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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룩스 불교 :: CYLOOKS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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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경사 성보박물관 보경사 적광전비로자나후불탱 寶鏡寺 寂光殿毘盧舍那後佛幀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보경사 적광전비로자나후불탱 寶鏡寺 寂光殿毘盧舍那後佛幀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보경사 적광전비로자나후불탱 寶鏡寺 寂光殿毘盧舍那後佛幀

    영조18년(1742)
    보물 제 1996호 / 2018년 8월 21일 보물지정
    길이 275.5cm, 폭 272.4cm

    1742년(영조18, 임술) 5월에 조성되었고 마본홍지摩夲紅地에 백선으로 표현 한 선묘불화로서, 16세기 조선시대 민중불화에 그 연원을 두며 조선후기까 지 지속적으로 사용된 화법이다.
    화면 중앙에 낮은 수미단 위 연화좌에 지권인을 맺은 비로자나불이 결가부 좌하고 비로자나불 앞에 ‘주상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歲‘왕비전하수제년王妃 殿下壽齊年’ ‘세자저하수천추世子邸下壽天秋’ 라고 쓰인 원패가 세워져 있는 것이 그려져 있다. 본존 좌우에는 문수, 보현 보살이 시립하고 있고, 그 바 깥에 천왕상이 2위씩 배치되어있다. 이 불화 조성의 목적이 왕실을 축수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지방관과 양반 사대부들의 수탈과 억압으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숨어있다.
    조선후기 경북지역에서 활동한 불화승 뇌현雷現, 밀기密機, 석잠碩岑3명이 다. 보경사 말사인 서운암에 수화승인 뇌현스님 승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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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한불교조계종 기림사 기림사 가람 배치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기림사 가람 배치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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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적광전
    2. 약사전
    3. 응진전
    4. 진남루
    5. 삼천불전
    6. 관음전
    7. 삼성각
    8. 명부전
    9. 성보박물관
    10. 매월당사당
    11. 범종루
    12. 삼층석탑
    13. 화정당
    14. 화정수
    15. 해행당
    16. 백운당
    17. 공양소
    18. 요사채
    19. 응향각
    20. 명부전요사채
    21. 종무소
    22. 사천왕문
    23. 일주문
    24. 목탑지
    25. 우물1
    26. 우물2
    27. 화장실1
    28. 화장실2

  3. 대한불교조계종 기림사 기림사 창건설화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기림사 창건설화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먼 옛날 범마라국 임정사에 오십 년간 수도하면서 천안통과 숙명통 그리고 타심통을 얻은 도인 광유성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전생이야기를 했으니 "내가 전생의 부처님의 제자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에, 파사익 왕의 세 시녀는 늘 꿀물과 우유로 부처님과 제자들을 공양 올렸다.
    제자들 중에는 인물이 출중한 스님이 한 분 계셨는데, 시녀들은 부처님 다음으로 공양하다가 그만 공경이 사랑으로 변해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었다. 스님은 여인들의 유혹을 제도하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산 속으로 들어 가 버리셨다.
    그러나 스님은 아름답고 상냥한 세 여인을 잊지 못해 번민하다가 결국 도를 이루지 못한 채 입적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 그 스님의 도반으로서 먼저 도를 이루는 사람이 제도키로 약속을 했었다.
    내 이제 금생에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도반인 그 스님과 세 시녀를 제도하려 하니 나와 숙세로부터 인연이 있는 이들을 누가 이곳으로 안내하겠느냐?"
    그때 승열 스님이 말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스승이시여!"
    "오 장하구나, 너는 아라한과를 얻었으니 능히 할 수 있으리라.
    그 스님은 금생의'수다라'라는 대국의 왕이고 왕후와 후궁은 전생의 시녀이니라."
    "그럼 한 명의 시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곧 왕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여기로 올 것이니라.
    수다라 왕국은 아직도 불법이전해지지 않았으므로 세명을 한번에 모셔오기 어려울 테니 , 먼저 후궁인 월해부인을 인도토록 하여라"
    승열 스님이 수다라국에 도착했을 때 ,왕은 마침 500궁녀를 데리고 강가를 거닐다가 숲속에서 잠이 들었다.
    산책을 즐기던 궁녀들은 좌선에 든 스님을 발견하고는 이상한 모습에 의아한 눈길을 주고받다가 가까이 다가와서 물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요?"
    "나는 범마라국 임정사에서 온 승려입니다."
    스님은 궁녀에게 스님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불법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었다.
    이때 잠에서 깨어 이를 목격한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소리쳤다.
    "너는 누군데 나의 궁녀를 꼬이느냐? "
    왕은 승렬 스님의 목에 칼을 대고는 인생의 참 진리가 무언지 알려주겠다며 불개미 집을 헐어서 스님의 몸에 풀어놓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불개미는 스님의 몸을 물지 않고 모두 흩어져버렸다.
    이것을 본 왕은 크게 놀라면서 예사로운 분이 아닌 줄 알고 스님을 궁중으로 정중히 모셨다.
    승열 스님은 1년간 궁중에 살면서 왕과 왕비 그리고 후궁들을 교화하였으며 수다라 왕국의 최초의 절 범승사를 세웠다.
    그리고는 며칠 후 승열 스님은 왕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임정사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떠날 차비를 하면서 월해부인을 모시러 온 뜻을 밝혔다.
    왕은 보내기 아쉬웠으나 월해부인이 선뜻 나서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후 월해부인은 광유성인의 제자가 되어 물긷고 차를 다리며 열심히 정진하였다.
    어느 날 광유스님은 승열 비구에게 다시 수다라국에 가서 왕과 왕비를 모셔오도록했다.
    승열 스님이 수다라국에 도착하니 , 왕과 왕비는 물론 지난번에 귀의한 십여명의 제자와 신도 및 백성들까지 영접하였다.
    "월해부인은 대왕이 오셔서 함께 공부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왕이 도착하기도 전에 도를 얻고 사바의 인연을 마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기가 막힌 듯 슬피 탄식했다.
    "오, 참으로 세상은 허망하군요. 대왕이시여! 이 세상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선지식이시여, 저를 깨우쳐 주소서!"
    "그것은 일체를 소유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자신을 아는 일이지요."
    승열스님은 자상한 설법과 함께 왕의 전생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왕은 참회하면서 왕비인 원앙부인과 함께 광유성인에게 가서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왕위를 태자에게 물려 준 뒤 임정사로 향해 길을 떠났다.
    만삭의 몸으로 길을 떠난 원앙부인은 중도에서 지칠대로 지쳐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부인 힘을 내구려. 나와 함께 도를 이루자고 하지 않았소."
    "대왕이시여! 저는 전생에 숙업인 듯 하옵니다. 저를 여기서 종으로 팔아 그 대가를 임정사 부처님께 올려 다음 생에 다시 공부하도록 빌어주십시오. 저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왕은 눈물을 흘리며 죽림국의 한 부자에게 만삭이 된 부인을 팔았다.
    "대왕이시여! 아기를 나으면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을까요?"
    "아들이거든 안락국이라 하고 딸을 나으면 아량이라 하여주오."
    가슴이 터질 듯 아프고 슬픈 마음으로 부인과 작별한 왕은 광유성인의 제자가 되어 차 시봉을 하면서 세속 일을 잊고 정진에 몰두하였다.
    그렇게 7년이 되던 어느 날, 임정사로 한 남자아이가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는 원앙부인이 낳은 태자 안락국이었으니 바로 전생의 한 시녀이기도 하다. 반갑게 상봉한 부자는 공부하며 함께 지냈다. 수다라 왕이 도를 얻어 열반에 들자 광유스님이 안락국에게 전생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안락국아! 너는 인연 있는 곳을 찿아 가서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거라. 그 인연지는 여기서 이백오십만리 떨어진 해동국으로 그곳에는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계신 곳이다. 가서는 거북이가 물 마시는 형상을 하고 있는 산을 찾거라. 동해바다의 기운을 들여 마시는 용이 사는 연못이 있고, 탑의 형상을 갖춘 남쪽 돌산에는 '옥정'이라는 우물이 있으니 그 물을 먹으면서 수도하거라. 북쪽에는 설산을 닮은 돌 빛이 흰 산이 있으니 그 산 굴 속에 부처님을 조성하여 모시거라."
    그리하여 해동 계림국에 도착한 안락국은 명당을 찾아 조그만 암자를 세워, 이름을 칭하되 '임정사'라 하였다.
    절이 창건된지 백오십년 후 신라의 '원효대사'가 절을 확장하고 ,이름을 부처님 당시의 최초의 절인 '기원정사'의 이름을 따서 현재의 '기림사'라 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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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기림사 성보박물관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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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415호
    보살상의 하대상면(下臺上面)에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의해 조선 연산군 14년(1501)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건칠불(乾漆佛)이다.
    건칠불은 옻칠을 입힌 종이 부처님이다.
    보살상의 머리에는 상투를 올리고 그 위에 따로 만들어진 2단 구조의 보관을 썼는데, 관의 표면에는 아름다운 당초문이 돋을새김 되어 있다.
    둥글고 풍만한얼굴에다 눈, 코, 입등이 단아하게 묘사되어 보살의 특징있는 얼굴을 만들어 준다.
    귀는 짧고 목에는 삼도가 없다. 자세는 왼손을 대좌에 짚고, 바른 다리는 대좌 아래로 내린 반가좌이다.
    어깨는 좁지만 가슴은 당당한 편이며 ,천의는 양어깨를 내려와 대좌 아래까지 흐르고 상의자락 역시 다리에서 그냥 아래로 내려온다.

  5. 대한불교조계종 기림사 기림사 대적광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기림사 대적광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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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833호
    대적광전은 기림사의 본전으로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어졌으며 그 뒤 8차례나 다시 지어졌다.
    1997년 해체공사 때 종도리에서 4종의 묵서가 발견되었다.
    이 묵서에 의하면 1629년 제5차 중수가 있었고, 1755년 개조중수가 있었고, 1785년에 6차 중창이 있었으며, 1978년에 제7차 중수가 있었다.
    최근 1997년에는 정부의 문화재 수리비용으로 제8차 완전 해체 수리가 이루어졌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배흘림 기둥의 다포식 단층 맞배지붕이 단정하다.
    겉모습은 본전 건물다운 웅장함을 갖추었으며, 내부는 넓고 화려하여 장엄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전면에는 모두 화려한 꽃창살 문을 달았는데 색이 바래 화려한 꽃창살 조각의 느낌이 포근히 전해진다.
    넓은 전각 안은 장엄한 맞배식 건물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며, 단청이 퇴색하여 느낌이 더 고색 창연하다.
    대적광전은 주불이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이다. 적(寂)은 번뇌를 멸한 고요한 진리의 세계, 니르바나의 세계를 말하며, 광(光)은 그 세계에사 나오는 참된 지혜가 온 우주를 찬란히 비춘다는 것을 말한다.

  6. 기림사 성보박물관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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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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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30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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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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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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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958호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승려 광유가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라 부르던 것을 원효대사가 기림사로 고쳐 부르기 시작하였다. 기림사 대적광전에 모셔진 불상인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은 향나무로 틀을 만든 뒤 그 위에 진흙을 발라 만든 것이다.
    중앙에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좌우에 약사(藥師)와 아미타불(阿彌陀佛)을 협시로 배치한 형태이다. 근엄하면서도 정제된 얼굴, 양감이 풍부하지 않은 신체의 표현, 배부분의 띠로 묶은 옷 등에서 16세기 초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7. 기림사 성보박물관 기림사 소조비로자나불 복장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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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기림사 소조비로자나불 복장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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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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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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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959호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불 복장의 전적 유물은 사경(寫經)과 목판본(木版本) 등 일괄 54건 71책이다.
    사경은 고려 충목왕(忠穆王) 4년(1348)으로 추정되는 『상지은니대반야경(橡紙銀泥大般若經)』 권 210 등 10첩(帖)이 확인되었고, 목판본은 고려 숙종연간(肅宗年間, 1096∼1105)에 조성된 목판에서 13세기 초반 인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방광불화엄경』 권26(大方廣佛華嚴經 卷二十六)을 비롯하여 고려말 인출본과 조선 초기 인출본 그리고 연산군 6년(1500) 합천(陜川) 봉서사(鳳栖寺)에서 판각 인출한 『선종유심결(禪宗唯心訣)』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장정 형태도 조선시대에 상당수 확인되는 선장본(線裝) 외에 고려 사경(高麗寫經)에서 많이 확인되는 첩장본(帖裝本)과 흔하지 않은 장정 방식인 호접장본(胡蝶裝本)과 포배장본(包背裝本) 등이 골고루 확인된다. 호접장본으로는 고려 충선왕 1년(1309)에 새겼던 목판에서 공민왕 19년(1370)에 다시 인출(印出)한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권 4∼7, 8∼9 그리고 중국 송(宋)에서 만들어진 목판(木板)에서 고려말 인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방광물화엄경소(대방광불화엄경소)』 권97 등이 있다.
    한편 포배장본으로는 고려말 인출된 것으로 보이는 『대방광원각약소주경(大方廣圓覺略䟽注經 )』 권상2, 『법화삼매참조선강의(法華三昧懺助宣講儀)』 권하 등이 있다.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불 복장의 전적 유물은 고려시대 조성되었던 은자대장경(銀字大藏經)의 실례를 보여주며, 고려시기 판각(板刻)되었던 목판의 인출과 다양한 장정(裝訂)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사경과 여러 목판본에서 확인되는 조성 목적과 조성 시기와 장소 그리고 관여했던 인물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는 조성 당시의 역사상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8. 기림사 성보박물관 기림사 비로자나 삼불회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기림사 비로자나 삼불회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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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1611호
    이 불화는 기림사 대적광전의 후불탱화로 봉안되어 있는 비로자나삼불회도로서, 중앙에 비로자나불회도 중심으로 왼쪽에 약사불회도, 오른쪽에 아미타불회도가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에 많이 조성된 삼불회도는 석가모니불화(중앙)·약사불화(좌)·아미타불화(우)로 구성된 삼세불화와 비로자나불화(중앙)·노사나불화(좌)·석가모니불화(우)로 구성된 삼신불화가 일반적이지만 이 불화에서는 비로자나불화와 아미타불화, 약사불화로 이루어져 있어 삼세불화와 삼신불화를 결합한 독특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중국 남송대부터 나타난 형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등 16세기 불상에서 이미 확인되고 있지만, 불화 중에서 기림사 불화가 가장 이른 시기의 예에 속하기 때문에 자료적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이 삼불회도는 전반적으로 한 화면에 많은 존상을 배치하고 있는데, 중앙의 주불을 중심으로 점차 화면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상승하면서 높은 존격에서 낮은 존격으로 배치하고, 인물의 표현도 점점 작아지게 하여 화면에서 원근감과 입체적인 공간감을 살리고 있다. 색채에서 후대에 일부 개채의 흔적이 보이지만, 황토색의 바탕에 홍색·녹색·노란색·하늘색·초록색 등이 적적하게 조화를 이루어 부처님의 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불화는 천오(天悟)·금명(錦明)·최훈(最熏)·적조(寂照)·지순(智淳)·조한(祖閑)·임한(任閑) 등의 화원이 참여하여 1718년(숙종 44)에 그렸는데, 천오와 임한은 18세기 경상도 지역을 대표하는 화승들로 기림사 불화의 진가를 짐작케 한다.

  9. 대한불교조계종 기림사 기림사 삼층석탑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기림사 삼층석탑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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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유형문화재 제205호
    대적광전과 진남루 사이 서쪽에 오백나한전이 있고 바로 그 앞에 높이 3m 쯤 되는 아담한 3층석탑이서 있다. 감은사 탑과 같은 돌인 안산암(安山岩)으로만들었는데, 2중의 기단 위에 3층으로 몸체 돌과 지붕돌을 쌓았고 그 위에 노반, 복발, 앙화까지 남아 있다. 아랫기단은 낮은데, 한 면에 3개씩의 기둥모양이 새겨져있고 , 위 기단은 높은데 각 면마다 기둥 셋이 새겨져있다. 몸체 돌에는 층마다 모서리 기둥을 새겼는데, 아래는 굵게, 위는 좁게 나타내는 엔타시스(배흘림) 양식이다. 처마 끝은 4단으로 돼있다. 크기도 작지만 , 기단의 기둥수, 처마 받침의 단수가 줄어들어 ,통일 신라의 일반형이이면서 ,시대 말기 것으로 보인다. 석탑 동쪽의 보리수밑에는 목탑(木塔)터가 남아 있다. 언젠가 목탑이 소실되고 난 뒤 재건하지 못하고 ,대신 자그마한 석탑을 세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 대한불교조계종 기림사 기림사 응진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기림사 응진전
    작성자
    두레박
    작성일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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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유형문화재 제214호
    오백나한상을 모신 건물로 전면 5칸, 측면 2칸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장대석 1단의 얇은 기단 위에 화강석 주초를 놓고 전 후면에는 두리기둥을, 측면에는 각진기둥을 세웠는데 후면의 기둥은 1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동바리를 하였다. 공포는 내외 2출목이다. 내부 살미의 형태는 주심포에다 교두점 차단과 양봉이 주간포에는 교두점 차단과 삼분도 요두(要頭)를 각각 얹었다. 가구는 5량가이며 대량과 종량위에는 파련대공을 세웠다. 천장은 빗반자를 치고 단청을 하였는데 천장 전체가 빗반자로 된 경우는 드물다. 바닥은 우물 마루를 깔았으며 문비 구성은 전면 각칸에 이분합(二分合)교살문을 달았다. 이러한 형태를 볼 때 관룡사 대웅전의 모양과 흡사한 조선중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2002년 4월 개분불사를 하는 중에 오백나한 복장에서 조성당시에 씌여진 것으로 보이는 발원문이 나왔다. 여기에 보면 조성년도가 옹정7년(擁正七年)이다 서기로는 1729년이고 우리나라 연호로는 영조5년이다. 불상조각에 참여하신 분은 금산사 스님 4분과 본사스님 3분이다. 오백아라한은 정확히 526분의 성자이다.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 중에 가장 뛰어난 10대 제자, 16성중(聖衆)과 500성중(聖衆)이다. 모든 번뇌를 끊고 열반에 들어간 최고 단계에 있는 사람이다. 아라한에 관한 설명은 다음의 법구경에 나온 게송으로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