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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진각종 대한불교진각종 개요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대한불교진각종 개요-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진각종은 진각성존 회당 대종사께서 이 땅의 풍토성과 혈지성에 맞는 전통종교인 불교를 이 시대 대중들의 근기에 맞도록 새롭게 한 밀교중흥 종단이다.
진리의 당체이신 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의 밀법(密法)은 금강살타보살(金剛薩唾菩薩)에게 전해져 용맹보살(勇猛菩薩)에게 이어졌으며, 그 이후 밀법은 인도 전역에 펴져 갔고 티벳을 넘어 중국으로 몽고로 전해지면서 신라에도 밀법의 햇살을 받게 되었다. 이는 밀교 조사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전법(傳法)과 법을 구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였으며, 중생을 부처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하는 대자비의 발로였다.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과 금강지삼장(金剛智三藏)에 의해 밀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지자, 일행선사(一行禪師)와 불공삼장(不空三藏) 그리고 혜과화상(惠果和尙)에 의해 중국의 밀교는 당밀시대(唐密時代)라고 하는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신라
신라밀교
신라의 명랑(明朗)은 선덕여왕 때 2회에 걸쳐 문두루법(文豆婁法)을 행하여 당나라 군사를 물리친 기록이『삼국유사』에 전하며, 그와 함께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창건하고 신인종(神印宗)이라는 밀교종을 탄생시켰다. 그의 법은 안혜(安惠), 낭융(狼融) 등으로 이어져 김유신 등과 함께 원원사(遠源寺)를 세운 기록이 있다. 그리고 혜통(惠通)은 입당하여 밀법을 수용하고 신라에 귀국하여 신주행법(神呪行法)을 행하며 총지종(總持宗)을 창종하였다. 당에 유학하여 밀법을 전수하고 신라에 귀국하여 밀교를 전파한 승려로는 의림(義林), 현초(玄超), 불가사의(不可思議), 혜일(惠日) 등이 있다. 그 가운데 혜일은 당나라에 건너가 장안의 동탑원(東塔院)에서 밀법을 융성시키고 있던 혜과화상의 문하에서 체계적인 밀교를 배웠으며,『대일경』,『금강정경』,『소실지경』의 삼부비법(三部秘法)과 제존유가(諸尊瑜伽)를 전수받아 신라로 돌아와 밀법을 펼쳤다.
수막새-고려
고려밀교
고려시대에는 신인종의 밀승인 광학(廣學)과 대연(大緣)이 태조의 건국과 더불어 해적의 내습을 문두루비법을 통하여 물리쳤는데, 이러한 인연으로 936년(태조 9)에는 현성사(現聖寺)가 세워져 이 도량을 중심으로 각 종의 법회불사가 행해졌다.『조선왕조실록』에 신인종의 근본도량인 현성사와 총지종의 사찰인 총지사에 사신을 보내 부처님께 재를 올려 천변(天變)을 제거했다는 기록을 보아 조선 초기까지는 두 밀교종파가 각각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1406년(태종 6) 불교는 11종파를 7종파로 통합되면서 총지종은 남산종(南山宗)과 합하여 총남종(摠南宗)이 되고, 신인종과 중도종(中道宗)이 합하여 중신종(中神宗)이 되었다. 또 1424년(세종6)에는 7종이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폐합되면서 총남종은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과 함께 선종(禪宗)으로, 중신종은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과 함께 교종(敎宗)이 되었다. 이처럼 밀교는 선종과 교종으로 각각 나누어 통합되었다. 그 이후 밀교는 국가의 소재도량(消災道場), 문두루도량(文豆婁道場), 공작재(孔雀齋) 등의 진호국가불사를 위하거나 세간적인 실지(悉地)를 위한 방편으로 계속 이어졌다. 또한 승가에서는『천수경』독송 등 의례는 대개 밀교의례였으며, 수행에 있어서도 선밀쌍수(禪密雙修)적 경향이 강하였다.
밀교중흥
조선의 억불정책과 일제의 암울한 시대를 지나 근대화의 물결 속에 불교는 또한 스스로의 혁신을 통해 거듭나고자 몸부림치면서, 통합불교적인 조선의 불교는 드디어 종파불교(宗派佛敎)로 방향을 틀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시점에서 진각성존 회당대종사께서는 뚜렷한 종지(宗旨)와 종풍(宗風)을 내세워 교화하는 것이 오늘날 복잡 다양한 이 사회에 알맞은 방편임을 관찰하시고 밀교종단인 ‘대한불교진각종’을 창종하게 되었던 것이다.
진각성존 회당 대종사께서는 육자대명왕진언 ‘옴마니반메훔’을 통하여 비로자나부처님으로부터 금강살타보살, 용맹보살을 거쳐 중국으로 몽고로 한국으로 전해졌던 정통밀교의 법맥을 심인(心印)으로 전수하여 깨치시고, 그 자내증(自內證)한 경지에서 법계를 살펴보시고는 이 시대에 알맞은 방편을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의 불교는 이원자주상대원리(二元自主相對原理)에 입각한 불이적(不二的) 불교정신(佛敎情神)이어야 함을 통찰하시고, 유상방편(有相方便)에 대하여 무상방편(無相方便)을, 계율방편(戒律方便)에 대하여 진리각법(眞理覺法)을, 삼보사불(三寶事佛)에 대하여 삼신이불(三身理佛)을, 현교(顯敎)에 대해서 밀교(密敎)를 세우시게 된 것이다. 이러한 두 상대가 다시 한국사회에서 조화를 이루어 불이적(不二的) 정신으로 승화(昇華)될 때 한국의 불교는 더욱 발전하게 될 것이고, 고해에 허덕이는 중생 제도의 무진서원(無盡誓願)이 이루어질 것임을 꿰뚫어 보신 것이다.
대한불교진각종은 진각성존께서 육자진언을 통하여 깨치신 과정이나, 그 이후에 펼치신 교화방편(敎化方便)이 곧 사표(師表)가 된다. 이는 49일 염송에 이어 100일 염송 중에 나타난 모든 허물을 그 자리에서 대참회의 눈물로써 씻어내셨으며, 밝게 드러난 심인을 바로 깨치시고 곧 자성법신(自性法身)을 깨치셨으며, 이어서 자성법신이 법계법신불(法界法身佛)임을 깨치시어 온 우주 법계법신과 하나가 되시었다. 그리고는 교화방편을 여시며 중생들을 제도하시니 그 길은 곧 당신이 깨치신 과정을 그대로 보이신 것이다. 곧 참회원(懺悔院)을 여시고 심인불교(心印佛敎)를 제창하시고 진각밀교(眞覺密敎)를 서원하시었으니 곧 그것이며, 한국밀교 중흥의 중흥조로서 그 기치를 높이 드신 것이다.
이러한 자취를 사표로 삼아 대한불교진각종은 육자대명왕진언 ‘옴마니반메훔’을 신행의 본존으로 삼아 삼밀관행(三密觀行)을 통하여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진리의 당체인 불성(佛性)을 내 안에서 내증하고 바로 이 몸으로 부처를 이루고자[卽身成佛]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현실속에서 일체중생을 제도하여 현세를 정화함을 교화이념으로 한다. -
대한불교천태종 대한불교천태종 역사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대한불교천태종 역사-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천태종은 혼란한 불교를 통합하기 위해 고려시대 이 땅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대한불교천태종은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의 삼대지표를 통해 중생구제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묘법연화의 천태사상이 이 땅에 처음 뿌리내린 것은 고려시대였습니다.
대각국사 의천대사는 당시 혼란했던 고려불교를 하나로 통합하고 바로잡기 위해 6세기경 천태 지의가 개창한 천태종을 한국에 들여왔습니다. 천태사상은 학문과 수행을 두루 겸비한 새로운 불교정신이었으며 불교사상을 모두 아우르고 통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태종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용수보살의 맥을 타고 천태산의 지자대사와 대각국사 의천대사를 통해 불교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는데, 이를 근현대사 이후 소백산에서 중창하신 분이 바로 상월원각대조사입니다. 천태교학은 1세기 경의 용수보살의 공사상과 중관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6세기 경 중국의 천태대사가 장통별원의 화법사교와 화의사교를 바탕으로 오시교판을 체계적으로 확립하였습니다.
지자대사는 교종과 선종의 극심한 대립을 하나로 융합하기 위하여 천태종을 개창하였습니다. 교학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교종과 수행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선종은 두 개와 같이 하나로 불도의 길을 가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주장하기 위해서 천태대사는 교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모든 부처님은 모든 중생들을 성불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출현하셨으며 성문, 연각, 보살의 수행자들이 모두 일불승에 들어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이 불교도의 목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수행방법이 있지만, 천태종에서는 염불수행을 주요 수행방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출가인, 재가인 모두가 관음정진을 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관음정진은 타력신앙으로 알려져 있지만, 목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정진함으로써 스스로의 자율적인 노력이 필요한 면도 있습니다. 해방 후에 대한불교 천태종을 중창하신 상월원각대조사는 구인사를 창건하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2대 남대충대종사와 3대 김도용대종사가 이 뜻을 받들어 현재 대한불교 천태종의 모습이 갖추어졌습니다.
상월원각대조사는 삼대지표를 통해 구체적인 중생구제를 실천하셨습니다. 삼대지표는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입니다. 애국불교란 단합된 힘으로 자기가 사는 이 시대와 지역에 당면한 여러 가지 과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국가, 사회, 가정,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서 세계평화를 위해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생활불교란 일상과 수행이 결코 둘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복을 바라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스스로 복을 짓는 적극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염불 수행하여 부지런히 복을 지어야 합니다. 대중불교란 재가자 또한 출가자와 마찬가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추어 개인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동시에 중생구제의 서원을 실천하는 것을 뜻합니다. -
대한불교천태종 대한불교천태종 개창조 의천대각국사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대한불교천태종 개창조 의천대각국사-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대각국사 의천대사는 1055년 고려 문종과 인예왕후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후(煦)이고, 자는 의천(義天)이며, 대각국사는 그의 시호입니다.
대각국사 의천대사는 1055년 고려 문종과 인예왕후 이씨 사이에서 넷째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후(煦)이고, 자는 의천(義天)이며, 대각국사는 그의 시호입니다.
11세 되던 해에 아버지인 문종이 여러 형제를 불러서 누가 출가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어린 후가 원하여 1065년 경덕국사를 은사로 하여 왕궁에서 출가하였습니다. 영통사에서 공부하다가 같은 해 10월에 불일사에서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이후 학문에 정진하여 스승이었던 경덕국사가 세상을 떠나자 강의를 대신 맡게 되었는데, 이 강의가 매우 훌륭하여 명성이 온 나라에 드날리게 되었습니다.
의천대사는 송나라로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의천대사의 안위를 염려한 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1085년, 마침내 의천대사는 왕과 어머님께 편지를 남기고 유학을 단행하였습니다. 이후 송나라에서 의천대사는 다양한 불교철학을 배우고 이에 대해서 토론하며 많은 종파의 많은 학승들과 교류하였습니다.
천태산에서 본국에 돌아가면 천태교학을 널리 선양하겠다는 서원을 한 의천대사는 어머니인 모후의 뜻을 받들어 1086년 귀국하였습니다. 의천대사는 본국에 도착하자마자 왕과 태후에게 허락 없이 외국에 간 죄를 빌었으나, 왕실에서는 대사를 성대히 환영하였습니다.
대각국사는 귀국할 때 불교서적을 3000여 권 가지고 와서 송나라의 모든 불교학을 섭렵하고, 천태학을 조직하였습니다. 한편 제자들을 양성하고 송나라에 있을 때 사귄 벗들과 교류하여 더욱 심도있는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흥왕사의 주지로 있을 때에는 경율론 삼장의 정본 외에 그 주석서인 장소만을 수집하여 목록을 작성한 최초의 신편제종교장총록 3권을 편집하였습니다. 이후 흥왕사 교장도감에서는 이 목록에 의거하여 ‘고려속장’을 간행하였습니다.
1097년 국청사가 완성되자 대각국사는 첫 번째 주지스님이 되어 천태교학을 강의하였는데, 이때 모여드는 사람들이 무려 천여 명이 넘었다. 이때 한국불교 역사상 처음으로 천태종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각국사는 그해 8월에 병이 나서 1101년 47세에 입적하십니다.
대각국사는 한국불교의 진흥과 발전에 공헌한 바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천태종의 개립은 교단을 넘어 국가적으로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라시대에는 교종과 선종이 대립함으로써 종파가 서로 대립과 투쟁하여 불교계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대각국사는 고려불교의 혼란함을 바로잡아 올바른 사상을 확립하고자 하였으며, 바른 전통을 세우고자 천태종을 개창하였습니다. 선학과 교학을 융화시켜 분쟁을 화합하고, 모든 철학과 신앙, 교학을 귀일하여 불교의 통일을 기하였던 것입니다.
의천대사는 300여권은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대부분이 소실되어 현재에는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3권, 대각국사문집, 대각국사외집의 낙장본, 원종문류(圓宗文類), 석원사림(釋苑詞林) 의 잔편, 간정성유식론단과(刊定成唯識論單科)의 서문만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
대한불교천태종 대한불교천태종 종조 천태지자대사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대한불교천태종 종조 천태지자대사-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천태종의 제 4대 조사인 지의대사는 중국 천태종의 실질적인 개조(開祖)로서 천태교학을 완성하였습니다.
'지자대사'는 교학적 토대를 통해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마련하고 일생을 통해 자리이타행을 실천했습니다.
천태종의 제 4대 조사인 지의대사는 중국 천태종의 실질적인 개조(開祖)로서 천태대사 또는 지자대사라고도 합니다. 형주(荊州)사람으로 속성은 진(陳), 자(字)는 덕안(德安)으로 천태교학을 완성하였습니다.
538년에 태어나 부모님의 여의고 18세에 출가하여 지의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이후 혜광율사에게 구족계를 받은 뒤에 560년 광주(光州) 대소산(大蘇山)의 혜사대사 문하에서 수행하여 법화삼매를 얻고 스승의 인가를 받았습니다.
31세에 스승과 헤어져 금릉 와관사에 머물며 법화경, 대지도론, 차제선문 등을 강설하였습니다. 38세에 천태산에 들어가 화정에서 두타행의 고된 수련을 하고, 수선사를 세웠습니다. 본래 천태산은 도교의 성지였으나, 지자대사가 천태산에 머무른 이후 천태산은 천태종의 본산이 되었으며, 지자대사는 천태대사로 불릴 만큼 천태산과 관련이 깊습니다.
578년 법화문구를 강의하고, 591년 진왕 광의 부름을 받고 왕에게 보살계를 베풀어 지자대사의 법호를 받았습니다. 이후 남악으로 가서 혜사대사의 은혜에 보답하고, 다시 고향 형주로 가서 옥천사를 창건했습니다. 593년에 옥천사에서 법화현의를 강의하고 이듬해에 마하지관을 강의했습니다. 이후 양주(楊州)로 가서 정명소를 진왕 광에게 올리고, 595년 천태산으로 돌아가 황폐해진 절을 수리하고 제법십조를 지었습니다. 이후 병을 얻어 석성사에서 입적하셨는데, 입적 후 진왕이 대사의 뜻을 받들어 천태산에 국청사가 세워지고, 천태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습니다.
지자대사는 오시교판 등 천태교학을 확립했을 뿐 아니라, 8년동안 ‘와관사’에서 중생을 위한 교화활동을 펼치면서 백성들의 의지처가 되는 등 스승 혜사대사와 마찬가지로 중생들을 위한 불교교화행을 실천하였습니다. 또한 법화문구, 법화현의, 마하지관을 강의하였는데 이를 법화삼대부 또는 천태삼대부라고 하고, 장안관정이 이를 기록한 이후에는 법화사상의 중심되는 저술이 되었습니다.
지자대사는 제 4대 조사이지만 천태종은 실질적으로 천태지자대사에 의하여 세워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남북불교는 남조의 이론적 불교와 북조의 실천적 불교로 서로 대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지자대사는 남조불교와 북조불교를 융합하여 천태종을 개창했는데, 이는 한쪽에만 치우친 문화적인 차이를 통합한 것입니다.
지자대사가 천태학을 교학적 체계로 완성함으로써 중국의 다른 종파들도 많은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 인도불교를 중국의 주체적인 불교로 확립시키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교학적 토대를 통해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마련하고 일생을 통해 자리이타행을 실천한 지자대사는 중국의 작은 석가모니라고 불립니다. -
대한불교천태종 대한불교천태종 소의 경전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대한불교천태종 소의 경전-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법화경]은 천태종의 철학과 사상을 담고 있는 소의경전입니다.
법화경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삼승(三乘)이 일불승(一佛乘)의 하나로 돌아간다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의 논리에 입각해 있습니다.
법화경은 천태종의 철학과 사상을 담고 있는 소의경전입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많은 가르침 가운데 그 깨달으신 내용을 그대로 드러낸 법화경은 천태종의 사상과 철학뿐만 아니라 신앙과 수행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법화경은 제목에서 경의 내용과 사상을 드러내고 있는데, 법화경이라는 뜻은 ‘바른 흰 연꽃의 가르침’으로 직역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전의 제목을 통해 법화경이 나타내는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법화경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삼승(三乘)이 일불승(一佛乘)의 하나로 돌아간다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의 논리에 입각해 있습니다. 일불승의 가르침은 가장 뛰어난 교법으로, 이를 아름답고 빼어난 흰 연꽃에 비유함으로써 그 위대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싹을 틔우지만 이는 진흙에 물들지 않는 점 때문에, 오탁악세의 더러운 세상에서도 이와 같이 깨달음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에 비유되는 것입니다. 법화경은 모두 28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반의 14품은 적문(迹門)이라 하고, 후반의 14품은 본문(本門)이라고 합니다. 적문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그 흔적을 드리운 것을 말하며, 본문의 내용은 부처님이 실은 아주 오래 전에 성불하셨으며 그 수명이 무량하다는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즉,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항상 머무르며 멸하지 않는 존재인 법신불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응신불로 그 모습을 드러내어 법을 설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적문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문은 이미 오래 전에 성불하여 영원히 머무르는 근본 진리의 부처님을 나타냅니다.
묘법연화경 제6권 변상도
천태지자대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기간을 총 다섯 부분으로 나누고 각각의 시기에 설했던 경전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오시교판(五時敎判)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시기상 가장 마지막에 설했던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에 부처님의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설했다고 하여 법화경의 내용을 원교(圓敎)라고 이릅니다. 원교는 원만하고 완전한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법화경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 내용이 다른 경전에 비해 간결하고 비유가 많은 것을 물론이고, 법화경을 믿고, 지니고, 쓰고, 독송하는 공덕이 무량하기 때문입니다. 크고 많은 죄가 있더라도 법화경을 지니고 독송하면 그 사람의 공덕은 불가사의하다고 합니다. 또한 제25품인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중생들이 겪는 온갖 어려움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설하고 있어, 천태종의 오랜 전통을 이어가는 수행방법인 염불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대한불교천태종 대한불교천태종 종단문장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대한불교천태종 종단문장-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세 개의 청색 원을 포개어 놓은 위에 황색 금강저(金剛杵)를 상하로 세워 놓은 것이 천태종의 상징물인 종기(宗旗)입니다.
지관수행을 통하여 모든 법[諸法]이 현실에 있는 그대로 실상(實相)이며 중도(中道)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 개의 청색 원을 포개어 놓은 위에 황색 금강저(金剛杵: vajra)를 상하로 세워 놓은 것이 천태종의 상징물인 종기(宗旗)입니다. 금강저 가운데 그 양 끝을 한 가지로 만든 것을 독고(獨鈷), 세 가지로 만든 것을 삼고(三鈷), 다섯 가지로 만든 것을 오고(五鈷)라고 합니다.
인도에서는 저(杵)를 무기로 사용하였는데, 불교에서 금강저는 번뇌를 무찌르는 보리심(菩提心)을 상징하게 되었으므로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지니고 있습니다.
중앙, 가운데를 나타내는 황색의 금강저는 부처님의 지혜가 중도(中道)임을 상징합니다.
금강저의 세워진 모양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대승보살의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정신을 의미합니다.
동쪽을 나타내는 청색은 무궁한 번영을 뜻하는 동시에 동방에 있는 우리나라를 의미합니다.
푸른 원이 세 개가 있는 것은 우주만법이 각각 공(空), 가(假), 중(中), 삼제의 진리를 갖추고 있음을 뜻합니다. 세 개의 원이 함께 포개어져 있는 것은 삼제의 진리가 서로 원융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空), 가(假), 중(中)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데, 세 가지 진리는 서로 독립(獨立)되어 존재하지 않고 서로 원융(圓融)합니다. 한 가지 진리 가운데 나머지 두 개의 진리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을 삼제원융(三諦圓融)이라 합니다.
또한 이 이치를 한 마음으로 관하는 것을 일심삼관(一心三觀)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곧 천태종의 주요한 수행법인 지관수행입니다. 지관수행을 통하여 모든 법[諸法]이 현실에 있는 그대로 실상(實相)이며 중도(中道)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수행을 통하여 법화경에서 설하신 바와 같이 우리 모두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체득해야 합니다.
중도(中道)의 진리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공(空)이다' 또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거짓된 것이다'는 극단적인 두 견해를 버리는 것입니다. 어디에 머무르지 않고 집착을 떠나면, 이것이 곧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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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천태종 대한불교천태종 3대(현) 도용대종사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대한불교천태종 3대(현) 도용대종사-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김도용 대종사는 천태종의 제3대 종정예하이십니다.
1977년 2월, 34세에 남대충 대종사를 은사로 출가하신 이후부터 지금까지 바닥에 눕지 않고 앉아서 좌선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행을 일관하고 계십니다.
김도용 대종사는 천태종의 제3대 종정예하이십니다.
도용대종사의 속명은 영춘(永春)이시며, 법명은 도용(道勇)이십니다.
1943년 10월 1일 경북 울진군 평해면 금음동에서 태어나셨습니다.
1977년 2월, 34세에 남대충 대종사를 은사로 출가하신 이후부터 지금까지 바닥에 눕지 않고 앉아서 좌선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행을 일관하고 계십니다.
대충 대종사께서는 도용 대종사께 농장일을 맡기셨습니다. 도용 대종사는 1만여 평의 농장을 착실하게 관리하고 소를 보살피며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고된 농장일이 끝난 후에도 이른 새벽까지 밤새워 용맹정진 하셨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수행하신지 1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대중과 격리된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대종사의 높은 수행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1993년 남대충 대종사님이 열반하시고, 줄곧 목장에서 소를 키우시던 도용스님이 그해 12월 22일에 만장일치로 천태종 제3대 종정으로 추대되셨습니다.
이는 생활과 불교가 둘이 아니요, 일터가 곧 보리심(菩提心)을 심고 가꾸는 복전(福田)이라는 상월원각대조사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증명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도용 종정 예하는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존경의 대상이자, 제일가는 스승님 이십니다. 종정예하께서는 상월 대조사님과 대충대종사님의 유지를 받들어 종단의 중요한 일에 대하여 조언하시고, 제자들과 신도들이 수행의 본분을 잃지 않도록 깨우침을 주십니다. 또한 구인사에 계시면서 매일 신도들을 친견하여 가르침을 주십니다.
김도용 종정예하는 천태종단의 최고 어른으로서, 천태종의 현재를 이끌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시는 큰 스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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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천태종 대한불교천태종 2대 대충대종사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대한불교천태종 2대 대충대종사-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대종사님께서는 천태종의 비약적인 발전과 중생교화에 힘쓰신 한국 불교의 큰 선지식이십니다.
천태종을 중창하고 근대 한국불교의 기틀을 마련하신 상월원각대조사님을 이어 남대충(南大忠) 대종사가 대한불교 천태종의 제2대 종정스님이 되셨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천태종의 비약적인 발전과 중생교화에 힘쓰신 한국 불교의 큰 선지식이십니다.
대종사님께서는 1925년 음력 12월 5일, 소백산 구봉팔문(九峰八門) 아래 여의생 마을에서 영양 남씨 가문의 ‘남명진’ 거사님과 모친 ‘안동 김씨’ 사이에서 독자로 탄생하셨습니다. 속명은 익순(益淳)이고, 법명은 대충(大忠)이십니다.
21세에 상월원각대조사님을 은사로 모시고 소백산 구인사에서 출가하셨습니다. 남대충 대종사님께서는 대조사님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히 받들던 상수제자 셨습니다. 또한 스승을 지성으로 공경하고 시봉하며 한결같은 구도심으로 수행하던 제자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성품이 온화하고, 계행이 엄정하며, 덕행이 돈독하여 일찍부터 여러 도반의 기대와 촉망이 있었던 대종사는 특히 수행정신이 투철하여 항상 불철주야로 정진하였습니다.
1960년 36세가 되던 해, 몸과 마음을 다해 꾸준히 수행하신 끝에 상월원각대조사 님으로부터 깨달음을 이루셨다는 인증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1967년 동안거 때에 대중회상에서 법문답을 하던 중 대조사님께서 그 깨달은 바를 인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상월 대조사의 법제자로서 종단의 새 지도자가 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후 1974년 7월 2일, 상월원각대조사님의 법통을 이어받아 대한불교 천태종 제2대 종정으로 취임하셨습니다. 상월 대조사님의 열반으로 천태종도 모두가 슬픔과 실의에 빠진 상태에서 중대한 직책을 승계하신 대충대종사는 사명감을 가지고 인고의 정신과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셨습니다.
대충대종사님께서는 스스로에게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수행을 놓지 않는 엄격함을, 중생에게는 작은 어려움과 고통이라도 나누고자하는 너그러움을 모두 갖추셨던 분입니다. 끝없는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셨던 대충대종사는 상월원각 대조사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업을 충실히 계승하셨습니다.
구인사의 중창불사를 비롯하여, 부산 삼광사, 대구 대성사, 마산 삼학사, 청주 명장사, 울산 정광사, 춘천 삼운사, 제주 문강사, 송탄 송덕사 등 전국 시․군 지역 70여 사찰이 모두 대충대종사의 지도 아래 건립되었습니다. 국가에서도 한국불교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신 대충대종사님의 공로와 고귀한 위의를 인정하여, 1980년 4월과 1987년 11월에 공로상을 수여하였습니다.
천태종의 눈부신 교세발전을 이룩하시고, 중생제도에 진력하시던 2대 종정 남대충대종사께서는 1993년 9월 3일 세수 69세, 법랍 48세로 열반에 드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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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천태종 대한불교천태종 초대 상월원각대조사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대한불교천태종 초대 상월원각대조사-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상월원각 대조사님의 법명(法名)은 상월(上月), 법호(法號)는 원각(圓覺)이십니다.
1911년 음력 11월 28일 강원도 삼척군 노곡면 상마읍리 봉촌마을에서 밀양 박씨가문 밀성대군의 후예로 태어나셨습니다.
상월원각 대조사님의 법명(法名)은 상월(上月), 법호(法號)는 원각(圓覺)이십니다. 1911년 음력 11월 28일 강원도 삼척군 노곡면 상마읍리 봉촌마을에서 밀양 박씨가문 밀성대군의 후예로 태어나셨습니다. 속명이 준동(準東)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총명함과 진지함을 지녔던 대조사님께서는 인연의 도래와 함께 큰 뜻을 품으시고 15세가 되던 봄에 출가를 결심하시게 됩니다. 출가 이후 국내외의 여러 사원을 방문하고 용맹정진 하시던 중에 관세음보살을 친견하시고, 그 자리에 구인사를 창립하셨습니다.
구인사를 세우고 여러 제자들과 수행하시던 1951년 음력 12월 28일, 마침내 대조사는 큰 깨달음을 얻으십니다. 대도(大道)를 이루신 이후, 대조사님은 수많은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이는 오랜 세월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었지만 결국은 새로운 불교운동의 일환으로서 귀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불교운동의 목적은 수많은 중생들을 교화하고 구제하는 것으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보살 정신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오래전 중국의 천태지자대사께서 천태법화의 일승(一乘)의 진리를 천명하셨듯이, 고려의 의천 대각국사께서 수많은 종파를 원만히 통합하셨듯이, 상월원각대조사님께서도 삼대지표를 통해 중생구제를 실현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역사 속에서 이어진 오랜 사명을 다시금 되살려 고귀하고 참다운 정신을 계승하도록 천태종을 중창하셨습니다. 대한불교 천태종의 중창은 종파를 넘어 한국 불교사의 한 획을 그은 중대한 사건입니다. 오래도록 단절되어 왔던 한국 천태종의 전통을 이은 대한불교 천태종은 대조사님의 지도 아래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천태의 사상과 역사, 신앙 수행에 적절한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그 후, 상월원각대조사님은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의 새로운 불교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천태종의 삼대지표는 대조사님이 추구하신 불교의 모습과 정신을 담아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대조사는 삼대지표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한편, 한국의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생활법도와 현대 생활과 조화를 이루는 계율을 확립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역사성을 바탕으로 종단의 지표와 강령을 제정하고, 불교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핵심으로 하는 종헌을 선포하셨습니다. 중생교화를 위해 천태종을 이 땅에 다시 꽃피우신 상월원각대조사님은 1974년 음력 4월 27일 열반에 드셨지만, 대조사님은 자비롭고 거룩한 스승으로서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계실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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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천태종 대한불교천태종 총무원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대한불교천태종 총무원-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16
천태종의 행정을 주관하고 있는 곳이 바로 총본산 구인사에 있는 총무원입니다.
총무원은 총무원장을 중심으로 산하의 6부 1실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총무원 산하의 6부 1실은 총무부, 교무부, 교육부, 재무부, 사회부, 규정부, 기획실 입니다.
총무부
종단의 활동을 전반적으로 계획하고 집행하는 부서로 총무국, 인사국과 시설국을 두고 있습니다. 총무국은 종헌 종법 시행에 따른 행정이나 불사 등을 집행하고 관할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업무로 삼고 있습니다. 그밖에 종단을 대표하여 공무 행정과 도서 출판, 그리고 종단홍보를 관장하며 종단과 관계된 건축 및 토목 불사 설계 및 허가에 관한 사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인사국의 주된업무는 인사발령입니다. 종단의 발전을 위해서는 부족한 인력을 적재적소에 발령하여 업무분담을 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인사국에서는 가장 중요한 종단 인사인 주지 발령권, 신도회장과 각 지역의 신도회 간부, 그밖에 종단 인사에 대한 임명과 종도 전체의 상벌에 관한 사항을 통괄합니다. 시설국은 종단 사찰 건물의 신축, 개축, 보수및 시공에 관한 업무와 사찰 조경 및 단청에 관한 업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교무부
종단이 교세를 신장하는데 교무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며, 그 역할도 점차 증대되고 있습니다. 교무부는 종도들과 일반 대중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널리 가르치고 전파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산하에 교무국과 의전국, 포교국을 두고 있습니다. 의전국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법요의식을 담당하고 의전을 담당하는 스님의 교육과 관리입니다. 이와 함께 거사부전의 교육 및 지도 감독과 본산 법당 관리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교무부는 일선에서 신도포교를 직접 관장하는 부서라고도 할 수 있는 만큼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교육부
종단의 교육불사를 전반적으로 관리하고 문화와 문화재관리를 총괄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산하에 교육국과 문화예술국을 두어 업무분담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국은 구인사에서의 승려교육과 신도교육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있으며, 종단의 종립학원인 금강학원의 제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불가의 전통적인 예절을 보급하고 교육시키는데 힘쓰고 있으며, 부설기관인 천태불교문화연구원을 통해 불교의 교리 및 학술연구도 전담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국은 종단의 불교문화와 예술을 발굴, 전파하는 책임을 지고 있으며,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천태예술제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교천태중앙박물관을 통해 종단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재무부
종단의 재정을 총괄하는 부서로 종단이 발전하는데 밑바탕을 이루고 있으며, 산하에 재정국, 회계국과 제등국을 두고있습니다. 재정국은 종단재산의 관리와 재정 관리, 예산 결산에 관한 사항을 담당하고 있으며, 회계국은 수입과 지출에 대한 모든 사항을 관리하며, 보관되고 있는 재정을 통괄하고, 종단이 사용하는 물품을 구입하고 소비하는 전반적인 사항을 검사 관리 하고 있습니다. 제등국은 부처님오신날이나 상월원각대조사 탄신일 등 종단의 큰 행사를 장엄하는 봉축등을 제작, 설치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사회부
종단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그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부서로 산하에 사회국과 섭외국, 영농국이 있습니다. 사회국은 사회복지 사업에 가장 비중을 두고 있으며 종단과 구인사 대중의 보건과 위생, 소방, 승려의 복지 및 노후대책을 차질없이 시행하는 업무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섭외국은 종단의 국제관계에 대한 업무와 시국과 관련된 대외적인 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한편 영농국은 우리 종단에만 있는 독특한 부서로 영농에 관한 사업과 축산, 농장에서 일할 작업인력을 배치 관리합니다. 총본산 구인사에는 자체적인 커다란 농장을 운영 하며 사내 대중들이 소비하는 많은 주식과 부식 등을 자체 조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농장의 운영을 통해 주경야선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점은 천태종만의 특징이 될만합니다.
규정부
사부대중들이 불교의 계율을 바로 지켜 종단이 청정한 계율로 수승한 승가를 이루는데 목표를 두고 있으며 규정국과 지도국으로 업무분장을 하고 있습니다. 규정국은 종단의 수행 기풍을 바로 세우고, 승려와 신도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문제, 종단의 규정을 어긴 대중에 대한 징계 및 사면, 복권에 대한 문제를 심사하고, 승려 및 신도의 자격을 조사하여 이를 수행합니다. 지도국은 각 종무기관의 종무를 면밀히 관찰하여 발생할 수 있는 비리를 미리 예방하고 지도함으로써 종단 산하단체를 지도 감독함을 주임무로 하고 있습니다.
기획실
기획실은 기획국과 전산국의 2국을 두고 있습니다. 기획국은 종단의 연간 사업계획 수립 및 예산 조정 통제 업무 등과 종 단 발전의 비전제시에 관한 사항 그리고 종단 중장기 발전 계획 수립에 관한 사항 등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한편, 전산국은 종단 경영 관리 시스템 구축에 관한 사항과 종단 사찰 경리, 회계 전산화에 관한 사항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 및 유지, 보 수등에 관한 사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