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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룩스 불교 :: CYLOOKS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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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6교구 고운사 고운사 전각 일주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고운사 전각 일주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사찰의 입구로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이다. 가장 아름답고 한국적인 일부문을 꼽으라면 고운사의 일주문을 추천하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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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6교구 고운사 고운사 전각 고불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고운사 전각 고불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오래된 석불을 봉안해 놓은 아주 작은 전각으로 그 요철 모양의 구조가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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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6교구 고운사 고운사 전각 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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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고운사 전각 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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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법고ㆍ범종ㆍ목어ㆍ운판의 사물(四物)이 설치되어 있다. 조석예불에 그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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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6교구 고운사 고운사 전각 종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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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고운사 전각 종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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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현재 사찰의 사무를 보고 있는 낙서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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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6교구 고운사 고운사 전각 적묵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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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고운사 전각 적묵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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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1990년에 세워진 건물로 객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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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6교구 고운사 고운사 전각 연지암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고운사 전각 연지암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원래있던 연지암을 헐고 1997년에 확장하여 지은 건물로 그앞에 작은 연못이 있었다. 소임을 보는 스님들의 숙소와 차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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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6교구 고운사 고운사 전각 아거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고운사 전각 아거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원래 서산대사의 진영을 모시던 영각이었으나 현재는 스님의 숙소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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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6교구 고운사 고운사 고금당 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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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고운사 고금당 선원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고금당 선원은 서산, 사명, 전강 큰스님들이 거쳐간 활구 참선 도량이다.
    특히 1980년 주지로 부임하신 현봉 근일 대종사께서 용맹 정진 도량을 만들어 대중을 지도하여 오셨다.
    지금의 고금당 선원은 1990년 새로 옮겨졌으며, 지금은 조실 스님의 지도 하에 면벽 참석 납자가 끊이질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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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6교구 고운사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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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2

    부처님께서 가르치신대로 바른 수행은 계정혜 삼학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한국 불교 실천 수행의 주류인 선(禪)의 사상적 토대는 곧 화엄입니다.
    일찍이 先師들은 화엄을 통해 선(禪)의 교학적 사상체계를 세웠으며, 선(禪)을 통해 화엄의 실천적 입장을 넓혀감으로써 선(禪)敎가 일치된 조화로운 수행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의상스님이 중국으로 건너가 지상사에서 중국 화엄종의 2조이신 지엄스님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우고 익혀 “화엄일승법성게”를 지어 인가를 받고 신라로 돌아와서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경을 강의하여 신하 화엄종의 종조가 되었습니다.

    이후 화엄이 널리 홍포되어 화엄십찰이 이루어져 신라불교의 중요한 뼈대가 되고 많은 화엄종장이 나타나 한국불교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화엄교학과 선(禪)의 접목을 꾀한 분 중에 대표적인 인물로 보조국사 지눌을 들 수 있습니다.
    『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에 선교(禪敎)를 함께 닦을 것을 권하였으며,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등을 지어 화엄의 교(敎)와 선(禪)을 하나로 묶어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하였습니다.
    이렇듯이 선(禪)과 화엄은 한국 불교의 두 축을 이루며 사상의 토대를 심화하고 실천의 활로를 열어왔습니다.
    그러므로 한국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바른 수행을 닦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로부터 강원에서는 『화엄경(華嚴經)』을 대교과(大敎科)에 두어 매우 중요하게 여겨 배우고 연구해왔습니다.
    그러나 강원에서는 여러 가지 여건상 깊이 있는 『화엄경(華嚴經)』 공부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화엄은 그 방대한 양과 담겨진 사상의 심후함만큼이나 그에 맞는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에 고운사에서는 의상스님이 창건한 사찰로써의 역사적 소명의식으로 이 땅에 다시 화엄사상을 꽃피우기 위하여 각성큰스님을 모시고 화엄학림을 설립하여 의상의 화엄사상의 맥을 다시 이어 화엄학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연구를 하고, 화엄학의 전문성과 학술을 가진 정통한 화엄학자를 양성하며, 화엄학 교육을 담당 할수 있는 승가 교육 전문가를 양성 하는 것을 목표로 2년 동안 『화엄경(華嚴經)』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수행하는 화엄경 전문교육기관 되고자 합니다.
    이때 우리는 교육 대상자들이 승가 구성원인 수행자들임을 충분히 염두에 둘 것입니다.
    신앙과 승가의 일상생활이 원만히 이루어지는 토대 위에서 학업이 진행되도록 유념하여 고운사 화엄학림 승가대학원에서는 궁극적으로 화엄사상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불교를 올바로 인식하고 실천하여 현대사회에 부응할 수 있는 참신한 인재, 우리가 물려받은 모든 불전과 기타 문헌을 번역하고, 연구하고, 교수할 수 있는 유능한 인력, 앎과 삶, 곧 이(理)와 사(事), 지(知)와 행(行)의 일치를 지향하는 바람직한 수행자를 육성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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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대한불교조계종 용문사 용문사 전각 대장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1
    용문사 전각 대장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01

    대장전은 용문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용문사의 주불전인 보광명전과 나란히 서 있는 대장전은 경전을 봉인하는 전각으로, 안에 안치된 2좌의 윤장대로 더욱 유명하다. 대장전은 초창부터 중창까지 기록이 잘 남아있다. 이 건물의 이력을 알려주는 기록으로는 <중수 용문사기>(1185)와 「속용문사적기」(1688), <예천용문산창기사대장전중수상량문>(1767, 이하 <중수상량문>) 등이 있다. 이중 <중수상량문>은 기록이 현존하지 않고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간행한『한국의 고건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수용문사기>를 보면, 1173년에 2좌 윤장대를 안치할 3칸까지 건물을 지었다고 하나, 현 건물의 모습은 초창 당시의 건물이 아니고 조선시대에 중수가 거듭되어 새롭게 지어진 건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767년 대장전 중수 때 적은 상량문에는 1173년의 초창뿐만 아니라 1467년, 1534년, 1597년, 1665년의 중수 연대가 순차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중 1665년 중수 기록을 「속용문사적기」에서는 1670년으로 적고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착오라기 보다 1665년과 1670년에 거듭된 보수의 기록으로 추정된다. 「속용문사적기」에서 당시 대장전 수리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은 적묵당의 '構' 범종루의 '建', 광명전의 '立', 지장전의 '作', 응향각의 '成', 삼강당의 '設', 만월당의 '起' 등 과는 엄연히 다른 표현으로 건물 전체의 중수가 아니라 부분적인 수리를 의미한다. 두 기록에 무게를 둔다면, 1665년에 대대적인중수를 하고 나서 1670년에 기와의 이완으로 빗물이 들어가서 서까래를 교체하고 기와를 고르는 수준의 공사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 대장전은 「속용문사적기」의 수리 기록에 근거해 정교하고 수준 높은 치목과 장엄, 그리고 내부에 봉안된 아미타삼존불과 목각탱의 조성시기인 1684년과 연결해 17세기 건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세부 부재를 살펴보면, 공포의 쇠서가 유연하게 올라가기 시작하고, 공포를 비롯해 건물의 내·외부에 연꽃의 장식요소가 강조되었으며, 측면의 칸수와 고주의 처리가 후대에 주로 쓰이는 수법이라는 점에서 18세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본 아미타삼존불과 목각탱이 1683년에 세워진 금당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져, 불상과 연계한 조성시기 추정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2001~2004년도 해체수리과정에서 시도된 연륜연대조사방법에 의하면, 19세기에도 보수가 있었다. 또한 기단 공사를 위한 간이시굴조사 중 현 기단 속에서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이 노출되었는데, 창건당시의 대장전 유구일 가능성이 높다.
    대장전은 윤장대와 건축적 수법 외에도 건물 외·내부의 용과 물고기 장식이 눈길을 끈다. 용과 물고기는 물과 관련된 상징물로, 이는 "일찍이 서역의 구담씨가 팔만대장경 전장을 용궁에 안치하였는데 이로 인해 대장전이 세워졌다."는 <중수상량문> 내용과 상통한다.

    건물의 현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형적인 다포계 맛배집으로 처마는 겹처마이다. 측면의 칸수도 2칸으로 계획된 것으로 보면, 1767년 중수시 완성된 형태로 보인다. 공포는 내·외로 2출목이고 삼분변작에 가까운 건물이다.(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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