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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9교구 화엄사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求禮 華嚴寺 塑造四天王像)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求禮 華嚴寺 塑造四天王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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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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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9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求禮 華嚴寺 塑造四天王像)
    국가지정문화유산(보물) 지정 (2023년 10월 26일)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求禮 華嚴寺 塑造四天王像)은 벽암각성(碧巖覺性)과 계특(戒特)대사에 의해 화엄사를 중창하는 과정에 조성한(1632∼1636년 추정) 것으로, 의자에 걸터앉은 모습으로 제작된 의좌형 사천왕상이다. 전체적으로 중량감 넘치는 조형 감각, 사각형의 주름진 큰 얼굴, 넓고 두텁게 표현된 콧방울 등은 17세기 전반기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고대 인도에서는 제석천(帝釋天)이 만물을 창조(創造)한 신(神)이라 하여 존경하였다. 제석천왕은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복(福)을 주고, 악한 짓을 하면 벌(罰)을 주는 등 인간을 다스리고 감독하기 때문에, 그를 도와 주는 신으로 사천왕을 두어서 역할 분담하였다.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사방을 지키고 불법올 수호하는 네 명의 대천왕이다.
    원시경전인 장아함경에는, "사천왕은 그 방위에 따라 각기 자리를 담당하고 정법을 수호하고 마귀의 습격을 방지한다."
    지국천왕은 비파를 들고 있으며 수미산의 동방(동승신주)을 수호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며 나라를 잘 다스리고 지키는 천왕
    증장천왕은 칼을 잡고 있으며 수미산의 남방(남섬부주)을 수호하고 항상 사람을 관찰하고 더욱 길고 넓게 중생의 이익을 많게 해주는 천왕
    광목천왕은 용을 잡고 있으며 수미산의 서방(서구야니주)을 수호하고 위엄으로 나쁜 것을 물리치고 넓고 큰 눈으로 국토를 바르게 지키고 중생을 이익되게 해주는 천왕
    다문천왕은 보천을 들고 있으며 수미산의 북방(북구로주)을 수호하고 재물과 복덕의 부귀를 맡고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고 설법을 많이 들으며 불법을 옹호하는 천왕

    조선 인조 10년(1632) 벽암각성선사께서 중건했으며 1997년 종열스님이 사천왕상을 다른 모습으로 개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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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9교구 화엄사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보물 제2139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보물 제2139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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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량 : 7구(불상 3구, 보살상 4구, 불상대좌 3점 포함)
    지정일 : 2021.10.25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화엄사로 539 (마산면, 화엄사)
    시대 : 1703년(숙종 29)

    각황전에 봉안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예천 학가산에서 화엄사로 온 계파 성능(桂坡 聖能)이 장육전(丈六殿, 지금의 각황전覺皇殿)을 중창한 후 1703년 조성한 대형 왕실발원 불상으로서(평균 높이 약 3.3m), 색난(色難)의 50대 만년작(晩年作)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각황전의 창건과 불상 조성은 화엄사 중창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불사(佛事)로서, 전각명도 왕실로부터 하사받아 이때부터 장육전에서 ‘각황전’으로 변경된 것이다. 또한 불상 조성에 있어 숙종을 비롯해 측근 왕실인사들인 인현왕후, 경종(景宗, 당시는 세자), 숙빈최씨(淑嬪崔氏), 영조(英祖, 당시는 연잉군) 등을 비롯해 여흥민씨, 해주오씨 등 유력가문들도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 18세기 초 최대의 왕실불사였음이 인정된다.

    현재 불상에 재복장된 발원문에 의해 이 7존의 불보살상은 1703년 10월 4일에 조각승 색난(色難)을 중심으로, 충옥(沖玉), 일기(一幾) 등 24명의 조각승이 협업해 만든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석가여래좌상은 색난, 다보여래상과 문수보살상은 충옥, 아미타불상은 일기, 보현보살상은 웅원, 관음보살상은 색난과 추붕, 지적보살상은 추평이 각각 주도하여 조성한 사실을 통해 당시 최고 권위의 왕실발원 불상 조성에 색난이 초빙된 것은 조각승으로서 그의 명성이 대단히 높았음을 입증해 준다.

    화엄사 각황전은 거대한 이층전각의 목조건물로서, 여기에 봉안된 불상 또한 규모에 맞는 웅장함과 형태미로 조성되었다. 주존불인 석가여래삼불좌상은 당당하고 묵직한 형태에 신체에 비해 큰 네모난 얼굴로 압도적이면서도 정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반면 삼불좌상의 좌우에 서 있는 사보살입상은 유사한 얼굴과 비례를 보이면서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묘사하여 대조를 이룬다. 이렇듯 서로 대비되는 여래와 보살의 조형성은 전각 내부를 웅장하고 경건한 분위기로 이끄는 효과를 보이는데 이는 색난의 우수한 감각과 조각기술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각황전 불상은 도상학적으로도 의의가 크다. 석가·다보·아미타여래 삼불상과 석가여래의 좌우협시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다보여래의 협시보살로 지적보살(智積菩薩)이, 아미타여래의 협시보살로 관음보살이 짝을 이룬 도상은 1665년 간행『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에 의거한 ‘법화거불(法華擧佛)’, 즉 법화신앙에 바탕을 둔 불교의식집에 등장하는 도상의 최초 조각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삼존불(三尊佛)․ 사보살상(四菩薩像)을 완성하여 일주일에 걸쳐 경찬대법회(慶讚大法會)를 열었다.

    이처럼 화엄사 삼불사보살상은 40여 년 동안 활동한 조각승 색난의 거의 마지막 시기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그동안 숙련된 기량과 원숙함이 반영된 그의 기념비적인 대작이자, 도상학적으로도 의의가 크다는 점, 수준 높은 조형성과 기술적 완전성을 갖춘 점에서 2021년 10월 25일에 보물로 지정했다.


  3.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9교구 화엄사 화엄사 대웅전 삼신탱화 (보물 1363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화엄사 대웅전 삼신탱화 (보물 1363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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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목 : 보물 1363호
    명칭 : 대웅전삼신불탱
    제작시기 : 조선 영조

    화엄사 대웅전에 보존되어 있는 그림으로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 등 삼신불을 그린 탱화인데,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들어지는 불화를 말한다.
    이 삼신불탱은 3폭으로 되어 있는데, 중앙의 비로자나불탱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노사나불탱, 오른쪽에는 석가모니불탱을 각 한 폭씩 그렸다.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도는 화면 중앙 상단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인 문수·보현보살과 8대보살, 4위의 타방불과 6위의 제불, 사자와 코끼리 탈을 쓴 성중(호계대신(護戒大神), 복덕대신(福德大神))들이 에워싸듯 배치되어 대칭을 이루고 있다. 키 모양의 광배를 가지고 있는 본존불은 결가부좌한 채 앉아 있으며, 지권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귀·눈·입·코 등이 단정하게 표현되어 있고, 무릎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다.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큼직하고 귀는 기다랗고, 다자색 법의의 깃을 따라 연두빛과 분홍빛깔의 보상화무늬가 장식되어 다소나마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보신(報身)인 노사나불도는 두 손을 어깨까지 들어올려 설법하는 모습의 손모양에 보관을 쓴 보살형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8대보살과 사천왕상 2위, 4위의 타방불, 3신장과 4금강이 주위에 빙둘러 배치되어 있다. 단정한 귀·눈·입·코 등에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는 있으나, 둥근 머리광배에 보관을 쓰고 귀걸이·목걸이·팔찌·구슬 장식 등을 화려하게 장식하여 보살형 불상으로서의 꾸밈이 돋보인다.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도는 유난히 몸광배가 큼직한 키형 광배에 악귀를 물리치는 뜻을 가진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하단에는 문수·보현보살을 포함한 6대보살과 함께 2구의 사천왕상을 그리고, 그 위로는 흔히 등장하는 타방불 대신 가섭·아난존자를 비롯한 10대제자 및 4금강과 3신장, 용왕·용녀를 에워싸듯 배치하였다. 이 삼신불탱은 18세기 조계산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겸 스님 외 13명의 화원이 동원되어 그린 뛰어난 작품으로 필선이 섬세하며 녹색을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길이 5m, 폭 2.5m
    증명(證明) : 탁계선사(卓戒禪師)
    편수(片手) : 회밀(回密), 재훈(再訓)
    금어(金魚) : 정인왕사(定仁王師

    길이가 4m를 넘는 거대한 3폭의 화면에 삼신불을 완전히 갖춘 매우 드문 예로, 통도사대광명전삼신불도(보물 제1042호)와 더불어 18세기 삼신불도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삼신탱화는 영조 33년(1757)에 제작되었고 1989년 4월에 종원스님이 탱화보수를 하였다. 2003년 2월 3일 보물 1363호 지정되다.
    2013년 영관 스님이 대웅전 삼신탱화 모사본을 만들기 위해 영인본을 걸고 원본을 반출했다.
    2018년 12월 31일 덕문 주지 스님때 삼신불 탱화 모사본은 오지 않고 원본만 와서 영인본을 때고 원본을 다시 걸었다.
    2019년 3월 27일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탱’ 모사 복원이 되었다. 조선후기 불화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탱(보물 제1363호)을 복원해 재현한 탱화가 오는 4월3일부터 8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전시했다.
    2020년 11월 17일 삼신불 탱화 원본을 때고 묘사본과 삼신불 모습으로 자수로 새긴 복장낭을 걸었다.
    2021년 9월14일 불교중앙박물관는 특별전 ‘화장(華藏) 지리산 대화엄사’를 11월14일까지 개최한다고 했다 화엄사 대웅전 ‘비로자나삼신불회도’는 전시 기간 중 3회에 걸쳐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로비에 전시된다 비로자나불회도는 9월14일~10월3일, 노사나불회도는 10월 5일 ~24일, 석가불회도는 10월26일~11월14일 공개했다.

  4.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9교구 화엄사 화엄사 서오층석탑 사리장엄구 (보물 13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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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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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9
    화엄사 서오층석탑 사리장엄구 (보물 13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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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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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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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목 : 보물 제1348호 명칭 : 서오층석탑사리장엄구(華嚴寺西五層石塔舍利莊嚴具)
    분류 : 유물 / 불교공예/ 사리장치/ 사리장치 수량 : 일괄
    지정일 : 2002.10.19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시대 : 통일신라
    소유자 : 화엄사
    관리자 : 화엄사

    1995년 서오층석탑의 해체보수시 탑 내부에서 발견된 신라시대의 일괄 성보유물로 14종 22점 이다. 백지묵서 다라니경은 고려시대 이전의 서적이나 기록이 거의 전하지 않는 상황에서 당시의 종이 글자체, 문자등 서지학적 또는 불교에 대한 귀중한 자료이며, 탑인은 고대 인쇄사에 있어서 초기 단계를 알게 해주는 국내 유일의 실물자료이다. 청동불상법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불상주조용 틀로 불상의 대량 생산을 알려주는 중요한 성보이다. 이외 성보 유물은 사리장엄법이나 조각양식, 금속공예, 기형과 기법, 청자에 대한인식과 사용, 비녀장식,등 당시 사회를 총체적으로 조명해 볼 수 있어 여러방면의 문화재적인 가치가 크다.

    * 지류뭉치(법신사리)
    * 다라니경 필사본과 탑인이 찍힌 종이
    * 청자양이호 (사리를 담은 바깥용기, 이 속에 서 사리를 담은 녹색 유리병과 청동합, 수 정옥등이 나옴)
    * 청동합(청자양이호안에서 수습된 2점의 청 동합, 한점에는 향으로 보이는 목재편과 신 골(身骨)로 추정되는 작은 편이 다른 한점 에는 다라니로 보이는 폭2cm정도의 작은 두루마리와 신골로 추정되는 파편이 함께 담겨 있었다)
    * 녹색유리사리병 * 소탑(탑 속에 소탑을 봉안하는 것 역시 조 탑공덕과 같다. 목탑 1기와 철탑 2기가 나 옴)
    * 철도(鐵刀)와 금속편 일괄
    * 뒤꽂이(청동제, 남성용 머리 뒤꽂이로서 불 국사 석가탑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다)
    * 불상금형틀(흙으로 불상을 찍어내기 위해 사용한 틀이다)

  5.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9교구 화엄사 화엄사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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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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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9
    화엄사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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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목 : 보물 제1040호 명칭 : 화엄석경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석각류 수량 : 8980점외일괄
    지정일 : 1990.05.21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소유자 : 화엄사
    관리자 : 화엄사

    장육전은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조사가 2층4면7칸의 사방벽에 화엄경(華嚴經)을 돌에 새기고 법당안에 장육황금입불상(丈六黃金立佛像)을 모셨으며, 법당을 짓게 된 연유는 의상스님께서 당나라에서 화엄경을 통달하시고 귀국하여 원효스님과 법담을 나누니 신라국에 없는 화엄경에 대하여 능통하여 사연을 물어본즉, 백제성왕 22년에 구차례(구례)라는 곳에 인도스님이신 연기존사께서 지리산 화엄사를 창건하여 천축적 화엄경을 설법하여 화엄의 꽃이 피워 있었다는 말씀을 듣고서, 화엄사에 와보니 부처님 성지에 온 느낌을 받고, 백두산 혈맥자리 아래에 부처님 나라에서 온 연기존자께서 화엄경을 설한 땅이며 화엄불국세계 화엄사가 화엄의 근본도량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장육전 법당을 세우게 되었다.

    정유재란때 건물이 파괴 되어 지금은 조각만 남아 화엄석경으로만 불리우고 있다.
    ※ 글씨는 신라 명필 김생체 이다.

    계파 스님에 의해 장육전이 각황전으로 다시 중건될 때 화엄석경 파편들을 불전 근처에 정리하여 쌓아 놓은 것을 1938년 각황전 해체 복원후 진응스님의 각고의 노력으로 정리했다. 6.25 동란전후에 전란중에 일제때 분류 포장 되었던 화엄석경 상자들이 노천에 방치된 비운을 맏게 되었는데 석경 파편이 다시 정리된 것은 1961년 9월 8일부터 10월 6일까지 29일에 걸쳐 이루어졌다. 석경편은 14,242점으로 이들을 크기별로 대 중 소로 나누어 163상자로 나누어 각황전 불단 밑에 보관 했는데 많게는 50여자에서 적게는 몇자 미만인것도 있다. 1997년 종열 주지스님이 화엄석경을 영전으로 옮겼으며 2013년 6월 3일 영관 주지스님이 화엄석경을 화엄사 성보박물관 지하 보관실로 옮겼다.

  6.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9교구 화엄사 화엄사 원통전전사자탑 : 사사자 감로탑(보물 3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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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화엄사 원통전전사자탑 : 사사자 감로탑(보물 3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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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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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목 : 보물 300호 명칭 : 화엄사원통전전사자탑(華嚴寺圓通殿前獅子塔)
    분류 : 석탑 수량 : 1기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시대 : 통일신라시대
    소유자 : 화엄사
    관리자 : 화엄사

    화엄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화엄종을 널리 알리던 절로,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승려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화엄사상의 구현을 이루어 왔다. 신라 후기에는 승려 도선(道詵)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고, 고려 문종 때에는 전라도 및 경상도에서 이 절에 매년 곡물을 바치도록 허락해 주어 일주문 밖에 큰 창고를 짓기도 하였다.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7년 만에 여러 건물들을 다시 세웠으며, 이후 여러 번의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탑은 절 안의 원통전 앞에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독특한 석탑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절에서는 보통 노주(露柱)라고 부르는데, 무엇으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며, 불사리를 모셔놓은 것이라 하기도 하고, 불가의 공양대(拱養臺)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탑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 기단(基壇)은 2단으로, 아래층 기단은 무늬없는 석재로 구성된 소박한 모습이다. 이 탑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인 위층 기단은 각 모서리에 사자상을 놓은 모습이다. 사자들은 연꽃받침 위에 앉아 연꽃이 조각된 돌을 머리에 이고 있다. 탑신(塔身)에는 직육면체 모양의 몸돌이 있다. 몸돌의 각 면에는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둘렀으며, 그 안에 신장상(神將像)을 조각하였다. 몸돌 위에는 1장의 판돌이 있는데, 밑면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반구형의 돌이 솟아 있다. 위층 기단을 네 마리의 사자를 이용하여 만든 것은 이곳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을 모방한 것이나, 조각수법은 이에 못미처 이보다 훨씬 뒤인 9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4사자 감로탑은 신라 문무왕17년(677)에 조성한 것이며 4사자의 표정은 인간의 감정인 희노애락(기쁨,성냄,슬픔,즐거움)을 표현한 것으로 사람들의 수많은 번뇌를 뜻하며, 사자의 표현은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의 법문을 사자후(獅子吼) 또는 감로법(甘露法),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석탑은 사람들의 수많은 번뇌를 부처님의 청정한 지혜를 얻게 하여 나고 죽는 윤회에서 벗어나 연화장세계로 이끌어 주는 감미로운 탑이라 할 수 있다. 2007년 2월에 주지 종삼스님이 이끼제거를 하여 탑이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보존공사를 하였고 다시금 2012년 2월에 4사자 감로탑 해체보수및 보존처리공사를 했다.


  7.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9교구 화엄사 화엄사 대웅전(보물 299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화엄사 대웅전(보물 299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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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목 : 보물 299호 명칭 : 화엄사대웅전(華嚴寺大雄殿)
    분류 : 사찰건축 수량 : 1동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화엄사
    관리자 : 화엄사

    화엄사에서 가장 오래된 법당이며 크기는 전면19.5m, 측면12m로서 정면 5칸 ,측면3칸이며 부처님 머리위에 못과 풀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만들어진 우아하고 형태가 일품인 천개(天蓋)가 조각 되어있다.

    법당에는 깨달음의 세계(진리)를 몸으로 삼기 때문에 모양과 빛깔이 따로 없고 오고 가는 곳도 없이 진리 그대로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淸淨法身 毘盧遮那佛)과 열심히 수행하신 공덕으로 복과 덕이 가득하여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는 원만보신 노사나불(圓滿報身 盧舍那佛)과 모든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신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 釋迦牟尼佛)로 목불(木佛)인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은 인조8년(1630)에 벽암(碧巖)스님과 문도에 의하여 중건 되었으며 삼존불상은 인조 10년(1632) 안치하고, 영조 33년(1757) 주지 회심(會心)대사때 처관(處寬),학찬(學贊),섭심(攝心),탁계(卓戒)스님께서 중수 및 삼존불 개금과 함께 후불탱화 삼폭을 완성 했으며, 정조 22년(1798) 화엄사 대웅전 중수를 했다. 1972년 도광스님이 삼존불 개금불사, 1989년 4월에 종원스님이 탱화보수, 1997년에 종열스님이 개금불사, 2000년에는 종걸스님이 법당마루 보수를 했으며, 종삼스님이 2013년 2월에 양쪽 옆문을 교체하였으며, 영관스님이 2014년 1월 28일에 대웅전 신중단 옆으로 불등단(佛燈壇)을 설치했다.

    대웅전 편액은 인조 14년(1636년)에 의창군(義昌君)이 쓴 글씨이다.

  8.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9교구 화엄사 화엄사 서오층 석탑(보물133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화엄사 서오층 석탑(보물133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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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목 : 보물 제133호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 : 1기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화엄사 시대 : 통일신라
    소유자 : 화엄사
    관리자 : 화엄사

    화엄사 대웅전 앞에 동·서로 있는 쌍탑 가운데 서편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동탑이 아무런 조각이 없는 반면 서탑에는 조각과 장식이 가득하다. 형태는 기단(基壇)은 2층이고, 그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워져 있다. 아래층 기단 각 면에는 안상(眼象) 속에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방향에 따라 배치하였고, 윗층 기단은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나뉜 두 면에는 8부신중(八部神衆)을 조각하였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이며 몸돌에는 각 층 모서리에도 기둥모양을 본떠 새겨 두었다.1층 몸돌 4면에는 4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 배치하였다. 지붕돌은 각 층마다 밑면에 5단의 받침을 갖추고 처마밑은 수평이 되게 하였다. 머리장식에는 2층의 단을 둔 받침 위로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놓여 있다. 석탑의 형태는 높고 가파르면서도 상하의 체감비율이라든지, 지붕돌을 경쾌하게 처리한 수법 등이 잘 조화되어 우아한 기품을 지니고 있다. 특히 아래층 기단의 12지신상 조각은 석탑에서 흔하지 않은 예의 하나이다. 위·아래층 기단과 1층 몸돌 세 곳에 나타난 조각상은 그 배치에 보다 신중을 기하였고 특히 12지신·8부중·4천왕 모두 불교의 수호신적 기능을 지닌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탑 안에 모셔진 사리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조각상을 각 부분에 새긴 점이나, 지붕의 조형이 보다 유연한 느낌을 주는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석탑 남쪽으로는 안상과 연꽃이 조각된 배례석이 놓여 있다

    신라말기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께서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조성한 것으로 화엄사의 대가람의 배가 백두산의 혈맥의 웅대한 힘과 섬진강의 태극의 힘에 출렁되니, 부처님 사리를 두탑에 봉안하여 요동함을 막음과 동시에 가람의 원만한 기운이 감돌도록 하였다. 기단 아래 조각형태는 12지신으로 개개인의 사람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은 수호신이고 위 부분의 조각형태는 팔금강(八金剛)과 사천왕(四天王)으로 부처님의 법과 부처님의 제자를 지키고 보호하는 신이며 이 탑을 일명 옹호탑(擁護塔)이라고도 부른다. 2층 기단은 상대의 차별을 없애고 절대 차별이 없는 이치인 불이법(不二法)을 표현한 것이다.

    1995년 8월에 보수중 이 탑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22과를 비롯, 16종 72점의 성보 유물이 나왔다.

  9.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9교구 화엄사 화엄사 동오층석탑(보물 132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화엄사 동오층석탑(보물 132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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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목 : 보물 132호 명칭 : 화엄사 동 오층 석탑(華嚴寺 東 五層 石塔)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화엄사
    제작시기 : 통일 신라 시대(9세기)

    화엄사 대웅전 앞에는 동서로 쌍탑이 서 있다. 그 중에 동쪽에 서있는 것이 이 탑으로 크기는 서로 비슷하지만 서탑이 조각과 장식이 화려한 반면, 동탑은 아무런 장식없이 단정하다. 탑은 1층 기단위로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서탑의 기단이 2층인 것과 조금 다른 모습이다.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본뜬 조각을 두었다. 탑신는 1층 몸돌이 높이에 비해 넓어 안정감이 있다. 또한 각 층 몸돌의 너비가 줄어드는 정도는 큰 것에 비해 높이의 줄어드는 정도가 적어 늘씬해 보인다. 지붕돌은 매우 평평하고 얇은데 몸돌을 따라 너비의 줄어드는 정도가 큰 편이며, 그 중 1층과 2층의 차이가 한층 크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있고, 다시 사잇기둥을 두어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올려져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탑이 2층 기단인데 비해 1층 기단으로 되어 있고, 기단부의 돌구성이 다소 느슨해진 경향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만들어진 시기는 서탑과 비슷한 9세기경으로 짐작된다 .

    신라말기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道詵國師)께서 조성한 것으로 신라, 백제의 양식이 혼합된 탑이다. 부처님의 모든 법이 거짓과 꾸밈이 없고 순수하여 진실 그대로 참된 진리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곧 부처님 도량은 참된 장소요. 세계요. 법계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탑이다. 증명탑,다보탑,다보분좌탑이라고도 한다. 오층은 삼계(욕계,색계,무색계),보살계,불계를 표현하고, 장식과 꾸밈이 없음은 청정한 마음을 표현하며, 단층기단은 일승법을 뜻하니 이 탑의 사상은 부처님과 보살님과 사람들의 성품은 둥글고 원만하여 차별이 없고 꾸밈이 없으며 평등한 마음의 세계가 곧 화엄세계요, 연화장세계라는 것을 증명하는 탑이다.

    1999년 10월에 보수중 이 탑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8과를 비롯, 330여점의 성보 유물이 나왔다.

  10.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9교구 화엄사 화엄사 구층암석등(전남유형문화재 제132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화엄사 구층암석등(전남유형문화재 제132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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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화엄사 구층암석등
    종목 : 전남유형문화재 제132호
    지정연도 : 1986년 2월 7일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크기 : 높이 2.43m
    분류: 석등

    구층암 석등은 1986년 2월 7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탑의 높이는 2.43m이며 하대석(下臺石)과 간석(竿石), 상대석(上臺石), 화사석 (火舍石), 옥개석(屋蓋石) 및 상륜(相輪)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하대는 팔각(八角)으로 되어 있으며 각 면에 안상(眼象)을 조각하고 복련대 (覆蓮臺)까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상대석에는 8장의 꽃잎으로 된 연꽃 장식 이 있고 아랫면에는 일 단의 받침이 있다. 팔각형의 화사석은 네 면에 화창(火 窓)이 있다.옥개석은 기와를 쌓아 올린 듯한 모양의 동마루와 귀끝 부분이 거꾸 로 되어 있으며, 아랫면에 두 줄의 홈을 둘렀다. 안상과 연화무늬 등 각부 양식 과 수법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꽃의 8잎은 8정도[정견(正見)정념(正念),정정진(正精進), 정명(正命), 정업(正業), 정어(正語),정정진(正思惟), 정정(正定)], 4개의 화창(火窓)은 사성제(四聖諦)의 고집멸도(苦集滅道)와 부처님의 광명, 즉 팔정도로 수행하여 사성제의진리의 이치를 밝히고 광명을 놓으시며 마음의 등불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의 세계를 밝혀 주시는 부처님의 참다운 말씀을 엿볼 수 있는 석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