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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불교조계종 운문사 운문사 전각 조영당(祖影堂)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운문사 전각 조영당(祖影堂)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운문사에 주석하였던 원광국사·보양국사·원응국사 등 3대 중창주와 운문사에 주석했던 열한 분 조사의 영탱과 운문사 수호에 공이 많은 손 장군과 김 장군의 영정을 봉안한 공간이다.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 아니므로 당(堂)이라 하였으며, 해마다 음력 9월 9일에 여러 조사와 두 장군을 위한 합동 제(祭)의식을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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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광국사 (558~638)
    신라 중기의 스님.
    중국 구법승으로 성은 박씨, 진한 사람이다.
    579년(신라 진평왕 1) 25세에 출가하여 30세에 경주 안강의 삼기산(三岐山)에 들어가 수도하였다.
    589년 중국 장안에 가서 담천(曇遷)의『섭대승론』강의를 듣고, 혜원·영유등에게『열반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을 배워 600년에 귀국했다.
    이후『 여래장경사기』, 『 대방등여래장경』등을 지어 불교의 새로운 지식을 신라에 도입했다. 또한 가슬갑사에 주할 때 화랑도인 귀산과 추항이 찾아와 교훈을 청하므로 세속오계를 주었다.
    황룡사에서 나이 84세, 법랍 59세로 입적했다.
    명활산(明活山)에 장사 지내고 삼기산 금곡사(金谷寺)에 부도를 세웠다.

    보양국사 (생몰연대미상)
    신라말 고려초의 스님.
    중국 구법승으로 운문사를 중창한 스님으로 운문사에서 입적했다. 일명 지식(智識)이라고도 한다.
    당나라에 가서 법을 전해 받고 귀국하다가 서해에서 용왕의 영접으로 용궁에 들어가 경을 설하고 금라가사(金羅架娑)한 벌을 받았다.
    처음 당나라에서 들어와 밀양 봉성사(奉聖寺)에 있을 때, 고려 태조가 군사를 거느리고 청도에 이르니 산적들이 견성(犬城)에 모여 항복하지 않았다. 태조가 국사에게 항복 받을 도리를 묻자 '개는 밤만 지키고 낮은 지키지 않으며, 앞만 지키고 뒤는 지키지 못하니 낮에 북쪽을 치라'고 가르쳐 주었다. 태조가 이 말대로 하여 산적을 항복받았다고 한다.
    얼마후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가 작갑사가 지어진 내력을 듣고 밭 500결을 봉납했다.
    937년 고려 태조는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을 내렸다.

    원응국사 (1052~1144)
    고려 숙종 때 승려로서 성은 이씨이고 속명은 학일(學一)이며, 자는 봉거로 11세에 진장법사에 의해 입산하여 희함선사(喜含禪師)에게 학문을 배웠다.
    33세 때 송나라에 건너가 종전삼장과 천태교를 배워 34세에 귀국하였다. 그후 삼중(三重)대선사라는 칭호를 받았고, 예종 2년에 국사가 되었다.
    93세로 입적하자 업적을 찬양하여 '원응'이란 시호를 내리고 많은 전답과 노비를 하사하고 비를 세워 공덕을 추모하였다.
    비문은 윤언이가 지었으며, 서체는 대감국사 탄연이 썼다고 전한다.

    성파당 현척 대선사
    부도는 1791년(이조영조 27년)에 건립하였으며 운문사 동편 부도전에 위치해 있다.
    가로 77cm, 세로 112cm

    도봉당 유문 대선사
    전기는 미상이며 부도는 본사 동편에 있으며 1751년(이조영조 27년)에 건립하였다.
    가로 74.5cm, 세로 114.5cm

    연파당 대선사
    전기는 미상이고 부도는 본사 동편에 있으며 비명은 마멸되어 판독할 수 없다.
    가로 79cm, 세로 154.5cm

    운문보익정암당 효원대사
    전기는 미상이나 1845(헌종 11년)사리암을 중창하였다.
    가로 74cm, 세로 114cm

    운악대사
    조선말기의 고승으로 속성은 김씨요. 이름은 두안이고 자는 운악이며 본군 신원동사람이다.
    만일회를 창건하여 선과 염불을 쌍수하고 1851년(조선 철종2년)에 응진전을 초창하였으며 전각과 내원암, 북대암등을 중수하고 대종을 조성하였다.
    부도와 본사 중수 후의 행적은 미상이다.
    가로 74cm, 세로 113..5cm

    설송대사
    조선중엽의 고승으로 속성은 백씨요, 호는 설송이며 자인현 사람이다.
    13세에 삭발하고 운문사에 입산한 후 선교에 통달하여 강설함에 많은 학승들이 따랐다.
    1690년(조선 숙종 16년)에 본사를 제 4차 중창하고 1694년(조선 숙종 20년)에 입적하시니 통도사와 운문사 두곳에 사리탑이 있다.
    부도는 본사 동편에 있다.
    가로 74.5cm, 세로 113.5cm

    동호당 대선사
    선교양종 동호당 대선사는 전기 미상이다.
    가로 76cm, 세로 112cm

    진계당 대선사
    전기는 미상이고 부도는 본사 동편에 있으며 건립년대는 미상이다.
    가로 73.5cm, 세로 112.5cm

    김식희 대장군
    본관은 강릉 김씨이며, 신라말, 고려초의 사람이다.
    태조 왕건의 선봉장으로 많은 공훈을 세운 문무를 겸비한 장군이다.
    두 장군이 유언하시기를 우리는 죽은 후에도 운문사의 수호신이 되겠다는 말에 따라 조영당에 모시고 있다.

    손긍훈 대장군상
    본관은 밀양 손씨이다.
    나말여초 고려 태조 왕건의 선봉장으로 많은 공훈을 세운 무관이다.
    두 장군이 유언하시기를 우리는 죽은 후에도 운문사의 수호신이 되겠다는 말에 따라 조영당에 모시고 있다

  2. 대한불교조계종 운문사 운문사 전각 작압(鵲鴨)·작압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운문사 전각 작압(鵲鴨)·작압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작압(鵲鴨)·작압전
    운문사의 전신인 대작갑사의 유래를 알게 하는 유일한 건물인 작압전은 전면 측면이 모두 한 칸에 불과한 작은 건물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한 신승(神僧)이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비로운 새 떼가 날아오른 것을 본 자리에 이르러 암자를 짓고 수행하여 큰 도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새를 보고 이른 터에는 무너진 석탑이 있어서, 무너져 있는 석조물로 다시 탑을 쌓으니 파편이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는 것을 보고 좋은 징조로 여겼다고 한다.
    그가 깨달음을 얻은 뒤 절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동쪽에 가슬갑사·남쪽에 천문갑사·서쪽에 대비갑사·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다섯 사찰을 두고 오갑사(五鴨寺)라고 하였다.
    작압전은 신승이 발견한 석탑터에 지어진 전각으로, 나말려초의 보양국사가 전탑형식으로 초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현재의 목탑형식으로 재건되었다. 내부에는 보물 제 317호 석조여래좌상과 318호 사천왕 석주를 봉안하고 있다.

    보물 제 317호 석조석가여래좌상

    작압전에 봉안된 통일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다. 항마촉지인(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신 뒤 마왕 파순에게서 항복을 받을 때 취하신 수인으로, 地神이 부처님의 깨친 바를 증명하며 진동을 일으키도록 명하신 자세를 일컫는다.)을 하고 있다. 부처님을 봉안한 좌대와 광배가 모두 갖추어진 완전한 불상으로 불상 높이 63CM, 대좌높이 41CM, 광배 높이가 92CM에 이른다.

    보물 제 318호 사천왕 석주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운문사 사천왕 석주는 그 예가 드물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탑의 기단부를 장식하기 위해 조각되었던 것이 파편으로 남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석주 네 기가 각각의 높이가 달라서 정확한 추정으로 인정받고 있지는 않다.
    사천왕은 사방에서 불법을 수호하겠노라 서원을 세우고 수미산의 동서남북에서 악을 물리치는 천신(天神)으로 동방 지국천왕(비파), 서방의 광목천왕(용과 여의주), 남방의 증장천왕(칼), 북방 다문천왕(보탑)을 통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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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대한불교조계종 운문사 운문사 전각 청풍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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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운문사 전각 청풍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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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대중이 운집하여 발우공양을 하고 자자·포살 및 차례법문 등의 행사를 열 수 있을 만큼 큰 요사채가 청풍료다. 이곳에는 평상시 사미니과(1학년)와 사집과(2학년) 스님들의 방사이기도 한데, 상주인원이 약 120여 명으로 수행과 대중생활에 필요한 하심과 화합을 체득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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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대한불교조계종 운문사 운문사 전각 칠성각(七聖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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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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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운문사 전각 칠성각(七聖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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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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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독성(나반존자), 칠성, 산신 등 세 성현을 모신 전각이다. 삼성각은 우리나라 재래의 수(壽), 복(福), 재(財)의 삼신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전각이다. 독성이라는 불교적 성현 외에도 칠성·산신과 같은 전통신앙의 대상을 불교로 흡수하여 불교가 가진 원융의 성격을 드러내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통적인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 아니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 이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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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대한불교조계종 운문사 운문사 전각 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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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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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운문사 전각 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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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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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1973년 신축한 이 건물은 현재 사미니과(1학년) 스님들의 강의실과 전산실 및 서도실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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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대한불교조계종 운문사 운문사 승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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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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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운문사 승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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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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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운문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한 신승이 창건하였다.
    608년(진평왕 30)에 원광 국사가 제1차 중창하였다.
    원광국사는 만년에 가슬갑사에 머물며 일생 좌우명을 묻는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주었다고 한다.
    제2차 중창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이 오갑사(五岬寺)를 중창하였다.
    943년 고려 태조 왕건은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운문선사(雲門禪寺)라 사액하고 전지(田地) 500결을 하사하였다.
    제3차 중창은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가 송나라에서 천태교관을 배운 뒤 귀국하여 운문사에 들어와 중창하고 전국 제2의 선찰로 삼았다.
    1690년(숙종 16) 선교를 두루 겸비하신 설송(雪松)대사가 제4차 중창을 한 뒤 약간의 수보(修補)가 있어 왔다.
    1907년 만일염불회를 주관하신 운악(雲岳)대사가 제5차 중창을, 1912년 긍파(肯坡)대사가 제6차 중창을 하였다.
    1913년 고전(古典)선사가 제7차 수보하였고, 비구니 금광(金光)선사가 제8차 수보를 하였다.
    1977에서 98년까지 명성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대웅보전과 범종루와 각 전각을 신축, 중수하는 등 경내의 면보를 한층 일신하였다.
    현재는 30여동의 전각이 있는 큰 사찰로서 규모를 갖추었다.
    운문사는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었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되어 승려 교육과 경전 연구기관으로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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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대한불교조계종 운문사 운문사 한문 불전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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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운문사 한문 불전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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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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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문사 ‘漢文佛典僧伽大學院’은 구족계를 수지한 비구니 스님들이 한문 불전과 불교 교학을 수학하고 연찬하는 전문교육기관이다. 대소승불교의 삼장을 체계 있게 공부하며, 주 교재를 한문 원전으로 학습한다. 불교학과 불교사상 및 불교교리 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연구를 통하여, 교수 및 전문 인력을 육성하여 전통 승가교육의 가풍을 전승 하고자 설립한다.

    槪要
    운문사 한문 불전 대학원은 한문 불전과 문헌을 학습함으로써 한문 불전 번역 연구와 한문 불전 경학 연구를 병행한다.
    대승경전인 화엄경, 능엄경, 금강경 등과 대승불교의 대표적 논서인 대승기신론 등의 주요 전적을 한문 원문으로 학습하고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이해하며 불교한문 원전 해석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자 한다.

    目標
    대승불교의 주요 경전과 사상의 연구
    한문 불전과 문헌 학습을 통한 번역과 경학 연구
    전통 불교 교육의 계승 및 수행 체계 실현

  8. 대한불교조계종 운문사 운문사 보현율원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운문사 보현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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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운문사 보현율원은 지계(持戒) 생활이 없는 곳에는 승가도 성립될 수 없다는 큰스님들의 뜻을 이어받아 부처님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한 계행(戒行)을 전문적으로 익히고 연구하고자 2008년 4월 설립되었다.

    설립목적
    석가세존의 유훈을 이어받아 자장율사의 남산율맥을 계승하여 수행자의 청정지계가풍을 확립하고자 한다.
    또한 대애도비구니의 계율정신에 의거하여 청정하게 수행하고 나악 중생 교화에 기여하고자 함을 목적으로 한다.

    보현율원의 율훈
    一. 持戒第一
    二. 持戒淸淨
    三. 攝化衆生

    율원의 설립목표
    대소율장의 전문적 연구
    습의와 예참의 올바른 전승
    율학을 전승할 율사의 양성

    2008년 4월 4일 대중스님들의 "계! 정! 혜!" 삼학을 외치는 소리와 함께 운문사 보현율원 현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운문사 본현율원 개원식에는 교육원장 청화스님, 운문사 보현율원 율주이신 명성스님, 운문사 주지 진성스님, 대구 동화사 총무국장 현관스님 등 사부대중 100여명이 참석해 율원 개원을 축하해 주셨다.
    또한 보현율원 1기 율원생으로 입한한 9명의 스님은 소정의 교육기관을 거쳐 비구니 율사로 탄생할 것이다.
    개원식 날 교육원장 청화스님은 "보현율원의 개원을 계기로 계율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축사를 해주셨고, 운문사 보현율원 율주 명성스님은 '말이 행(行)보다 지나치는 것을 부끄러이 여겨라'는 뜻의 '치기언과기행(恥其言過其行)' 을 언급하며 율원 스님들의 정진을 당부했다.
    교과목으로는 1년차 때 계율 개론, 사미니 율의 및 주석서, 남북전율장 비교 연구, 선원청규 등으며 2년차 때는 사분비구니 율장, 범망경, 비구니 교단사 (인도, 중국, 한국 비구니전) 등이다.

  9. 대한불교조계종 운문사 운문사 역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운문사 역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제2차 중창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이 오갑사(五岬寺)를 중창하였다.
    943년 고려 태조 왕건은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운문선사(雲門禪寺)라 사액하고 전지(田地) 500결을 하사하였다.
    제3차 중창은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가 송나라에서 천태교관을 배운뒤 귀국하여 운문사에 들어와 중창하고 전국 제2의 선찰로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당우 일부가 소실되었다.
    1690년 (숙종 16) 설송(雪松)대사가 제4차 중창을 한 뒤 약간의 수보(修補)가 있어 왔다.
    1835년 운악(雲岳)대사가 제5차 중창을, 1912년 긍파(肯坡)대사가 제6차 중창을 하였다.
    1913년 고전(古典)선사가 제7차 수보하였고, 비구니 금광(金光)선사가 제8차 수보를 하였다.
    1977에서 98년까지 명성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대웅보전과 범종루와 각 전각을 신축, 중수하는 등 경내의 면모를 한층 일신하였다.
    현재는 30여 동의 전각이 있는 큰 사찰로서 규모를 갖추었다.
    운문사는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었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되어 승려 교육과 경전 연구기관으로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다.

    나말려초의 운문사
    [운문사사적]에 의하면 557년(진흥왕 18 년)에 한 신승(神僧)이 북대암 옆 금수동에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하여 도를 깨닫고 도우(道友) 10여 인의 도움을 받아 7년 동안 5갑사를 건립하였는데,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현 대비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현 운문사)를 창건하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운문사와 대비사 뿐이다.
    그후 600년 (신라 진평왕 22) 원광 국사가 중창하였다.
    그는 대작갑사와 가슬갑사에 머물면서 점찰법회를 열고, 화랑도인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 오계를 내려줌으로써 화랑정신의 발원지가 되었다. 오갑사가 창건된 시기는 신라가 불교를 중흥하고 삼국통일을 위해 국력을 집중하여 군비를 정비할 때였다.
    이때 오갑사가 운문산 일대에 창건되고 화랑수련장이 만들어 진다. 그것은 곧 신라가 서남일대 낙동강 유역으로 국력을 신장해가는 과정으로써 운문사 일대가 병참기지로서 당시 신라로서는 전략상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고려, 조선시대의 운문사
    [삼국유사] 보양이목조에는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태조왕건은 운문사에 있던 보양국사의 계책으로 이 일대를 평정하였다.
    그 뒤 후삼국의 사회적 혼란을 어느 정도 수습한 왕건은 937년(태조 20년), 대작갑사에 '운문선사'라는 사액과 함께 전지 500결을 하사하였다." 고 한다.
    이 때부터 대작갑사는 운문사로 개칭되었고, 경제적 기반을 튼튼히 구축한 대찰로서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 학일이 제3차 중창한 후 왕사로 책봉되었다.
    원응국사는 1129년(인조 7) 부터 이 절에 머무르실 때 운문사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1277년 일연선사는 고려 충열왕에 의해 운문사의 주지로 추대되어 1281년까지 머무르셨다.
    이 곳에서 일연은 『삼국유사』 의 집필을 착수하였다. 운문사의 절 동쪽에는 일연선사의 행적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조선시대인 18세기 중반, 운문사는 설송 연초대사가 제4차 중창할 때와 19세기 전반 헌종 년간에서 운문사의 사세는 상당했다. 운문사의 제5차 중창주인 운악화상은 1839년에 오백전을 중수하였다. 이듬해 응진전과 명부전, 미타전, 내원암, 북대암등을 중건하였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청신암을 창건하였고, 1842년 금당을 중건하였다.

    근현대의 운문사
    해방이후 제 1세 김상명 스님에서 제 4세 박상웅스님까지 잠시 대처승이 거주하였다.
    1950년대 교단정화 이후 비구니 정금광 스님이 1955년 초대 주지로 취임하여 제 8차 보수.중창하였다.
    이후 2.3대 유수인, 4대 배묘전 , 5대 이태구, 6대 안혜운, 7대 위혜안 스님을 거쳐 8대부터 12대까지(1977~1998) 전명성 스님이 운문사 주지와 학장을 겸임하면서 제9차 중창불사를 이룩, 대웅보전과 요사 등 29동을 신축하고, 만세루 등 기타 전각들을 중수하는 등 명실공히 대가람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이어 1998년부터 제13대 주지로 송혜은 스님이 부임하면서 선원을 신축하여 교와 선을 아울러 익힐 수 있는 도량으로 가꾸었다. 2002년부터 제14대 주지는 흥륜강사스님이 소임을 사셨으며, 15대는 2010년까지 진성스님이 주지를 맡았다.
    2014년까지 일진강사스님, 2018년까지 진광강사스님이 소임을 살았으며 현재는 운산강사스님이 주지 소임을 살고 있다.
    1997년 비구니 강사를 양성하는 전문 교육기관으로는 최초로 승가대학원이 개설되었다.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된 이래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명칭이 바뀌고 전문교과 과정과 교수진을 확보하여 승가대학의 명분에 걸맞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대략 16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이곳에서 경학을 수학하고, 계율을 수지봉행하고 있으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 청규를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
    운문승가대학은 국내 승가대학 가운데 최대의 규모와 학인수를 자랑하고 있다.

  10.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6교구 고운사 고운사 법회 안내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고운사 법회 안내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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