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은 골이 깊고 물이 맑아 넓고 기름진 옥토를 이루고, 산자수명한 자연은 충절과 예향과 근면 성실한 품성을 길러 일찍이 복숭아 등 각종 과수묘목 100여가지 품종과 60여종의 조경수, 그리고 다양한 묘목을 생산 육묘하는 전국 제일의 묘목마을로 우뚝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연간 수백만주가 생산되는 각종 묘목은 농가 소득을 안정적으로 증대시켜 풍요로움과 넉넉한 인심을 실천하고 자랑할 수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변모하였고, 산불로 많은 피해를 입혔던 동해안 지역에 묘목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한편, 북한에도 묘목과 선진화된 육묘 기술 그리고 육림도구 등을 지원하여 줌으로서 따뜻한 동포애를 불러일으킨 바도 있습니다.
우리 이원묘목 생산자 일동은 끊임없는 연구와 연찬으로 신품종을 개발하고 우량품목을 안정적으로 생산 보급하면서, 유통구조를 과감히 혁신하여 전국의 과수농가는 물론이고 모든 국민에게 신뢰를 받도록 지혜와 역량을 모우고 있습니다.
우리 이원묘목마을에서는 지난해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내년 초 현대화된 묘목유통센터를 건립함으로써, 생산자는 규격화된 우량 묘목을 보다 체계적으로 공급하고 구매자는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묘목을 구입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여 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명실상부한 묘목의 고장으로 거듭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이원면은 본래 신라 초에는 소리산현(所利山縣)이라 부르다가, 경덕왕 16년 757년에는 이산현(利山縣)이라 고쳐 부르고, 현재의 옥천인 관성군에 소속케 되었다.
고려 현정 9년인 1018년에 경상도 성산부에 소속 시켰다가 충선왕 5년 1313년에는 옥주에 소속되었다. 조선 태종 3년인 1413년 지방행정제도 일제 개편 때에 이산현이 없어지고 이남면(利南面)과 이내면(利內面)으로 분할되었다.
1739년 『여지도서』의 기록에 보면 이내면이라 하여 현리(縣里)·역리(驛里)·칠방리(漆方里)·구룡리(九龍里)·원동리(院洞里)·백지리(白地里)·지동리(地洞里)·우두미리(牛頭尾里) 등 8개 리와 이남면에 평산리·하리·상리·장찬리·건천리·윤동리·개심리·세곡 등 8개 리로 되어 있었다.
1890년 신묘장적(辛卯帳籍)에서는 이내면에 현리·역리·칠방리·구룡리·원동리·백지리·지동리·우두미리·두단동리·지탄리 등 10개리와 이남면에 평산리·하리·상리·장찬리·강청리·건천리·윤동리·개심리·세곡리·소도리·적령리·문평리 등 12개리가 있었다.
고종 32년인 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이산현의 안쪽이 되므로 이내면이라 하여 우산리·지동리·지탄리·백지리·원동리·구룡리·칠방리·현리·현남리 등 9개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군면폐합에 따라 이남일소면의 건천리·강청리 일부와 이남이소면의 하리 일부와 영동군 남일면의 당현리·장동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우산리·지탄리·백지리·원동리·용방리·이원리등 6개리로 개편 관할 하였는데, 1929년 4월 1일 지방행정 구역 변경에 따라, 이남면의 건진리·장찬리·강청리·윤정리·미동리·의평리·지정리·개심리·평계리·수점리등 10개 리를 병합하여 이원의 이름을 따서 이원면이라 고쳐서 16개 리가 되었다.
그 후 1973년 7월 1일 이원면 우산리를 동이면에 편입시킨 후 오늘에 이른다.
위치 및 면적
이원면의 면적은 65.20㎢이며 옥천군의 남부에 위치하였다. 동쪽은 영동군 심천면에, 서는 충남 금산군에, 남은 영동군 양산면에, 북은 옥천읍과 동이면에 접하여 있다.
가구 및 인구
가구수 : 665
인구수 : 2,012
행정구역
충북 옥천군 이원면 이원, 강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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