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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MZ펀치볼둘레길
    DMZ펀치볼둘레길 DMZ펀치볼둘레길 마을소개
    작성일
    2024-08-11
    DMZ펀치볼둘레길 마을소개
    작성일
    2024-08-11

    펀치볼마을
    펀치볼마을은 해발 1,100m이상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로 형성된 지역이다. 펀치볼마을의 지명은 6.25전쟁당시 외국의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내려다본 노을진 분지가 칵테일 유리잔속의 술빛과 같고, 해안분지의 형상이 화채그릇(Punch Bowl)처럼 생겼다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펀치볼마을은 양구군 해안면의 만대리, 현1,2,3리, 오유1,2리의 여섯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펀치볼마을이라는 이름은 먼 옛날 해안(海安)의 해자는 바다 해(海)자를 썼는데 그 당시 해안분지에는 뱀이 많아 주민들이 밖에 나가지 못 할 정도로 뱀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초 해안 주민이 시제를 지내면서 유명하신 스님 한분을 모시니 스님은 "뱀은 돼지와 상극이니 바다해 자를 돼지해자로 바꾸어 쓰면 되겠다."라고 일러주었다. 그 다음부터 주민들은 돼지 해(亥)자로 고치고 집집마다 돼지를 많이 길렀다고 한다. 그 후 신기하게도 뱀이 없어져서 주민들은 집밖 출입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록으로는 고려시대 이전에는 이 분지를 "번화"라고 불렀으며 그 후 "해안(亥安)"으로 불렀다가 해안으로 바뀌었다가 1885년 (고종32년)엔 해안면이 설치되기도 했다. 1956년 휴전 후 난민정착사업의 일환인 재건촌 조성으로 100세대씩 입주시키며 농민들의 개척에 의해 마을의 틀이 만들어졌다. 원래 동면 관할 아래 있었던 해안 출장소가 1983년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동면 북부를 분리 승격시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6.25격전중 해안을 바라본 종군기자가 이곳을 형태를 본떠 펀치볼이라 부른데서 세계적으로는 펀치볼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만대리
    만대리는 양구방면에서 대암산을 넘어 해안으로 들어오는 길목 첫 번째 마을입니다. 어느 시골마을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푸르고 맑은 청정지역이지만 다른곳과 달리 분지 형태의 특이한 지형과 민통선안에 한개 면이 모두 위치한 대한민국 유일한 마을이기도 합니다. 뒤로는 대암산이 든든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고 앞으로는 대암산을 따라 동그랗게 둘린 산들이 마을 전체를 안락하게 보듬고 있습니다.
    때묻지 않은 자연속에 계절따라 돋아나는 온갖 산나물과 청정농산물, 시원한 계곡물과 공원은 자연속에서 누릴 수 있는 커다란 즐거움을 드릴 것입니다. 이른아침 도로를 타고 산으로 오르면 볼 수 있는 안개의 절경이 있고 그 속에서 재배 되고있는 달콤한 포도만큼 이나 주민들의 삶도 알알이 영글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고향이 될 수 있도록 더 나은 농촌 건설을 위하여 모두 열심히 일하는 마을 활기와 순박함이 함께하는 마을 만대리 입니다.

    오유리
    만대리를 지나 꽃내음 그윽한 직선도로를 지나면 보이는 마을이 오유리 입니다. 지형적으로는 해안의 중심축에 위치하며 마을은 2개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언덕위로 십자탑 교회가 보이는 오유1리를 지나면 나즈막한 산등성이에 위치한, 해안에서 하나뿐인 정안사(절)가 위치하고 있어, 푸근함과 넉넉함을 주는 마을 오유2리가 있습니다.
    새농촌건설 운동의 일환인 마을가꾸기 운동으로 겨울 이외에는 항상 어느곳이라도 꽃들로 가득차 있는 마을입니다. 마을의 특색으로는 백합단지의 중심축을 이루어 수출 활력에 기여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을전체가 오리를 이용한 친환경 오리농법으로 유명한 마을입니다. 농산물의 고품질화와 청정농촌 보존을 위해 모두가 노력한 결과로 친환경 우수마을로 지정되었고 모두가 항상 노력하여 더 낳은 생활을 만들어가는 마을입니다.

    현리
    현리는 양구방면에서 원통으로 나가는 길목의 끝에 위치한 마을로써 상가가 밀집되어 있는 현1, 2와 조금떨어져서 위치한 현3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안보관광단지인 해안에 들리시는 여러분께서는 출입과 식사등 여러가지 이유로 한번씩은 스치고 가는 마을입니다 현2리쪽에 위치한 북한관과 직접 금강산을 바라볼수 있는 을지전망대, 현 3리쪽에서 제4땅굴이 발견된 지역으로서 안보관광지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마을 주위로 보이는 논작물이외에도 수복직후 산을 개간해 만든 밭에는 여러가지의 특용작물이 재배되고 복숭아 포도 등 해안 고지대에서 생산되는 과일은 안개로 인해 만들어지는 심한 일교차로 인해 높은 당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한 와우산에 조성된 펀치볼 더덕파종단지는 언제든지 가족과 함께 자연과 더불어 산채를 채취 할 수 있는 즐거움을 느낄수 있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어느식당에서든 산채백반, 두부전골, 더덕구이등 해안에서 자연생산된 청정 농산물로 만든 음식으로 미각을 돋구실 수 있습니다. 풍부한 농산물과 자연산채 안개바다와 후한 인심, 전국제일 안보관광단지의 마을 현리입니다.

  2. DMZ펀치볼둘레길
    DMZ펀치볼둘레길 DMZ펀치볼둘레길 지역문화 및 설화
    작성일
    2024-08-11
    DMZ펀치볼둘레길 지역문화 및 설화
    작성일
    2024-08-11

    펀치볼 (해안) 사람들이 살아온 길

    1) 펀치볼 도로의 옛 추억
    해안은 1956년 주민이 1차 입주한 이례 제 4차에 걸쳐 입주시켜 살게 된 곳입니다. 처음에는 민간이 이용하는 차량이 없어 군인 진중버스로 1일 1회 왕복운행하다 두 번이나 진중버스가 굴러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민간인 화물차로 다니다가 1970년도부터 지금의 버스로 교체 되었습니다. 당시 도로는 비포장 도로 로 눈, 비만 오면 도로가 파이고 결빙되어 2~3일간 두절되는 사례가 허다하였으며 급한 용무가 있는 사람은 비사도로를 이용하여 인제군 서화까지 걸어서 일을 보고 돌아오기도 하였습니다.
    장마철이나 겨울철에는 버스를 타고 해안으로 오다 힘이 없어 정지하게 되면 노약자는 차에 남고 부녀자와 어린이는 차에서 내려 걸어가고 젊은 청, 장년은 버스 뒤에서 밀고 가는 진풍경이1980년대 말까지 이용되었다. 1990년대 이후 도로 포장이 완공되어 현재는 편안하게 다니고 있습니다.

    2) 해안 출입증 발급
    해안주민은 만 18세가 되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출입증을 발급받아 인제지역 이나 양구지역으로 통행을 할 수가 있었다 출입증이 없으며 타 지역을 나 갈수가 없으며 2년 마다출입증을 갱신하였다. 타 지역인 이 이곳에 올 때는 본적지 동, 면사무소에 가서 신원 증명서를 발급받아 기무부대(보안부대)를 경유 사단 사령부에서 임시 출입증을 발급받아 해안에 올수가 있었으며 출입기간은 2~3일 정도로 제안되며 이를 위반하면 그에 따른 벌칙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해안에 오면 유숙제 (방문신고서)를 작성 이장을 경유하여 파출소 및 기무대에 제출하였습니다. 이곳 출입시 3개 부대에서 검문을 실시하였고 차량 승차 인원이 많으면 검문만 1시간이상 소요되어 엄청 불편했습니다. 1980년 이후 부터는 해안주민만 주민등록증만으로 통하다 1990년 이후에 출입제도가 완전히 해제되어 현재는 자유롭게 출입하고 있습니다. 외지 주민이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입주를 신청 할 때는 6개월 전에 해야 하고 가족 중에 향토예비군이 있어야 하며 신원 조회상 교통법규 위반자도 입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주민은 국가관과 안보의식이 타 지역 사람들보다 투철 합니다.

    3)군부대에서 주민통제
    야간 일몰이 되면 등화관제를 실시하여 불빛이 밖으로 세어 나가지 못하게 하였으며 영농한계선을 설정하여 밖으로 못나가게 출입통제를 하였고 초소를 통과 할때는 일출이 되어야 일터로 나 갈수 있으며 일몰전에 귀가해야 했습니다. 이곳에서 타 지역 (양구,인제)으로 출입할 때도 일정시간이 경과하면 출입 할수 없었으며 급한 환자가 발생할 경우에도 출입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특히 농산물 출하할 때 시간이 경과 되어 출하를 못해 농산물이 변질되어 손해를 보는 일이 허다 하였습니다. 군부대에서 정해놓은 규칙과 군사시설 보호법에 위배되는 행동을 했을 때는 군부대에 가서 노역도 하고 벌도 받으며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가다보니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지금은 하나의 추억으로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4)멧멧제 (비상도로) 령의 사랑이야기
    해안마을에 70년대 초까지 군인들이 많이 주든 하고 있어 이곳 여성들은 불편한 이곳을 탈출하여 보다 자유로운 곳으로 가기위해 군인들에게 시집을 많이 갔으며 상대적으로 남성들은 멧멧제 령을 통해 들어온 여성들과 선을 보게 되었고 선을 본 여성은 눈,비 가 오거나 출입기간이 경과되면 제때 나가지 못해 선본 남자가 마음에 없어도 며칠을 묵다보면 정이 들어 그대로 시집을 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곳에 사는 청춘 남녀가 서로 좋아 사랑을 하며 결혼을 약속하고 부모님께 승낙을 받고자할 때 한쪽 부모 또는 양가 부모님이 심하게 반대하여 결혼을 할 수 없을 경우 이 멧멧제를 넘어 외지에 갔다 오면 결혼승낙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래서 이 고개를 사랑의 고개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5)해안사람의 삶을위하여
    해안주민이 1956년도 입주해보니 전쟁중으로 마을은 폐허가 되고 논 경지는 황무지로 변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텐트 속에서 생활하다 군부대에서 현리와 오유리에 집을 지어주어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점차 주민들이 드러나자 각자 집을 더 짓게 되어 마을은 커져 갔습니다. 농경지를 개간할 때 옛날에 저지대에는 물이 차서 곡식이 되지 않아 해발 600M 고지선 밑으로 내려 개간을 했습니다. 전쟁이 남긴 포탄과 고철을 치우며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며 열심히 황무지를 개간 하여 곡식을 심어고 주기적으로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은 항상 부족했습니다.
    해안주민은 농사를 지으면서 전쟁이 남긴 고철과 탄피 등을 캐서 곡식을 마련하였으며 고철이 없어지자 산과들에 생약초 를 체취 하여 생활 하였습니다. 해안 사람의 생존을 위해 고물과 탄피를 캐다, 약초를 체취하다, 개간을 하다. 땔감을 하다 지뢰 사고로 30~40명이상 피해를 입었으며 한가정은 3대에 걸쳐 4명이 피해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산과 들에 지뢰가 있으며 몇 년에 한번씩 지뢰 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니 길이 아닌 곳으론 다니지 마세요. 지금은 정부의 지원으로 주택 개량도 많이 하였으며 농업기반시설 확충으로농업기계화는 물론이며 특용 작물로 화훼, 과수재배, 인삼재배 등 농가 소득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농업 인력 부족으로 외국인 300명을 포함하여 600명 이상 농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 많이 살고 있어 살아 있는 건실한 농촌이며 앞으로 남북통일의 중심 마을로 자리매김 할 것입니다.

    아우산 또는 와우산 이야기
    아주 먼 옛날에 이 산 밑에 아담한 초가집을 짓고 두 형제가 사이좋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달이가고 해가 가 새봄이 돌아와 농사일을 열심히 하고 있던 어느 날 두 형제가 집에서 떨어진 반대편 밭에 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필요한 쟁기(도구)를 가져오지 않아 동생이 쟁기를 가지러 집에 갔을 때 형수가 점심을 준비하여 일하는 밭으로 가기위해 머리에는 밥그릇을 이고 손에는 물그릇을 들고 집을 떠나던 차 갑자기 옷고름이 풀어져 아우인 시동생에게 옷고름을 메어달라고 부탁을 하여 형수의 옷고름을 매어주었다. 이때 반대편에서 일을 하던 형님이 이 광경을 보았다 먼 곳에서 보니 처와 동생이 형 몰래 사랑을 하며 키스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형이 화가 나서 집에 와 동생을 들고 있던 쟁기로 아우를 쳐서 죽였다. 나중에 부인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무모함을 후회 하였으나 이미 동생은 저 세상으로 떠나간 후 였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아우를 양지 바른 곳에 잘 묻어 주고 명목을 빌었다 그 후 이산을 아우산 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산은 높은 곳에서 살펴보면 소가 편안히 앉아 있는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와우산 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왜 가칠 봉 일까?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을 정할 때 한 개의 봉이 모자라 지금의 봉을 첨가한다는 뜻에서 한자로 더 할 가를 사용하게 되었고 칠( )자는 봉 밑에 훈장 터(서당방) 라는 글방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선비7명이 훈장 밑에서 지혜와 용기를 배우고 과거 응시를 위해 학문에 열중 하였으며 한양에서 과거가 있어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7명 모두 과거에 합격하여 훌륭한 선비가 되었다고 한다 과거 급제한 7명의 공을 기념하기위해 칠자를 써서 가칠 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해안 신 효자 유래
    조선말기 고종 황제 중엽때의 일이다 양구군 해안면 후리 신 석구라는 분이 노모을 모시고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극진한 효를 행하며 살고 있었다 예로부터 효자는 하늘이 낸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부모님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봉양하였는데 하늘도 감동하였는지 만물도 그를 도왔다. 해안면 자월천과 이현천 합수 지점에 큰 호박돌이 물속에 있었는데 그곳에 나가 그 돌을 흔들면 큰 열묵어 고기가 잡혔다. 그는 매일 부모님께 고기반찬을 해 드렸다.
    이 소문이 퍼지자 다른 사람들도 고기를 잡기위해 돌을 뒤졌지만 고기는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욕심이 많고 성격이 고약한 사내는 고기가 나오지 않자 아예 그것을 없애버렸다. 그것도 모르고 신 효자는 고기를 잡으러 그곳으로 갔다 신 효자는 돌이 보이지 않자 다른 돌을 물속에 넣고 고기를 잡기 시작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큰 열묵어가 잡혀 계속 부모님께 고기반찬을 해 드릴수가 있었다. 아버지가 연세가 많아 병이 들어 자라에 눕게 되자 정성을 다하여 간병을 하던 중 아버지는 아들에게 소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당시 가난하여 돈도 없고 또 고기를 구하려고 해도 먼 곳(양구나 인제)에 가야 하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넓적다리의 살을 베어 요리를 한 후 소고기라 하면서 아버님께 대접해 드렸다.
    그런 후 아버지는 운명하여 묘지를 해안면 후리 946번지에 모시고 그곳에서 3년간 묘지 관리와 아버지를 위한 모든 정성을 다하였다. 당시만 해도 해안 전 지역이 산림이 우거져 호랑이가 많이 있었으며 특히 묘지 옆에 큰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곤 했다. 산속에서 3년 상을 마치고 집에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던 중 그 다음해 아버지 제삿날이 돌아와 제사상을 밤10시서부터 준비하는데 고기가 빠져 있어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집 앞에 큰 호랑이가 나타나 등에 타라는 시늉을 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산 속에서 3년상을 치를 때 종종 나타난 바로 그 호랑이였다 신 효자는 호랑이를 타고 양구읍에 가서 고기를 구입하여 아버지 제사를 잘 지낼 수 있었다.
    이런 소식이 퍼져 고종 황제의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고종 황제는 신하로 하여금 효자 상을 내리게 하였다. 그후 신효자도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자 그 손자인 신종균이 효자 상장을 보관하다 6.25때 분실하였으며 그의 손자는 이곳 해안면 현3리2반에 거주하다 1995년 12월 25일 사망하였습니다.

    길장군에 대한 유래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월산리395번지에 길씨라는 한 농가가 있었다. 이 농가의 가족 중 아들 한명이 7~8세가 되도록 문 밖 출입을 안하고 밥만 먹고 잠만 자고 있었다. 어른들이 낮에 들에 나가 일을 하는 바람에 길장군 (아들)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어머니께서 일할 때 먹으려고 두부5되 분을 저녁에 해 놓고 다음날 아침에 부엌에 나가보니 두부가 모두 없어진 적이 있으며 또 엿을 해서 선반위에 놓아 두었는데 이것도 원인 모르게 없어진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정월달이 지나고 2월 초가 되자 아버지가 월산리 가래골에 가서 큰 소나무를 잘라 소?(여물통)을 파 놓고 집에 가져갈 것을 걱정하였다. 밤이 되자 가족이 모두 잠을 자고 있을 때 길장군은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을 이용해 소?를 집에 갖다 놓았다. 이것은 장정 7~8명이 힘을 모아야 겨우 들 수 있었다 날이 밝아 마당에 나가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누가 갖다 놓았는지 알아보았지만 아는 이가 없었다.
    또 며칠 후 품앗이로 땔감 100여 짐을 산에 해놓고 집으로 가져갈 것을 걱정 하였으나 이것 역시 다음날 집 옆에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어머니가 밭에 나가 일을 하다 몸이 아파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어 집에와 보니 방에서 아들이 자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을 보니 양쪽 겨드랑이 밑에 조그마한 날개가 달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는 만들어 놓은 두부와 엿이 없어진 것 또 소?와 땔감을 옮긴 것을 아들이 한 것이라 눈치 채고 남편이 돌아오자 이 사실을 이야기 하게 되었다. 남편은 아들의 괴이함을 협의코자 문중 회의를 소집한바 관청에 신고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장군이 나면 역적이라 하여 3대를 멸종 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관청에서 죽이라는 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죽이게 되었다.
    길장군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갑자기 용마가 나타나 크게 울다 죽고 말았으며 마을 사람들은 어린 길장군의 시체를 거두어 해안면 월산리 377 번지 옆에 잘 묻어 주었다. 일제시대에 일본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이 지역에서 또 장군이 날것을 막기 위해 묘지 주변 산에 쇠말뚝 을 박았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아직 찾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도 월산리에 가면 길장군 묘가 있는데 주변에 잡초만 쓸쓸하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며 지나가는 사람마다 저 곳이 길장군의 묘라 말하고 있다.

    용늪
    대암산 해발 1300M 정상 지점에 약 10,000여평 정도 되는 고층 습원으로 3개의 소 물이 고인 작은 연못 비슷한 소(연못)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였다 하여 용늪이라 하였다. 그 후 이곳 주위에 명당이라는 설이 있어 자손이 잘되기를 소원 하는 일부 사람들이 야밤을 이용 시체를 몰래 묻는 투장 사례가 실제로 있었으며 여름에 투장을 하면 비가 계속내려 엄청난 장마로 양구군 동면 해안면 인제군 서화면 주민들의 농사를 헤치게 되어 지역 주민들이 그곳에 가서 투장한 시체를 파헤친 사례가 6,25 직전까지 있었는데 그것(시신)을 파내면 비가 와서 깨끗이 쓸어 갔다고 한다.
    30~40년 전 가뭄이 심할 때는 해안, 동면, 서화면 주민들이 모여 개를 잡아서 이 소에 던지면 용이 노하여 비를 뿌린다 하여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특히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246호로 지정된 한국 유일 산머루 습원지로 각종 히귀 동, 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 생태 보호지역으로 관리 하고 있으며 세계 유네스코 지정을 추진중에 있습니다.

    도솔산 산신제
    도솔산 산신제는 정확한 년도는 알수 없으나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전해오는 행사이다. 제단은 도솔산 준령 남쪽 하단 계곡 (산림청에서 조성하는 국립 DMZ 자생 식물원) 상단 지역이 됩니다. 해안면을 수호하고 있는 도솔산 산신령은 여성으로 제를 올릴때는 황소를 잡아 지역 주민이 정성껏 드리고 있으며 여성의 접근을 금하고 있습니다. 산신제는 매년 4월 1일에 거행하고 있으며 주요 내용으로는 면민의 무명장수 와 지역 번창, 풍년농사를 기원합니다. 후속 행사로 개인의 소원과 농악 및 사물놀이 등 다체로운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질고개 또는 돌산령에 대하여 아주 먼 옛날에 해안에 살고 있던 한 부인이 험준한 돌산령을 걸어서 양구에 가서 일을 보고 혼자 집으로 걸어서 오던 중 동면 팔랑리에 도착하니 해가 어느덧 서사에 기울고 있었다. 당시에는 차가 없어 걸어서 다니면서 모든 일을 보던 시대이다. 때는 여름철이고 날씨가 더워서 속옷을 벗고 흰 옷 치마만 걸치고 걸음을 재촉하며 걷다보니 산 정상 부근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큰 호랑이가나타나 사람을 잡아먹을 기세로 달려들려고 할 때 너무나 겁이 나서 입고 있던 치마를 뒤 집어 쓰고 기절하다 시피 하였답니다. 이때 이 여인은 달거리(월경) 시작되어 흰 치마에는 붉은 피가 여기저기는 물론 사타구니에도 묻어 있었으나 무서움과 두려움으로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호랑이가 생각하기를 피 묻은 흰 보자기를 뒤집어 쓴 것이 사람도 아닌 것 같고 무엇을 잡아먹었는지 입 주변에도 묻어 있었다.
    나도(호랑이) 저 괴물에게 물려 죽지 않을까 겁이 나서 호랑이가 도망을 갔다 한 참 만에 정신을 차려 해안 집으로 늦게 돌아왔다. 기다리고 있던 가족과 동네 사람들이 왜 늦었냐고 묻자 돌산령 정상 부근에서 호랑이가 나타난 사실을 말했다. 위급한 상항에 달거리가 시작된 것이 자신을 구한 것이라 하자 그 후 동네 사람들이 이 고개를 질고개 또는 돌산령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근석에 대한 이야기
    해안면 후리에 후동이란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여자 아기가 더 많이 태어났다. 당시에는 남자 선호 사상이 강했으며 모든 가정에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여자 아이가 커서 시집을 가면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가정이 편안하고 그렇지 않으면 심한 시집살이에 많은 고초를 격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유달리 딸만 많이 낳는 이 마을에 아들을 낳아 가정의 평안과 대를 잇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마을 부근에 사당을 짓고 남근석을 세웠다.
    그 후 아들을 낳지 못하는 아낙네가 이곳에 와서 남근 석을 만지며 빙빙 돌면서 아들 낳기를 소원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해안에 살고 있는 여성은 물론 타지역 여인들도 와서 소원을 빌었다고 합니다. 일제 해방과 동시 북한 지역 편입과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망가진 것을 1988년도 해안면사무소 옆에 다시 남근석을 복원 하였습니다. 1994년도 또 하나의 남근석을 면사무소 앞에 설치 하였는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면사무소 주변 150M 내에 심어 놓은 나무의 껍질이 갈라지고 상처가 생겨 정상적인 나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MBC기자가 취재를 하여 방영한바 있습니다. 남근석만 있고 여근석이 없어 남성의 기가 너무나 강해서 나무가 갈라진게 아닌가 합니다. 이 방송을 듣고 어떤 분이 가지고 있던 여근석을 면사무소에 기증 하여 남근석과 여근석 을 결혼을 시켜 해안면 오유1리 물레방아 옆에 설치하였습니다. 남극석의 영향인지 모르나 해안 지역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으며 특히 농촌총각이 많아 결혼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남근석 여근석 결혼식 이후에는 외국 여성들과 결혼으로 다문화 가정이 늘면서 농촌 총각 문제도 점차 해소되어 가고 있으며 남, 여 의 출생 비율도 같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지금도 아들 낳기를 원하는 아낙네가 남근석에 와 남몰래 빌고 간다고 합니다.

    장군바위
    옛 날 옛날 한 옛날에 조용하고 아담한 해안 마을에 하늘에서 흰 말을 따고 거대한 장군이 내려와 바위에 앉으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곳에 온 것은 기근(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좁쌀 씨앗을 가져와 이것을 심어 가난도 극복하고 군량미로 확보하여 나라를 튼튼히 하고 외세 침략에도 대처할 계획이니 내가 이곳에 온 것을 비밀로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하지만 한 여인이 이 사실을 발설하자 장군은 내가 이곳에 머물 수 없다하며 다른 곳으로 떠나가고 말았다. 장군이 앉아 있던 바위에는 발자국과 도포를 입고 앉아 있던 자리가 지금도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 바위는 해안 면 현리148번지에 잘 관리되고 있으며 구전으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는 장군바위라고 합니다.

    펀치볼 지구 안보관광지
    해안에는 안보관광지가 있는 곳입니다. 년 간 약 150,000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1990년 3월 3일 발견된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 전쟁기념관 통일관이 있습니다. 제4땅굴은 산 밑의 지하 145M 깊이며 폭과 높이가 1,7M이며 총길이는 북쪽 에서 남쪽까지 2052M이고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1028M를 불법 남침을 강행하면서 굴착되었으며 역 갱로는 340M로 우리 군이 독일제 장비로 굴착하였다. 땅굴을 발견하고 우리군이 군견을 앞세워 정찰하던중 800M전방에 북한군이 목함 지뢰 설치한 것을 군견이 밟아 죽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7~8명의 인명 피해를 막았으나 군견은 산하 하였으며 그 뜻을 기르고자 당굴 입구에 컨트라는 군견 동상을 설치 하였습니다.
    을지전망대는 1988년도 전경련 회장단에서 건립되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을지전망대는 해발 1049M 높이에 있으며 이곳에 오르면 북쪽에 있는 금강산과 남쪽에 있는 대암산, 향로봉, 설악산, 해안분지를 한눈에 볼 수 있으 며 북한군들이 농사짓는 모습을 육안 및 만원경을 통해 직접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은 군사 분계선을 가운데 두고 남방한계선 북방한계선을 그어 놓고 같은 동족끼리 철조망을 쳐놓고 총부리를 겨누며 오고가지를 못하고 있는 분단의 현장을 직접 체험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전쟁기념관은 2000년 6월20일 건립하여 양구의 9개 지역 전투상황과 영상물을 볼 수 있으며 전쟁의 유품, 전투장비는 물론 전사자 명단까지 보실 수 있습니다.
    통일관은 1996년 8월 14일 통일부로부터 지원받아 개관 되었고 북한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상을 패널로 통하여 변천 모습 등을 볼 수 있으며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비교분석 할 수 있다. 북한의 생활용품 전시와 남북공동생산 품목등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북한을 알고 이해하며 우리가 대처해 간다면 멀지 않는 장래에 통일은 꼭 이루어지리라 확신합니다. 앞으로 여러분께서 시간이 있으시다면 꼭 안보관광지를 탐방하시기 바랍니다. 출입 절차는 통일관에서 출입확인서를 발급받아야 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참고하세요.

    해안지구 주요 전투 전적지
    양구는 강원도 동북방 최대 격전지로 6,25때 치열하게 전투를 한곳입니다. 양구지구 9개전투를 승리하여 본 지역을 수복하였으며 특히 해안지구 전투로는 도솔산지구 전투 대우산지구 전투 가칠봉지구 전투 펀치볼지구 전투등 양 구 9개 전투 중 4개 전투를 해안에서 감행하였습니다.
    도솔산 지구 전투는 1951년6,4 ~ 6,20(17일간) 실시되었으며 도솔산 일대는 태백산맥 중 가장 험한 산악지대로서 1,000M이상 고지로 중첩되어 있어 미 해병과 탈환을 시도 하였으나 탈환하지 못하고 우리 해병대가 교체되어 환전 탈환한 고지입니다. 당시 이 승만 대통령은 이 고지를 탈환한 해병대에게 무적의 해병대라는 시호를 붙혀 주었다.
    대우산 지구 전투는 1951,7,8 ~ 7,31 (24간일) 실시되었습니다. 도솔산 지구 승리의 여세로 미군, 네널란드, 한국군과 연합하여 대우산을 점령하게 되었다. 대우산 앞으로 연결된 피의 능선지구 전투, 단장의능선 전투에서도 승리하였습니다. 가칠봉 지구 전투는 1951,9,4, ~ 10,14,(40일간) 실시된 전투로 주간에는 우리군이 점령하고 야간에는 북한군이 점령하면서 주인이 6번이 뒤 바뀌는 혈전 끝에 우리군이 점령하였다. 이 마을에 살던 주민들이 가칠봉 전투때 탄약을 지고 올라가 전투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이 전투 승리로 펀치볼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펀치볼지구 전투는 1951,8,31 ~ 9,20.(21일간) 실시된 전투이다 휴전회담이 제기된 이후 전투력을 제 정비한 인민군 제2군단이 펀치볼을 사수코자 하였으나 한, 미 해병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포병 및 근접 항공지원 사격을 지원 받아 3주 동안 치열한 혈전을 벌인 끝에 펀치볼과 주변 고지들을 확보하였다. 펀치볼 지구 전적비를 통일관 우측에 설치하였으며 좌측에는 전쟁기념관를 세워 양구지구 9개 전투사 및 유품등을 전시하고 있으니 시간이 되면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펀치볼 선사유적지
    이 정자각이 세워진 곳이 펀치볼 선사 유적지가 되겠습니다. 구석기 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용하였던 점토대토기, 돌칼, 돌화살, 불탄 주거지, 고인돌이 발견되어 강원도 문화제 자료 제133호로 지정관리 하고 있습니다.

    해안을 지킨 방공자치대
    6,25전쟁당시 1950년 10월 중순경 백골부대가 양구 을 탈환 했다는 연락을 받고 해안면 현리 동네 청년 21명 ( 조환철 오해용 조환주 허봉율 이병은 안영주 김재덕 이광훈 정태식 이광익 김두연 김창환 정재원 홍성철 한석두 우창정 한재호 한재명 남광택 김학태 최봉철) 이 화합하여 반공자치대를 조직후 명주3필을 구입하여 태극기를 만들어 각 가정에 배부하고 태극기 앞에서 북괴군 격침과 해안 치안을 위해 전력투구할 것을 맹세하고 활동하다 북괴군 빨치산대에 5명(조환주 이광훈 김창환 홍성철 최봉철)이 검거되어 지금이 해안 초등학교 앞에서 학살 되었다. 지금도 해안 주민은 확고한 국가관과 안보의식이 타지역 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해안 (매동) 초등학교의 항일교육
    해안지역에 초등학교가 1곳 있읍니다 이 해안초등학교는 1933년도에 매동 심상소학교로 설립되어 80여년 역사를 지닌 학교입니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교사로 근무하던 홍순창이는 학생들에게 민족정신 함양과 올바른 국가관을 뿌리 깊게 심어 주었습니다. 당시 일본 교과서에는 일본 신공 황후가 신라와 백제를 정벌한 후 식민지화 했다고 했는데 이 같은 허위사실을 폭로하면서 올바른 한국사를 교육시켜 왔습니다 이때부터 학생들은 일본인들에 대한 증오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김원섭 교장 후임으로 일본인 구보일랑 교장이 오면서 일본인 배척운동이 더욱 심화 되었고 구보교장이 담당한 시간만 되면 학생들이 잘배우지 않는다하여 퇴장을 시키는 수가 한 두번이 아니 였다고 합니다.
    학생들 간에 일본 배척운동이 싹트고 있을 무렵 매동 심상소학교에서는 실습용으로 닭을 기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닭 한마리가 없어진 것을 찾아보니 구보 교장집 아궁이에서 닭털이 발견되었다. 교장이 잡아먹은 것이 확인되자 학생들이 모여 논의 한 후 백지에 “닭 도적 구보교장한테 배울 것이 없다. 일본인 구보교장은 물러가라”라고 써서 학교게시판에 붙여 놓았다. 구보교장이 이 사실을 노발대발 하면서 경찰서 주재소에 연락하여 주동자인 원 원규가 연행되어 조사 및 고문을 받았으며, 1940년 6회 졸업식 사은회 석상에서 학생들이 조선 노래를 부르자 구보교장이 중지 시킨 일이 일어났다.
    학생들은 격분한 나머지 사은회가 끝난 후 “타도일본 조선독립만세” 라고 칠판에 써놓았다. 홍 순창교사가 학생들을 선동하고 조종한 것으로 알고 홍 교사를 체포하여 혹독한 고문을 받고 1941년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2년의 언도를 받아 복역 받았고 주동학생인 원 원규는 만주로 도끼 하였으며 나머지 10명의 학생들도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와 고문을 당했다. 이 후 해안주민도 독립 운동에 적극 동참하게 되었다.

    황용과 청용에 대한 이야기
    황용은 대암산 1300M 늪지대에서 주변 높은산 과 양구군 해안면, 동면 그리고 인제군 서화면등 3개 지역을 수호 하였으며 청용은 해안면 후리 지역인 해 안 초소 뒷산 늪에서 해안 지역과 호수를 수호하였습니다.
    당시 해안은 해발500M 내 물이 가득찬 호수였다. 해안지역의 기각 변동과 대홍수로 호수가 터져 물이 빠지자 이곳을 물골이라 부르게 되었읍니다. 때마침 황용과 청용은 하늘로 승천하였고 대암산 늪에서 승천한 곳을 용늪 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사람이 죽어 시체를 이 용늪에 수장하게 되면 후손들이 벼슬을 얻어 부귀영화와 무병장수를 한다 하여 남몰래 야밤에 수장한 사례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청용이 승천한 곳을 청용안 이라고 지금도 부르고 있습니다. 이곳은 현재 장기간 토사유출로 늪지대 원형은 잃어가고 있으며 버드나무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청용이 승천한 끝자락이 명당자리라 하여 조선말기에 양구군에서는 이곳에 해안면사무소를 건립하여 일제 말기까지 해안지역의 발전을 도모하였습니다. 해방과 동시 이곳이 북한지역에 편입되었다가 6,25전쟁 이후 우리군에 의해 수복되어 1956년도 주민이 입주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옛 해안면사무소 자리에 군부대 초소가 주둔하고 있어 해안주민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3. DMZ펀치볼둘레길
    DMZ펀치볼둘레길 DMZ펀치볼둘레길 안내도
    작성일
    2024-08-11
    DMZ펀치볼둘레길 안내도
    작성일
    202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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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DMZ펀치볼둘레길
    DMZ펀치볼둘레길 DMZ펀치볼둘레길 탐방예약 및 이용안내
    작성일
    2024-08-11
    DMZ펀치볼둘레길 탐방예약 및 이용안내
    작성일
    2024-08-11

    예약탐방 가이드제
    ‘DMZ펀치볼’ 지역의 특성상 숲길등산지도사를 동반하지 않으면 탐방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민간인 출입통제 지역내에 조성된 숲길로, 미확인 지뢰지역과 인접된 지역으로 안내자의 안내에 따라야 합니다. (안전문제 동의서 작성)

    인터넷 예약 : 숲나들e (https://www.foresttrip.go.kr/main.do)
    전화 문의 : 033-481-8565
    탐방인원 : 1일 2회(오전9시20분, 오후1시 20분),하루 100명만 탐방 허용 (선착순)
    - 오후1시20분 탐방은 오유밭길 코스 중 송가봉길 구간만 가능합니다. (약2시간 30분소요)
    ※ 단체 (20인 이상)는 오전 10:30분까지 출발시간 조정 가능합니다. (먼멧재길 제외)
    - 예약은 탐방 3일전까지 가능하며, 단체는 전화 상담이 우선입니다.
    - 구간별 탐방코스 현지 상황에 따라 단축운영 가능합니다. (먼멧재길 제외-중간탈출로 없음)
    - ‘둘레길 숲밥’은 사정상 20명 이상 시 가능합니다. (일주일전 전화예약 필수)
    → 천혜의 자연에서 자란 농산물로 만든 따뜻한 시골음식을 숲길까지 배달해 드립니다. 숲밥(점심) 1인 10,000원

    탐방예약 : 2인이상 가능합니다.

    탐방출발 시간 : 각 구간별 안내센터에서 오전 9시 20분, 오후 1시 20분 출발 (시간 엄수)
    - 단체 (20인 이상)는 오전 10:30분까지 출발시간 조정가능 (먼멧재길만 9시)출발지 찾아오는길 : 네비주소-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해안서화로 23

    탐방로

    1. 평화의길 : 원점회귀 14.0km (약 5시간 30분 소요)
    안내센터(시작) → 청용안 → 산채군락지 → 와우산 → 월경금지판 → 대형벙커 → 동막동마을 → 정안사 → 안내센터(종료)
    - 군사분계선의 상징물(벙커, 교통호, 월북방지판, 철책 등)을 접하며 평화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와우산 자작나무숲에서 ‘평화의 숲’에 얽힌 전설을 듣는다.

    상시운영 단축코스
    * 벙커길 10㎞/ 4시간
    안내센터~청용안~산채군락지~와우산~월경금지판~대형벙커~사과밭길~동막동마을~안내센터

    2. 오유밭길 : 원점회귀 21.12km (약 7시간 30분 소요)
    안내센터(시작) → 해안재건비 → 동막동마을 → 지뢰밭길 → 상상바위 → 구도로(쉼터) → 부부소나무 → 송가봉 → 성황당(쉼터) → 야생화공원 → 형제나무 → 안내센터(종료)
    - 천연기념보호구역이자 산림유전자원보호림 내의 다양한 식생과 천연기념물인 217호 산양 등 야생동물의 흔적을 탐방하고, 해안분지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볼 수 있다.

    상시운영 단축코스
    * 도솔숲길 9.2㎞/ 4시간
    해안야생화공원~구도로(쉼터)~부부소나무~옛작전로~이룡폭포~성황당~DMZ자생식물원~해안야생화공원
    * 송가봉길(13:20) 4.0㎞/ 2시간
    DMZ자생식물원~지뢰지대~송가봉쉼터~옛작전로~대암계곡~너래바위~만대저수지~DMZ자생식물원

    3. ​만대벌판길 : 원점회귀 21.9km (약 7시간 30분 소요)
    안내센터(시작) → 구시장 → 귀롱삼거리 → 만대2교 → 냉장쉼터 → DMZ자생식물원 → 성황당(쉼터) → 먼멧재분기점 → 쌍솔 → 귀롱삼거리 → 안내센터(종료)
    - 성황당을 지키는 졸참나무 보호수와 만나고 대암산 자락의 능선과 계곡을 오르락내리락 걸으면서 소나무조림지 아래로 펼쳐진 만대평야의 탁트인 경관을 감상한다.

    상시운영 단축코스
    * 만대숲길(09:20) 편도9.6㎞/ 4시간
    DMZ자생식물원~너래바위~옹달샘~돌배나무쉼터~분기점~오송쉼터~쌍솔~샘터~지뢰밭길~물골교(공원)

    4. 먼멧재길 : 원점회귀 16.2km (약 6시간 소요)
    안내센터(시작) → 구시장 → 귀롱삼거리 → 먼멧재분기점 → 전차방호벽 → 먼멧재봉 → 군헬기장 → 서화옛길 → 지뢰지대 → 물골교 → 안내센터(종료)
    - 후리 자작나무숲을 지나 DMZ 특색인 지뢰밭 길을 통과하여 대암산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금강산, 무산, 운봉, 스탈린고지 등 지금은 갈 수 없는 북녘산하와 남쪽의 설악산, 점봉산, 향로봉 등 산봉우리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상시운영 단축코스
    * 먼멧재길(09:20) 13㎞/ 4시간 50분
    물골교(공원)~지뢰밭길~쌍솔~분기점~전차방호벽~먼멧재봉~軍헬기장~옛막사~정자각(쉼터)~물골교(공원)

    우리 강산 우리 자연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하여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농작물을 절대 손대지 맙시다.
    2. 수고하시는 농민께 먼저 인사합시다.
    3. 인화물질을 소지하지 맙시다.
    4. 음식물 반입을 하지 맙시다.
    5. 쓰레기를 무단투기하지 말고 되가져 가기
    6. 지정된 숲길 외 다른 길로 가지 맙시다. (지뢰위험)
    7. 숲길을 걸으며 자연을 회손하지 말고 보호 합시다.
    8. 길 걷기 전.후에 가벼운 준비운동을 하십시요.
    9. 안내자의 말에 적극 협조 합시다.

  5. 한반도섬
    한반도섬 양구 한반도섬은 파로호 상류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습지
    작성일
    2024-08-11
    양구 한반도섬은 파로호 상류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습지
    작성일
    202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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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의 배꼽이라고 불리는 국토 정중앙 양구에 떠 있는 한반도 섬이라니 완벽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일단 한반도섬에 들어가기 전에 온전한 한반도섬의 모습을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호수 반대편 동수리 쪽에 위치한 한반도섬 전망대에 들러 전체적인 섬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전망대에 도착해서 계단을 조금만 오르면 파로호와 한반도섬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전망대에 망원경이 있는데 망원경으로 바라보면 한반도 지형이 조금 더 정확하게 보인다. 하지만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전체적인 풍경을 직접 눈으로 담아보는 것을 꼭 추천한다. 한반도 모양의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과 호수와 푸르른 숲을 눈에 담을 기회가 드문 요즘 눈은 물론 마음까지 탁 트이게 하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섬으로 들어가는 방법 중 하나는 짚라인이다. 무려 65m높이의 타워에서 750m 정도를 짚라인을 타고 이동할 수 있다. 조금 짧은 거리일 수도 있지만 아주 잠시 발아래 호수를 두고 바람을 가르며 양구의 공기를 시원하게 느낄 수 있다. 재미있는 경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경험해보는 것을 권한다. 타기 전에는 두려움과 두근거림을 느꼈다면 짚라인이 끝날 때쯤엔 750m가 조금 짧게 느껴질 정도로 아쉽기도 하다. 주의해야 할 것은 짚라인은 겨울철 운행을 중단한다고 하니 이용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짚라인으로 스릴을 만끽했다면 이제 한반도섬으로 내려가볼 차례이다. 한반도섬을 향해 시원하게 뻗어있는 나무데크길을 따라 걸어들어가면 물 위를 걷는듯한 느낌이 든다. 양구는 사계절 중 어느 계절에 방문해도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곳이지만 파로호와 한반도섬을 방문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을 하나 꼽자면 꼭 가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는 바로 하늘과 호수의 조화 때문이다. 가을이 주는 특유의 시원함과 맑은 하늘 그리고 그 하늘을 비추는 파로호의 푸름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호수의 잔잔함이 마치 거울에 하늘과 산을 비춘 듯 수평선을 중심에 두고 대칭을 이루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정말 “푸르름이 쏟아진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하늘도 호수도 공기마저 파란 느낌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봤으면 한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이 풍경을 눈에 담은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뚫리고 머리마저 맑아지는 듯하다. 이곳에는 고민과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두고 온전히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또 하나의 장관은 해질녘 바라보는 호수에 비친 노을이다. 공기마저 가라앉은 시간의 고요함과 서서히 저물어가는 해가 만들어내는 흉내 낼 수 없는 조명이 장관을 만들어낸다. 호수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것,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향기가 나는듯하다. 날씨가, 풍경이 사람을 설레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이해되는 곳이다. 저녁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특권이 한 가지 더 있는데 호수 중앙에 있는 음악 분수 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5월에서 10월 매주 금, 토, 일요일 오후 8시에 음악 분수 쇼가 시작된다. 조금 일찍 도착해 파로호의 잔잔함을 느끼며 걷다가 해가 모두 지면 음악 분수 쇼가 주는 조금은 상반된 활기찬 풍경을 보며 한반도섬의 다양한 매력을 모두 느껴보길 바란다.

    나무데크길을 따라 걸으면서 한반도섬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태극기가 꽂혀있는 섬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게 독도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옆에 울릉도도 찾을 수 있다. 한반도섬과 동해에 떠있는 독도의 디테일을 보고 감탄하면서도 사실 한반도 옆에 당연히 독도와 울릉도가 자리 잡고 있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본격적으로 한반도섬 안으로 들어왔다면 이제 정말 '한라에서 백두까지' 느껴볼 차례이다. 어디에서 시작할지는 본인이 원하는 곳을 둘러보며 정하면 된다. 독도 울릉도를 지나 동해안 쪽으로 들어갔다면 일단 우리가 가보지 못한 곳 북쪽의 땅으로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북쪽으로 가다 보면 '어디쯤이 평양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걸어보지 못한 북한의 땅을 상상하고 언젠가 진짜로 그곳에 닿기를 희망해본다. 그렇게 산책하듯 걷다 보면 어느새 백두산에 도착해있을 것이다. 꿈에라도 가보고 싶었던 백두산을 몇 걸음 만에 올라가 볼 수 있다. 백두산 종주를 완료했다면 이제 남쪽으로 내려가 볼 차례이다.

    고요한 파로호를 바다라고 생각하고 길을 따라 심어져 있는 나무를 숲이라고 생각하며 걸어보자. 이제 지리산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지리산도 몇 걸음 만에 정복하는 재미가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제주도로 떠날 차례이다. 배나 비행기는 없지만 튼튼한 두 다리로 다리를 건너면 금세 제주도에 도착한다. 제주도의 입구에서는 마치 이곳이 정말 제주도인 것처럼 돌하르방이 반겨준다. 제주도 전통 돌담과 대문 등 지역의 특징을 정말 잘 담아냈다. 제주도의 랜드마크인 한라산이 가운데 우뚝 솟아있고 백록담까지 볼 수 있다.

  6. 양구수목원
    양구수목원 양구수목원 소개
    작성일
    2024-08-11
    양구수목원 소개
    작성일
    2024-08-11

    양구수목원은 도내 6번째 공립 수목원으로 등록되어 1000여 종의 나무와 식물을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양구군 대암산 자락에 위치한 양구 수목원은 2004년 생태 식물원 조성을 시작으로 DMZ야생동물생태관, DMZ야생화분재원, 목재문화체험관 그리고 DMZ무장애나눔길과 생태 탐방로가 한군데 어우러진 자연 중심의 수목원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 생태가 잘 보존된 해발 450m 자락에서 자연 생태를 오감으로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숲 키움터는 멸종 위기 식물 보전원, 증식시설, 유리온실 이야기꽃 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꽃들과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 등 다양한 주제별로 꽃을 관람할 수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을 보고 있으면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곳에 위치한 온실에서는 국내 다양한 분재와 어우러진 지피식물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예로부터 전해지는 전설이나 이름이 명명된 사연 등 꽃에 얽혀있는 이야기를 둘러보며 꽃을 감상할 수도 있다.

    숲 놀이터는 식물원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내부를 걷다 보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종종 눈에 띈다.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얕은 계곡과 우주를 표현한 놀이터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소풍 온 듯한 느낌을 즐길 수 있는 느티나무 그늘의 넓은 뜰도 조성되어 있다. 우주를 콘셉트로 한 놀이터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외계 캐릭터와 태양계를 표현해낸 달, 우주선 등의 포토존과 별자리 등을 설치해 아이들이 즐기면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다. 걷기만 하는 것을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잠시 놀이터에 들러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다. 우주 속에서 열심히 뛰었다면 이제 잠시 땀을 식힐 시간이다. 버섯 조형물들로 꾸며진 피크닉 광장에는 대암산 계곡물이 얕게 흐르며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즐기며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마지막으로 고목과 곤충으로 꾸며진 연못 분수와 노천극장에서는 마치 동화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연못에 동전을 던져 행운을 기원하는 추억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들 모두가 만족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숲 배움터는 대암산의 생태를 가까이 보면서 숲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대암산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를 심어 사람의 힘을 최소화하여 스스로 번식할 수 있도록 생태공간을 조성해두었다. 이곳에는 파종되어 싹이 자라는 모습부터 결실까지 야생화의 생을 자세히 관찰하며 배워볼 수 있다. 식물도 동물처럼 태어나고 자라고 번식한다는 것을 가까이 보면서 배우기 좋은 곳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생명의 귀중함과 신비로움을 느껴보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넓게 펼쳐진 야생화 정원에서 탁 트인 하늘과 골고루 피어있는 야생화를 보고 있자면 머릿속까지 시원한 맑은 바람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다. 야생화 정원을 벗어나 이번엔 조금 로맨틱한 곳으로 걸어보자. 화려한 꽃과 진한 향기의 구절초, 백리향 등으로 꾸며진 로맨틱 정원은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꽃향기에 취하기 좋다. 그윽한 꽃향기가 주변의 공기마저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숲속 산책길을 따라 계절마다 다르게 피는 노루귀, 금강초롱, 바람꽃 등의 신비스러운 꽃들을 감상하며 나만의 정원에 온 듯 수목원을 거닐어볼 수 있다. 물 위에 떠있는 데크길을 걸을 때는 습지식물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수목원 내에는 야생동물생태관 분재원 등을 잇는 산책로가 있는데 관람객들이 가볍게 걸으며 지루하지 않게 나무다리와 데크 쉼터를 조성해 두었다. 곳곳에는 산책코스별 안내판과 포토존 표지판이 잘 설치되어 있어 사실 해설가가 없어도 충분히 수목원을 둘러보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양구 수목원을 조금 더 깊숙이 즐겨보고 싶다면 수목원에서 운영 중인 숲해설을 이용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수목원 내 위치한 숲해설가 사무실 앞에는 내리쬐는 햇볕을 피할 수 있는 밀짚모자도 대여해 준다.

  7. 햇살마을
    햇살마을 햇살마을 소개
    작성일
    2024-08-10
    햇살마을 소개
    작성일
    2024-08-10

    햇살마을 태양광발전소
    남전1리 햇살마을은 마을단위로는 국내 최초로 2006년 태양광발전소 사업계획을 수립, 2008년 9월 30일 고정식 200kw, 추적식 100kw 등 300kw를 준공하였고, 2차, 3차에 거쳐 총 설비용량 528kw를 설치하였으며, 전국 각 처에서 선진지 견학을 하는 선도 마을로서의 위상을 갖추었다.

    햇살마을 만병초농원
    남전1리 햇살마을은 만병초를 2010년에 구입하여 현재까지 적합한 산지에 복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만병초가 우리나라에는 태백산, 울릉도, 지리산, 설악산, 백두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 천연 분포하고 있으며, 백두산에는 노랑만병초가, 울릉도에는 홍만병초가 있다. 만병초에서 추출한 성분은 백납(피부에 흰반점이 생겨서 점점 번지는 병), 무좀, 습진 등에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어 남전1리 햇살마을은 남전1리 햇살마을은 (유)햇살마을이라는 사회적기업을 설립하여 비누, 샴푸, 스킨, 핸드크림, 등 10여종의 화장품을 생산하고 있다.

    햇살마을 자작나무숲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1974년부터 1995년까지 138ha에 자작나무 690,000본을 조림하여 관리하고 있고, 그 중 25ha를 유아숲체험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자작나무 숲의 탐방은 입구에서 입산기록 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다. 자작나무 숲만이 간직한 생태적, 심미적, 교육적 가치를 발굴하여 제공하고자 마련된 곳이다.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성분은 아토피 및 미백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다하여 사회적 기업에서는 마스크팩을 출시 판매하고 있다.

    햇살마을 구상나무숲
    온난화로 멸종위기에 놓인 한국 특산종인 구상나무를 남전1리 햇살마을은 2011년부터 마을 자체적으로 구상나무를 심어 생육하는데 적지임을 확인하였으며, 이후 인제군과 인제국유림관리소의 협조를 얻어 박달고지(박달고치)를 오르는 임도변 약 3km구간에 가로수와 같은 형태로 식재하였으며, 인제국유림에서 약 5ha에 구상나무군락지를 조성하였고,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식재할 방침이 서 있으며, 특히 구상나무에서 추출한 성분은 아토피와 여드름에도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어 비누, 샴푸, 스킨, 핸드크림, 등 10여종의 화장품을 생산하고 있다.

    햇살마을 턱거리폭포
    남면 남전1리에서 동쪽 냇물(남박골천)을 따라 5킬로미터쯤 올라가면 동아실 팻말에서 500m에 위치하고 있으며 턱거리폭포 아래는 명주실 한 꾸러미를 다 풀어도 끝이 닫지 않으리만치 깊었다 하며, 어느날 농부가 송아지를 폭포근처 나무에 묶어 두고 밭에 다녀와 보니 송아지는 온데간데없고 목줄만 남아있어 폭포아래 깊은 곳에 있는 이묵이가 잡아갔다하여 폭포아래 이묵이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현재는 물놀이객들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물높이를 얕게 메워놓았다.

    햇살마을 쉼터(정자)
    햇살마을에는 마을에서 직접 만들어 놓은 6동의 정자가 있으며, 각 정자는 1년 연중 개방을 하고 있으며, 시설물을 마을에서 관리하는 만큼 미리 예약을 하고 쓰레기를 되 가져가는 조건으로 대여하고 있다. 단,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므로 정자 내에는 텐트 또는 이와 유사한 시설을 설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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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장신유원지캠핑장 장신유원지캠핑장 배치도
    작성일
    2024-08-10
    장신유원지캠핑장 배치도
    작성일
    20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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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소똥령마을
    소똥령마을 소똥령마을 안내도
    작성일
    2024-08-10
    소똥령마을 안내도
    작성일
    20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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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금풀애마을
    금풀애마을 금풀애마을 소개
    작성일
    2024-08-10
    금풀애마을 소개
    작성일
    2024-08-10

    은어와 산천어 노니는, 자연이 숨쉬는 마을
    원일전리 금풀애마을은 연어가 올라오는 남대천 상류지역으로 맑은 물에 은어와 산천어가 노니는 자연이 숨쉬는 마을입니다.

    계곡물놀이와 다양한 산촌체험 자연 속 즐거운 체험
    마을 앞 계곡에서 여름 물놀이는 물론, 봄철 다양한 나물과 산야초로 효소와 장아찌를 담그는 산촌마을의 정취, 천년의 향 양양 송이가 나는 마을로 사계절 자연 속 체험이 있는 즐거운 산촌마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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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황토 기와집 숙박시설 & 체험관
    금풀애체험관, 녹색체험관, 산림체험관 등 전통 기와와 황토로 지은 숙박 및 체험 시설을 갖춰 사계절 자연 속 여유와 휴식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정자, 운동시설 등 이용시설
    정자와 운동시설, 어린이를 위한 놀이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어 남녀노소 누구가 즐거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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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디운동장, 족구장, 야외 캠프화이어장 등 단체활동시설
    산촌마을 풍경이 정겨운 잔디운동장을 비롯, 족구장, 야외 캠프화이어장이 등의 시설이 있어 가족모임, 동호호, 직장수련회, 학교 체험캠프 등 다양한 단체활동을 하실 수 있습니다.

    숙박 + 체험 + 물놀이 + 야외스포츠활동 + 캠프화이어 등
    숙박은 기본, 다양한 산촌체험과 물놀이, 야외 스포츠 활동 및 캠프화이어 등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족모임, 동호회소모임, 학교 및 직장 단체 수련활동에 편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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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금풀애마을
    금풀애마을 금풀애마을 부대시설
    작성일
    2024-08-10
    금풀애마을 부대시설
    작성일
    2024-08-10

    원일전리 금풀애마을 체험 단지 내에는 숙박시설 외에도 다양한 이용 시설이 마련되어, 물놀이, 스포츠 활동, 야외 수련 등을 즐겨보실 수 있습니다.

    잔디운동장 & 족구장
    원일전리 금풀애마을 체험 단지 내 숙박시설 바로 앞에 잔디운동장과 족구장이 있습니다. 축구, 족구, 베디민턴,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 및 야외 활동을 하실 수 있습니다.
    ※ 유료 이용 시설로, 사전 이용 문의 및 예약을 하셔야 사용 가능하십니다.
    ※ 운동장 시설은 숙박요금과 별도 요금을 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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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관 앞 물놀이계곡
    체험시설 바로 앞에는 계곡이 흘러 여름 물놀이와 천렵을 하기 좋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수심이 얕은 물놀이 시설도 별도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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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외 캠프화이어장
    계곡 바로 옆에 야외 캠프화이어장이 있어, 단체 수련 및 캠프화이어 활동을 하실 수 있습니다.
    ※ 사전 이용문의 및 신청을 해주셔야 이용 가능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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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외 공연장
    야외공연장이 있어, 단체 수련 및 단체공연을 하실 수 있습니다.
    ※ 사전 이용문의 및 신청을 해주셔야 이용 가능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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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자
    숙박시설 앞에 정자가 있어 여름밤 이곳에 앉아 감자와 옥수수를 삶아 드시며 도란 도란 이야기 나누며 산촌마을의 별빛도 감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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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나무쉼터
    등나무 쉼터에서 산골마을의 정취를 느껴보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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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시설
    아침, 저녁 식사 후 잠시 몸풀이 운동 어떠세요. 간단한 운동시설들이 있으니 이용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놀이시설
    가족단위 혹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어린이 손님들을 위해 놀이시설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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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샘재골송이마을
    샘재골송이마을 샘재골송이마을 소개
    작성일
    2024-08-10
    샘재골송이마을 소개
    작성일
    2024-08-10

    상광정리 역사
    고대(古代)에 여진과 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하여 광정진을 설치
    상광정리(上光丁里)는 현북면 중심지며 면사무소와 보통학교가 이곳에 설치되었으며 최초에는 광정진(廣丁鎭)이였던 것이 인구의 증가로 상·중·하리로분할하여 상중하 광정리(光丁里)로 개칭되었습니다.
    광정진(廣丁鎭)의 유래는 지금의 중광정리와 본동 경계지인 잣골뒷산 능선에 고대(古代)에 여진과 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하여 광정진을 설치하였으므로 광정진이였습니다. 지금도 진(鎭)의 성지(城址)석축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명지리에서 흐르는 하수와 대치리에서 흐르는 하천이 이곳에 합류하여 광정천을 이루고 있습니다. [양양문화원 자료 제공]
    상광정리 마을 북쪽에 있는 산으로 한자로는 천치산, 우리말로는 샘재산이라고 합니다. 앞에 있는 산이 800 고진데 샘젯산인데, 왜 샘젯산이라 부르냐면 전에 꼭대기에 샘이 나서 그러는데 지도엔 천치산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 산엔 전설이 있는데 샘젯산에서 약 4km 꺾어진 곳에 가면 여운포가 있는데 거기서 3km 정도에 용네미란 곳이 있는데 전에 큰 연못이 있었다고합니다. 그 연못에서 용마가 나와서 그곳을 넘어 다녔다고 해서 용네미라고 합니다. 왜 넘어다녔냐면 옛날에 장사가 있으면 반드시 용마가 따른다고 했는데 장사가 나와도 용마는 나오지 않았다고합니다.
    용마를 기다리다가 목이 타 물을 마시면서 왼팔을 돌에 놓고 무릎을 끓고 앉았는데 그 자리에 그 자국이 남았다고 합니다.
    바위가 있었는데 전엔 그 바위를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산에서 굴려서 지금은 그 바위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용마가 나오지 않아 찾아 나섰지만 찾지 못하고 그 장수를 기다리면서 연못을 넘어 다녀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 용마가 용네미를 넘어 다니다가 장수가 없으니까 도망쳤고. 용네미에서 한 1km 정도 가면 용골이란 곳이 있는데 그곳 마을 사람들이 용마를 잡기 위해 고리를 만들어 거기다 놓았다고 해서 용고리(용골)이라 합니다. 그 후 용도 행방을 알수 없게 되었습니다. 연못에도 누룩바위란 곳에 그곳에서 장수와 용마가 만나려 했지만 만나지 못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연안 김씨 정려문(延安金氏 旌閭門)
    연안 김씨는 조선 순조 15년(1815) 4월15일 세종조 형조판서를 지낸 문 정공(文靖公) 김자지(金自知)의 후손인 김총수(金總壽)의 딸로 출생하여 출가 후 예의 범절에 어긋남이 없이 말을 삼가고 행동을 단정히 하여 효부의 칭송을 받던 중 남편 오씨가 인후병으로 병석에 눕게되자 백방으로 영약을 구해다 먹였으나 백약이 무효하였다.
    임종에 이르러 김씨는 황급히 단지 주혈(注血)하여 잠시 회생케 하였으나 김씨의 애쓴 보람도 없이 남편은 1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눈 속에서 남편의 상(喪)을 당한 김씨는 예(禮)를 다하여 장례를 치르고 22세의 꽃다운 나이로 청상수절(靑孀守節)할 것을 결심하고 시부모님에게 효성을 다하다가 62세의 나이로 한 많은 세상을 끝마쳤다.
    이 사실이 고종임금에게 주달(奏達)되어 고종임금으로부터 광무 10년 6월 20일 열녀정문(烈女旌門)을 하사받게 된 것이며, 속수삼강록(續修三綱錄)이라는 책을 만들어 이를 등재(登載)하여 후세에 귀감이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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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명지리앵두마을
    명지리앵두마을 명지리앵두마을 소개
    작성일
    2024-08-10
    명지리앵두마을 소개
    작성일
    2024-08-10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명지리 앵두마을 밭농사와 논농사를 주로하는 농촌지역입니다. 옛날 마을 가운데 큰 연못이 있었는데 수심이 깊은데도 노는 물고기를 헤아릴수 있을 만큼 물이 맑았다 하여 명지리라 칭하였다고 합니다. 광정천을 중심으로 골짜기마다 자연마을이 20여개 정도 형성되어 있으며, 자연마을 마다 주민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정겨운 지명과 유래가 아직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절골 : 옛절터가 있어서 절골이라고 합니다.
    도둑골 : 절골 윗골 이름입니다.
    옹기점말 : 옹기를 굽던 곳을 옹기점말이라고 하며, 보쿠골의 북쪽마을 이름입니다
    보쿠골 : 옹기점말 남쪽 입구골이 보쿠골 입니다. 이 곳에 15m 정도의 높은 암벽에 고을물이 떨어지는 폭포가 있습니다. 보쿠는 폭포를 말합니다.
    품우골 : 지소 남쪽골 이름입니다. 이 골 안쪽에 금계포란지형 묘가 있어서 명칭하는데 품우골이라고도 합니다.
    안골 : 동 중간 마을에서 서북쪽 장리쪽으로 가는 골이름입니다.
    소매골 : 안골 서쪽골로서 명질에서 이 골에 초원(草原)이 제일 좋아 소를 방목하였다하여 이름하였습니다.
    동짱골 : 이 부근에 양양 임천 노씨가문의 석장군이 있었는데 죽은 후 이 곳에다 묘를 썼다는데서 동짱골이라 합니다.
    물맞이골 : 강릉김씨 논골 맞은편의 골 안벽상에서 떨어지는 물에 삼복더위에 물을 맞는 곳이 있어 물맞이골이라 합니다.
    납다골 : 어성전리로 가는 서낭당 밑 남뽁의 골이름입니다. 어성전리로 넘어가는 길목이 낮다하여 이 골을 납다골이라 부릅니다. 예전에 토호가 살면서 이 부근 농민들에게 곡식을 거두어 드렸다는 연유로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서낭댕이 : 명지리와 어성전리 경계가 되는 산 허리에 숭산관행 으로서 돌을 갖다 놓고 기도하고 지나가는 곳인데 이 곳을 서낭댕이라 합니다. 성황당을 서낭댕이라 합니다.

  14. 설악산오색마을
    설악산오색마을 설악산오색마을 안내도
    작성일
    2024-08-10
    설악산오색마을 안내도
    작성일
    20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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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수동고을
    수동고을 수동고을센터
    작성일
    2024-08-10
    수동고을센터
    작성일
    2024-08-10

    수동고을센터는 대회의실 및 소회의실, 식당, 주차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워크샵 장소로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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