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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1교구 불국사 불국사 삼층석탑 석가탑(국보 제21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불국사 삼층석탑 석가탑(국보 제21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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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층석탑 三層石塔 석가탑 釋迦塔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경주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은 절의 대웅전 앞 뜰 동서쪽에 각각 세워져 있는데, 서쪽탑이 삼층석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다보탑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각 10.75m, 10.29m로 비슷하다.

    탑은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때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1966년 9월에는 안타깝게도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으며, 그해 12월 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16세기 이전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3년 남원 실상사 동ㆍ서 삼층석탑(보물 제37호)의 머리장식을 본따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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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6년의 석가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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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羅尼經(국보 제126호,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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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리기 (국보 제126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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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복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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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진신사리 (현재 석가탑 사리함에 있음)

  2.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1교구 불국사 불국사 연화교 칠보교(국보 제22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불국사 연화교 칠보교(국보 제22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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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교 蓮花橋 칠보교 七寶橋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전체 18계단으로, 밑에는 10단의 연화교가 있고 위에는 8단의 칠보교가 놓여있다. 청운교 ·백운교보다 규모가 작을 뿐 구조나 구성형식 등이 매우 비슷한데,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성이나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한 점, 다리 아래가 무지개 모양을 그리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비슷한 구성 속에도 이 다리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연화교의 층계마다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새겨놓았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오랜 세월동안 스쳐간 사람들의 발자국 탓에 많이 닳아서인지 조각이 희미해져 있어, 지금은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창건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오르내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였고, 비구니가 된 신라 헌강왕비도 이곳을 오가며 왕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가 웅장한 멋을 보여주는데 비해, 섬세한 아름다움을 내보이고 있어, 불국사의 조형에 조화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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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교 칠보교 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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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교 칠보교 계단에 새겨져 있는 연꽃잎 문양

  3.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1교구 불국사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국보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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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국보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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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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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운교 靑雲橋  백운교 白雲橋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전체 34계단으로 되어 있는 위로는 16단의 청운교가 있고 아래로는 18단의 백운교가 있다. 청운교(靑雲橋)를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白雲橋)를 흰머리 노인의 모습으로 빗대어 놓아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오르는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하여 정교하게 다듬었다. 다리 아래는 무지개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직선으로 딱딱해졌던 시선을 부드럽고 생동감 있게 풀어주고 있다. 다리가 있는 석축 아래쪽으로 연못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계단 왼쪽에 물이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물이 떨어지면 폭포처럼 부서지는 물보라에 의해 무지개가 떴다고 전하고 있어,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옛 불국사를 그려보게 된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당시 다리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무지개모양으로 이루어진 다리 아래부분은 우리나라 석교나 성문에서 보여지는 반원아치모양의 홍예교의 시작점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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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1교구 불국사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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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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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9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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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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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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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동비로자나불좌상 金銅毘盧遮那佛坐像

    불국사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1.77m의 이 불상은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머리에는 머리칼을 작은 소라 모양으로 표현하였으며, 얼굴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자비로운 인상을 풍기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은 매우 얇게 표현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는 옷주름의 표현은 매우 사실적이다. 손모양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어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과는 반대로 표현되었다.

    이 불상은 양감과 적절한 신체비례 등에서 이상적이면서 세련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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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1교구 불국사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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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동아미타여래좌상 金銅阿彌陀如來坐像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불국사 극락전에 모셔진 높이 1.66m의 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원만하고 자비스러운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으며, 눈썹은 반원형이고 콧날은 오똑하다. 신체 표현은 장중하여 건장한 남성의 체구를 연상시키며, 두 무릎은 넓게 퍼져서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에는 거침없는 주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옷깃 안쪽에서 밖으로 늘어지는 옷 접힘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어깨 높이로 들어 약간 오므린 왼손은 손바닥을 보이고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에 올려 놓고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약간 구부리고 있다.

    떡 벌어진 어깨, 양감있는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등에서 사실적이면서 세련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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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1교구 불국사 불국사 대웅전(보물 제1744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불국사 대웅전(보물 제1744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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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의 동·서측면에는 익랑(翼廊)이 놓여 동·서 회랑과 연결되고 남회랑의 동측 모서리에는 좌경루(左經樓)가 있고, 서측 모서리에는 범영루(泛影樓)가 배치되어 있다. 자하문 남측에는 청운교와 백운교의 석계를 마련하여 대웅전으로 진·출입 할 수 있도록 꾸몄다.

    불국사에 대한 문헌은 삼국유사와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 대웅전중창단확기(大雄殿重創丹雘記) 등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경덕왕 10년(751,辛卯)에 처음으로 불국사을 창건하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甲寅) 12월 2일 대성이 죽자 나라에서 공사를 마쳤다(...景德王代 大相大城以天寶十年辛卯始創佛國寺,歷惠恭世,以大歷九年甲寅十二月二日大城卒,國家及畢成...)’는 기록이 있어 경덕왕 때(751)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은 불국사고금창기에 의하면 조선 세종 18년(1436)에 중수하였으며, 성종 21년(1490)과 명종 19년(1564)에 중수가 있었으나,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다. 그 후 효종 10년(1659)에 중창된 후 숙종 3년(1677) 번와 보수, 숙종 34년(1708) 서쪽 기둥 교체, 영조 5년과 영조 6년(1730), 영조 7년에 개와(蓋瓦)를 보수하였다. 조선 영조 41년(1765, 乙酉)에는 대웅전을 중창하고, 영조 41년(1767) 단청이 완료되었으며, 이후 대웅전의 삼존불과 후불탱(後佛幀)을 영조 45년(1769)에 완성하였다.

    그 후 퇴락된 것을 일제 강점기인 1918년부터 1925년까지 조선총독부 주관으로 개수한바 있으며, 이어 1934년부터 1936년 사이에도 개수되었다. 그 뒤 또 다시 심하게 퇴락되어 가던 것을 1970년대에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지시로 중창되었다.

    불국사 대웅전 전면의 동측에는 다보탑이 배치되어 있고, 서측에는 석가탑이 배치되어 있다. 또, 대웅전 전면에는 팔각을 기본으로 한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등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동서가 약간 긴 장방형의 평면으로 단층 팔작 기와지붕이며, 조선 후기의 다포계 형식을 가지고 있다. 대웅전의 외관은 중앙의 어칸을 협칸(8.7尺)이나 퇴칸(8.2尺)보다 배이상 넓은 주칸(17.7尺)으로 꾸며졌다.

    공포는 다포로 어칸에 3구의 공간포가 배치되었고, 협칸과 퇴칸에는 1구의 공간포가 배치되어 있다. 살미첨차에는 초화문양(草花文樣)과 봉황(鳳凰) 머리를 조각하였고, 평방에서 돌출된 용머리 조각 등은 매우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대웅전 정면의 어칸은 사분합꽃살문이고, 협칸과 퇴칸은 쌍분합교살문이며, 양측면의 문은 삼분합띠살문으로 꾸며졌으며, 후면의 어칸은 사분합정자살문이며, 협칸은 벽체로 막았고 퇴칸은 분합정자살문으로 20칸중 10칸은 문을 설치하여 개방 했다.

    기단은 면석에 우주(隅柱)와 탱주(撐柱)가 설치되어 있고, 상부에 갑석(甲石)을 덮은 통일신라시대의 가구식 기단(架構基壇)이다. 기단의 사면 중앙부에는 계단이 놓여 있고, 계단 양측의 소맷돌은 측면을 삼각형 문양으로 가공하였다.

    천정은 우물 천정인데 층단식으로 중앙이 높게 꾸며졌다.

    불국사 대웅전은 창건당시 기단과 석등 등의 석조물이 보존되어 있으며, 창건 당시의 유구 위에 영조 41년(1765)에 중창된 건물로 중창기록과 단청에 대한 기록이 함께 보존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건축물이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다포계 건물로 기둥을 생략한 내부 공간 구성 및 살미첨차의 초화문양(草花文樣)과 봉황(鳳凰) 머리 조각, 평방에서 돌출된 용머리 조각 등 내·외부를 매우 화려하게 장식한 우수한 불전으로 그 가치가 크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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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1교구 불국사 불국사 사리탑(보물 제61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불국사 사리탑(보물 제61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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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리탑 舍利塔


    불국사 비로전 좌측 보호각에 보존되어 있는 사리탑으로, 「불국사사적기(佛國寺事蹟記)」에서 말하는 '광학부도(光學浮屠)'가 곧 이 사리탑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여래의 사리탑인지 승려의 사리탑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겉모습이 석등과 비슷하게 생긴 사리탑으로,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는 받침이 되는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두었다. 기단은 연꽃잎을 새긴 반원모양의 돌을 위 · 아래에 두고, 그 사이를 북(鼓)모양의 기둥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기둥에 새겨진 구름무늬에서 강한 생동감이 묻어난다. 탑신(塔身)은 가운데가 불룩한 원통형으로, 네 곳마다 꽃으로 장식된 기둥모양을 새겨두었다. 기둥에 의해 나뉘어진 4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안쪽으로 움푹 파놓은 후, 그 안에 여래상(如來像)과 보살상(菩薩像)을 돋을새김하여 모셔놓았다. 지붕돌은 추녀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6각으로 줄어든다. 경사면은 완만하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평면이 8각인 기본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화려한 조형과 섬세한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1905년 일본인에 의해 동경의 우에노(上野)공원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33년에 반환된 것으로, 일제시대 당시 모진 수난을 당한 우리 문화재의 아픈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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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1교구 불국사 불국사 석조(보물 제1523호, 불국사박물관 소장)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불국사 석조(보물 제1523호, 불국사박물관 소장)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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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조 石槽

    석조(石槽)는 큰 돌을 파서 물을 저장할 수 있도록 만든 용기로, 흔히 큰 절에 설치되었다. 불국사 석조는 일반적인 통일신라 석조의 형태인 직사각형 모양이지만, 다른 석조와는 달리 내부와 외부에 돋을새김 조각이 많고 모서리를 장식적으로 둥글게 한 점이 특징적이다. 내부에는 거대한 연꽃모양이 새겨져 있어 석조의 물속에서 연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효과를 주며, 외부에는 돌림띠를 돌리고 안상(眼象) 무늬로 장식하였다. 전체적인 모양새가 우아하고, 장식 또한 정교하여 통일신라 석조(石造) 미술의 뛰어난 조형의식을 보여주는 수작(秀作)이다.

    불국사 석조는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수조의 형상이 원형인 백제시대의 석조와 달리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형상인 직사각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내·외면에 조각이 있는 점과 다른 직사각형의 석조와는 달리 모서리를 둥글게 한 것이 특이하다. 특히 내부 바닥면의 화려한 연화문 조각은 통일신라시대 불교미술의 뛰어난 조형의식과 높은 예술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인정된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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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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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조 실측도

  9.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1교구 불국사 불국사 가구식 석축(보물 제1745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불국사 가구식 석축(보물 제1745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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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구식 석축 架構式 石築

    자하문 앞에는 아름답게 축조된 가구식 석축과 조화를 이룬 청운·백운교가 놓였고, 그 앞에는 평지를 이루며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구품연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매몰되어 있다. 가람서쪽에 있는 극락전 중심의 구역은 대웅전구역보다 한 단 낮추어 배치되었는데, 여기에는 정면에 안양문을 세우고, 그 앞에는 연화·칠보교의 계단을 축조하였다. 극락전 주위에는 안양문과 연결하여 회랑이 둘러졌는데 동쪽에는 대웅전 회랑과 연결되어 별도의 회랑을 두지 않았다.

    안양문과 자하문 앞에는 아름답게 꾸민 가구식 석축이 동서로 놓였는데, 동쪽 자하문 앞의 것은 백운교의 계단 위에서 단을 달리하여 상단의 석축을 변화 있게 꾸며 조화를 이루었다. 안양문 앞에서는 밑에서부터 수직으로 석축을 쌓되 중간 중간 칸을 이루어 다듬은 석주(石柱)와 인방석을 가구식으로 걸고, 그 가운데를 자연석으로 채운 행태이다. 자하문이나 범영루 앞의 하층 석축은 밑에서부터 거대한 자연석을 쌓고 그 위에 가공석재를 가구식으로 짜 올린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범영루의 돌출부 기둥 밑에는 점차형의 석재를 차곡차곡 쌓아 돌기둥을 만들었고 또 석교 밑에서는 정교한 홍예를 이루고 있다.

    대웅전과 극락전 구역의 서측회랑 하부 석축이 포함되는데, 구조형식을 살펴보면 수직의 석주와 수평의 주두석 및 동자주, 초석, 갑석으로 장방형의 격자 틀을 형성하고, 그 안에 자연석을 밀실하게 채워 넣는 수법으로 쌓았으며, 대웅전 석축은 1단, 극락전 석축은 2단으로 구성되어 약간의 차이가 있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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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11교구 불국사 불국사 대웅전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보물 제1797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불국사 대웅전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보물 제1797호)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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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靈山會上圖   四天王 壁畵

    ‘불국사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慶州 佛國寺 靈山會上圖 및 四天王壁畵)’는 1769년에 영조의 딸인 화완옹주와 상궁 김씨 등이 시주하여 제작한 불화로, 영산회상도와 2점의 사천왕 벽화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조성연대는 영산회상도에만 1769년이라는 연대가 있고 사천왕 벽화에는 조성연대 없이 화원의 이름만 적혀 있는데, 영산회상도 제작에 참여한 화승들이 사천왕벽화를 그리는 데도 참여하였고 두 불화에서 인물표현과 채색 등에 유사점이 많은 것을 볼 때 영산회상도와 사천왕벽화는 같은 해에 함께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화는 18세기 중후반 통도사와 봉정사 등 경상도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화승들이 함께 제작한 것으로, 화려하면서도 차분한 색감과 안정적인 구도 등 경상도 지역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

    아울러 영산회상도를 구성함에 있어 거는 그림과 벽화가 한 세트를 이루는 구성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으로, 조선 후기 불화조성의 한 면을 잘 보여주는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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