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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범종각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송림사 범종각-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불교 사찰에서 범종을 두는 당우(堂宇).
범종을 달아 놓은 전각을 말한다. 당호는 절에 따라 범종루·종각·종루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단층일 경우 각(閣)이라 하고 중층일 경우 루(樓)라고 한다.
규모가 큰 사찰에서는 중층으로 세워 법전사물(法殿四物)을 함께 두기도 한다. 전각의 외양은 대개 기둥과 목책이 있는 사각의 단층 건물이거나, 2층 누각이다.
보통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법당 앞에 있거나 일주문 왼쪽에 있는데, 중층 누각의 경우는 다르다.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浮石寺)의 경우는 해탈문인 안양루 아래에 있고, 청도 운문사(雲門寺)의 경우는 누각 밑이 바로 사찰 진입로이다.
전라북도 완주 송광사(松光寺)의 경우는 평면이 십자형이다.
영암 불갑사(佛甲寺)의 범종루는 6각의 중층 누각으로, 1층에 목책을 두르고 범종을 안치했으며 난간을 두른 2층 다락은 비워두었다.
고창 선운사(禪雲寺)에서는 천왕문 2층에 범종과 법고를 함께 둔다.
범종각에 범종과 함께 두는 법전사물은 법고(法鼓)·운판(雲板)·목어(木魚)이다. 법고는 바닥에 두고 운판과 목어는 보나 도리에 매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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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복장전적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송림사 복장전적-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366호
지정일 : 2005년 05월 23일
소유자 : 송림사
관리자 : 송림사
수량(면적) : 21종 34책
2002년 조계종 총무원의 조사 당시 명부전 석조삼장보살좌상 중 천장보살상의 복장에서 천장보살상중수발원문과 함께 총 21종 34책의 경전, 다라니류, 후령통 등이 발견되었다.
중수발원문은 연대가 적혀있지 않아 작성 연대를 알 수 없지만 모든 재해가 사라지고 수복이 증장하며 돌아가신 부모와 조부모를 비롯한 모든 영가들이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며 천장보살상을 중수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경전류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조선 성종 19년(1488) 고산 화암사에서 개판된 『금강반야파라밀경』이며 가장 늦은 시기의 것은 영조 29년(1753) 팔공산 동화사에서 개판된 『불설아미타경』이다.
이를 통해 천장보살을 비롯한 석조삼장보살좌상의 조성 상한연대를 1753년 이후로 추정할 수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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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송림사 산신각-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산신은 누구이며 어떻게 불교에 들어 왔는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교권내에서는 불보살과 인도나 중국에서 형성된 그 호법신들을 받아 들었지 산신은 섬기지 않았는데 조선중기에 들어 와서 산신을 정식으로 부처님 품안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학자들의 여러 가지 설에 따르면 단군 왕검이 죽은 후 다시 이 땅에 돌아와서는 산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군보다는 여자 산신이 그 시원(始原)을 이루며 점차 남자 산신의 모습으로 정형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불교에 유입된 산신의 개념은 가족 구성원의 부귀와 장수를 기원하거나 가람의 수호신으로 모습이 변모하게 된 것입니다. 산신탱화에 등장하는 산신의 대부분은 호랑이를 타고 있거나 호랑이를 앞뒤로 거느리고 있습니다.
산신을 보좌하는 시좌로 호랑이 외에 탱화 속에는 앳된 동자상이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동자상은 산신령에게 과일이나 차, 꽃, 또는 불로주를 올리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동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녀도 있습니다.
어느 탱화에서는 동자 두명이 등장하기도 하고 동자와 동녀가 짝을 이루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산신을 여성으로 모시는 곳은 지리산 계룡산 속리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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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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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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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송림사 삼성각-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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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불교 사찰에서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모시는 당우. 삼성 신앙은 불교가 한국 사회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이 불교와 합쳐져 생긴 신앙 형태이다. 전각은 보통 사찰 뒤쪽에 자리하며, 각 신앙의 존상과 탱화를 모신다.
삼성을 따로 모실 경우에는 산신각·독성각·칠성각 등의 전각 명칭을 붙인다. 삼성을 함께 모실 때는 정면 3칸, 측면 1칸 건물을 짓고 따로 모실 때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을 짓는다.
산신(山神)은 한국의 토속신 산신령에 해당하는 호법선신으로 산신이라는 인격신과 화신인 호랑이로 나타난다. 인격신으로서의 산신은 나이 든 도사의 모습이고, 호랑이는 대부분 산에 위치한 사찰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독성은 천태산(天泰山)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독성(獨聖)·독수성(獨修聖)이라 불린 나반존자(那畔尊子)를 일컫는다.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수독성탱(修獨聖幀)·나반존자도(那畔尊者圖)라는 독성탱화(獨聖幀畵)를 모신다. 그림은 천태산과 소나무·구름 등을 배경으로 희고 긴 눈썹을 드리운 비구가 오른손에는 석장(錫杖),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반석 위에 정좌한 모습이다. 때로는 독성 외에 차를 달이는 동자가 등장하기도 하고 동자와 문신(文臣)이 양쪽 협시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
칠성은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컬어지는 북두칠성을 뜻하며, 본래 중국의 도교사상과 불교가 융합되어 생긴 신앙이다. 대개는 손에 금륜을 든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주존으로 하여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좌우에 협시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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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삼천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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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송림사 삼천불전-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삼천불전 보물 16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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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선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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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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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송림사 선불장-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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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선불장은 부처 되는 곳이다.
참선하고 수계산림도량을 말한다.
남녀노소가 마음 공부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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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선열당 요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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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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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송림사 선열당 요사채-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사찰 내에서 전각이나 산문 외에 승려의 생활과 관련된 건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
승려들이 식사를 마련하는 부엌과 식당, 잠자고 쉬는 공간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또한 기도하러온 신도들이 잠깐 쉬고 음식을 먹을 수도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창고·우물·장독·세탁시설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한데 모여 있다.
법당에 대웅전과 극락전 등의 이름이 붙듯 기능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붙는다.
대표적인 명칭으로는 심검당(尋劍堂)·적묵당(寂默堂)·설선당(說禪堂)을 들 수 있다.
심검당은 지혜의 칼을 갈아 무명(無明)의 풀을 벤다는 뜻이고, 적묵당은 말없이 참선한다는 뜻이며, 설선당은 강설과 참선을 함께 한다는 말이다. 이밖에 향적전(香積殿)은 향나무를 땔감으로 하여 법당에 올릴 공양을 짓는다는 뜻이고, 염화실은 조실스님이나 대덕(大德)이 머무르는 곳이다.
옛날에는 법당 뒤쪽에 지었으나 후대로 갈수록 법당 좌우 또는 앞에 지어진 것이 많으며, 지금은 필요한 공간에 짓는 경우가 흔하다. 성격상 법당보다 격이 낮아 규모가 작고 꾸밈도 소박하다. 일반 한옥처럼 넓은 툇마루를 달기도 하고, 더러는 누각이나 2층으로 꾸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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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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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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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송림사 염화실-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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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주지실은 염화실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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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응진전 나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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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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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송림사 응진전 나한전-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응진전은 나한전(羅漢殿) 이라고도 하는데, 응진전은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들을 모시기 위한 전각이지만은 그 분들은 모두 부처님의 제자이므로 주존으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위시하여 협시보살로 미륵보살과 제화가라 보살을 모십니다.
말하자면, 과거불인 정광여래의 화신 ‘제화가라 보살’과 현재불인 ‘석가모니 부처님’ 미래불인 ‘미륵보살님’을 모셔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를 상징합니다.
응진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 직제자 가운데 정법을 지키기로 맹세한 16나한을 모시나 간혹 18나한을 모시기도 합니다.
특별히 석가모니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부처님 생전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편집하기 위한 모임인 경전 결집에 참여했던 500나한을 모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한(羅漢) 이란
인도의 옛말 아르하트에서 유래된 말로 ‘아라한’ 또는 줄여서 ‘나한’이라고 하는데 뜻으로 옮기자면 ‘응공, 무학, 응진’이라고 합니다. 본래는 존경받을 만한 분, 공양 받을 만한 분이라는 뜻에서 응공,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뜻에서 무학, 진리에 도달 했다는 의미로 응진 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도 처음에는 ‘아라한’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특히 초기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수행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 곧 현실의 모든 번뇌와 고통을 여윈 해탈의 상태를 일컬는 말입니다.
대승 불교에 이르러서는 불자들의 목표가 무수한 생을 거듭해서라도 보살도를 완성하여 스스로 부처님이 되는데 있었으므로 아라한은 소승의 수행자를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한편 ‘나한’은 부처는 되지는 못했지만 이미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성자이므로 초자연적인 신통력과 더불어 톡특한 표정과 자유스러운 자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나한은 미래불인 미륵 부처님이 올 때까지 중생들을 제도하라는 부처님의 수기를 받은 분들입니다.
따라서 민간신앙에서는 무수한 설화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서민들의 기복신앙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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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일주문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송림사 일주문-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번째 문.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시대적용 기타 네 기둥[四柱]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즉,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건축양식은 주로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이 문에 많은 현판(懸板)들을 걸어 사찰의 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동래 범어사(梵魚寺), 양산 통도사(通度寺), 합천 해인사(海印寺)의 일주문 등이 있는데, 그 가운데 통도사의 경우는 문의 중앙에 ‘영축산 통도사’라는 현판을 걸어 사찰의 이름을 밝히고 좌우의 기둥에 ‘불지종가(佛之宗家)’와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는 주련(柱聯)을 붙여서 이 절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