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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룩스 불교 :: CYLOOKS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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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단법인 선학원
    재단법인 선학원 석두보택 (石頭寶澤, 1882∼1954)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4
    석두보택 (石頭寶澤, 1882∼1954)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4

    선학원 설립의 한 축을 담당했던 석두 스님은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고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 9월4일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화대동에서 태어났다.
    16세때에 안변 석왕사 백하스님은 보택(寶澤)을 법명으로 내리고 출가를 허락했다. 스님은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 헌납(1919년) 등 항일운동에도 관여했고, 선학원 선우공제회 재무부 이사(1922년), 조선불교유신회 사찰령 철폐 건백서 대표(1922년), 선학원 선우공제회 평의원(1924년) 등을 역임하며 한국 선불교의 중흥을 꾀했다.
    송광사 삼일암에 주석하며 부도암에 선원을 개설했다. 순창 순평암에 머물다 해방을 맞이했다.
    71세 되던 해에 몸이 불편하여 미륵도 미래사로 주석처를 옮기고, 1954년4월25일 오후8시30분(세수73세, 법납57세)열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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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2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출생
    1898 안변 석왕사에서 출가
    1919 상해임시정부에 군자금 헌납
    1921 선학원 남전, 도봉스님 등과 선학원 설립
    1922 선학원 선우공제회 재무부 이사
    1922 조선불교유신회 사찰령 철폐 건백서 대표
    1924 선학원선우공제회 평의원
    1954 세수73세, 법납57세로 미륵도 미륵사에서 입적

  2. 재단법인 선학원
    재단법인 선학원 도봉본연 (道峰本然, 1873~1949)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4
    도봉본연 (道峰本然, 1873~1949)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4

    석왕사 경성포교당 포교사(1918년)로 활동하다 선학원 설립에 가담한 도봉 스님에 대한 행장 기록은 정확히 남아 있지 않다.
    일부 문헌의 간헐적인 기록에 따르면, 스님은 석왕사 선실 좌주(1915년), 선학원 선우공제회 평의원(1922년), 조선불교유신회 사찰령 철폐 건백서 대표(1922년), 선학원 선우공제회 수도부 이사(1923년), 선학원 선우공제회 서무부 이사(1924년) 등을 역임했고, 1949년 선학원에서 세수 77세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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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3 출생
    1915 석왕사 선실 좌주
    1918 석왕사 경성포교당 포교사
    1921 남전, 석두스님 등과 선학원 설립
    1922 선학원 선우공제회 평의원
    1922 조선불교유신회 사찰령 철폐 건백서 대표
    1923 선학원 선우공제회 수도부 이사
    1924 선학원 선우공제회 서무부 이사
    1949 세수 77세로 선학원에서 입적

  3. 재단법인 선학원
    재단법인 선학원 남전한규(南泉翰奎, 1868~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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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4-14
    남전한규(南泉翰奎, 1868~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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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4-14

    스님은 1885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신해 스님을 은사로 득도, 사미계 수지했다.
    이어 해인사 주지 소임(1904년)을 맡고, 1908년 해인사에서 제산 스님으로부터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했다.
    이후 범어사 동래포교소 포교사(1911년), 범어사 임제종 중앙포교소 포교사(1912년), 석왕사 경성포교당 포교사(1917년), 범어사 경성포교당 포교사(1918년)로 활동했다.
    1921년에는 도봉·석두 스님과 선학원을 설립한 후 선학원 선우공제회 평의원(1922년), 직지사 조실(1924년),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초대 이사(1934년)를 역임하며 승풍진작에 힘쓰다 1936년 선학원에서 세수 68세 법랍 51년으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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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8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출생
    1885 해인사 백련암에서 신해스님을 은사로 득도, 사미계 수지
    1904 해인사 주지
    1908 해인사에서 제산스님으로부터 구족계와 보살계 수지
    1911 범어사 동래포교소 포교사
    1912 범어사 임제종 중앙포교소 포교사
    1917 석왕사 경성포교당 포교사
    1918 범어사 경성포교당 포교사
    1921 도봉, 석두스님 등과 선학원 설립
    1922 선학원 선우공제회 평의원
    1924 직지사 조실
    1934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초대이사
    1936 세수 68세 법랍 51세로 선학원에서 입적

  4. 재단법인 선학원
    재단법인 선학원 만해 한용운 卍海龍雲 (1879~1944)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4
    만해 한용운 卍海龍雲 (1879~1944)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4

    1879년 7월 20일(음)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출생. 부친 한응준 선생과 모친 창성 방씨의 둘째 아들로 속명은 유천(裕天), 자(字)는 정옥(貞玉)이다.
    19세기말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있던 조선의 현실에 눈을 뜨고 출가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24세 되던 해에 설악산 백담사 주지 연곡(蓮谷)스님을 은사로 사문이 됐다. 이때 계명(戒名)은 봉완(奉玩). 이후 건봉사 만화(萬化)스님 법을 이어 법호를 용운(龍雲), 아호(雅號)를 만해(卍海, 萬海)라고 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위기에 빠진 조선불교를 구하기 위해 영호(暎湖)·진응(震應)·금봉(錦鋒)스님 등과 함께 임제종 운동을 전개했다. 그 뒤 만주를 돌아본 후 다시 백담사에 머물게 된 스님은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하며 ‘신불교운동’을 제창했다. 이후 경성에서 <유심>을 창간했고, 3·1운동에 민족대표로 참여했다.
    이로 인해 스님은 일제에 의해 체포되었다가 1921년에 출옥하였다. 출옥 직전, 임제종 종풍의 계승과 아울러 출옥 후 만해스님의 주석처를 마련하고자 수좌스님들은 최창훈 외 다수 신도에게 기부를 받아 안국동 40번지에 선학원을 마련, 이 후 스님이 머문 선학원은 항일운동과 불조정맥을 전승하는 민족불교의 주된 터전이 되었다. 이듬해 1922년 선학원 ‘선우공제회’ 창립에 스님은 동참하였다.
    1926년 6월 7일, 안국동 40번지를 포위한 종로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지금의 선학원 정문 앞에서 6·10 만세 운동의 주동자로 강제 검거되었다. 1926년은 또한 만해스님이 근대 한국시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시집 <님의 침묵>을 펴낸 해이기도 하다. 이듬해 1927년에는 신간회를 발기하고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 총동맹으로 개편하였다. 1931년 선학원에서 발행한 <선원>의 주요 책임자를 역임하며 대중교화에 매진하였다. 1933년에 심우장에 기거, 해방을 앞둔 1944년 6월 29일에 법납 40세(세수 66세)로 서울 성북구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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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9 충남 홍성 출생
    1905 백담사에서 연곡스님을 은사로, 영제스님에게 수계
    1908 학인스님으로부터 '기신론','능엄경' 등을 수학
    1909 유점사에서 월화스님에게 '화엄경'수학
    1910 「승려취처문제건의서」를 당국에 제출, 「조선불교유신론」 백담사에서 탈고.
    1911 박한영 등과 한일불교동맹 체결반대 궐기대회 개최, 조선 임제종 종무원 서무부장과 관장에 취임,『불교대전』편찬.
    1913 불교종무원을 창설, 통도사 불교강사로도 활약, 조선불교회 회장에 취임.
    1915 조선 선종 포교당에 포교사로 취임.
    1919 3.1운동을 주동, 일경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유명한 「조선독립이유서」제출.
    1921 출옥 및 완공된 선학원에서 주석
    1922 선학원에서 <선우공제회> 발기 및 <법보회> 발기.
    1923 조선불교청년회를 창설, 총재 취임.
    1925 오세암에서 선서 『십현담주해』와 시집 『님의 침묵』을 탈고, 이듬해 간행.
    1926 6·10 운동 주모자로 거사 3일전 안국동 40번지(선학원)에서 일본경찰에 의해 긴급 검거.
    1927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를 발기,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 총동맹으로 개편
    1931 선학원 불교잡지 <선원>의 주요책임을 맡아 주요 집필자로 활동하며 대중교화에 매진.
    1933 『유마힐소설경』번역을 시작하였고,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에서 기거
    1944 6월29일 (음력 5월 9일) 심우장에서 입적

  5. 재단법인 선학원
    재단법인 선학원 요사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4
    요사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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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재단법인 선학원
    재단법인 선학원 향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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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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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4
    향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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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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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4

    서울특별시 종로구 윤보선길 18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82

    18 Yunboseon-gil, Jongno-gu,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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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재단법인 선학원
    재단법인 선학원 시민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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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4-14
    시민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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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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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재단법인 선학원
    재단법인 선학원 옛 선학원(중앙선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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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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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4
    옛 선학원(중앙선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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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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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4

    한국불교의 자주성을 회복하기 위해 1921년 12월에 창건한 선학원은 일제 사찰령의 구속을 받지 않으려는 선사들의 투철한 현실인식에서 창건되었다.
    사찰의 명칭에 사(寺)나 암(庵)을 쓰지 않고 선학원이라는 명칭을 내세운 것은 그 단적인 예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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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3교구 신흥사 사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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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4
    사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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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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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4

    일주문
    신흥사 일주문은 소박한 모습으로 옆에서 보면 마치 하나의 기둥처럼 겹쳐보입니다. 각 한 개의 기둥위에 지붕이 얹혀 있으며, 사찰에 있는 산문(山門) 가운데 첫 번째 문인 일주문(一柱門)은 세속의 번뇌를 떨치고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 진리와 깨달음의 세계로 향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신흥사 통일대불
    1987년에 제작하여 10년 후인 1997년에 완성된 통일대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남북의 통일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조성된 불상입니다.
    통일대불은 108톤의 청동으로 제작되었으며, 미간 백호(白毫)에는 지름 10cm의 인조 큐빅 1개와 8cm 큐빅 8개가 박혀 있어 밤에는 찬란한 광채를 발하여 신비함을 더합니다.
    좌대 둘레에는 지극정성으로 통일을 발원하는 16나한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통일대불 아래는 내원법당 있는데, 중앙에 천수천안(千手天眼) 관세음보살님, 좌 여의륜, 우 준제관세음보살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또한 1992년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3과와 다라니경, 칠보 등 복장 유물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사천왕문

    신흥사 경내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인 사천왕문(四天王門)은 1811년 창건,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972년에 중건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는 경 내외(內外)를 구분하는 문으로 해탈문(解脫門) 혹은 불이문(不二門)을 두고 있으나, 신흥사는 사천왕문이 경내에 이르는 마지막 문입니다.
    사천왕문은 불국토를 지키는 동서남북(東西南北)의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수호하고, 도량을 청정하게 지키고 또한 악귀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보제루(寶濟樓)
    1770년에 세워진 보제루는 직사각형의 큰 누각으로 외관은 다락의 형태이며, 하층의 중앙 칸은 극락보전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보제루는 기둥의 길이에 깊은 뜻이 숨어있습니다. 보제루가 세워지던 당시 조선의 유생들은 법당 앞마당까지 말이나 가마를 타고 들어가는 것을 예사로 행했습니다.
    법당 앞에 보제루를 세우면서 부처님이 계신 극락보전 앞쪽의 기둥의 높이를 짧게 해 유생들 어쩔 수 없이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서 극락보전에 계신 부처님을 향하여 하심(下心)을 유도,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보제루는 자신을 낮추는 겸양과 지혜를 몸소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또한 보제루 누각 네 벽에는 추사(秋史) 김정희가 쓴 현판(板)이 걸려있습니다.

    극락보전(極樂寶殿)
    보물 제1981호로 지정된 극락보전은 1644년에 세운 건물로 중앙의 공포와 단청이 지극히 아름다운 전각입니다.
    극락보전은 서방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좌 관세음보살님, 우 대세지보살님이 모시고 있으며 정면과 측면 각 세 칸으로 된 신흥사의 메인 법당입니다.
    극락보전 문은 화려한 꽃살무늬인데, 뭉툭한 나뭇조각으로 꽃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꽃과 어울리는 나비며, 새, 거북이, 물고기 등을 함께 조각하여 색칠한 모양을 갖춘 것이며, 또한 나비의 눈높이로 조각된 꽃의 방향 등이 매우 화려한 것이 특징입니다.
    극락보전 앞 계단 소맷돌에는 선한 눈의 용의 모습과 구름을 타고 있는 도깨비가 새겨져 있습니다.
    1651년 조선의 조각승려인 무염이 제작했는데, 제작 시기와 작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봉안된 삼존불은 의상이 중건할 때 조성한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명부전(冥府殿)
    지장보살님을 모신 명부전은 앞면 세 칸, 옆면 두 칸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졌습니다.
    지장보살님은 지옥의 모든 중생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기 전까지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신 분입니다.
    이 지장보살님도 조각승려인 무염이 제작하였으며 현재는 2012년에 국보 제 174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0.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소의경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3
    소의경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13

    소의경전이란 종단의 근본경전을 말한다. 조계종의 소의경전은 『금강경(金剛經)』과 『전등법어(傳燈法語)』이다.

    『금강경』은 대승불교의 공사상이 집약된 경전이다. 언어와 문자를 떠나 마음을 바로 보는 것을 강조하는 선종에서도 『금강경』을 의지하여 깨달음을 가르쳤다. 육조 혜능스님의 출가 계기도 『금강경』의 한 구절과의 인연이었고, 마침내 확철대오 하는 깨달음을 얻은 것도 오조 홍인스님이 설한 『금강경』 때문이었다. 오조 홍인스님과 육조 혜능스님 이외의 수많은 스님들도 『금강경』을 항상 가까이 하였으며, 부처님의 여러 경전 중 에서도 주석서와 강설집이 가장 많은 경전이 『금강경』으로 알려져 있다.

    조계종은 소의경전으로 『금강경』 이외에 『전등법어』도 중시하고 있다. 『전등법어』란 선종의 조사스님들이 깨치고 설법한 법어집을 말하는데, 『육조단경』과 『임제록』, 『서장』, 『선요』 같은 조사어록을 말 한다. 또한 조계종은 그 외의 경전 연구와 염불, 주력 등 불교의 여러 수행법과 가르침도 제한하지 않고 포용하는 통불교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