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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종남산송광사 지장전 소조지장보살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4
종남산송광사 지장전 소조지장보살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4
1999년 4월 23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8호로 지정되었다.
지장전은 지옥에 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성불하는 것을 뒤로 미룬 대원본존(大願本尊)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을 모신 전각을 말한다.
당나라 때 개원사 스님이었던 도명존자는 동명이인으로 잘못 판단한 저승사자에 의해 지옥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지장보살을 만난 후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무독귀왕은 『지장보살본원경』에 의하면 어떤 브라만의 딸이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찾으러 지옥에 갔을 때, 그녀의 어머니가 있는 지옥 세계를 보여주었다는 인연으로 지장보살의 협시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명부전은 지장삼존상과 명부세계의 재판을 담당하는 10명의 왕인 시왕(十王)을 함께 모신 전각을 말한다.
송광사 소조지장보살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은 1999년 지방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에는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명부전이 협소한 까닭에 지장전을 신축하고 지장전으로 옮겨 봉안하게 되었다.
현재 지장전에는 지장삼존상을 비롯하여 시왕상 10구, 판관상 6구, 사자상 6구, 동자상 8구, 금강역사상 2구 등 총 31구의 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조성기에 의하면 1640년에 승명(勝明) 스님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17세기 명부신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이후 명부전의 존상들은 2005년에 보수·개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에도 송광사 지장전은 우리나라 3대 지장성지로 유명하다. -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종남산송광사 나한전 목조석가여래 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4
종남산송광사 나한전 목조석가여래 삼존상 및 권속상 일괄-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4
1999년 4월 23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되었다.
송광사 나한전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석가여래와 그 제자들이 설법 듣는 장면을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을 줄인 말로, 중생에게 복덕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키는데 독특한 능력이 있는 분을 말한다. 중국에 와서는 16나한 및 500나한 신앙이 성행하게 되었고, 이러한 나한신앙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지게 되었다.
송광사 나한전에는 석가삼존상을 비롯하여 16나한상과 500나한상, 사자상, 제석범천상, 동자상 등이 봉안되어 있다. 중앙에는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좌협시(향우측)로는 미륵보살상이, 우협시(향좌측)로는 제화갈라보살상이 각기 높은 연화좌 위에 자리하고 있다. 16나한상은 본존을 중심으로 좌우 각 8구씩 배치되어 있으며, 오백나한상은 높이 25~40cm 정도의 작은 상으로 기둥 사이의 벽면에 봉안하고 있다.
<조성기>에 의하면 오백나한상 역시 석가삼존상 및 16나한상과 함께 순치 13년, 즉 조선 효종 7년(1656) 조성한 것을 알 수 있다.
송광사 나한전의 조각상들은 전각의 규모에 비해 그 규모가 당당하고 조각 솜씨가 우수하다. 또한 1656년의 제작 연대가 확실히 밝혀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조선후기, 특히 17세기 불교조각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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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종남산송광사 범종(梵鍾)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4
종남산송광사 범종(梵鍾)-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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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4
1992년 6월 20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십자형 종루 바닥에 놓여있는 송광사 범종은 전체높이 104.5㎝, 몸체높이 84.0㎝, 입지름 72.0㎝로, 종 몸체에 새겨진 기록에 의해 숙종 42년(康熙 55년, 1716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77년 범종이 새로 조성되기 전까지 사용해 왔으나 이후 범종에 균열이 생겨, 1981년에 두 차례에 걸친 균열방지 작업 후 타종이 불가능해져 현재와 같은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몸체 중앙부의 배부분에는 네모꼴 연곽(蓮廊)을 비롯하여 보살상과 위패(位牌)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거의 수직을 이루는 몸체의 하단부에는 연곽 바로 아래에, 범종을 조성한 시기와 봉안사찰· 봉안장소· 조성에 참여했던 스님들과 사주자 등을 기록하고 있다.
범종에 새겨진 기록에 의하면 강희 55년인 숙종 42년(1716년)에 조성되어 광주 무등산 증심사 대웅전에 봉안되었는데, 어느 시기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송광사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영조 45년인 1769년에 범종을 중수했다는 기록도 추가로 새겨져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종남산송광사 목조 삼전패(三殿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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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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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4
종남산송광사 목조 삼전패(三殿牌)-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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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4
1999년 4월 23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0호로 지정되었다. 완주 송광사의 목패는 대웅전 안 석가여래상 옆과 약사여래상 및 아미타여래상 앞에 놓여 있다.
당시 왕과 왕비 그리고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부처님 명호를 기록한 불패(佛牌)와 구분하기 위해 삼전하(三殿下)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삼전패(三殿牌)라고 일컫는다.
높이가 약 230cm에 달하는 거대한 목패는 모두 3점인데,이들은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세부의 문양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다. 여러 장의 나무판을 엮어서 만든 것으로 구름과 용을 뚫어새긴 것이 특징이다.
석가여래상 옆의 목패는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있으며, 인조 때 조성된 것이라는 제작 연도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왕과 세자를 위한 전패에는 정조 16년(1792)에 수리했다는 묵서명이 있어, 목패 연구에 기준작이 되고 있다.
조각이 정교하고 크기가 거대하며 조성된 연대와 수리한 연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대다수 연대를 알 수 없는 조선시대 불교 목공예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종남산송광사 대웅전(大雄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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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4
종남산송광사 대웅전(大雄殿)-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4
송광사 대웅전은 1996년 5월29일 보물 제1243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은 석가여래를 큰 영웅 즉 대웅(大雄)이라 일컫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여래를 모신 전각을 말한다. 송광사 대웅전에는 조선후기에 유행한 석가여래·약사여래·아미타여래 즉 삼세불상(三世佛像)이 봉안되어 있다.
중앙에는 사바정토의 교주인 석가여래, 향우측에는 중생들의 병고를 다스리는 동방약사유리광정토의 교주인 약사여래, 향좌측에는 서방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여래가 배치되어 있다. 또한 불단에는 왕· 왕비· 세자의 축원을 위한 용도로 제작된 조선후기 최대의 목공예품인 삼전패(三殿牌)가 있다.
정면 5칸, 측면3칸의 대웅전은 「송광사사적기」에 의하면 초창 당시인 1622년에는 2층건물이었으나, 1857년에 건물이 기울어져 제봉선사에 의해 중수되면서 단층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부 기단은 가공된 장대석을 두르고 있는데, 최근 대웅전 주위의 흙을 걷어내 기단의 높이가 높아졌다.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으로 추녀의 처짐을 보완하는 활주를 모서리마다 세워두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불상 크기에 비해 내부공간이 좁지만 천장부에 파격적인 장엄을 하여 천장 전체가 천개인 것처럼 꾸민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요소이다.
대웅전 현판의 글씨는 선조의 아들인 의창군(義昌君)이 썼는데, 구례 화엄사 대웅전 현판 역시 의창군의 글씨여서 두 사찰과 의창군 그리고 벽암각성대사의 관계가 주목된다. -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종남산송광사 종루(鐘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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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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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4
종남산송광사 종루(鐘樓)-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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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4
송광사 종루는 1996년 5월29일 보물 제1244호로 지정되었다.
종루는 범종(梵鐘)·법고(法鼓)·목어(木魚)·운판(雲板) 등 사찰에서 의식 때 사용하는 불전사물을 봉안한 곳이다. 송광사 종루는 중앙의 1칸에서 사방으로 1칸씩 돌출된 아(亞)자형 평면의 2층 누각 건물로, 십자형 평면 위에 팔작지붕을 교차시켜 세웠다. 일반적으로 종루나 종각이 사각형으로 지어지는데 반해 송광사 종루는 보궁(寶宮)에 주로 채택되는 십자형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2층의 누마루는 우물마루로 구성되고 주위를 계자난간을 두르고 계단이 있는 쪽만 개방되어 있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에는 기둥 바깥으로는 마루가 설치되지 않고 계자난간도 없어 지금과 같은 마루와 계자난간은 『조선고적도보』 에 실린 사진 촬영 이후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송광사의 종루는 현재까지 그 연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 건물의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없지만 1814년 혹은 1857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종루에 걸린 범종·법고·목어·운판 등은 1977년에 조성된 것이고, 바닥에 놓인 범종은 1716년(숙종 42)에 무등산 증심사에서 조성되어 1769년(영조 45)에 중수된 것이다. -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종남산송광사 나한전(羅漢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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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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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4
종남산송광사 나한전(羅漢殿)-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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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4
송광사 나한전은 석가삼존상과 16나한 및 500나한을 모신 전각으로, 1999년 7월 9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2호로 지정되었다.
나한전은 깨달은 성자인 나한을 모신 전각인데 송광사 나한전에는 석가삼존상과 16나한 및 500나한을 봉안하고 있다. 석가삼존상은 중앙에 석가여래, 향우측에 미륵보살, 향좌측에 제화갈라보살로 구성되어 있다. 나한전은 1999년 7월 9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2호로 지정되었다.
나한전은 대웅전 뒤쪽의 향우측, 즉 대웅전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백나한전이라고도 불린다. 나한전 뒷부분이 산비탈이어서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송광사 나한전은 1656년(효종7)에 벽암각성대사가 송광사를 중창할 당시 건립되었으며, 1934년 해광스님이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옆면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또한 지붕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되어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맞추어 천장 윗부분을 가리게 꾸민 우물천장이다.
내부에는 목조 석가여래삼존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16나한과 오백나한·금강역사·동자상·사자상 등이 봉안되어 있다.
송광사 나한전은 영험한 나한기도처로 유명하다. -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종남산송광사 금강문(金剛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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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6-04
종남산송광사 금강문(金剛門)-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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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4
송광사 금강문은 1999년 7월 9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3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다.
금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를 모시는 문인데, 조선후기 금강문에는 중앙 통로 좌우로 두 명의 금강역사와 문수보살·보현보살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송광사 금강문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지붕 천장을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고, 천장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 천장이다. 앞면 3칸 중에 가운데칸이 출입구이고, 양 옆칸에는 금강역사와 동자 모습의 사자를 탄 문수보살상과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금강문은 새날개 모양으로 장식된 익공양식의 공포와 지붕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있어 규모도 작고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송광사 금강문은 다포계 팔작지붕인 점이 특징이다.
벽암각성(1574~1659) 대사가 중창한 충북 보은 법주사· 전남 구례 화엄사· 경남 하동 쌍계사, 그리고 완주 송광사는 일주문 → 금강문 → 천왕문의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어, 임진·정유 양란 이후 신중신앙이 호국신앙과 연결된 가람 배치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종남산송광사 일주문(一柱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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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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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4
종남산송광사 일주문(一柱門)-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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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4
일주문은 1971년 12월 2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일주문은 송광사의 입구에 세워 속세와 불계(佛界)의 경계 역할을 하는 상징물로 조선 후기에 지은 것이다. 원래 지금의 위치에서 약 3㎞ 떨어진 곳에 세웠던 것인데, 절의 영역이 축소되어 순조 14년(1814)에 조계교 부근으로 옮겼다가 1944년에 현재 자리로 옮긴 것이다.
건물은 2개의 원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그 위에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간결한 맞배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공포는 용 머리를 조각하는 등 조선 중기 이후의 화려한 장식적 수법을 엿볼 수 있다. 기둥의 앞뒤로 연꽃무늬를 장식한 보조기둥을 세워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앞면 중앙에는 ‘종남산송광사(終南山松廣寺)’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종남산송광사 천왕문(天王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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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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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4
종남산송광사 천왕문(天王門)-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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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4
천왕문은 사천왕을 모시는 곳이다.
송광사는 사천왕을 모신 곳을 천왕문으로 하지 않고 천왕전으로 건축하여 이곳은 여닫는 문으로 되어 있다. 현판도 사찰에 들어오는 쪽에는 천왕문으로, 대웅전 쪽에는 천왕전으로 현판을 달았다.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동·서·남·북의 사천국을 다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시고 있다.
서방 광목천왕상 왼쪽 머리끝 뒷면에는 조선 인조 27년(1649)에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는 글이 있으며, 왼손에 얹어놓은 보탑 밑면에는 정조 10년(1786)에 새로이 보탑을 만들어 봉안한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