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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룩스 불교 :: CYLOOKS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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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2교구 대흥사 대흥사 요사체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대흥사 요사체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선방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요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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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2교구 대흥사 대흥사 수심당(修心堂)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대흥사 수심당(修心堂)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선방스님들의 요사체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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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2교구 대흥사 대흥사 전각의 독특한 공간구성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대흥사 전각의 독특한 공간구성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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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람배치 형식이 아닌 자유롭게 배치한 독특한 공간 구성
    넓은 산간분지에 자리잡은 대흥사는 좀 특이한 가람 배치를 보이고 있다. 절을 가로 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으로 당우들을 배치하였는데, 다른 절에서 보이는 가람배치 형식을 따르지 않고 당우들을 자유롭게 배치하는 독특한 공간구성이 특 징이다.

    『대둔사지』에서는 이 같은 절의 공간 구성을 크게 북원(北院)과 남원(南院) 의 2구역으로 구분하였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청운당, 대향각, 선열당 등의 전각과 요사채들이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여 배치되어 있다.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가허루, 봉향각, 동국선원, 적묵당, 세심당, 정진당, 만월당, 심검당 그리고 종무소 등의 전각과 요사채들이 또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여 배치되어 있다.

    또 남원의 오른편에는 서산대사의 사우인 표충사와 그 부속건물인 비각, 조사전, 의중당, 강례재, 명의재, 보련각 그리고 최근에 증 개축한 성보박물관이 있으며, 표충사 뒤편에는 대광명전, 그리고 요사채로 이루어진 대광명전이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대둔사의 가람 배치는 크게 남원과 북원으로 나눌 수 있으며, 남원의 구역에 위치한 표충사와 대광명전 일원을 다시 세분하면 북원과 남원, 그리고 표충사, 대광명전 네 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표충사와 대광명전 일원은 후대에 조성된 별원(別院)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둔사의 옛 모습은 침계루 앞 계곡을 중심으로 남원, 북원 일대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원구역] 침계루를 지나 북원 안마당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대웅보전, 그 좌우에 명부전과, 응진전, 산신각이 나란히 있다.
    응진전 앞 3층석탑은 이 절의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물 제320호로 지정되어 있다.

    [남원구역] 범종각과 법당으로 천불전, 동국선원이나 용화당 등 강원과 승방 몇채가 각각 돌담으로 구획되어 있다. 천불전의 지붕과 건물의 맵시가 매우 경쾌하며 정면3칸 분합문 전체가 아름다운 꽃창살이다. 내부에는 경주에서 초의스님을 비롯한 8분의 스님들이 직접 깎아 제작운반해 온 옥돌 불상 천 분이 모셔져 있다.

    [표충사] 절에서는 흔하지 않은 유교형식의 사당으로,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사명당 유정, 뇌묵당 처영스님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다. 유물전시관인 성보박물관에는 서산대사의 가사와 발우, 친필선시, 신발, 선조가 내린 교지 등 유물과 정조가 내린 금병풍 등이 보관돼 있다.

    [대광명전구역] 표충사 뒤편으로 300미터쯤 들어간 곳에 호젓하게 자리한 대광명전은 현재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 8칸짜리 일자집인 보현각, 요사채도 있다.

    이 밖에 경내 당우들에 걸려 있는 현판 글씨들은 당대 명필들이 쓴 조선시대 서예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표충사는 정조대왕,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루는 원교 이광사, 백설당 지붕밑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 가허루는 전주에서 활약하던 호남의 명필가 창암 이삼만의 글씨이다.

  4.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2교구 대흥사 대흥사 호국도량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대흥사 호국도량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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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 호국도량은 근대 이전 대둔사와 대흥사로 불리었다가 근대 이후 대흥사로 정착되었다. 해남 두륜산(頭輪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이 곳 대흥사는 한국불교사 전체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도량으로서 특히 임진왜란 이후 서산(西山)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지면서 조선불교의 중심 도량이 되었고,  한국불교의 종가집으로 그 역할을 다해온 도량이다.

    풍담(風潭)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강사(大講師)가 이 곳에서 배출되었다.

    암울했던 조선시대의 불교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존재는 한국불교의 오늘이 있게 한 최대 원동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흥사는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도량이다. 서산대사의 구국 정신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지금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표충사(表忠祠)는 개인의 수행에 앞서 국가의 안위를 보다 우선시했던 한국불교의 전통을 대표하는 전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매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이곳에서 서산대제 및 나라사랑을 위한 각종 행사에 참여해 오고 있다.

    대흥사 경내와 산내 암자에는 중요한 성보문화재가 상당수 존재한다.호국도량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 탑산사 동종(보물 제88호),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 응진전 삼층석탑(보물 제320호), 서산대사 부도(보물 제1347호), 서산대사 유물(보물 제1357호), 천불전(보물 제1807호), 천불상(전남유형문화재 제52호), 용화당(전남유형문화재 제93호), 대광명전(전남유형문화재 제94호), 관음보살도(전남유형문화재 제179호), 표충사(전남기념물 제19호) 등의 지정문화재와 대흥사 도량 전체가  사적명승 제9호로 지정되어 대흥사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대변해 주고 있다.

    조선중기 이후 수많은 선승(禪僧)과 교학승(敎學僧)을 배출하면서 한국불교의 중심도량으로 성장한 대흥사. 한국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호국도량의 위상을 간직하고 있는 이 곳 대흥사는 지금도 성불(成佛)과 중생구제의 서원을 간직한 뭇스님들의 정진이 끊이지 않는 청정수행도량이다.

  5.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2교구 대흥사 대흥사 창건연기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대흥사 창건연기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는 다양한 창건연기가 전하고 있다.
    이들 창건연기는 역사적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사찰의 전통과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는데 대흥사에도 몇 가지 창건연기가 전하고 있다.

    대흥사의 창건연기를 전하고 있는 자료로는 『죽미기(竹迷記)』, 『만일암고기(挽日菴古記)』, 『북암기(北菴記)』 등이 있으며, 1823년(순조23) 간행된 『대둔사지(大芚寺志)』는 이들 자료를 종합한 내용과 함께 이때까지의 사찰역사를 총정리해 놓은 중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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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건설]
    426년(백제 구이신왕7)의 신라 정관존자(淨觀尊者) 창건설이다.
    신라의 정관스님이 426년 대흥사 산내 암자의 하나인 만일암을 창건, 이후 508년(무령왕8)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선행(善行) 비구가 중건하였다고 하나 안타깝게도 이 자료에서 창건주로 소개한 정관존자는 생애나 활동 내용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죽미기』는 544년(신라 진흥왕5) 아도화상(阿度和尙)의 창건설을 전하며, 자장(慈藏)스님과 도선(道詵)스님이 계속해서 중건하였다는 기록도 함께 실려 있다.
    현재 사찰 내에서는 대체로 아도화상의 창건설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써는 대흥사의 정확한 창건 시점을 밝히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고 하겠다.
    하지만 지금 응진전(應眞殿) 앞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의 제작 연대가 통일신라 말기 경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태이므로 대흥사는 늦어도 통일신라 말기 이전에 창건된 고찰로 보아야 한다.

    또한 정관존자나 아도화상 같은 분들이 창건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은 그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대흥사의 전통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중시되어야 할 내용이다.

  6.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2교구 대흥사 대흥사 연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대흥사 연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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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둔사지』에 의하면 고려 후기의 천태종 소속 고승인 진정국사(眞靜國師) 천책스님의 주석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천책스님이 대흥사 북암(北庵)에 한동안 주석하였으며, 『대둔사지』를 편찬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님이 사용하던 발우가 이 곳에 전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천책스님이 대흥사 인근의 백련사(白蓮寺, 현 대흥사의 말사)에서 출가하고 그곳에서 장기간 주석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해 본다면, 이 기록은 상당한 타당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절 앞마당에 신암(信菴), 사은(思隱), 성유(性柔) 등 세 분 고승의 부도가 세워져 있다는 기록이 실려 있는데, 이들 고승도 역시 고려시대에 활동했던 스님들로 대흥사의 장구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대흥사의 위상이 크게 부각된 시점은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이 이 곳 대흥사에 전해지고 조정과 불교계에서 모두 대흥사를 중시하기 시작했던 조선중기 이후부터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해진 이후 대흥사에서는 13대종사와 13대강사가 계속 배출되어 조선 불교계를 이끌어왔으며, 조선의 조정에서는 표충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므로써 호국정신의 근원지와도 같은 위상을 세우게 되었다.

    이러한 대흥사는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30본말사법 제도 아래에서 44개의 사암을 관장하는 본사로 지정되었다가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7.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2교구 대흥사 대흥사 연표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대흥사 연표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통일신라시대 - 늦어도 통일신라 후기 이전에 대흥사가 창건됨, 응진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을 이 무렵 조성함
    13세기 - 진정국사 천책스님이 산내 암자인 북암에 주석함, 천책스님의 발우가 18세기 후반까지 북암에 전해지고 있었다고 함
    고려시대 - 북미륵암의 마애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을 조성함 , 신암, 사은, 성유 등 세 분 고승의 부도를 세움
    1604년(조선선조37) - 서산대사의 입적 이후 그 분이 사용하던 의발을 이 곳에 모셔옴
    1606년(선조 39) - 사명대사 등이 서산스님의 의발을 봉안한 뒤 그 사실을 기리기 위해 「보장록(寶藏錄)」을 남김
    1630년(인조 8) - 극현(克玄), 덕호(德浩) 등의 스님이 진불암을 중건함
    1647년(인조 25) - 서산대사의 비와 부도를 건립함
    1655년(효종 6) - 향산(香山)에 있던 서산대사의 옥발우, 가사, 신발 등의 유품을 대흥사로 모셔 옴
    1665년(현종 6) - 심수(心粹)스님이 대웅보전 중창 불사를 시작함
    1667년(현종 8) - 대웅보전 중창이 완성됨
    1668년(현종 9) - 취여 삼우(醉如三愚)스님이 「대둔사대웅전중건기」를 지음
    1672년(현종 13) - 사찰 내의 대종(大鐘)이 얼마동안 저절로 울리다가 멈추자 도(道)의 관료가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함
    1675년(숙종 1) - 융신(融信)스님이 만일암을 중건함
    1683년(숙종 9) - 진불암을 중건함
    1692년(숙종 18) - 「풍담대사비명(楓潭大師碑銘)」을 건립함
    1703년(숙종 29) - 보적사(寶積寺) 동종을 조성함(현재 대웅보전 내부에 있는 종임)
    1709년(숙종 35) - 진불암의 동종과 봉향각(奉香閣)의 동종을 조성하여 봉안함
    1727년(영조 3) - 채팽윤(蔡彭胤)이 지은 「해남대둔사사적비명」을 건립함
    1740년(영조 16) - 위일(位一)스님이 고진불암을 중건함
    1743년(영조 19) - 두원(斗元)스님이 향적전을 중건함
    1749년(영조 25) - 영산회상도(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조성하여 봉안함
    1761년(영조 37) - 청운당을 중건함
    1780년(정조 4) - 청담(靑潭)스님이 은선암을 중건함
    1778년(정조 2) - 「청허당대사비명(淸虛堂大師碑銘)」을 건립함
    1788년(정조 12) - 계홍(戒洪), 천묵(天默)등의 스님이 서산대사를 기리기 위한 사당의 건립과 사당의 편액을 내려달라는 내용의 문건을 조정에 올림
    1789년(정조 13) - 조정의 명으로 사당을 건립하고, 정조대왕이 「표충사」라는 친필편액을 써서 내려줌. 아울러 예조의 담당자를 대흥사에 파견하여 서산대사를 추모하는 제사를 성대하게 봉행함. 윤지범(尹持範)이 「표충사상량문」을 지음
    1791년(정조 15) - 응운 등오(應雲登旿)스님이 「표충사창건기」를 찬술함. 「서산대사표충사기적비(西山大師表忠祠紀蹟碑)」를 건립함. 정능(定能)스님이 고진불암을 중건함
    1792년(정조 16) - 「표충사건사사적비(表忠祠建祠事蹟碑)」를 건립함. 연담 유일(蓮潭有一)스님이 표충사 건립에 큰 공을 세웠던 서유린을 위해 「서판서송덕비」를 건립함
    1794년(정조 18) - 정조대왕이 서산대사 화상당명을 지어 내려 보냄. 천불전에 사천왕도를 조성하여 봉안함
    1797년(정조 21) - 전훤(典煊)스님이 남암(南庵)을 중건함
    1803년(순조 3) - 「대둔사사적비명」과 「연담화상비명(蓮潭和尙碑銘)」을 건립함
    1809년(순조 9) - 자암(慈菴), 은봉(隱峰) 등의 스님이 만일암을 중건함
    1811년(순조 11) - 천불전 등의 당우가 불에 탐
    1812년(순조 12) - 용화당을 중건함
    1813년(순조 13) - 완호스님 등이 천불전을 중건함
    1819년(순조 19) - 천불전에 신중도를 조성하여 봉안함
    1823년(순조 23) - 윤우, 혜장, 초의스님 등이 『대둔사지(大芚寺志)』를 편찬함
    1836년(헌종 2) - 표충사의 비각을 중수함. 배룡 새성스님이 「표충사옥비각중건기」를 찬술함
    1841년(헌종 7) - 초의스님이 대광명전(비로전)을 중건함
    1845년(헌종 11) - 대광명전에 법신중위회삼십칠존도(法身中圍會三十七尊圖)와 칠성도를 조성하여 봉안함
    1846년(헌종 12) - 신관호(申觀浩)가 「표충사보장록」을 지음
    1854년(철종 5) - 「완호대사비명(玩虎大師碑銘)」을 건립함
    1857년(철종 8) - 진불암을 중건함
    1861년(철종 12) - 1836년 옮겨 지었던 표충사의 신실(神室)을 본래의 위치로 옮겨 지음. 초의스님이 이 때의 과정을 기록한 「표충사중이구지기(表忠祠重移舊址記)」를 지음
    1866년(고종 3) - 대웅보전의 지장시왕도를 조성하여 봉안함
    1868년(고종 5) - 청신암의 신중도를 조성하여 봉안함
    1870년(고종 7) - 청신암의 아미타극락회도를 조성하여 봉안함
    1899년 - 서상실(西上室)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북원(北院) 일곽의 건물이 모두 불에 탐
    1900년 - 육봉(六峯)스님이 대웅전 일대를 중건함. 이 때 대웅보전, 명부전, 응진당, 산신각 등의 여러 불화를 조성하여 봉안함. 신헌구(申獻求)가 「대웅전중창상량문」을 지음
    1907년 - 혜오(慧悟)스님이 「대웅전중수기」를 지음
    1912년 - 30본말사법에 의해 인근 44개 사암을 관장하는 본사로 지정됨
    1940년 - 박한영(朴漢永)스님이 「대흥사심진교건조비기(大興寺尋眞橋建造碑記)」와 「두륜산초의선사탑비(음기)」를 지음
    1941년 - 초의대종사탑비명」을 건립함. 1942년 박한영스님이 「두륜산월초당화상창공송비(頭輪山月初堂和尙彰功頌碑)」를 지음
    1967년 - 응진전 삼층석탑을 해체 보수함. 이 때 상층 기단에서 금동여래입상 1구가 발견됨
    1970년 - 북미륵암 건너편 동쪽 산등성이에 있는 석탑에서 3구의 금동불상이 발견됨
    1978년 - 서산대사유물관을 건립함
    1989년 - 영월당 해체 보수공사
    1990년 - 종무소 해체 보수공사
    1992년 - 대흥사 일주문 신축공사, 매표소 이설공사, 백화암 요사채 신축공사
    1993년 - 남암 복원공사
    1993년 - 동다실 해체 보수공사, 대향각 복원공사
    1995년 - 북암 요사채 해체 복원공사, 표충사 내 명의재·강례재 해체 보수공사
    1997년 - 대흥사 박물관 보수공사, 대향각 복원공사
    1998년 - 대흥사 수련원·서산관·초의관 신축공사, 대웅보전 보수공사
    1999년 - 초의동상 신건
    2000년 - 보현전과 문수전 신축공사, 동국선원 보수
    2001년 - 대광명전 보수, 종무소 신축공사
    2003년 - 일주문 및 해탈문 개축공사, 응진전 앞 삼층석탑 해체 보수공사
    2004년 - 용화당 해체 보수, 정행당 및 정행당 샤워장 신축공사, 대흥사 일지암 대웅전 개축공사
    2005년 - 백설당 및 봉향각 해체 보수공사, 정심당 해체 보수공사, 선원 요사채 보수공사, 보련각 해체 보수공사, 대흥사 북미륵암 용화당 해체 보수공사, 응진전 해체 보수공사
    2006년 - 조사전 해체 보수공사, 표충사 호국문 해체 보수공사, 범종각 이전 증축공사
    2007년 - 표충사 해체 보수공사, 대흥사 관음암 관음전 산신각 및 요사채 해체 보수공사, 대흥사 전통 선차문화체험센터 신축공사, 대흥사 초의선사 동다송비 신건공사,
    2008년 - 용화당 사주문 및 석축 보수공사,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 주변 석축 보수공사, 보련각 이축공사, 적조당 및 수심당 신축공사, 대흥사 산책로 개설공사

  8.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2교구 대흥사 천년고찰 대흥사(大興寺)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천년고찰 대흥사(大興寺)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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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흥사(大興寺)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륜산(頭崙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이다.

    현재 해남, 목포, 영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강진, 광주 등 9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하며, 서·남해 지역 사찰을 주도하고 있다.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원래 사찰명은 대둔사(大芚寺)였으나, 근대 초기에 대흥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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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이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이곳에 보관한 도량이다.

    이후 대흥사는 한국불교의 종통이 이어지는 곳(宗統所歸之處)으로 근대 승보사찰의 종가집으로 한국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도량으로 변모하였다.
    즉 제1대종사 풍담(風潭)의심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의순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강사(大講師)가 이곳에서 배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3 대종사 가운데 한 분인 초의선사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문화(茶文化)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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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산간분지에 위치한 대흥사는 향로봉, 고계봉, 노승봉, 가련봉, 도솔봉, 혈망봉, 연화봉의 8개 봉우리로 들러 싸여 있으며, 크게 남원과 북원 그리고 별원의(표충사, 대광명전, 박물관) 3구역으로 나뉘어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대향각, 청운당, 선열당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봉향각, 가허루, 세심당, 적묵당, 정진당, 만월당, 심검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남원 뒤쪽으로 멀리 떨어져서 서산대사의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동국선원내에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9.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2교구 대흥사 두륜산 대흥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두륜산 대흥사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이며, 대둔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둔사지>에 의하면, 이 절은 426년에 신라의 정관존자가 창건하여 만일암이라 하였고, 508년에 이름을 전하지 않은 선행비구가 중건하였다는 <만일암고기>의 기록과 514년 아도가 창건하였다고 하는 <죽미기>의 기록, 875년에 도선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500사찰을 짓는 것이 좋겠다고 상소하였는데, 대흥사도 그 중의 하나라는 설 등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그러나 <대둔사지>의 자료를 모았던 혜장은 이들 기록이 창건자의 활동시기로 볼 때 모두 신빙성이 없다고 보았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절의 앞마당에 신암ㆍ총은ㆍ성유 등 세 승려의 부도가 있었다고 하였는데, 이들의 행적이 알려진 바는 없으나 고려시대 승려이므로 대흥사가 고려 이전에 창건된 것은 확실하므로, 혜장이 주장한 신라말의 창건설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전에는 아직 대규모 사찰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였다. 이 절이 크게 중창된 것은 서산대사가 대흥사를 ‘삼재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요, 만세토록 파괴됨이 없는 곳이며, 종통의 소귀처’라 보고 자신의 의발을 대둔산에 전할 것을 부촉한 임진왜란 뒤의 일이다. 1604년(선조 37)에 해남의 외딴 곳에 의발을 전한 서산대사의 배려에 의해서 이 절은 배불의 강압속에서도 많은 인재를 배출하는 선교양종의 대도량으로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다.

    그뒤 1665년(헌종 6)에는 심수가 대웅전을 중창하였고, 1669년에는 표충사를 건립하였으며, 1811년(순조 11)에 천불전이 불타자 1813년에 완호와 제성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흥사는 배불의 그늘속에서 수많 은 강사와 종사를 배출하였다. 그 대표적인 고승은 13대종사와 13대강사이다. 13대종사를 출생순으로 열거하면 해동화엄종의 중흥조로 존경받았던 의심, 담론을 잘해서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였던 삼우, 화엄의 도리와 백 가에 통달하였던 도안, 육신보살로 칭송받았던 문신, 계행을 청정하게 가졌던 추봉, 전국을 순방하며 화엄대회를 열었던 지안, 그 학문이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명망이 높았던 대우, 검소와 청빈의 생활로 평생을 살았던 회정, 문자를 떠난 곳의 진리를 설파하여 마음의 근원을 찾도록 가르쳤던 새봉, 대흥사의 정진당에서 늘 화엄법회를 열었던 체정, 인욕행이 남달리 뛰어났던 해원, 대승경전에 통달하여 많은 저술을 후세에 남겼던 유일, 다선일미 사상으로 이름난 의순 등이다. 13대강사들은 모두가 제10대 대종사였던 체정의 문도로서 원오ㆍ광열ㆍ영우ㆍ승제ㆍ성규ㆍ정일ㆍ태관ㆍ행인ㆍ복혜ㆍ윤우ㆍ시연ㆍ혜장ㆍ각안 등이다.

    <대둔사지>에 의하면 대흥사의 옛모습은 남원과 북원으로 나뉘어 있었다. 북원은 대웅보전ㆍ나한전ㆍ시왕전 등 24개소의 당우가 있었고, 남원은 극락전ㆍ대장전ㆍ지장전 등 12개소의 당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 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문제점이 있다. 대흥사의 현재의 사역은 북원보다 남원이 훨씬 넓은데도 좁은 북원 쪽에 더 많은 당우가 집중적으로 건립되었다는 것은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흥사는 사지의 북쪽에 서 흘러내리는 금당천의 냇물을 중심으로 가람이 남북으로 나뉘어 있고 지금도 남원ㆍ북원이라고 한다. 또 남원ㆍ북원의 법당들은 나름대로의 특색을 지닌 별원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북원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일군과 남원의 중앙부에 위치한 천불전과 서산의 유물이 있는 표충사를 중심으로 한 일곽, 다도로 유명한 초의가 중건하였던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한 일곽으로 분류할 수 있다.

    대웅보전은 심수가 1665년 봄에 중건을 시작하여 1667년 가을에 완성한 건물로 전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집이다. 대웅보전의 현판은 조선 후기의 명필인 이광사가 쓴 것이며, 내부에는 조선 후기에 만든 목조삼존불과 광 무연간에 조성된 후불탱화가 있을 뿐 비교적 단조로운 편이다. 대웅전 앞에는 침계루가 냇가에 연이어 있고, 좌우에는 백설당ㆍ세진당의 승사가 있다. 백설당에는 김정희가 쓴 ‘무량수전’의 편액이 있으며, 이 건물은 현재 큰 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웅보전 동편에는 응진전이 있으며, 안에는 석가여래삼존불을 중심으로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응진전 앞에는 보물 제320호인 대흥사응진전전삼층석탑 1기가 있다. 전하는 말로는 신라 자장이 중국에서 가져온 석가여래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이라 한다.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8호인 천불전은 1811년(순조 11)에 불탄 뒤 1813년에 중건한 것으로, 내부에는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52호인 천불상이 봉안되어 있 다. 이 천불상은 옥돌로 만든 것으로서, 완호 등 10인이 6년에 걸쳐 경주옥돌로 조성하였다. 천불이 완성된뒤 해로를 통하여 이 절로 옮기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여 일본에 닿게 되었으나, 일본인들의 꿈에 이 천불이 나타나 서 “우리는 지금 조선국 해남의 대흥사로 가는중”이라 하여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천불전의 좌우에는 불경을 배우는 학승들이 기거하는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93호인 용화당과 강사가 기거하는 건물이 있으며, 정 면에는 가허루가 있다.

    표충사는 대흥사의 사격을 말하여주는 대표적 건물로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조직하여 공훈을 세웠던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사명과 처영의 영정을 봉안하였으며, 전라남도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 표충사 일원의 당 우배치는 표충사를 중심으로 좌우에 표충비각과 조사당, 정면에 삼문, 삼문 밖에는 2층 누각인 의중당이 있다. 또 의중당의 동쪽에는 서산대사의 유품을 비롯하여 사중유물을 보관하는 보장각이 있다. 표충사의 건물은 1669년에 건립되었고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며, 정면 3칸의 맞배집이다. 의중당은 당시 6군의 군수가 봄ㆍ가을로 표충사에 제사지낼 때 가지고 온 제물을 차리던 곳으로서 전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집이다. 보장전에는 선조 의 하사품인 옥발ㆍ비취옥발ㆍ수저ㆍ금란가사ㆍ금자병풍과 표충사총섭사령패, 서산대사의 친필ㆍ교지ㆍ신발, 초의가 그린 관음도, 대광명전상량문, 승군단 표지물, 철제방패, 금과 은으로 쓴 불경, 금동불상 등 총 24종의 유물이 있다.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94호인 대광명전은 표충사 동쪽 300m지점에 있으며, 조선 후기에 초의가 건립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상을 봉안했고 정자의 천장에는 연화문과 운학을 그렸다. 이 연화문과 운학문양은 그 색채뿐 아니라 문양 자체가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뛰어난 작품이다. 전하는 말로는 초의가 직접 단청을 하였다고 한다. 대광명전 옆에는 고승들이 영정을 봉안한 전면 9칸의 보련 각과 요사채가 있다. 이밖에도 사천왕을 봉안한 천왕문과 대흥사 역대고승들의 부도와 비석을 봉안한 비전이 있다. 이 비전에는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57호인 서산대사부도를 비롯하여 대흥사 13대종사와 13대강사 등의 부도 및 비가 있다.

  10. 대흥사 템플스테이 대흥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대흥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5-11

    [대흥사] 요가명상템플스테이
    1박 - 성인 60,000원, 중고생 50,000원, 초등생 40,000원
    해남 두륜산 대흥사 템플스테이에서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나를 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선물 합니다.
    스님께 내 마음 상태를 점검해 보고, 요가 명상 시간에 내 몸 상태를 살피고 느껴 봅니다.
    내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내 안에 참 나를 찾아 떠나 보세요~

    [대흥사] 디디고 템플스테이 휴식형(1인실)
    1박 - 성인 70,000원
    현대인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고즈넉한 산사에서 수행자의 삶을 비추어 보면서 예불, 공양, 율력을 통해서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가지며 온전한 쉼의 바다에서 자신을 비추어보고 쉴 수 있는 자율형 시간을 많이 드리는 템플스테이 입니다.
    산사를 거닐며 자신의 마음을 찾아보고, 새벽 쏟아지는 별빛을 보면서 동심에 젖어들기도 하며, 울력을 통해 일일부작이면 일일불식이란 마음을 알아보는 등의 산사의 라이프 사이클을 느끼며 온전히 자기자신을 내버려두어 내 본성-불성을 찾게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대흥사] 디디고 템플스테이 휴식형(2인이상)
    1박 - 성인 50,000원, 중고생 40,000원, 초등생 30,000원, 미취학 0원
    현대인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고즈넉한 산사에서 수행자의 삶을 비추어 보면서 예불, 공양, 울력을 통해서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가지며 온전한 쉼의 바다에서 자신을 비추어보고 쉴 수 있는 자율형 시간을 많이 드리는 템플스테이입니다.
    산사를 거닐며 자신의 마음을 찾아보고, 새벽 쏟아지는 별빛을 보면서 동심에 젖어들기도 하며, 울력을 통해 '일일부작이면 일일불식'이란 마음을 알아보는 등의 산사의 라이프 사이클을 느끼고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버려둬 내 본성과 불성을 찾는 시간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