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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5층 석탑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송림사 5층 석탑-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지정번호 : 보물 제189호
지정일 : 1963년 01월 21일
소유자 : 송림사
관리자 : 송림사
수량(면적) : 1기
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로 실제 유골이 없더라도 부처를 모신 상징적인 곳이다.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은 벽돌로 만든 통일신라의 탑으로 우리나라에 몇 기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전탑이다.
탑의 높이는 16.1m, 너비 2.8m이며 탑을 받치는 기단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폭은 7.3m이다.
기단부의 각 면을 구성하는 석재의 숫자가 다르고 우주와 탱주의 모각도 일정하지 않아 창건 당시와 현재의 모습이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층 몸돌 남쪽 면에 감실이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1959년 해체 보수 때 2층 몸돌과 3층 지붕돌, 복발에서 금동으로 만든 사리함과 청자 그릇을 비롯한 여러 가지 유물이 나왔다.
감실 내부에서는 조선시대 목불과 파손된 석불, 동불이 발견되었다.
탑 안에서 고려청자와 조선시대의 목불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번 보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
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집모양 사리그릇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송림사 집모양 사리그릇-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전탑 사리구 - 집 모양 사리그릇 (보물 325호)
1959년 해체 수리 때 발견된 일련의 舍利莊嚴具이다. 이 유물은 제 2층 塔身에 거북모양의 石函을 안치하고 그 속에 들어 있었다.
殿閣形의 金銅舍利器는 基壇 위에 네 기둥을 세우고 뚜껑을 덮은 형식이며, 안에는 유리제 잔과 그 안에 유리제 舍利甁을 안치하였다. 基壇 밑에는 金版으로 伏蓮을 돌리고 그 위에는 난간을 돌렸다. 기둥은 난간 안에서부터 세워서 사방이 터졌고 바닥 중앙에는 金版을 오려서 仰蓮을 만들었다. 寶蓋는 2중이고 투각무늬가 있으며 金版으로 만든 연꽃으로 장식되었다. 寶蓋 밑에는 4면에 모두 수식이 있고 네 귀에서는 영락이 길게 基壇까지 늘어졌다.
樹形裝飾具는 銀板에 도금하였고 밑이 뾰죽한 줄거리를 중앙에서 세로로 약간 접어서 모를 내고 옆으로 가지가 나 있다. 가지에는 약 200여 개의 원형 영락을 단 수법이 신라시대 장신구에서 보는 바와 같다. 이 탑에서는 각종 玉. 金銅製圓輪. 銀環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2층 탑신에서는 거북 모양의 석함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서 탑 모양을 한 금동 사리기가 나왔다. 이 녹색의 투명 유리병(②)은 금동사리기 중앙에 놓여있던 컵모양의 유리잔 속에 들어있던 것이다. 높이 6.3㎝, 배지름 3.1㎝로 약간 황갈색이 도는 녹색의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졌으며, 배가 부르고 목이 긴 형태를 하고 있다. 짙은 녹색의 보석형태를 한 마개가 달려있다.
2층 탑신에서 금동사리탑과 함께 거북 모양의 석함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높이 18㎝로 보리수 모양(③)을 한 용도를 알 수 없는 공예품이다. 밑이 뾰족한 뿌리 위에 좌우 대칭으로 뻗은 가지를 새긴 은판을 나무모양으로 접어 만들고 금으로 도금하였다. 보리수 형태로 된 가지에는 200여 개의 원형장식들이 달려있다.
사리기 중앙에 유리잔(④)이 놓여 있었다. 높이 7㎝, 아가리 지름 8.7㎝로 녹색의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졌으며, 밑에 받침이 있고 위가 넓은 컵모양을 하고 있다. 표면에는 지름 1.3㎝ 내·외의 고리 모양의 장식이 12개 붙어있고, 안쪽 중앙에는 옥을, 그 주위에는 진주를 붙여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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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대웅전 목조 석가여래삼존불좌상
-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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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송림사 대웅전 목조 석가여래삼존불좌상-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지정번호 : 보물 제1605호
지정일 : 2004년 10월 14일
소유자 : 송림사
관리자 : 송림사
수량(면적) : 3구
이 삼존상은 석가여래와 문수·보현보살로 구성된 석가삼존 형식으로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을 통하여 조선 효종 8년(1657)에 제작되었고 도우를 비롯한 8명의 조각승이 참여한 작품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은 높이가 277cm 가량인 거대한 목조불상으로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무릎 위로 올려 구부린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좌·우협시보살상은 양손의 위치만 달리하여 두 손으로 긴 연꽃줄기를 잡고 있는데 연꽃줄기는 보관과 함께 후대에 보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존상은 전체적으로 건장하고 당당한 형태, 엄숙한 얼굴표정에 입가를 눌러 만들어 낸 미소, 간략하고 단순하지만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옷주름 등의 특징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17세기 전반과 중반 재건불사 과정에서 제작된 다른 불상들과 유사한 양식이다. -
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극락전 석조 아미타여래삼존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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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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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송림사 극락전 석조 아미타여래삼존불좌상-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송림사 극락전에 봉안된 미타삼존상으로 본존에서 발견된 복장조성기에 따라 순치 12년(1655)의 정확한 연기를 지닌 상이다. 현재는 두터운 개금과 후대 보수로 인해 세부적인 분석은 어렵지만 대체로 조선후기의 안정된 구도를 보이는 상이다. 본존은 상체에 비해 하체가 다소 약한 듯 하고 다리 앞으로 부채꼴 주름이 길고 높은 편이다. 불두는 육계표현은 없으나 정상육계, 중간육계가 있고 나발로 덮었다. 어깨도 약하게 각진 형태에 오른어깨로 대의 자락이 걸친 통견이다. 내의는 가슴 아래에 굵은 띠로 표현되었고 띠매듭은 없다. 양손은 다리에 얹어 촉지인을 하고 있다. 좌우 협시의 양식도 본존과 흡사해서 민머리의 지장보살 불두가 본존의 불두와 흡사하다. 석조의 대작에 속하므로 조선후기 불교조각사에서 기준작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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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송림사 송림사 명부전 목조시왕상과 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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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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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송림사 명부전 목조시왕상과 제상-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360호
지정일 : 2004년 10월 14일
소유자 : 송림사
관리자 : 송림사
수량(면적) : 22구
명부전 내에는 총 27구의 조각상이 있는데 정면의 석조삼장보살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1호)을 포함하여 각각의 협시보살 6구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ㄱ자로 꺾인 양쪽의 단 위에 시왕상이 놓여 있다.
그 옆으로는 판관, 사자, 귀왕, 인왕이 각각 한 구씩 자리잡고 있다.
본존불인 천장보살의 협시상은 근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이것을 제외하고 지장·지지보살의 협시상과 시왕상 및 제상을 포함한 22구가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시왕은 지옥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으로 인간이 사망하면 각각의 날짜마다 시왕에게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명부전의 시왕상들은 용과 봉황으로 조각된 의자에 다양한 자세로 앉아 있다.
지장보살과 지지보살의 협시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을 통해 삼장보살을 제외한 대부분의 명부전 불상이 조선 현종 6년(1665)에 일괄 조성되었고 17세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조각승 승일을 비롯하여 총 13명이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
대한불교조계종 운문사 운문사 원광화랑연구소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운문사 원광화랑연구소-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운문사 원광화랑연구소 설립목적
천년고찰 청도 호거산운문사부설 <원광화랑연구소>의 설립 목적은 다음과 같다.
원광법사의 불교사상과 세속오계정신에 대한 연구와 신라 화랑정신문화의 전반을 연구한다.
인류가 나아가야 할 정신문화를 탐구한다.
21세기 불교문화의 신청년 정신의 패러다임을 창출하여 사회에 실천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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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운문사 운문사 대중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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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운문사 대중예불-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새벽예불 : 새벽 4시
사시예불 : 오전 10시 40분
저녁예불 : 동절기 저녁 6시 / 하절기 6시 30분
새벽예불
제가 이제 맑은 물을 단이슬 같은 차로 달여 삼보전에 올리오니 원컨대 거두어 주옵소서.
예불시간마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변하지 않는바 진리에 귀의하며 또 그것을 받들어 행하는 스님들에게 귀의한다.
예불문이 그러하듯이 아침 저녁으로 모시는 이 의식에서 모든 수행자들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여러 불보살, 10대 제자인 나한들과 삽삼조사 그리고 스님들께 마음을 다하여 귀의함을 고하며, 이로써 나를 비롯한 모든 중생이 일시에 성불하기를 기원한다.
이것이 예불의 지극함이다.
저녁예불
청정한 계율의 향, 고요한 선정의 향, 법다운 지혜의 향, 장애 없는 자유의 향과 중생을 해탈로 이끄는 향
구름 위에 펼쳐진 광명처럼 법의 세계를 비추나니 시방 삼세 부처님, 바른 법과 스님들께 공양합니다.
고단한 발걸음 위에 저녁 종소리를 얹고 시방삼세 두두물물에 나투신 여러 부처님과 불보살님을 향해 귀의하기를 마음을 다한다.
작은 전각에서부터 마지막 큰 법당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전에 초를 켜고, 향을 피어 올린다.
작은 불빛이 어둠을 밀어내듯, 좋은 향의 향내가 약한 냄새를 몰아내듯, 스님들의 여민 옷깃과 진리의 바른 걸음걸이는 그 모습 자체로도 중생에게는 빛이요 향기이다. -
대한불교조계종 운문사 운문사 금당 앞 석등 (보물 제193호)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운문사 금당 앞 석등 (보물 제193호)-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운문사 금당 앞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보물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다.
방형 지대석 위에 상대·중대·하대석을 갖춘 기단부와 화사석, 옥개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륜부에 보주가 놓여 있다. 절제된 문양의 조식으로 기단부와 몸체의 비례 및 균형이 조화를 이루며, 부석사 석등 이후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석등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현재 금당 앞에 자리하고 있으나, 1935년 무렵에 촬영된 사진에 의하면 작압전 뒤로 석등 1기가 찍혀 있어 언제 현재의 위치로 이동되었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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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운문사 운문사 동호銅壺 (보물 제2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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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운문사 동호銅壺 (보물 제208호)-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운문사 동호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항아리 모양의 불교 용기로, ‘감로준甘露樽’이라고도 부른다. 용도는 감로수를 담아 놓는 의식용 항아리일 가능성이 높으며, 높이는 55㎝, 입 지름은 19.5㎝, 몸통 지름은 31㎝로 보물 제208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고려시대 불교 용기로서는 향로, 정병 외에 용도나 형태에 있어 유일한 예로 뚜껑의 높이가 전체 높이에 비해 다소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나, 안정된 비례감과 명문을 통해 고려시대 불교유물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고려 후기의 문인 임춘林椿의 시문집인 서하집이 이 감로준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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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운문사 운문사 원응국사비 (보물 제3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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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운문사 원응국사비 (보물 제316호)-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5-02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응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보물 제316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귀부와 이수는 없으며 세 부분으로 쪼개진 비신을 붙인 다음 철로 된 지지대로 고정하여 지탱시켜 놓았다. 비신의 높이는 230㎝이며 폭은 90㎝이다.
건립 연대는 비문이 파손되어 알 수 없으나, 원응국사가 입적한 다음 해 인종이 국사로 봉하고, 윤언이尹彦頤에게 비문을 짓게 하였다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대략 1145년 전후로 추정된다.
그리고 원응국사 비각 정면에 걸려있는 현판에 의하면 비각이 무너졌으나 다시 복구할 여력이 되지 않자 관찰사가 탄식하면서 비용을 보태주어 1877년 비각을 새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후 1963년 새로 고쳐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