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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내장사 내장사 동종 (전라북도의 유형문화재 제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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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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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내장사 동종 (전라북도의 유형문화재 제49호)-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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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총 높이 80cm, 몸체 길이 60cm, 입 지름 50cm로, 소형이나 명문이 확실한 조선 후기 범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입 주변에는 한개의 덩굴무늬 띠를 둘렀으며, 어깨 부위에는 덩굴무늬 띠와 물결무늬 띠가 잇대어 배열되어 있다. 어깨 아래로는 2줄로 만든 작은 원 안에 범자를 도들새김 하였으며, 24개의 원을 배열하여 문양을 만들었다. 몸체 중앙에는 정사각형의 유곽을 4개 두고 안에는 9개의 유두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유곽을 만든 띠는 덩굴무늬로 채웠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상을 양각하였다. 몸체의 맨 윗부분에는 꽃을 세워 장식한 듯한 문양이 있다.
이 동종은 내장사가 중건되자 전남 보림사에서 옮겨 왔는데, 일제시대 후기에 원적암에 은닉하였고, 한국전쟁 때 정읍시내 포교당에 피난시켜 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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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내장사 굴거리나무 군락(천연기념물 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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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굴거리나무 군락(천연기념물 91호)-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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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굴거리나무는 난대의 특징 수종으로 내장산의 굴거리나무 군락지는 1962년 12월에 천연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었다.
굴거리나무는 제주도와 울릉도 그리고 남부의 도서지방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내장산의 굴거리나무 군락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이유는 이곳이 굴거리나무가 자생할 수 있는 북쪽 한계 지역이기 때문이다.
굴거리나무는 상록활엽교목이다. 늘 푸르고 넓은 잎을 가진 나무라는 뜻이다. 원래는 대극과(大戟科)에 속했던 나무이지만 최근에 굴거리나무과로 독립해 새 살림을 차렸다고 한다. 한자어로는 한국, 중국, 일본 모두 교양목(交讓木)이라고 부른다.
교양이 있는 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새잎이 난 뒤에 지난해의 잎이 떨어져 나간다는, 즉 자리를 물려주고 떠난다는 것 때문이라고 한다. 굴거리나무의 잎은 약으로 쓰이는 만병초와 닮았다. 그래서 만병초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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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내장사 정읍내장산 단풍나무(천연기념물 5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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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정읍내장산 단풍나무(천연기념물 563호)-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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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단풍나무 숲이 아닌 단풍나무 한 그루로는 처음 천연기념물이 된 이 단풍나무는 내장사와 용굴 진입로인 조선왕조실록길에서 약 30m 정도 떨어진 산비탈 아래에 자생하고 있다.
나무의 수령(나무의 나이)은 약 290년으로 추정되고, 수고(높이)는 16.87m, 근원직경(밑동 둘레)은 1.13m, 흉고직경(가슴높이 둘레)은 0.94m이다.
너비는 동서 방향 20.32m, 남북 방향은 18.10m로 내장산의 단풍나무 중 가장 규모가 큰 노거수(老巨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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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내장사 내장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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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내장사 소개-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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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아름다운 내장산국립공원의 품안에 안겨 있는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636년)에 영은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한 때는 50여 동의 대가람이 들어섰던 때도 있었지만, 정유재란과 6.25때 모두 소실되고 지금의 절은 대부분 그 후에 중건된 것이다. 선운사,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절이다. 내장산의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가운데에 자리 잡아 주변 경치가 매우 아름다우며, 특히 가을철 단풍이 들 무렵의 절 주변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장사는 1979년 12월 27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面積)은 31,138㎡에 이르며 백제 무왕 37년인 서기 636년에 영은조사가 내장산 내에 오십 동의 큰 절을 세웠다. 그 뒤 고려때 숙종 3년인 서기 1098년에 행안선사가 낡은 건물을 헐고 새로운 것으로 고쳐 이룩하였다고 전해온다.
또한 조선조 명종 22년인 1567년에 희묵대사가 법당과 요사(절에 있는 스님들이 거처하는 집)를 지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확실한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뒤 인조 17년인 1639년에 부용대사가 사우를 짓고 불상을 도금했으며, 정조 3년인 1779년에 영운대사가 대웅전 십왕전을 짓고, 요사를 새로 지었으며 근세에는 백학명선사가 사세를 크게 중흥시키며 어느 때인가 영은사를 내장사로 호칭하게 되었다.
근래에 와서는 1938년 매곡선사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과 요사를 신축하였으나, 6.25사변 때인 1951년 1월 25일에 방화로 전부 타버리고, 1957년에 요사, 1958년에는 대웅전을 다시 지었으며 정부의 국립공원 개발계획에 따라 1973년에 일주문, 1975년에 명부전, 1978년 정혜루를 다시 짓고, 1978년에는 사천왕문을 새로 세웠다. 1979년에는 인도로부터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도 하였다.
영은사에는 문루인 정혜루가 있으니 한창 절의 세력이 가장 번창할 때 세워진 것으로 세조 12년인 1466년에 시작하여 다음 해에 다 지은 세 칸 루각이다. 세조 9년에 전라 관찰사를 지낸 유학자인 성임(중경)은 그의 저서인 [정혜루기]에서 그 규모나 제작이 장려무비하다고 극찬하고 있다.
백양사. 방장산. 장성호. 담양호 등이 주변에 있고 주요 문화재로는 내장사 조선 동종이 보존되어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실상사 실상사 신중도 實相寺 神衆圖 Guardian Deities of Silsang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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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실상사 신중도 實相寺 神衆圖 Guardian Deities of Silsangsa Temple-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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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조선 1752년
면에 색
150.2×113.3
금산사성보박물관
1752년 조성된 실상사 신중도는 화면과 화기가 잘려 도난당할 뻔한 흔적이 남아 있다. 상단에 황색과 녹색의 구름을 표현하고, 합장을 하고 중앙을 향해 있는 제석천과 범천이 자리하였다. 그 양 옆으로 일궁천자와 월궁천자를, 제석천과 범천 사이에는 번과 당을 들고 있는 동자와 동녀를 배치하였다. 그 아래 화면 중앙에는 깃털장식의 투구를 쓴 위태천도 합장을 한 채 서있다. 하단에는 용왕과 무장신들을 배치하였다.
화기에는 건륭乾隆 17년(1752) 극락전에 봉안하였으며 대법당 삼장도와 함께 동시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신중도는 전라남도 무주군에 위치한 북고사北固寺 용화전龍華殿 신중도와 매우 유사한 도상과 구도를 가지고 있다. 이 불화를 그린 회밀廻密은 18세기 중엽 활약한 화승으로 상한작은 1745년 <나주 다보사多寶寺 괘불도>이며, 하한작은 1757년에 그린 <구례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도> 중 <비로나자불도>이다. 이 작품들의 수화사가 의겸이었으므로 희밀은 그 유파의 일원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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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실상사 실상사 독성도 實相寺 獨聖圖 Hermit Sage of Silsang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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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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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실상사 독성도 實相寺 獨聖圖 Hermit Sage of Silsangsa Temple-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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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조선 1874년
면에 색
85.5×68.5
금산사성보박물관
왕실발원으로 조성된 실상사 독성도는 왕실의 옥체안녕玉體 安寧과 만세천추萬歲千秋를 기리며 순종이 태어난 1874년에 제작되었다.
나반존자는 방형의 좌석坐席 위에 주장자挂杖子를 짚고 앉아 있다. 상단에는 흰 선으로만 구름을 표현했으며, 우측에는 패를 그려 넣어 화기를 기록하였다. 소나무나 암벽 등의 배경 묘사가 간결하고 색감이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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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개암사 개암사 대웅보전
-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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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개암사 대웅보전-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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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보물 제292호
백제무왕 35년(634)에 묘련(妙蓮)스님이 처음 지은 건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조선 인조 14년(1636)에 계호(戒浩)스님이 다시 지었다. 앞면 3칸 옆면 3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우람한 기둥 덕에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조각기법에서도 세련미가 있는 건물로 조선 중기의 대표적 건물이다.
불단에는 석가삼존불을 봉안하였고 상부에는 닫집을 설치했다. 그 속에는 세 마리의 번용(飜龍)이 또아리를 틀고 매달려 있으며 공중에는 구름과 여의주를 장식하였다. 이처럼 이 건물은 안팎을 연꽃, 용, 봉황 등 불교적 상징물로 가득 장식하여 부처님이 주재하는 불국토를 상징하고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개암사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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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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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개암사 영산회 괘불탱-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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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보물 제1269호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탱으로,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괘불에서 많이 그려지는 영산회상도는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길이 14m, 폭 9m의 이 괘불은 석가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현보살이 서 있고 뒷쪽에는 다보여래,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세지보살이 있으며, 앉아 있는 2구의 작은 불상도 보인다. 석가는 머리끝에서 다섯 줄기의 빛이 나며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편단의 옷을 걸치고 서 있는 모습이다. 각 상들의 얼굴 형태와 어깨는 각지게 표현하여 경직되어 보이며, 눈썹은 처지게 처리했고 선은 매우 정밀하고 세련되어 강한 인상을 준다. 채색은 주로 붉은색과 녹색에 금색을 사용하였고 군청색을 넣어 색채 대비도 보여주고 있다.
조선 영조 25년(1749) 승려화가 의겸이 참여한 그림으로 화면을 꽉 채운 구도와 경직된 형태, 강렬한 색채 등으로 18세기 중엽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며, 제작연대도 확실하여 우리나라 불교회화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암사 괘불탱의 밑그림도 남아 있는데, 현재 밝혀진 유일한 것으로 당시 괘불화의 제작과정과 필치 등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개암사 개암사 석조지장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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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7
개암사 석조지장보살좌상-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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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이 불상은 고려시대의 석조지장보살좌상으로 원래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 서운마을의 청림사지에 전해오던 것을 개암사로 옮겨 봉안하고 있다. 연꽃을 새긴 받침들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은 어깨와 등부분까지 길게 늘어져있으며, 손은 오른손 위에 왼손을 포갠 뒤 양 손의 엄지 손가락을 곧게 펴 맞대고 있다. 손안에는 보주를 감싸고 있다. 자연석을 받침대로 하고 그 위에 아래로 향한 연꽃잎을 조각한 8각형의 대좌를 올려 놓았다. -
대한불교조계종 개암사 개암사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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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7
개암사 동종-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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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전라북도 문화재 제126호
이 종은 숙종 15년(1689)에 제작된 조선시대 후기의 범종으로, 전체 높이 89.0㎝, 입 지름 61.5㎝이다. 종의 윗부분에는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와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이 있다. 어깨부위에는 사각형으로 띠를 둘렀으며, 그 안에 다시 원을 그리고 범자를 새겨 넣었다. 일부는 이 사각형의 구획안에 2행의 한자 명문을 양각하였다.
어깨 아래쪽으로는 4각형 모양의 유곽과 보살입상이 4개씩 교차로 배치되어 있다. 유곽 테두리 안쪽으로 9개의 꽃무늬를 한 유두가 있다. 보살입상은 구름위에 천의를 입고 두 손을 모아 꽃을 받들고 있다. 종 입구는 어깨부위와는 다르게 띠를 두르고 꽃무늬를 새겼다.
종의 아랫부분에는 숙종 15년(1689)에 주조했다는 명문이 있어서, 범종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