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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9교구 동화사 동화사 인악 의첨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동화사 인악 의첨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역대 고승
    인악 의첨


    인악 의첨(仁嶽義沾, 1746~1796) 스님은 조선 후기 불교 교학의 대강백(大講伯)이다. 의첨 스님의 속성은 이씨(李氏), 본관은 성산(星山), 이름은 의선(義宣)ㆍ의소(義沼), 자는 자의(子宜), 법호는 인악(仁嶽)이다.

    고려 사공(司空)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 능일(能一)의 23세손이며 아버지는 휘징(徽澄)이고 어머니는 달성(達成) 서씨(徐氏)이다. 1746년(영조 22)에 달성 인흥촌(현 달성군 화원면 본리동, 고려 때 유명한 인흥사(仁興寺)가 있던 곳)에서 태어났다.

    8살에 향학에 들어가 소학을 세 번 읽고 다 외워버리니 신동이라는 소문이 인근 고을까지 났다. 15세에 시경, 서경, 역경을 다 읽고, 글을 잘 지어 천재라 했다. 18세에 용연사(龍淵寺)의 가선 헌공(嘉善軒公) 문하로 출가하여, 벽봉(碧峰) 스님에게서 구족계를 받고 교학을 배웠다.

    그 후 서악(西岳), 홍유(泓宥), 농암(聾巖) 등 여러 선지식에게 수학하였다. 1768년(영조 44) 벽봉 스님에게 돌아와 법을 이어받고 강당을 열어 설법하였다. 뒤에 영원암(靈源庵)으로 가서 화엄(華嚴)의 대종사(大宗師)인 운파 상언(雲坡尙彦) 스님에게서 화엄경과 선문(禪門)을 배웠다. 비슬산, 팔공산, 계룡산, 불영산 등의 산을 유력하며 경전을 강의했으며 동화사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후학양성에 전념했다.

    1790년(정조 14)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당(願堂)으로 수원 용주사를 창건할 때, 의첨 스님은 증사(證師)가 되어 〈불복장원문경찬소(佛服藏願文慶讚疏)〉와 〈용주사제신장문(龍珠寺祭神將文)〉을 지으니 정조가 그 글을 보고 크게 칭찬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교학의 양대 산맥으로 호남에는 연담 유일(蓮潭有一), 영남에는 인악 의첨을 꼽았다.

    1796년(정조 20)에 비슬산 명적암(明寂庵)에서 입적하니 세수 51세, 법랍 34세였다. 제자들이 다비식을 행하고 동화사와 용연사에 영당(影堂)을 세웠다. 12년이 지난 1808년에 제자들이 스님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을 동화사에 세워 지금까지 전한다.

    저서로는 《인악집(仁嶽集)》, 《화엄사기(華嚴私記)》, 《금강사기(金剛私記)》, 《기신론사기(起信論私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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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9교구 동화사 동화사 기성 쾌선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동화사 기성 쾌선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역대 고승
    기성 쾌선


    기성 쾌선(箕城快善, 1693~1764) 스님은 1764년 동화사에서 입적한 조선 후기의 고승이다. 이 해에 세워진 스님의 부도가 동화사에 있으며, 이 외에도 여러 기록에서 동화사에 남은 스님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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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쾌선 스님은 1727년 동화사 대웅전의 삼존불을 조성할 때 불사의 과정을 검증하는 증명비구로 참여하였고, 1732년 가람의 중창을 마무리하고 그 과정을 적은 《팔공산동화사사적기》를 편찬할 때 서문을 썼다. 또한 대웅전의 편액과 일주문의 〈八公山桐華寺鳳凰門(팔공산동화사봉황문)〉이라는 편액을 썼다고 전한다. 경상북도 칠곡 송림사에는 1772년에 세워진 스님의 비가 있어서 이를 통해 스님의 자세한 행장의 알 수 있다.

    스님의 법명은 쾌선이고, 속성은 류씨(柳氏)로 경북 칠곡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칠곡 송림사로 출가하여 14세에 민식(敏湜) 대사의 문하에서 머리를 깎았다. 16세에 서귀(西歸)대사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도덕산 태조(太照) 대사에게서 수학하고, 낙빈당(落賓堂) 홍제(弘濟) 대사의 강원에서 교학을 익혔다. 여러 경전을 공부하였으며 경의 뜻을 모두 이해할 때까지 궁리를 멈추지 않았다.

    25세에 고율엄(高律嚴) 낙빈(落賓) 대사에게 수학하여 인가(印可)를 받았다. 이후 주변에 이름이 알려져 배움을 청하는 자들이 날로 늘어갔다. 언변이 좋아 구애됨이 없었고 음성도 크고 밝았다. 가르치는 데 정성을 다하자, 배움을 찾아오는 자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어느 날 동화사에 머물면서 “경전을 풀이하는 것은 단지 설법자의 생각일 뿐이고, 언어의 해설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며 강론을 그만 두고 초가(草家)를 지어 80권 화엄경을 읽는데, 전체를 다 읽으면 다시 처음부터 읽기를 반복하였다. 밤에는 홀로 가부좌하고 묵묵히 좌선하며 밤을 지새웠다. 스님이 입은 옷은 납의(衲衣)와 버선뿐이었으며 모두 검은색이었다. 성격이 담백, 간소하고 정직하였으며, 사람들은 대사의 법성(法性)이 걸림 없이 원만하여 팔공산의 정기를 밝게 한다고 널리 칭송하였다.

    1764년 팔공산에 머문 지 불과 1년이 지난 어느 날 열반경 강의를 마치고 조용히 입적하시니, 세수는 72년, 법납은 59년이었다. 동쪽 봉우리 아래에서 다비를 거행하였는데, 정수리뼈가 수백 개였다. 사리를 모시고 동화사의 동봉(東峰)에 부도를 세웠다.

    쾌선 스님은 선사이면서도 화엄ㆍ정토 등의 교학에 능통하였으며, 《염불환향곡(念佛環鄕曲)》과 《청택법보은문(請擇法報恩文)》 등의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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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대사 염불환향곡(箕城快善 念佛環鄕曲)
    이 책은 가요체 형식을 위한 아미타 정토신앙서로, 염불을 통해 본원이 마음일 뿐임을 깨닫고 그 본원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여러 가지 과정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발문을 통해 기성의 호가 모동산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영조 43년에 경남 밀양군 화약산 봉천사 운주암에서 처음 간행하여 동화사로 이판하였다.


  3.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9교구 동화사 동화사 홍진국사 혜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동화사 홍진국사 혜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역대 고승
    홍진국사 혜영


    고려시대 법상종은 고려 불교의 3대 종파 가운데 하나로서 흔히 유가종, 자은종이라고도 한다. 동화사는 법상종의 핵심 사찰이었다. 13세기 중엽 법상종의 대덕이던 홍진국사 혜영스님이 동화사에서 활동하였으며, 스님이 입적하신 후에는 1298년에 스님의 비가 동화사에 조성되었다. 비문의 제목은 〈高麗國大瑜伽桐華寺住持五敎僧統普慈國尊贈諡弘眞碑銘(고려국 대유가 동화사 주지 오교승통 보자국존 증시홍진비명)〉이다. 안타깝게도 비는 사라졌으나 탑본의 일부가 전하고 부도는 동화사 경내에 남아 있다. 탑본에 ‘대유가동화사’라고 하여 동화사가 법상종의 대찰이었음을 분명히 말해 준다.

    혜영스님의 성은 강씨(康氏)로 경상북도 문경 출신이다. 한림원 자원(子元)의 아들이다. 11세에 출가하여 남백월산(南白月山)의 수좌(首座) 충연(沖淵)의 제자가 되었고, 17세에 왕륜사 선불장에 합격하여 흥덕사(興德寺)에 머물렀다.

    1259년 선종의 높은 승계인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고, 1263년에 수좌가 되었다. 1267년 속리사(俗離寺)이 이주하였으며, 1269년 승통이 되었다. 스님이 1274년 통도사에서 사리 여러 매를 얻어 항상 좌우에 두었더니 많은 분신사리가 생겨났으며, 이를 구하는 사람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이 해에 중흥사(重興寺)로 거처를 옮기고, 왕명에 의하여 9년 동안 서울에 머물렀다.

    1285년에는 유가사로 옮겼고, 1290년 사경승(寫經僧) 100명을 데리고 원나라에 들어갔다. 원나라 황제 세조가 스님을 경주사(慶州寺)에 머무르게 하였고, 만안사(萬安寺) 당두(堂頭)의 청으로 《인왕경》을 강의하여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이듬해 금니(金泥)로 대장경을 사경하고 귀국하였다.

    1292년 국존에 봉해져 보자(普慈)라는 법호를 받고 오교도승통이 되어 동화사의 주지를 맡았다. 홍진국사가 동화사 주지로 임명될 때 충렬왕은 신하를 데리고 내려와 오배지례(五拜之禮)를 행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국사와 왕사는 왕에게 스승의 예를 받는 높은 위치였다.

    1294년 1월 24일 단정히 앉아 《화엄경》 〈십지품〉을 읽다가 입적하였다. 세수 67세, 법랍 56년이었다. 시호는 홍진, 탑호는 진응(眞應)이다. 문인(門人)으로는 금산사 승통 효도(孝棹) 등이 있다.

    스님의 저서로 《백의해(白衣解)》 1권 1책이 목판본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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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9교구 동화사 동화사 연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동화사 연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근ㆍ현대시대
    2023년 임담의현대종사 팔공총림 2대 방장으로 추대 (2023. 6. 26)
    2017년 진제법원대종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4대 종정으로 추대 (2017. 3. 27)
    2016년 능담효광스님 28대 주지 취임(2016. 2. 24)
    2014년 종정예경실 준공
    2014년 불교문화관 내 부처님 진신사리 7과 봉안 (2014. 7. 1)
    2014년 능도 덕문스님 팔공총림 27대 주지 취임 (2014. 5. 24)
    2013년 진제 대종사 팔공총림 초대 방장으로 추대 (2013. 8. 19)
    2013년 국제선(禪)센터 개원 (2013. 5. 2)
    2012년 ‘팔공총림’으로 승격 (2012. 11. 7)
    2012년 국제관광선(禪)체험관(現 불교문화관) 개관 (2012. 4. 1)
    2012년 진제법원대종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3대 종정으로 추대 (2012. 3. 27)
    2010년 약수암(藥水庵) 중창
    2005년 염화실(拈化室) 준공
    1992년 통일약사대불 조성과 통일기원대전 건립
    1955년 석우 대선사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으로 추대
    1931년 동화사 사적비(김정래 찬) 조성
    1911년 대구 아미산(峨嵋山) 포교당 ‘보현사’ 창건

    조선시대

    1838년 (헌종 4)퇴은(退隱)대사가 금당 중건
    1808년 (순조 8)인악대사비 건립
    1796년 (정조 20)인악(仁嶽)대사 입적
    1743년 (영조 19)무주(無住)대사가 양진암(養眞庵) 창건
    1732년 (영조 8)관허, 운암, 낙빈대사 등이 중창, 동화사 사적판 간행
    1727년 (영조 3)이의현(李宜顯)대사가 팔공산 동화사 사적 찬술
    1718년 (숙종 44)선원(善元)대사가 지장 원불전 창건
    1716년 (숙종 42)의균(儀均)대사가 운주암 창건
    1689년 (숙종 15)쌍밀(雙密)대사가 명월료 창건
    1677년 (숙종 3)상숭(尙崇)대사가 동화사 중건. 상은대사가 대웅전 중수
    1670년 (현종 11)상륜(尙倫)대사가 칠불전 연경전 건립, 칠불상 조성
    1668년 (현종 10)학찬(學贊)대사가 영산전 창건
    1666년 (현종 7)학령(學靈)대사 향로전 서상실 건립
    1658년 (효종 9)도오대사가 부도암(浮屠庵) 창건
    1656년 (효종 7)도오(道悟)대사가 화우당 창건
    1639년 (인조 17)혜기(惠機)대사가 관욕당 건립
    1634년 (인조 12)희윤(熙允)대사가 호법문 건립
    1633년 (인조 11)일주문 건립
    1626년 (인조 4)유찬(唯贊)대사가 내원암(內院庵) 창건
    1622년 (광해군 14)극락전 중창
    1606년 (선조 39)사명당 유정(惟政)대사가 중창, 학인이 대웅전 건립
    1605년 (선조 38)천령(天靈)대사가 심검당 창건
    1591년 (선조 24)비로전 창건
    1465년 (세조 10)금당 중건

    고려시대
    1375년 (우왕 1)동화사의 석가불골(釋迦佛骨)을 신효사(神孝寺)에 봉안
    1319년 (충숙왕 6)승려 현승이 통도사로부터 사리 5과를 얻어와 법회 개설
    1298년 (충렬왕 24)홍진국존의 유지를 받들어 중창
    1294년 (충렬왕 20)홍진국존 입적. 동화사에 부도 건립
    1202년 (신종 5)경주 별초군의 난에 가담
    1190년 (명종 20)보조국사 지눌이 중창
    1036년 (정조 2)영통사, 숭법사, 부인사와 함께 출가자의 경율을 시험하는 사찰로 지정

    신라시대
    934년 (경순왕 7)영조 선사가 중창
    928년 (경순왕 1)영조 선사가 염불암 창건
    863년 (경문왕 3)경문왕의 명으로 비로암 3층석탑,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 조성
    9세기 후반 금당암 3층석탑 조성
    832년 (흥덕왕 7)심지왕사가 중창. 동화사로 개칭
    493년 (소지왕 15)극달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라 부름


  5.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9교구 동화사 동화사 창건기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동화사 창건기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동화사의 창건에는 두 가지의 주장이 있다.
    첫번째로 동화사는 493년에 극달 화상(極達和尙)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하였다. 그 뒤 832년(신라 흥덕왕 7년)에 심지 왕사(心地王師)가 중창하였는데, 그때가 겨울철인데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하였으므로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두번째로 〈삼국유사〉에는 진표(眞表) 율사에게서 영심(永深)에게 전하였던 불간자(佛簡子)를 심지(心地)가 다시 받은 뒤, 팔공산에 와서 불간자를 던져 떨어진 곳에 절을 이룩하니 곧 동화사 첨당 북쪽의 우물이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러나 극달 화상의 창건연대인 493년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의 시기이므로 공인되기 전에 법상종의 성격을 띤 유가사라는 사명이 붙여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우므로, 심지의 중창을 실질적인 창건으로 보는 것이 보통의 견해이다.
    창건 뒤 863년(신라 경문왕 3년) 경문왕이 비로암 3층석탑과 석조비로자나불을 조성하였으며, 934년(경순왕 7년)에는 선사 영조가 절을 중창하였다. 고려에 들어서는 1036년(고려 정조 2년) 영통사, 숭법사, 부인사 등과 함께 경∙율을 시험하는 사찰로 지정되었으며, 1190년(고려 명종 20년)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하였다. 1294년(충렬왕 20년)에는 국사 홍진이 절을 중건하였다. 1319년(충숙왕 6년)에는 현승이 통도사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5과를 얻어와 이를 봉안하고 법회를 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465년(세조 10년) 금당(金堂)을 중건하였으며, 1606년(선조 39년)에는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절을 중창하였고, 이어 학인이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유정은 영남도총섭으로 절에서 승군을 지휘했으며 사서원은 격문을 지어 많은 의병들을 모집, 절에서 훈련을 시키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 일대 55개의 사찰을 거느렸던 대본산(大本山)이었으며, 현재는 대구광역시와 청도군, 칠곡군, 성주군의 사암(寺庵)을 관장하고 있다. 근래 평화통일의 발원을 담은 약사여래대불을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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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9교구 동화사 동화사 팔공총림 소개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동화사 팔공총림 소개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팔공총림 동화사는 1,5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불교의 대표 총림으로서, 조계종 종정예하이신 진제 법원 대종사께서 주석하시며 선원, 율원, 강원에 100여 명의 대중이 상주하며 여법히 정진하는 청정 수행도량입니다.
    세계최대의 석불인 약사여래대불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동화사는 동아시아 10대 관광명소로 지정되어 연중 내내 수백만 명의 내외국인들이 참배하는 동양의 대표 성지입니다.
    또한 국내 유일의 선(禪) 체험관인 불교문화관에는 오색영롱한 부처님 진신사리 7과가 모셔져 있으며, 법화경 7만자를 석각과 판각의 황금경판으로 조성하는 대작불사가 진행중입니다.
    약사여래대불 24시간 개방으로 365일 꺼지지 않는 수행기도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는 동화사는 대구시민들의 정신적인 쉼터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총림이란?
    총림(叢林)은 선(禪)•교(敎)•율(律)을 겸비하고 학덕과 수행이 높은 본분종사인 방장(方丈)의 지도하에 스님들이 모여 수행하는 종합적인 수행도량이다. 범어로는 빈타바나(vindhyavana)라고 하는데, 많은 대중이 화합해 한 곳에 모여 사는 것이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해서 이렇게 부르고 있다.
    총림(叢林)이 되기 위해서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기관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염불 전문교육기관인 염불원(念佛院) 등을 모두 갖춰야 한다. 그러나 염불원을 별도로 갖춘 사찰이 거의 없다 보니 일반적으로 총림이라고 하면 “선원, 강원, 율원을 두루 갖추고 있는 사찰”이란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총림은 일반 사찰과 달리 총무원으로부터 상당한 자율권을 보장받아 사찰을 운영한다. 또, 큰 사찰이나 선원의 최고 어른스님을 '조실'이라고 하지만 총림에서의 최고 어른스님은 방장(方丈)스님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이는 ‘일방의 큰 선지식(一方之師)’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방장스님은 총림의 모든 대중들을 통리하며 화합을 이루고, 각종 행사와 결제ㆍ해제 때 법어를 통해 불제자들을 이끌어 가는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7.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봉은사 전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봉은사 전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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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여문
    사찰에 들어서는 첫 번째 문을 일주문이라고 하나 봉은사는 ‘진여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진여(眞如)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뜻하며,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절대의 진리를 이른다. 그러므로 진여문에 들어선다는 것은 곧 진리를 찾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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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응향각(불교용품점)
    봉은사 정문을 들어와 우측으로 불자님들이 처음 만나는 봉은사의 얼굴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을 판매하고 절을 찾는 불자들과 일반 시민들을 위해 마련된 불교용품전문점이다. 단순한 판매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만남을 통해 서로의 마음들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불교를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을 안내하고 도와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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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허응당 보우대사 동상
    보우대사는 혹독한 척불정책이 기승을 부리던 조선 명·정종대 봉은사 주지로 꺼져가던 조선불교의 법맥을 수호하는데 큰 역할을 하며 불교 중흥을 이끌었으나 유생들과 관리들의 집요한 상소와 배척으로 제주에 유배 중 순교했다. 보우대사 순교입적 448주년을 맞아 보우대사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불기 2013년 일주문 옆에 동상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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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부도/탑비/공덕비
    부도(浮屠)/탑비(塔碑)/공덕비(功德碑) 진여문에 들어서서 오른쪽을 보면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모양의 부도와 비석이 도열되어 있다. 부도는 모두 3개인데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부도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잘 알 수 없고 석종형 부도는 1925년 대홍수 때 많은 사람을 구한 청호스님을 기리는 것이다. 또한 2013년에 건립한 허응당보우대사 봉은탑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부도 쪽으로 탑비 2개가 나란히 서있는데 부도 옆에 있는 것은 영암 대종사의 비이고 옆에 있는 탑비는 1932년에 세워진 봉은사 사적비(史蹟碑)이다. 그리고 부도 남쪽으로 모두 16개의 비가 있는데 대부분 송덕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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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법왕루
    법왕루란 문자 그대로 법의 왕, 즉 부처님이 계시는 곳을 말하며 대웅전과 마주하여 누각으로 세워져 있다. 법왕루는 사시예불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대법회와 기도, 수행 등이 이뤄지고 있다. 3,300분의 관세음보살 원불을 모심으로 명실상부한 관세음보살 신앙의 모범적인 신행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봉은사 법왕루는 대법회 등 많은 인원이 있을 경우 부족한 기도공간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1997년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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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3층석탑
    대웅전 앞마당에 세워진 전형적인 3층 석탑으로서 부처님 사리 1과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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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선불당
    봉은사는 1939년 4월 화재로 판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 1941년 봉은사 주지 일초 태욱스님이 중창을 하면서 당시 심검당 자리에 현재의 선불당을 세웠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나 전·후·좌·우 네 곳에 작은 합각을 두어 양 측면과 함께 6개의 합각이 보이는 특이한 구조의 건축물이다. 선불당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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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전통문화체험관(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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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전통문화체험관(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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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대웅전
    대웅전은 1982년 새롭게 중창되었으며 법당 안에는 2층 닫집을 짓고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로는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부처님 등 삼존불(보물 제1819호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을 모셨으며 후불탱화는 삼여래회상도가 안치되어있다. 대웅전은 새벽 예불부터 조석 예불이 항상 이루어져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신행 활동의 중심이다. 대웅전 전면 계단에는 왕실에서만 사용되는 용을 조성해 놓았으며, 기둥과 창호, 지분, 추녀의 모습과 용마루에 이르기까지 한국 전통 목재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자연친화적이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곳이다.에 점안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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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지장전
    지장전은 주불로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이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을 이어 고통과 어려움에 처해 있는 중생들을 구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약초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워 ‘원력의 보살’이라고도 하고, 지옥중생들이 모두 구제될 때까지 지옥에서 함께 고통을 받으며 중생을 구하겠다는 서원을 세워 ‘악세중생의 부처님’이라고도 부른다. 지장전은 2002년 6월 불의의 화재로 전소되어 본래 12평이었던 전각을 40평으로 중창하여 2003년 12월에 점안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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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영산전
    영산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보처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양 옆으로 16아라한이 옹위하고 있으며 후불탱화와 16나한도, 신중탱화 등의 불화가 있다. 영산전은 나한님을 모셨기 때문에 나한님의 영험을 입고자 하는 불자들의 기도 발원이 간절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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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북극보전
    북극보전은 영산전과 함께 1942년 중건되었으며 산신 칠성 독성(나반존자) 등이 모셔져 있어 흔히 삼성각(三聖閣)또는 칠성각(七星閣)이라 불린다. 칠성신은 옛날부터 민간에서 재물과 재능을 주고 아이들의 수명을 늘려 주며 비를 내려 풍년이 들게 해준다고 믿어 왔으며 이는 민간신앙과 불교가 자연스럽게 접목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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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영각
    영각에는 불단에 지장삼존불상과 탱화가 있고 벽면으로는 봉은사의 개산조인 연회국사를 비롯한 조선불교의 중흥조 보우대사와 서산, 사명, 남호 영기율사, 영암, 석주스님등 7분 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으며 오른쪽 벽면으로는 6.25전쟁 전후 희생된 201위 호국영가의 영단이 설치돼 있다. 1967년 7평으로 지어졌던 충령각을 1992년 두 배 규모로 증축하여 영각으로 개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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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운하당
    스님들의 수행 공간인 운하당(雲霞堂)은 대웅전에서 서쪽으로 20m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운하당이 올라앉은 축대도 대웅전 축대가 계속 이어진 것이며 용도는 심검당과 마찬가지로 승방으로 쓰이며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전각이지만 지금 건물은 1941년에 중건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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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심검당
    심검당은 사찰에서 선방이나 강당의 이름에 많이 붙여지는 명칭으로, 지혜의 칼을 찾아 무명의 풀을 벤다는 뜻으로 검이란 날카로움 즉 지혜를 상징하고 심(尋)은‘찾는다’는 뜻이 있으니 심검당은 바로 지혜를 찾는 곳, 즉 선방(禪房)이었다고 할 수 있다. 봉은사 심검당은 대웅전에서 오른쪽, 선불당을 마주보고 있는 건물로 팔작지붕에 앞면 5칸, 남측면 3칸, 북측면 4칸의 규모를 하고 있다. 심검당 역시 <정릉지>의 ‘봉은사 사적’에 의하면 창건 때부터 있었던 건물인데 1939년 화재로 소실되고 지금 것은 1941년에 새로 지어진 당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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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종루
    종루에는 범종과 법고, 운판, 목어의 사물(四物)이 봉안되어 있으며, 새벽예불과 저녁예불을 시작할 때 사물을 친다. 범종은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고 법고는 가축이나 짐승을 제도하며, 운판은 공중을 떠도는 영혼, 특히 새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목어는 물고기들의 영혼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2014년 종루에는 사찰을 방문하는 내·외국인을 위해 다도와 신도들을 위한 휴식공간인 전통문화체험관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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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종각
    1974년에 조성된 종각은 종루가 세워지면서 사용되지 않고 보존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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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연지관세음보살상
    종각 아래쪽 연못 가운데 한국의 전통적인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관세음보살상의 손에는 감로수 병을 들었고 보관(寶冠)에는 아미타불이 새겨져 있다. 또한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진 연못은 아미타불 극락세계의 연꽃이 핀 아홉 개의 연못 중 하나를 표현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인간을 비롯하여 소리를 내지 못하는 모든 중생들까지의 염원을 알아보시고 그 고통을 구원해 주시는 자비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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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주차장
    주차 편의시설
    주차요금 : 1시간(3,000원) / 10분(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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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향적원(공양간)
    00여명의 대중공양이 가능한 공간으로 매주 화요일 사찰음식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 대중공양 이용시간은 오전11시30분~오후12시30분까지이며 법회 및 행사에 따라서 변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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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보우당
    보우당은 2000년 10월 아셈(ASEM) 정상회의를 위해 국가의 지원을 받아 사하촌을 정리하고 건립한 건물로 보우대사의 불교 중흥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해 보우당이라 이름 하였다. 기초학당, 불교대학, 연화대학(노인), 경전학교, 입문교육 등 신도교육이 상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요일에는 어린이법회와 파라미타법회, 대학생회법회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지하로는 무의탁자나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소가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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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다래헌
    다래헌은 1970년도 봉은사가 동국역경원 역장이 되면서 역경사업과 도제 양성을 위해 마련한 스님들의 공부방이었으며 거처였다. 특히 법정스님의 저서 <무소유>에 나오는 다래헌 이야기가 바로 이곳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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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수련원
    2002년 완공한 봉은 문화센터의 상층에 위치한다. 도심의 전통 불교문화 거점지로 포교활동을 위한 청소년센터, 교육공간 등 문화공간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는 템플스테이, 불교아카데미, 대학생법회 등 문화, 교육, 신행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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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비각
    조선말의 흥선대원군 비와 추사 김정희의 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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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판전
    판전은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며 1855년 남호 영기 스님과 추사 김정희 선생이 뜻을 모아 판각한 화엄경 소초 81권을 안치하기 위하여 지어진 전각이다. 후에 다시 유마경, 한산시, 초발심자경문, 불족인 등을 더 판각하여 현재 3,438점의 판본을 보관하고 있으며 봉은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특히 판전 편액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마지막 글씨로 유명하다. 판전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84호로, 판전에 판각된 화엄경 판본은 83호로 각각 지정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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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미륵전
    미륵대불 앞에 위치한 미륵전은 법왕루를 신축하면서 옛 법왕루를 그 모습 그대로 옮긴 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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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미륵대불
    미륵대불은 1986년 영암큰스님께서 발원하여 봉은사 사부대중이 모두 참여하여 1만 명 이상이 불사에 동참하여 10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대작불사로 1996년에 완공되어 봉은사 성보로써 높이 23m로 국내 최대의 크기의 부처님이다. 현재 미륵전과 미륵부처님이 모셔진 광장은 신도들의 기도 장소이지만 경우에 따라 공연 등 문화 행사장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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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연회루(연회다원)
    ‘연회緣會다원’은 봉은사 창건주인 연회국사의 법호(연회緣會)를 딴 전통차체험관으로 緣(인연 연), 會(모일 회) 뜻과 같이 많은 분들이 봉은사에서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길 바라는 마음과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불교문화와 차 문화의 우수성 알리고자 하는 취지와 의미를 두고 2018년 6월 20일 개원했다.
    운영시간 : 09:30AM ~ 21:00PM
  8.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봉은사 청동은입사향완 보물 제321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봉은사 청동은입사향완 보물 제321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 보물 제321호
    시대 : 1344년(至正 4년)
    위치 : 불교중앙박물관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에는 103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명문을 통하여 고려 28대 충혜왕 5년인 1344년에 향로를 만드는 장인인 김경과 오여스님, 진오스님, 계호스님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가 있다. 향로는 사찰에서 마음의 번뇌를 말끔하게 씻어주고 부처님의 향기로운 가르침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 향을 피우는데 사용하는 공양구다. 북한산 중흥사에 있던 이 향로는 조선 명종 때에 봉은사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명종시대는 불교를 탄압했던 조선이 건국된 지 150여년이 지난 시기이다. 명종 때는 문정왕후가 불교를 독실하게 믿었기 때문에 불교의 교세가 일어났다. 문정왕후는 보우대사를 신임하여 봉은사 주지로 삼았다. 그리고 1550년에 선·교 양종을 부활시키고 이듬해에는 승과를 설치하였다. 불교중흥의 본산이었던 봉은사에 향로를 옮긴 것은 불교탄압에서 벗어나 봉은사를 중심으로 부처님 가르침의 향기가 전국에 퍼져 나가기를 바란 보우대사와 봉은사 사부대중의 간절한 발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발원의 원력으로 봉은사는 지금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 잡고 있다. 이 향로는 외형에서 각부가 좋은 비례를 보일 뿐만 아니라 표면에 장식된 여러 가지 무늬가 아름다우며, 은사의 상감도 매우 세련된 방법으로 베풀어졌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전시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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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봉은사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 보물 제1819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봉은사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 보물 제1819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봉은사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 보물 제1819호
    시대 : 1651년
    위치 : 대웅전

    봉은사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이 2014년 3월 12일 보물 제1819호로 지정이 되었다. 조선 후기 효종 2년(1651년), 조선시대 최고의 조각승인 승일(勝一)스님이 봉은사에 도착하였다. 승일스님 앞에 보인 봉은사는 전쟁으로 인하여 폐허가 되어 참담하였고, 스님을 비롯한 10여명의 신도들은 기도의 원력으로 전소되어 사라진 석가모니부처님, 아미타부처님, 약사여래부처님을 조성하여 모셨다. 이어, 1765년의 개금발원문(改金發願文)을 통해 1689년 무렵 화재가 발생하여 본존 석가여래상을 새로 조성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삼불좌상 모두 조각적으로 우수하고, 발원문을 갖추고 있어 17세기 중후반의 불교조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성보로 평가된다. 봉은사 대웅전의 세분 부처님은 고통 속에 헤매고 있는 모든 중생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희망의 부처님이며, 대한민국의 국가문화유산과 성보로 세세생생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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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봉은사 판전 전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봉은사 판전 전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0

    봉은사 판전 전각
    서울시 유형문화재 425호
    시대 : 1856
    위치 : 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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