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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사 성보박물관 기림사 금동불두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30
기림사 금동불두-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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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1교구 불국사 불국사 역사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불국사 역사-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창건기
528년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의 발원으로 불국사 창건
5천년 장구한 세월동안 발전해온 우리 민족문화의 정수로 천년세월 너머 현대의 무지한 중생들에게 불국토의 장엄함과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불국사.
불국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는 서기 528년(신라 법흥왕 15)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발원(發願)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여 574년 진흥왕(眞興王)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부처님(毘盧遮那佛)과 아미타부처님(阿彌陀佛)을 주조해 봉안했고, 670년(문무왕 10)에는 무설전(無說殿)을 새로 지어 《화엄경(華嚴經)》을 강설(講說)하였으며, 그 후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고 하였다.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
751년 당시의 재상 김대성에 의해 두 번째 중창이 시작
다른 기록인, 《불국사 사적(事蹟)》에는 이보다 앞선 눌지왕(訥祗王)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고 경덕왕 때 재상(宰相)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3창(祠)되었다 했다. 처음에는 소규모로 창립되었던 불국사가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대성효 2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조에는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으며, 김대성이 이 공사를 착공하여 완공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국가에 의하여 완성을 보았으니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당시의 건물들은 대웅전 25칸,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 극락전 12칸, 무설전(無說殿) 32칸, 비로전(毘盧殿) 18칸 등을 비롯하여 무려 80여 종의 건물(약 2,000칸)이 있었던 장대한 가람의 모습이었다고 전한다.
김대성 재상
삼국유사
중건기
1593년 왜군에 의해 파괴된 불국사는 1604년 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다시 시작되었다.
전해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인 고금창기(불국사 창건에 관한 최고의 기록)는 문헌적인 근거가 약해 불국사가 일정 기간에 창건되기 보다는 긴 세월동안 여러세력들에 의해 점차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오늘날의 일반적 견해이다.
이러한 불국사의 거대가람으로서의 위용은 임진왜란 시기인 1593년 5월 의병과 승군의 활동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왜군의 방화와 파괴등으로 큰 피해를 입어 2,000여 칸의 대가람이 전소되는 고난을 겪게 되었다. 이후 전란의 피해가 복구되면서 불국사도 국가의 지원 및 스님과 신도들의 노력에 의해 1604년(선조 37)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1805년(순조 5)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중수(重修)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 비로전 중수를 끝으로 중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후 조선 후기 국운(國運)의 쇠퇴와 더불어 사운(寺運)도 쇠퇴하여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도난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모습
현대
1966년부터 부분적인 보수를 거처 1973년 마침내 현재의 불국사 모습을 갖추었으며 2012년부터 시작된 석가탑 해체 복원 작업이 2015년 마무리
일제강점기인 1924년 대규모의 개수공사를 실시하여 다보탑의 해체보수, 법당의 중수 등을 실시하였는데 이때 다보탑 속에 있던 사리장치(舍利藏置)가 행방불명되었고 공사와중에 유물의 완벽한 복원과 보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일제의 문화정책의 전시물로서 수난을 겪었다.
8 ·15광복 후인 1966년 석가탑의 해체복원 등 부분적 보수가 있었다가 1969년 불국사 복원위원회가 구성되고 1970년 2월 공사에 착수, 1973년 6월 대역사(大役事)를 끝마쳤다. 이 공사로 주춧돌과 빈터만 남아 있던 무설전 · 관음전 · 비로전 · 경루(經樓) · 회랑(廻廊) 등이 복원되었고, 대웅전 · 극락전 · 범영루(泛影樓) · 자하문(紫霞門) 등이 새롭게 단장되었다.
2008년 12월에서 2009년 12월까지 다보탑 해체 수리작업이 있었고 2012년부터 2015년 석가탑 해체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사리장엄구가 재봉안 되기도 했다.
1909년 청운교 백운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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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석굴암 석굴암 매월 정기 법회 및 기도, 연중 정기 법회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석굴암 매월 정기 법회 및 기도, 연중 정기 법회-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매월 정기 법회 및 기도
예불시간
새벽 예불 : 04:00 (예불문_반야심경_천수경_정근: 석가모니불_축원)
사시 예불 : 10:00 (천수경_예불문_정근_축원_반야심경)
저녁 예불 : 18:00 (예불문_반야심경_천수경_정근_축원)
정기법회 및 기도
1. 초하루 법회
법회 일시 : 매월 음력 초하루, 오전 10시 사시예불 후
법회 장소 : 석굴 본법당(법문), 수광전
2. 보름기도
법회 일시 : 매월 음력 보름
법회 장소 : 석굴 본법당(법문), 수광전
연중 정기 법회
1. 새해기도
일시 : 양력 1. 1
내용 : 새해맞이 소원성취등, 석굴암대종각 소원지달기
2. 정초기도
일시 : 음, 1. 3, 회향(음 1.9)
내용 : 정초신중기도 7일간
3. 입춘기도
일시 : 양력 2. 4(입춘)
내용 : 삼재소멸기도
4. 부처님오신날 기도
일시 : 음력 4. 8
내용 : 봉축 법요식, 초파일 등달기
5. 백중 백일기도
일시 : 음력 4. 4 경, 회향(음 7. 15)
비고 : 백중날 회향
6. 하안거 백일기도
일시 : 음력 4. 15, 회향(음 7.15)
비고 : 하안거해제일 회향
7. 백중49일기도
일시 : 음력 5.26, 회향(음 7. 15)
내용 : 백중 49일기도, 백중 영가등 달기
8. 입시백일기도
일시 : 8월 초 입재, 회향(수능시험일-11월 둘째주 목)
비고 : 백일전 입재
9. 동안거백일기도
일시 : 음력 10. 15, 회향(음 1. 15)
비고 : 동안거해제일 회향
10. 동지기도 (7일간)
일시 : 양력 12. 15(16), 회향(양 12. 21또는 22)
비고 : 동지 6일 전 입재
11. 기타 각종 기도 : 천일기도, 일년기도, 백일기도, 생일축원기도 -
대한불교조계종 석굴암 석굴암 구조와 명칭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석굴암 구조와 명칭-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석굴암 평면도
예배자와 광배와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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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석굴암 석굴암 본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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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석굴암 본존불-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석굴암 본존불인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이다. 높이 약 3.4미터의 거대한 불상이다. 연화좌(蓮花座) 위에 부좌(趺坐)하였고, 화강석으로 조각했으며 수법이 아주 정교하며 장중한 기운이 넘치는 세계 석굴의 걸작이다.
옷의 주름은 생동감이 있고 전체에는 생명감이 넘친다.
가늘게 뜬 눈을 통해 깨달음의 깊이를 느낄 수 있으며, 엷은 미소를 띤 입술, 풍만한 얼굴은 근엄하고 자비로운 표정을 느끼게 한다. 오른손은 무릎에 걸친 채 검지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降摩觸地印)을 하였고, 왼손은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은 모습을 표현했기에 성도상 이라고도 한다. -
대한불교조계종 석굴암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십일면 관음보살상은 바로 본존 부처님의 뒷면 둥근 벽의 중앙을 차지하고 똑바로 서있다. 그 어느 조각보다 정교하게 조각되어 석굴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본존 부처님 바로 뒤에 배치된 이 조각의 양식적 특성은 무엇보다 머리위에 작은 아홉개의 얼굴이 있고 그 위에 다시 한 관음이 있어서 본체와 합하여 십일면이 있는 관음 보살님이란 점이다. 긴 몸에 섬세하게 표현된 천의와 온몸을 덮고 흐르는 영락(纓珞)은 정교한 귀걸이나 목걸이 등과 더불어 그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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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석굴암 석굴암 십대제자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석굴암 십대제자-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석굴 후벽 중앙에 십일면관음상을 안치하고 그 좌우에 곧이어서 각각 5구씩 나한(羅漢) 입상을 배치하였는데, 그 중 왼쪽에 있는 십대제자상이다. 석가여래의 제자 중에서 이름이 높은 수제자 10인을 말하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들 나한상은 동양에서도 첫째로 꼽을 만큼 훌륭한 부조상을 하고 있다.
십대제자상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들 얼굴의 다양한 표현이다. 긴 얼굴에 각기 다른 골상을 보이는 서구적인 모습의 이들 제자상은 모두 머리를 깎았으며 큰 코에 야윈 얼굴을 하고 있다. 자세 또한 정면 또는 측면의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의상의 모양도 서로 다르다. 경권, 향로, 정병 등 각기 손에 들고 있는 것에도 차별이 있어 여러가지의 특색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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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석굴암 석굴암 천부상과 보살상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석굴암 천부상과 보살상-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주실인 원굴에 들어서면 좌우의 천부상 다음에 보살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첫번째 안치된 부처님은 제석이며 그 반대쪽은 범천이다. 이 천부상은 모두 매우 사실적인 묘사에다 세련되고 우아한 작풍을 보인다. 천부상 다음으로 좌우 벽에 새겨진 보살상은 왼쪽이 문수, 오른쪽이 보현보살상이다. 보현보살상은 연꽃무늬의 대좌 위에 서서 누군가에게 권하는 찻잔을 들고 있으며 몸을 굴 안으로 향하였다. 문수보살상은 왼손에 경권을 들고 오른손은 내려져 있다. 천부상과 더불어 이들 보살상은 석굴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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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석굴암 석굴암 사천왕(四天王)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석굴암 사천왕(四天王)-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9
전시로가 주실을 연결하는 통로의 좌우벽에 배치되어 있다. 수미산의 사방을 관장한다는 천왕으로 동방 지국천왕, 서방 광목천왕, 남방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으로 부른다. 전실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앞에 남방 증장천왕, 뒤쪽에는 서방 광목천왕이 배치되어 있으며, 오른쪽에는 앞에 북방 다문천왕과 뒤쪽에 동방 지국천왕이 배열되어 있다.
이들 사천왕은 모두 악귀를 발로 밟고 있는 형상으로 서 있는데, 동방천왕은 두 손으로 칼을 들고 있으며 입은 굳게 다물고 있다. 북방천왕은 얼굴을 북쪽으로 돌린 표현에 왼손은 옷자락을 쥐고 있고, 오른손은 위로 들어 보탑을 받치고 있다. 남방천왕은 검을 양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동방천왕과 유사한 자세이나 발 아래에 있는 악귀의 모습이 업드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방천왕은 오른손은 가슴께에 두고 왼손은 검을 쥐고 있는 자세이다. 얼굴 부분이 따로 제작되어 있어 후대에 보수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