진됨에, 17대 효중 2년(1651) 지인(智仁)대사가 중창하였으나 동, 서 요사채가 다시 소실되어 극령(克齡), 휴엄(休嚴) 두 스님에 의해 중건되었다.

    제21대 영조 24년(1748) 찬즙(贊汁), 증암(增岩) 두 스님에 의해 지금의 터전으로 이전하였고, 영조는 친필로 봉원사(奉元寺)라 현액하였으며, 신도들 사이에는 이때부터 새로 지은 절이라 하여 '새절'이라 부르게 되었다.

    제22대 정조 12년(1788)에는 전국의 승려의 풍기를 바로잡기 위한 8도승풍규정소(八道僧風糾正所)가 설치되었으며, 제25대 철 종 6년(1856) 은봉(銀峯), 퇴암(退庵)화상 등이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제26대 고종 21년(1884) 발생한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주축을 이룬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개화파 인사의 정신적 지도자였 던 이동인(李東仁) 스님이 5년간 주석하였던 갑신정변의 요람지이기도 했다.

    고종 31년(1894) 주지 성곡(性谷)스님이 약사전을 건립하였으나 소실되었다.

    근대~현대

    1899년 인천 감옥에서 탈옥한 백범 김구 선생(법명 원종)이 공주 마곡사를 떠나 서울 서문 밖 이곳 새절(지금 봉원사)에 머물면서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형세를 살폈다. 새절에서 인연이 닿은 사형(師兄) 혜정(慧定)스님과 동행해서 평양으로 가서 부모님과 해우했다.

    1911년 주지 보담(寶潭)스님의 중수와 사지(寺地)의 확보로 가람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1945년 주지 기월(起月)스님과 대중의 원력으로 광복기념관을 건립하였다.

    1948년 백범 김구 선생이 봉원사를 다시 방문하였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당시 병화(兵火)로 광복기념관이 소진되었고 이때 영조의 친필 현판 등 사보와 이동인 스님 및 개화 파 인사들의 유물이 함께 소실되었다.

    1966년 주지 영월(映月)스님과 대중의 원력으로 소실된 염불당(念佛當)을 중건하였는데 이 건물은 대원군(大院君)의 별처였던 아소정(我笑亭)을 헐어 옮긴 것이다.

    현대

    1991년 32세 주지 김성월 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삼천불전 건립도중 대웅전이 소진됨에 즉시 중건을 시작하여 1994년 주 지 혜경(慧鏡)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대웅전을 복원 낙성하였고 같은 해 1,100평 규모의 삼천불전을 새로이 건립하였다.

    2009년 9월 30일 아랍에미리트 세계유네스코 정부간 위원회 4차 회의에서 영산재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었다.

    2011년 전통사찰로 등록되었다.

    2014년 7월 서울시유형문화재 제 363호 아미타괘불도와 제 364호 범종이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현재 봉원사는 한국불교의 전통 종단인 태고종의 총본산으로서 전법수행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바 대중은 50여스님, 신도는 10만을 헤아리며,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단청) 이만봉 스님과 제50호(범패) 영산재보존회에서 단청과 범패분야의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옥천범음대학, 불교교양대학이 있고, 신행 단체로는 관음회, 화엄법회, 청년회, 학생회, 인경회, 거사림 등 법회가 개최 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도 교도소, 소년원, 양로원, 고아원, 군부대 등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교화활동을 펼치고 있어 태고종 총본산으 로서 그 소임을 다하고 있다.

    이동인 스님
    구한말 개화파의 대표적 인물인 이동인은 봉원사에 주석하면서 김옥균등과 함께 교류하며 일본과 서양문물에 관한 지식을 쌓아갔으며 승려의 신분으로 수차례 일본을 내왕하며 당시의 선진문물을 소개하여 김옥균등의 개화파가 개화사상에 눈을 뜨게하는 직접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신사유람단의 일본행에도 결정적 막후역할을 수행하는등 개화운동에 많은 활약을 하였다.

    만봉 스님
    스님은 단청장으로서 70년대 초부터 일찍이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되어 지금까지 독보적인 불화의 세계를 구축하고 후학양성에 여념이 없으시다. 만봉스님은 영조때의 유명한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석상겸의 화맥을 이은 분으로서 1910년생인 스님은 6살에 동진출가하여 불화와 단청을 그리고 대가를 일컫는 금어(金魚)가 되기까지 20여년에 걸처 시왕초, 천왕초, 여래초라는 3단계의 습작훈련을 거쳤다고 한다.

    송암 스님
    1915년생인 스님은 봉원사에서 태어나 한번도 주소를 옮긴적이 없는 분으로 19세부터 범패를 배우기 시작하여 1940년에 어산 범패 일체를 섭수하셨다. 스님은 이월하스님과 남벽해스님 모두에게로 부터 사사를 받으시고 후진양성에 큰 힘을 기울여 범패의 계승과 전수에 일생을 다 바치시고 2000년 세수 86세, 법랍67세로 입적하셨다.

  3.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가람 배치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봉원사 가람 배치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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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관음바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봉원사 관음바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관음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영조임금당시 현재 연세대학 자리했던 봉원사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게 된 얽힌 비화(秘話)로서 구전(口傳) 되어 오던 것을 심만춘(沈滿春) 법사스님이 교계 원로스님의 말씀을 토대로 1979년 정리하여 "관음바위"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20년이 지난 후 최영찬 거사의 각색에 의해 "우리 곁에 계신 관세음보살님"이란 제목으로 불기 2544년 경진년 4월 초파일에 만화책으로 다시 선보이게 되었고, 만화책 구입은 봉원사 불구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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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다원(茶苑)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봉원사 다원(茶苑)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봉원사 경내에 위치한 다원(茶苑)은 삼천불전 전각내에 종무소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다양한 전통차를 즐기며 다담을 나눌 수 있다. 다원내부는 3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고 다양한 전통차가 준비되어 있다.

    차종류 : 봉원차, 대추차, 쌍화차, 녹차, 매실차, 오미자차, 모과차, 호박차, 수정과, 식혜

  6.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종무소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봉원사 종무소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봉원사 종무소에서는 불자님들의 신행활동과 불사및 사찰종무와 관련한 궁금하신 사항이나 요청사항에 대해 성심껏 해결해 드립니다. 종무와 관련한 모든 사항은 문의및 신청하기를 이용하시거나 전화 또는 이메일로 언제든지 신청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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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16나한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봉원사 16나한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나한이란 아라한(阿羅漢)이라는 뜻으로 수행 완성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정법(正法)을 지키는 불제자. 당(唐)나라 현장(玄)이 번역한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에는 이들 나한의 이름이 보인다. 즉 빈도라발라타사(賓度羅跋惰), 가락가벌차(迦諾迦伐蹉), 가락가발리타사(迦諾迦跋釐墮), 소빈타(蘇頻陀), 낙거라(諾距羅), 발타라(跋陀羅), 가리가(迦理迦), 벌사라불다라(伐羅弗多羅), 수박가(戍博迦), 반탁가(半託迦), 나호라(羅), 나가서나(那迦犀那), 인게타(因揭陀), 벌나파사(伐那婆斯), 아시다(阿氏多), 주다반탁가(注茶半託迦)이다. 한국에서는 8세기 후반 말세신앙과 함께 16나한에 대한 신앙이 깊어지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부처님 당시의 제자중 16분의 아라한상을 봉원사에서는 대웅전 뜰앞에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아라한(阿羅漢) - 수행을 완성한 사람
    아라한(阿羅漢)은 산스크리트 arhan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줄여서 나한(羅漢)이라고 한다. 응공(應供), 무학(無學), 이악(離惡), 살적(殺敵), 불생(不生)이라고도 번역한다. 응공은 마땅히 공양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며, 무학은 더 배울 것이 없는 것, 이악은 악을 멀리 떠났다는 의미로, 살적은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불생은 미혹한 세계에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표현한다.
    초기 불교의 최고의 성자를 가리키는 뜻으로 번뇌를 완전히 끊어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마땅히 공양받고 존경받아야 할 성자라는 뜻이다. 이 경지를 아라한과(阿羅漢果), 이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아라한향(阿羅漢向)이라 한다. 초기 불교에서는 붓다를 아르하트(arhat: arhan의 주격)라고도 하였고, 고대 인도의 여러 학파에서도 존경받을 만한 수행자를 아르하트라고 하였다.
    자이나교에서는 지금도 성자를 아르하트라고 한다. 그러나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부처와 아라한을 구별하여, 아라한은 부처의 경지에 미치지 못하는 소승의 성자라고 격하시켰다. 아라한의 유래는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녹야원에서 부처님과 함께 수행한 다섯 수행자에게 가장 먼저 설법을 했다는 초전법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다섯 사람이 부처님과 함께 생활하고 원시적인 교단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으며, 이후 이들은 차례대로 모두가 정각을 얻게 됨으로써 부처님을 포함해 여섯 사람의 아라한이 생겼다고 한다. 초기 불교에서 아라한은 부처님과 같은 사람을 가르켰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처님의 별칭인 '응공'이라고도 함께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부파불교에 이르러서는 아라한이 부처님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지 않고 불제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계위가 되었다.
    <불교신문_불교용어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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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종각(鐘閣)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봉원사 종각(鐘閣)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이 건물이 지어진 시기는 대방건물 이건시기와 같으며 그당시 제 1의 목수인 이광규씨에 의해 건립 되었고 종각은 단칸 건물로 팔작지붕 형태로 짜여져 있고 종의 아래에는 단지가 묻혀있는데 이것은 소리의 공명정도를 길게 하고자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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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영안각(靈晏閣)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봉원사 영안각(靈晏閣)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이 건물의 기능은 일정기간동안 혼백(魂魄)을 모셔두는 곳으로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 60년대초 건립된 건물로 화려한 단청으로 마감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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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한국불교태고종 봉원사 봉원사 운수각(雲水閣)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봉원사 운수각(雲水閣)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8
    운수각(雲水閣)은 조실스님의 거처로서 사용되는 곳으로 팔직지붕의 정면 3칸, 측면 1칸의 벽체로 되어 있으며 대웅전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그 오른편으로는 영안각(靈安閣)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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