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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룩스 불교 :: CYLOOKS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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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불교조계종 화계사 화계사 심우도(尋牛圖) 삼성각 벽화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화계사 심우도(尋牛圖) 삼성각 벽화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마음의 소”를 찾아라.
    - 숭산 대선사 법문 요약 -


    심우도(尋牛圖)는 잃어버린 본성(本性)인 소를 찾아 길들여서 그 등에 올라앉아 피리를 불며 고향에 돌아와서는 그 소마저 자취를 감추고 홀로 저잣거리에 나와 대중들을 살피는 수행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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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심우(尋牛) : 소를 찾아 나서다
    더벅머리 노총각이 고삐를 들고 소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마음의 소를 잃어버린 뒤 그것을 찾아 나선 것을 비유한 것이다. 우습구나, 소를 찾는 사람이여!
    본래 잃지 않았는데 무엇을 찾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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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견적(見跡) : 소의 자취를 찾다
    수행자가 이제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것을 그린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발자국을 찾을 수 있는가? 부처님의 경전을 의지하여 겨우 뜻을 알고 자취를 찾아, 여러 그릇이 모두 한 흙인 것을 알게 된다.

    ③ 견우(見牛) : 소를 보다
    사물의 근원을 보기 시작하여 견성(見性)에 가까이 왔음을 뜻한다. 보는 놈은 누구이며 보이는 것은 무엇이냐? 따뜻한 봄바람에 만 가지 꽃이 피었으나
    마주 보고 돌아서도 돌아설 곳 없으니 등을 돌리고 꼬리를 흔들며 마주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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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득우(得牛) : 소를 잡다
    소를 잡았지만, 아직 길들지 않아 애를 먹는 그림이다. 득실시비가 장안에 가득하다. 누가 얻고 누가 잃었는가. 방! 할!로 번갈아 길들이고자 하나 굳은 마음 격렬한 힘은 얼른 없애기 어렵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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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⑤ 목우(牧牛) : 소를 길들이다
    소가 순해져서 점차 흰 소로 변해간다. 앞생각 다스리고 나면 뒷생각이 따라와서 진망(眞妄)이 교차한다. 코뚜레를 굳게 매어 사량계교(思量計巧)를
    용납하지 않으니 어즈버 고삐 따라 순순히 말을 잘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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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⑥ 기우귀가(騎牛歸家) :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소를 옆으로 비스듬히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피리 소리가 늦 노을에 울려 퍼진다. 한 박자 한 노래에 한없는 뜻이 들어 있으니 소리를 아는 이가 몇이나
    되는가? 채찍을 놓으니 이제부터는 득실시비가 모두 공(空)해진다.

    ⑦ 망우존인(忘牛存人) : 소를 잊고 사람만 있다

    법에는 두 법이 없으니 소와 사람이 따로 있을 리 없다. 토끼를 잡았으면 덫을 놓아버릴 일이요, 달이 구름에서 벗어난 것 같고, 금이 광산에서 쏟아져
    나온 것 같다.

    ⑧ 인우구망(人牛俱忘) : 사람과 소를 함께 잃다
    주관(我=나)과 객관(牛=소)의 구별이 없다. 텅 빈 원만을 그려놓았다. 고요하고 고요한 땅 무량수불이여! 이름도 모양도 일체가 끊어졌네. 맑은 하늘
    해와 달 천강(千江)에 비치니 끝없는 하늘 그대로 끝없는 하늘이로다!
    반본환원(返本還源) : 본원으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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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⑨ 반본환원(返本還源) : 본원으로 돌아가다
    도를 얻어 가만히 홀로 앉아, 맹인·농인처럼 앉았으면 도리어 부처님 신세만 쌓여진다. 법을 구하고 도를 깨침은 중생이 있기 때문이니 새삼스레 원(願)을 세우고 시집갈 채비를 한다.
    입전수수(入廛垂手) : 시장에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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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⑩ 입전수수(入廛垂手) : 시장에 나아가다
    중생제도를 위해 자비의 손을 내밀어 마을(세상)로 향하는 모습이다. 사립문을 닫고 홀로 앉아 있으니 천성(千聖)이 알지 못한다. 자기의 풍광을 매몰하면 옛 성현들의 길을 저버리는 바가 되므로 표주박 차고 지팡이 끌고 시장에 나가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한다. 자기 자신을 깨달아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다.

  2. 대한불교조계종 화계사 화계사 삼성각(三聖閣)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화계사 삼성각(三聖閣)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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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의 여러 신(神)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만 믿어오는 신들도 꽤 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산신과 칠성이다.

    산신(山神)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속신으로 나이 든 도사의 모습으로 묘사되며 호랑이와 동자를 거느린다.

    칠성(七星)은 기우(祈雨), 인간의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관장한다. 칠성은 본래 도교에서 신앙하던 것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민간신앙으로 자리를 잡았다. 본래 북두칠성을 말하지만, 불교와 융합되면서 치성광여래불(熾盛光如來佛)로 격이 상승되었다. 치성광여래불의 좌우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한다.

    독성(獨聖)은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깨달아 성인이 된 나반존자를 가리킨다. 희고 긴 눈썹을 가진 도인으로 오른손에는 석장을,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세 신은 본래 별도의 건물에 각각 모시나 오늘날에 와서는 세 신을 함께 모시고 건물 이름도‘삼성각’이라고 부른다.

    화계사 삼성각은 경내 좌측 언덕에 세워져 있다. 본래 있던 산신각을 1885년에 금산(錦山)스님이 중수했던 것을 1975년에 진암(眞菴)스님이 낡은 건물을 고쳐 지은 것이 바로 현재의 삼성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기와는 동기와를 얹었다. 내부에는 1973년에 조성한 칠성 탱화와 독성탱화, 산신탱화가 봉안되어 있고 외부 벽화에는 심우도(尋牛圖)가 그려져 있다.

    산신상은 2011년 당시 한말선(大法性) 신도회장의 원력과 시주로 주지 수암(秀岩) 스님이 조성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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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대한불교조계종 화계사 화계사 불상(佛像)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화계사 불상(佛像)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불교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절을 찾게 되면 먼저 당황스러운 것이 불상의 종류도 다양하고 그 수도 많다는 사실이다. 불교는 부처님을 믿고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이기에 부처님의 모습은 하나일 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절에 가보면 여러 모습의 불상을 볼 수 있고 이름도 제각기 다르다. 이것은 왜일까?

    부처란 진리 그 자체이므로 사실 형체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단지 우리가 불교의 교조(敎祖)로 알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형체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불상의 유래는 바로 이 석가모니불로부터 시작된다. 불상은 석가모니불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열반에 든 후에는 더는 뵐 수 없는 안타까움에 부처님을 대신할 탑을 조성하여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탑만을 경배한 기간은 꽤 길어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후 500여 년까지 계속되었으며, 1세기쯤에 이르러서야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불상은 처음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간다라 지방에서 발견되는 초기 불상들을 보면 얼굴이 서구적이라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이야기이다. 이후 인도 중부에서 불상이 제작되면서부터는 인도 고유의 전통을 살렸고, 굽타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상적인 모습의 불상이 많이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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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상은 불교를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1세기경이고, 3~4세기경에는 불상이 함께 유입되어 종교로서 예경(禮敬)의 대상이되었다. 우리나라에는 372년, 고구려에 들어온 전진의 승려 순도가 불경과 불상을 함께 들여왔다.

    이렇게 초기에는 석가모니불을 형상화한 조각상밖에는 없었다. 그러면 과연오늘날에는 왜 이렇게 불상이 많아지고, 다른 신상(神像)들도 절에 많이 모시게 되었을까? 이것은 불교의 독특한 포용력 때문으로 여겨진다. 곧 불교가 세계 여러 곳으로 전파되면서 지역에서 믿어오던 문화들을 불교 내부로 끌어들인 것이다. 진리 그 자체를 뜻하는 비로자나불이 불상으로 형상화되었고, 대중들의 믿음에 맞춰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불상으로 만들어졌으며, 아직 출현하지않은 미륵불도 불상으로 제작되었다. 또한, 부처님과 더불어 보살님들도 조각되어 경배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모든 진리는 우리 안의 불성(佛性)에 귀결된다. 어떤 경배의 대상을 믿든 자기 자신을 바로 보고 수행 정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처는 불상이라는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법을 실천하는 과정속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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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대한불교조계종 화계사 화계사 천불오백성전(千佛五百聖殿)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화계사 천불오백성전(千佛五百聖殿)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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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의 왼편에 자리 잡은 천불오백성전(千佛五百聖殿)은 오백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건물 자체가 높은 단 위에 설치된 데다가 내부에 많은 나한상(像)을 봉안하고 있어 건물 높이가 상당하다.

    봉안된 조각상은 찬하(餐霞) 최기남 거사가 조성한 것으로, 최기남은 1915년 관직에서 물러나 금강산에 들어가 조국의 광복을 기원하며 십팔나한상과 천불상, 오백나한상 등을 조각하였다. 조성한 조각상들을 강남 봉은사와 여주 신륵사에 봉안했다가, 1964년 최기남의 아들 무방(無方)거사의 시주로 천불오백성전을 건립하고 이곳에 모시게 되었다.

    나한(羅漢)은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부처님이나 보살 못지않게 공양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다. 그래서 이러한 나한을 모신 건물에는 흔히‘오백나한전’, ‘나한전’또는‘응진전’이라는 이름이 붙는데, 이곳만은 특이하게‘천불’이 덧붙여져 있다. 그래서 법당에 불상이 천 개 모셔져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오백나한과 석가모니불, 관음보살,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건물 이름에 ‘천불’이 붙어 있는 것은 천불전과 나한전을 겸한다는 의미이다.

    오백 나한은 경전에 많이 등장한다. 석가모니가 중인도 교살라국 사위성에서 오백나한을 위해 설법을 했다고 하고, 매달 15일 마다 오백나한들을 위한 계를 설하였다고도 한다. 또 석가모니가 열반에 드신 후 중인도 마가다국 칠엽굴에서 오백 나한이 모여 불전을 편찬하였고, 석가모니 사후 600년이 지난 뒤 인도 서북부의 가습미라에서 열린 제 4결집에 모인 비구의 수가 500이라 오백 나한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나한은 석가모니 생존시에 따르던 500명의 제자를 뜻하기도 하고, 열반하신 뒤에 여러 가지 중요한 일에 모여들었던 500명의 나한이나 비구를 뜻하기도 한다.

    나한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 특별한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는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조성된 오백 나한의 모습이 제각각 다르며 우리 인간들의 모습과 닮아있고 해학적인 모습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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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불오백성전 주련
    통화현관안저심 通化玄關眼底尋 깊고 오묘한 가르침 깊이 들어가니
    색즉공혜공시색 色卽空兮空是色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네
    차시와석즉황금 此時瓦石卽黃金 이때에 기와장이 황금이 되는 때이니
    도심맥맥의심심 道心脈脈意沈沈 보리 구하는 마음 계속 깊이 이어가네.

  5. 대한불교조계종 화계사 화계사 지장보살(地藏菩薩)과 명부시왕(冥府十王)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화계사 지장보살(地藏菩薩)과 명부시왕(冥府十王)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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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장보살상은 전체적으로 강건한 기상이 엿보인다. 얼굴은 둥그렇지만, 눈매가 길고 콧마루가 우뚝하며, 굳게 다문 입은 용맹스러움이 배어 있다. 설법인(說法印)을 짓고 있는 손매도 탐스럽고 탄력이 있으며 어깨선도 부드러우면서 풍부하다. 무릎은 전후좌우의 길이와 폭이 알맞은 비례를 갖추면서 넉넉한 두께를 유지하여 안정감을 준다. 불의(佛衣)는 상당히 두껍게 표현하여 매우 사실적이다.

    좌우에 시립해 있는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은 물론 시왕, 판관, 동자, 사자, 수문장상도 모두 지장보살과 같은 양식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판관의 사모나 시왕의 의관 또한 이 시대의 의제(衣制)를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사실적이다. 이렇듯 지장보살상과 시왕상은 당시를 대표할 수 있는 미술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복장 유물까지 온전하게 나와 불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6. 대한불교조계종 화계사 화계사 명부전(冥府殿)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화계사 명부전(冥府殿)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명부전은 저승(명부)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꾸며놓은 전각이다. 죽은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원해 주고자 대원력을 세운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곳이며, 또한 저승의 심판관인 열 명의 왕을 모신 곳이라고 하여 지장전(地藏殿) 혹은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한가운데에 지장보살이 판사처럼 앉아 있고 주변에는 시왕들이 검사처럼 날카로운 눈매로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지정보살 좌우로 지장보살을 돕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시왕을 돕는 동자, 판관과 녹사, 신장 등이 실내 앞면을 가득 메운다.

    한편에 생전에 저지른 죄를 비춰볼 수 있는 업경대가 설치되어 있다. 업경대로 죽은 사람의 죄를 비춰보고 시왕들이 문초를 하며, 이때 지장보살이 망자의 변호사가 되어 망자의 선행을 찾아내 변론을 해 주는데, 그 결과에 따라 극락이든 지옥이든 삼계(三界) 가운데 어디론가 망자를 보내게 된다.

    망자는 죽은 지 49일째가 되는 날에 심판의 결과(업의 선악)에 따라 다음 세상으로 가게 되는 까닭에 후손들은 이날 특별히 정성을 다해 불공을 올린다. 죽은 이가 마음의 미련을 버리고 다음 세상으로 편안히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의식을 49재라 한다. 자신의 조상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며 49재를 지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 민족이 효(孝)를 가장 중요한 인간의 도리로 여기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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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명부전은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셔오라는 왕명을 받아 황해도 백천(白川)의 강서사(江西寺)에 있던 지장보살과 시왕상을 이곳 화계사로 모셔 봉안하고(1877년), 익년(1878년) 초암 스님이 조대비(趙大妃)의 시주를 받아 중수한 것이다.

    명부전2001년 기와를 바꿔 얹고 외벽 채색은 물론 내부의 지장보살상, 각종 시왕상, 동자상 등 말끔하게 단장하였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의 친필 현판과 주련, 지장보살의 후불탱화는 1875년에, 시왕 각부 탱화는 1878년에 조성된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명부전의 지장보살상은 개금불사를 위한 복장 수습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불경(佛經), 다라니(陀羅尼)와 더불어 1649년(인조27)에 강서사에서 제작했다는 발원문이 나와 조성 시기가 밝혀졌으며, 목조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 상 일괄은 2014년 보물 제1822호로 지정되었다.

    명부전 주련
    지장대성위신력 地藏大聖威神力 지장보살님의 위대하고 신통한 힘은
    항하사겁설난진 恒河沙劫說難盡 억겁을 두고 설명해도 다하기 어렵나니
    견문첨례일념간 見聞瞻禮一念間 보고 듣고 예배하는 잠깐 사이에
    이익인천무량사 利益人天無量事 사람과 하늘에 이익 되는 일 헤아릴 수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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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대한불교조계종 화계사 화계사 미륵석불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화계사 미륵석불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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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후 56억7000만 년 뒤 이 사바세계가 인간의 수명은 8만4000세요 지혜와 위덕이 갖추어져 안온한 기쁨으로 가득차 있는 이상적 국토로 바뀐 세계에 출현하시는 부처님이다.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고 3회에 걸쳐 사제, 십이연기 등의 법문을 설하여 뭇 중생들을 제도하니 이것이 용화삼회의 설법이다.
    미륵불신앙은 미륵불이 출현하는 국토의 풍요로움과 안락함에 대하여 설함으로써 중생에게 죄악의 종자인 모든 업장과 번뇌의 장애를 끊고 자비심을 닦아 미륵불의 국토에 태어나도록 하자는데 그 깊은 진의가 있다. 이 미륵불에 대한 신앙은 삼국의 불교 전래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널리 신봉되었다.

    2015년 11월 미륵존불 조성을 결의한 이후 2017년 12월 3일 복장물 봉안법회를 가졌으며, 2018년 12월 7일 점안법회를 봉행하였고, 2019년 5월 5일 12존불 안치 7일 특별기도 입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밝은 햇살 아래 동쪽을 향해 편안하게 앉아 계시는 화계사 미륵부처님은 우리가 소원하는 바를 무엇이든 언제까지든 들어주실 것만 같은 모습이다.

    특이하게도 주불 뒤에는 인도, 미얀마, 중국, 태국 등 여러 불교권 국가의 불상 열두 분이 모셔져 있다. 크기도 재료도 표현방식도 각기 다른 부처님의 모습을 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한결같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얼마나 다양한지 나라별 문화적 코드를 읽는 재미 또한 남다르다. 내 것만이 중하고 우리만이 옳다는 배타적 생각은, 다양한 모습의 부처님 앞에서 설자리가 없어지고 화계사 미륵부처님의 큰 가르침과 한없는 자비로움에 마음은 더욱 경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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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대한불교조계종 화계사 화계사 대적광전(大寂光殿)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화계사 대적광전(大寂光殿)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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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적광전은 1991년 정수스님이 조성한 정면 7칸, 측면 4칸의 현대식 복합건물이다. 비로자나불은 연화장(蓮華藏) 세계에 있는 부처님으로 연화장 세계가 장엄하고 진리의 빛이 가득한 대적정(大寂定)의 세계이므로 전각 이름을 대적광전이라 한다. 현재 대적광전 1층은 공양간, 2층은 불교대학 강의실과 스님들의 요사, 3층은 법당, 4층은 시민선원으로 운용되고 있다.
    3층 법당은 대중법회와 불공을 드리는 공간으로 내부에는 중앙에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 좌·우측에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과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이 삼신불을 이루고 있고 뒷면에 각각의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셨다. 동쪽 벽에는 지장보살과 지장보살탱화가 별도로 모셔져 있다. 불상들은 1991년에 조성되었고 탱화는 1998년에 조성하였다.
    대적광전 주련 / 예장 종경(豫章宗鏡)스님

    청산첩첩미타굴 靑山疊疊彌陀窟 첩첩쌓인 푸른산은 아미타불 전장이요.
    창해망망적멸궁 滄海茫茫寂滅宮 망망대해 푸른바다 부처님의 적멸보궁
    물물염래무가애 物物拈來無?碍 두두물물 일체 것에 걸림 없다면
    기간송정학두홍 幾看松亭鶴頭紅 푸른솔 위 홍학두를 보게 되리라.
    보화비진료망연 報化非眞了妄緣 보신과 화신이 참이 아닌 망연된 인연인줄 깨달으면
    법신청정광무변 法身淸淨廣無邊 청정한 법신은 가없이 두루 하도다.
    천강유수천강월 千江有水千江月 천 갈래 강마다 물이 있다면 천개의 강마다 달이 떠오르고
    만리무운만리천 萬里無雲萬里天 만리 하늘에 구름이 없다면 청청 하늘은 만리에 뻗네.

  9. 대한불교조계종 화계사 화계사 팔상성도(八相成道) 대웅전 벽화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화계사 팔상성도(八相成道) 대웅전 벽화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부처님께서 도솔천으로부터 강림하신 것을 표현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과거 한량없는 세월 동안 수행을 하며 호명보살로서 도솔천 내원궁에서 천인들을 교화하고 계시다가 염부제의 중생들을 제도하려는 대원을 품고, 흰 코끼리를 타고 마야왕비의 꿈결에 오른쪽 옆구리로 입태(入胎)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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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람강생상(昆藍降生相)
    마야왕비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통해 태어나 사방 일곱 걸음을 걸은 후 한 손은 하늘을, 한손은 땅을 가리키며,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모든 세상이 다 고통속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하셨다.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나고 아홉 마리 용(龍)들이 나타나 오색 감로수로 몸을 씻어 주었다. 땅이 진동하는 가운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천신들이 내려와 예배드리며 이 세상 가장 존귀한 분의 탄생을 축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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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태자 고타마 싯다르타는 호화로운 왕궁에서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누렸다. 성년이된 어느 봄날 태자는 동문에서는 노인(老人)을, 남문에서는 병자(病者)를, 서문에서는 죽은 사람 (死者)을 보고‘생명을 가진 어떤 것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번민하던 태자는 북문에서 인간의 고통에서 해탈하는 길을 닦는 수행자(修行者)를 만나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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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생노병사(生老病死)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생의 참다운 행복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통감하고 구도(求道)를 위한 출가(出家)를 하게 된다. 태자는 2월 8일 한밤중 부왕,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아들과 이별을 하고는 마부 <찬타카> 한사람만을 데리고 성벽을 뛰어넘어 왕궁을 벗어나 출가수행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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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눈 덮인 설산의 나무 아래서 혹독한 수행을 하시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죽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에 몸은 쇠약해서 뼈가 드러나고 정수리는 부스럼이 생겨 가죽과 살이 절로 떨어졌으나 빛나는 얼굴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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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싯다르타는 보리수 아래서“내 만일 정등각을 성취하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결심하고 선정에 든다. 이에 마왕 파순은 요염하고 아름다운 세 딸을 보내 유혹하기도 하고, 온갖 마군의 무리를 동원하여 사문 싯다르타를 향해 겁박하였지만 싯다르타는 일체의 마군을 항복 받고 대자유인이 되어 붓다가 되었음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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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부처님께서 녹야원에서 교진여 등 5명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하신 것을 표현하였다. 이를 초전법륜이라 부른다. 삼법인(三法印),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12연기법 (十二緣起法)을 설하며 세간의 즐거움이나 출세간의 고행 등 어느 한쪽의 치우침으로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고 오직 중도(中道)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대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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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사라쌍수 아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니,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신 이래 45년 동안 조금도 쉬지 않으시고 중생의 고통을 해결해 주셨다. 뒤늦게 도착한 상수(上首) 제자 가섭존자가 부처님께 예를 표하자 관 속에서 두 발을 내어 보이신 후에 저절로 불이 붙어 다비가 이뤄졌다. 이는 부처님의 육신은 사라져도 법신은 영원불멸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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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대한불교조계종 화계사 화계사 대웅전(大雄殿)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화계사 대웅전(大雄殿)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5

    현재의 대웅전은 1870년(고종 7년) 대덕(大德) 용선(龍善)과 초암(草庵)스님이 흥선대원군의 지원을 받아 중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서 지붕 옆면이 여덟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제법 높은 단 위에 세워져 있어 앞마당에서 올려다보면 지붕의 양쪽이 마치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펼친 듯 활력이 있다. 또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인 다포 양식 건물이다. 대웅전은 내부천장의 장식이나 건축 부재의 장식이 모두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목조건축물로 1986년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65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외벽에는 석가모니불의 일생을 표현한 <팔상성도>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정면 문 하단에는 연꽃 문양이 그려져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양옆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다. 현재의 불상은 도난 및 훼손으로 1983년 주지 진암 스님이 다시 조성 봉안한 것이다. 후불탱화는 1875년에 화산(華山)이 조성한 것으로, 주불은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으며 주변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 지장보살 등과 사천왕, 십대제자 등이 그려져 있다. 문미(門楣)에 걸려 있는 대웅전 현판은 신관호(申觀浩)가 쓴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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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주련
    비로해장전무적 毘盧海藏全無跡 비로자나의 법해에는 자취가 전혀 없고
    적광묘토역무종 寂光妙土亦無踵 적광묘토(寂光妙土) 또한 아무런 흔적이 없네.
    겁화통연호말진 劫火洞然毫末盡 겁화가 훨훨 타서 털끝마저 다해도
    청산의구백운중 靑山依舊白雲中 푸른 산은 옛 그대로 흰 구름 속에 솟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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