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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서대문구 홍제천 개울가에 위치한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 불암(佛巖).
고려 초기부터 유행하던 높은 보관을 쓰고 계시는 옥천암 마애불은 둥그스름한 얼굴에 눈이 가늘고 입이 작게 표현되어 고려시대 마애불상의 특징을 보여주며 천년관음도량 옥천암의 역사를 이루고 있다. 1910년 옥천암 (출처 - '은자의 나라' 내셔널지오그래픽)
조선 태조 이성계가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할 때 이 마애불상 앞에서 기원했다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옥천암 마애불은 많은 사람들이 공양과 봉헌을 하던 곳으로 다양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1830년대 자료로 추정되는 『한경지략(漢京識略)』에는 “...옥천암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샘이 언덕 위 바위 사이에서 흘러 바람병 · 체증 있는 사람이 마시면 신효하게 낫고 눈병에도 씻으면 낫는다고 한다. 옥천암의 불상은 언덕 바위를 깎아서 만들고 해수관음보살(海水觀音菩薩)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옥천암 약수의 신통한 효험을 말하고 있다. 또한 불암 대신 옥천암 해수관음이란 말이 전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옥천암의 석불 위에 기와집을 지은 것은 1868년에 고종의 부인 명성왕후가 관음전, 보도각을 짓고, 흥선대원군이 현판을 썼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하다. 또한 고종의 모친인 여흥부대부인 민씨가 고종의 천복을 빌며 호분(胡粉)을 발랐다는 전설도 전하고 있다.
흰색의 호분이 전체적으로 칠해져 있기 때문에 백의관음 또는 백불(白佛)이라고도 한다.
또한 19세기 초 고양군 신도면에 살던 윤덕삼이라는 노총각이 옥천암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여 소원대로 가정을 이뤘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옥천암 보도각 백불님은 좋은 인연을 만들어주시는 것으로도 유명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기 위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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