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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3교구 쌍계사 쌍계사 청학루
-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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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쌍계사 청학루-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3
지방문화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호
이 건물은 진감선사가 창건당시에 지은 건물로, 1930년 쌍계사 주지 손민선사가 중수한 맞배지붕의 2층 누각이며, 1985년 지붕 기와를 한 차례 보수했습니다. 초심자初⼼者 스님들의 수행 장소로 사용된 곳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백곡도인⽩⾕道⼈의 청학루 수행기문이 있습니다. 또한 1902년 8월 면암 최익현(崔益鉉)이 남쪽을 여행할 때 이 지방의 사림 32명과 주지 1명과 함께 창수시(唱酬詩)를 짓고 음사(吟社)를 창립하여 청학루음사(⾭鶴樓吟社)라 하였는데, 그 현판이 청학루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3교구 쌍계사 쌍계사 팔상전(雙磎寺 ⼋相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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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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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쌍계사 팔상전(雙磎寺 ⼋相殿)-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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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지방문화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
팔상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회화)나 조각상을 모시는 전각입니다. 쌍계사 팔상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크기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 지붕의 건물입니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다포계 건물로,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형식으로 지어졌습니다. 기둥이 높고 기둥 사이의 간격이 넓어 대웅전과 같은 웅장함이 느껴집니다. 건물 안의 기둥머리에는 장식이 많은데, 그 장식들을 안쪽으로 피어오르는 것처럼 만들어 공간이 웅장하고 화려해 보입니다. 또한, 천장은 격자 모양으로 짜 맞춘 우물정(井)자 천장이며, 가운데로 갈수록 점차 올라가는 층단을 두어 시야가 트이게 했습니다. 불상을 모셔 둔 불단 뒤에는 영산회상도와 팔상도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 전각은 고려 충렬왕 16년(1290)에 진정 국사가 처음 세우고 나서 여러 차례 손질하고 고쳤는데, 지금의 건물은 1978년에 고산 화상이 고친 것입니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3교구 쌍계사 쌍계사 영모전(雙磎寺 永慕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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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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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쌍계사 영모전(雙磎寺 永慕殿)-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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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영모전은 쌍계사 창건주인 진감선사 진영(동치 2년, 1863)을 비롯하여 쌍계사 역대조사님의 진영을 모신 전각으로, 중앙세분은 진감·남악·벽송선사님의 진영이고, 왼쪽 5분은 등계·서산·사명·소요·호연선사님 진영이며, 오른쪽 5분은 부용·부휴·벽암·백암·응암선사입니다. 또 왼쪽벽면에 모신진영은 월조선사 그리고 오른쪽벽면에 모신 진영은 고산선사(2023)진영입니다. 641(인조 19)년에 벽암이 고쳐지었고, 1978년 고산 화상이 새로 고쳐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모전은 불교의 진리와 중생에게 생명의 감로수를 내린 여러 큰스님의 뜻을 길이 숭모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입니다. 단층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포작을 짜지 않은 간결한 도리집으로 정면에는 모두 2분합의 세살문을 달았습니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3교구 쌍계사 쌍계사 금당(雙磎寺 ⾦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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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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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쌍계사 금당(雙磎寺 ⾦堂)-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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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지방문화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육조정상탑전은 쌍계사의 개산(처음으로 산문을 연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삼법과 대비 두 화상이 신라 성덕왕 22년(723)에 중국 불교 선종의 제6대조인 혜능 조사의 정상(頭上:두상)을 모시고 와서,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에 봉안하라”는 불보살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와 정상을 봉안하고 산문을 연 데서 유래했습니다. 그 후 신라 문성왕 2년(840)에 진감 선사가 쌍계사 창건 당시에 건물을 짓고 육조영당이라 했습니다. 건물 안에 있는 육조정상탑은 7층으로 용담 선사가 세웠다고도 하며, 주변 목압사 터에서 옮겨 왔다고도 합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입니다. 건물을 받치는 기단 없이 툇마루를 두어 지면과 떨어뜨린 것이 특징입니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형식으로 지어졌습니다. 기둥 간격이 매우 좁고 높이가 낮아 건물이 작은 데 비해, 기둥머리의 장식이 많고 커서 화려하고 장중해 보입니다. 천장은 낮지만 건물 안의 기둥 장식들을 중앙으로 피어오르는 것처럼 만들었고, 탑의 위쪽에는 작은 집 모양의 닫집을 만들어 장엄한 느낌을 줍니다. 건물의 앞쪽에는 조선 후기 명필인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려있으며, 지금의 건물은 고산 화상이 1979년에 고쳐 지은 것입니다. 쌍계사 건물 가운데 균형미가 가장 돋보입니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3교구 쌍계사 쌍계사 성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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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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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쌍계사 성보전-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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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원래 쌍계사 중창주 고산대선사님께서 현재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을 성보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습니다. 하지만 공간이 협소해 보다 효과적인 유물의 보존과 전시를 하는 데는 부족하다 여겨 2001년 정부보조금과 신도성금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성보전(聖寶殿)’을 새로이 건립했습니다.
성보전에는 본사의 유물을 비롯하여 각 말사의 귀중한 성보들이 소장·전시되어 있는데, 1층에는 일반 유물을 전시했고 2층에는 불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성보전에는 보물에 지정된 영산회상도, 삼세불탱, 팔상탱, 감로탱, 괘불, 관음보살도와 삼장보살도, 신중탱 등 다수의 경남유형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불교회화컬렉션으로는 단연 돋보인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들차를 행했던 곳이 경주 창림사인데, 창림사지에서 출토된 다연원(茶淵院) 와편 등 신라중요 와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3교구 쌍계사 쌍계사 부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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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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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쌍계사 부도전-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3
스님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부도가 모여 있는 곳을 부도전이라 합니다.
쌍계사 부도전은 멀리 백운산이 보이는 쌍계 팔경중의 하나인 응봉아래에 있습니다.
부도전에는 쌍계총림 초대방장이자 중창주이신 고산대선사님의 부도 ‘불식촌음’과 쌍계사의 선대조사님인 벽송당 지엄, 허한당 외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부도 1기 등 총4기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선대조사님의 부도들은 본래자리에서 이곳으로 이안(移安) 했습니다.
고산대선사 헌사
밑 없는 돌배(⽯⾈) 타고 다 건너셨네
고산(⼭)대선사(⼤禪師) 기침소리에 옷깃을 여미며
1933년 캄캄한 식민지의 땅 경남 울주에서 몸 받으시고
일찍 여윈 어머니 찾아 동산스님 깊은 산에 들어와
그리운 이름 목놓아 부르다가 그 사무치는 떨림 끝자락에서
어머님 대신 부처님을 찾아내셨네.
경장, 율장, 논장 이 삼장을 다 꿰뚫으시고
마조(⾺祖) 이래 역대 조사들 공안을 단박에 부셔버리고
“마음이 곧 부처다”는 한 깨달음만을 꺼내어
조계 보조의 선교일여(禪敎⼀如)를 한 맥으로 이어
한국불교의 대동맥을 지금까지 박동케 하셨으니 고산 대선사이시다.
아아 무엇이 남아서 아직껏 우리 가슴이 이리 두근거리는 것일까?
일생을 다하여 일체의 것을 버리고, 버리고,
버렸다는 생각마저 버리고, 놓아버리고 놓아버리고
놓았다는 생각마저 놓아버리고, 이 생각 저 생각
끝없이 일어나는 뇌(腦)의 음모를 정지시키고,
이도 저도 아닌 마음의 영도(零度)에 바늘이 멈춘
무게 없는 배, 밑바닥이 없는 돌배(⽯⾈)에 앉아
가없는 허공 싣고 고산 대선사, 마침내 홀연히 강을 건너가셨네.
아아 강기슭 이쪽, 우리 몸을 뚫고 가는 시간의 화살이
2021년 삼월 스무 이틀을 가리킬 때, 받은 몸 돌려주고,
태어나지 않아 죽지도 않는 저 영원한 바깥으로 나가셨네.
깨달아 우뚝 치솟은 밝은 산 고산 큰스님은 일체 흔적을 지우셨으나
잠시 앉았다 가신 쌍계총림의 나무가지는 아직도 흔들리고 있구나.
살아 있는 마지막 날까지 살아서 괴로운 뭍사람들에 손수 다가와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그 누구를 가리지 않고
전법교화의 걸음을 멈추지 않으셨으니 스님의
바스락거리는 옷자락 소리, 인자한 음성과 기침소리,
지금도 다가오는 듯 한 당신의 인기척이 어찌 그립지 않을 수 있으랴.
당신의 귀를 지나갔던 지리산 쌍계사의 세찬물소리여
비록소리는 물을 떠났으나 누군가의 몫인 양 여울에 남겨주신
그 물로 달인 죽로차 한 잔,달빛 묻은 문고리 당겨 오늘밤
스님 방에 넣어드리고 싶네.
2021년 9월 황지우, 감히 쓰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3교구 쌍계사 하동쌍계사 승탑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3
하동쌍계사 승탑-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3
국가문화재 보물 제380호
쌍계사 북쪽 불일폭포 방향으로 가다가 좌측봉우리 능선에 위치한 이 탑은 진감선사(眞鑑禪師)의 승탑으로, 사리를 모시는 탑신을 중심으로 아래는 받침부분인 기단(基壇)이고 위는 머리장식 부분입니다. 기단은 엎어놓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아래 받침돌 위에 8각의 가운데 받침돌을 올렸습니다. 그 위로 다시 솟은 연꽃무늬를 새긴 윗받침돌을 올려 대칭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기단 위에는 두꺼운 괴임돌이 삽입되어 눈에 띄는데, 괴임돌에는 구름무늬가 가득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의 몸돌은 밋밋한 8각으로 지붕은 넓고 밑면에는 서까래인 듯 보이는 받침을 두고 있습니다. 추녀는 끝에서 위로 들려져 있고 여덟 곳의 귀퉁이 끝에는 아름다운 꽃조각이 앙증맞게 솟아있습니다. 머리장식으로는 보개(寶蓋:지붕모양의 장식)가 있고, 짧은 기둥 위로 타원형의 돌이 솟아 있습니다. 모든 부재를 8각형으로 조성한 탑으로 각 부의 비례가 같지 않고 조각이 생략되거나 형식화되는 과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탑비와 함께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3교구 쌍계사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雙磎寺 茶樹 始培地)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3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雙磎寺 茶樹 始培地)-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3
지방문화재
경상남도 기념물 제61호(1987.08.06 지정)
우리나라 차 문화는 지리산 자락에서 시작됐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 공이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차나무 씨앗을 가지고 돌아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했고, 그 뒤 830년부터 진감 선사가 이곳 차나무 시배지 차를 쌍계사 주변에 번식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차를 재배한 차나무 시배지입니다. 이곳 시배지에서 생산된 차는(일명 죽로차. 작설차. 시배지차) 우리나라 최고의 차라는 명성을 얻어,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이 시배지차를 왕실에 올렸습니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는 시배지 차를 중국 최고의 차인 승설차보다 낫다고 평했고, 우리나라 다도(차를 달여 마시는 예법)를 바로 세워 다성(茶聖)이라 부르는 초의 선사도 시배지 차의 풍모와 자태가 신선 같고 고결하다고 격찬했습니다. 이러한 명성을 떨치던 시배지 차도 일제식민지를 거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을 1975년 고산 화상이 쌍계사 주지로 부임하여 화개면 운수리 산127번지와 산127-4번지(쌍계사소유) 일대가 차나무 시배지임을 아시고 복원하여 시배지 차나무 종자를 다시 화개면 일대에 번식하여 오늘에 이른다. 1981년에 한국차인연합회에서 차의 날을 선포하며 차 시배 추원비를 세워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 밭임을 알렸고, 1992년에는 하동군과 하동차인회에서 차나무 시배지 표지석을, 쌍계사를 창건하고 차 문화를 널리 보급한 진감 선사의 공을 기려 2005년에는 진감 선사 차시배 추앙비를 세웠습니다. 이에 고산 화상께서는 “사단법인 진감초의 다맥 한국선다회”를 창립하시고, 매년 5월초에 차문화대축전을 열고 있습니다. 이 축전 기간 중에 진감, 초의, 만허선사의 다맥을 복원하여 다맥 전수식을 한국선다회 주관으로 열고 있으며, 차의 날인 5월 25일을 즈음해서는 화개 일대에서 하동 야생차문화축제가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