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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정보
상세설명
1998년 초 상계2동 본당 최정진 베네딕도 주임신부는 중계본동 본당 분할을 결심하고, 상계2동 사목협의회 회장단과 함께 부지 확보를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본당 분할을 결정하기까지 여러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본당 분할을 결정했다.
첫째, 인근에 염광아파트와 양지대림 아파트 등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됨에 따라 신자 수가 급격히 늘어남으로써 원활한 사목활동이 어려워지는 점을 감안했다. 당시 상계2동 본당은 2층으로 지은 좁은 가건물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매 미사 시간마다 뒤에 서서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형편인데 대규모 신규아파트 단지의 입주가 이루어진다면, 미사를 드리는 것은 물론 원활한 사목활동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둘째, 중계본동 지역의 개발이 완전히 이루어지고 난 뒤에는 성당 부지 확보가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어차피 본당을 분할해야 한다면 서둘러 분가를 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교구의 재정 지원으로 성당 부지를 매입한 후, 1998년 2월 19일 상계2동 본당의 일부 (세대수 1,137세대, 신자수 3, 364명)가 중계본동 성당 교적에 등재됨으로써 중계본동 성당이 설립되었다.
본당 초기 활동
1998년 3월 6일 이승구 안드레아 신부님이 초대 본당 주임 신부로 부임했으며, 성전 부지만 있는 공터에서 첫미사를 봉헌했다. 초대 총회장(변영남 이냐시오)이 임명되고 난 직후, 사목협의회가 구성되었다. 미사를 봉헌할 만한 마땅한 공간이 없어 어려움이 많았던 때였다.
봄비가 내릴 때면 우산을 든 채로 미사를 드렸으며, 상계2동 성당에서 회합실로 쓰던 컨테이너 박스 2동을 얻어서 임시로 제의방(고해실)과 사무실로 사용했다. 초대 주임 신부 부임 후 보름 만인 3월 22일, 성전 신축을 위한 전신자 투표가 있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주일 미사 후에 투표를 한 결과 (성전 신축 529표 / 가건물사용 216표) 압도적인 표차로 성전 신축이 결정되었다. 모두들 힘들어 하던 IMF 사태가 발생한 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전 신립금을 모은다는 일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중계본동 공동체는 더욱 단결했다. 주임신부님의 결정에 따라 성전 신립 추진 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5월 3일 성전신립금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묵주의 기도 100만단 봉헌을 시작했다. 성전신립금 책정은 예상 외의 호응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성전신립금을 내실 수 없는 분도 모금 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폐지 수집과 물품 판매를 햇으며, 가건물을 지을 때도 주임신부님과 모든 신자가 작업에 참여해서 비닐 하우스를 손수 만들었다.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본당에 필요한 물품 구입을 최대한 억제하고 타본당에서 사용하던 의자와 책상 등 필요한 물품을 구해왔다. 물품 판매를 위해 골롬바회가 조직되었고, 사목활동에 필요한 본당 단체가 하나 하나씩 구성되었다.
구 중계본동성당
보좌신부 : 이창준 세례자요한 신부 Rev. John the baptist LEE CHANG JOON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
주보 : 최양업토마스
주일전례:06:00, 09:00, 11:0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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