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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봉녕사 봉녕사 일주문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봉녕사 일주문-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일주문이란 사찰의 중심인 큰 법당에 들어서기 위해 지나는 관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인데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해 오롯한 마음으로 이 문을 통과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현재의 봉녕사 일주문은 1994년 백흥암 육문스님이 희사한 것으로 광교산봉녕사 (光敎山奉寧寺)란 이름으로 건립하였다.
건물 특징
네 기둥[四柱]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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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봉녕사 봉녕사 심우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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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봉녕사 심우불교대학-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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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3
1990년 세주 묘엄 큰스님께서 " 재가불자들의 신심고취와 정법의 생활화 " 를 위해 불교교리 교육과정을 경전반과 기초교리반으로 개설하였다.
2011년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으로부터 정식으로 신도전문교육기관으로 인가를 받아 기초교리반과 함께 2년 4학기제의 '봉녕사심우불교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2013년 1월부터 심우불교대학 1회 졸업생을 기점으로 동문 모임인 '심우회'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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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봉녕사 봉녕사승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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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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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3
봉녕사승가대학-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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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3
학문과 수행을 겸하는 교육기관
봉녕사승가대학은 경經.율律.론論 삼장을 전문적으로 교육하고 더불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 승가의 화합정신을 체득시키는 학문과 수행을 겸하는 교육기관이다. 따라서 한국불교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비구니의 자질을 갖춘 인천의 사표를 길러 낼 것을 목적으로 1974년 비구니 묘엄 명사께서 설립하였다.
세주당 묘엄 스님은 경봉 스님과 운허 스님 두 분께 각각 동학사(1956)와 통도사(1957)에서 전강을 받고, 1959년 한국불교 최초의 비구니 전문 강원인 동학사강원에서 강주로 취임한 최초의 비구니 강사였다.
1966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운문사강원 비구니 강주로 6년간 강의한 묘엄 스님은 1971년 참선수행을 위해 수원 봉녕사에 정착하여 선원을 열어 정진에 힘쓰다가 학인 수가 불어나자 1974년 봉녕사에 강원을 열고 강주로 취임하였다. 이후 인재 양성 대불사를 추진, 1987년 봉녕사강원이 승가대학 으로 인가받고 40여 년간 1천 명의 학인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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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봉녕사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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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금강율학승가대학원은 계율사상에 깊은 관심과 원력을 세우셨던 세주당 묘엄 명사께서 1999년 6월 21일 전조계종 총무원장 가산 지관 큰스님을 초대 율주로 모시고 한국불교 최초로 비구니 금강율원을 개원하여 2011년에 금강율학승가대학원으로 승격하였습니다. 제2대 묘엄 명사에 이어 제3대 율주 영묘도혜스님, 제4대 율주·대학원장 심인 적연스님의 지도를 받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의 새로운 교육방침에 따라,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면서 더욱 내실을 기하는 교육제도로 개편, 종단의 인가를 받은 계율 전문 비구니 교육기관입니다.
금강율학승가대학원은 율장연구, 습의와 율사律師 양성 등을 목표로 전문과정(2년)과 연구과정 (3년)으로 운영됩니다. 전문과정에서는 사분율, 범망경, 윤리학, 대승불교계율사상, 불교윤리학, 선원청규, 종헌종법, 사미율의요략증주, 작법, 팔리어 등을 연찬하고, 연구과정에서는 초기불교에서부터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율장 논서 강독과 번역 등을 하고 있습니다.
금강율학승가대학원은 부처님의 계율정신을 계승하여 수행 가풍 확립과 사회 정화를 교육이념으로 삼아 율장 연찬에 매진하고 있으며, 세주당 묘엄 명사의 유지를 받들어 부처님의 혜명을 이을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세상을 밝히는 수행도량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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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봉녕사 봉녕사 묘엄불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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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봉녕사 묘엄불교문화재단-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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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3
2012년 9월 설립
봉녕사 수호 - 세주묘엄스님께서 평생 동안 심혈을 기울여 가꾸신 봉녕사가 스님의 뜻을 이어받은 제자들에 의해 유지 발전 될 수 있도록 수호하고 돕는 일
장학사업 - 봉녕사승가대학 및 금강율학승가대학원 재학생, 졸업생 및 그 밖의 비구니스님들 가운데 불교 관련 분야에 우수인재를 선발하여 장학금 지원
묘엄불교문화상 제정 - 불교학 및 불교문화 발전에 기여한 사람을 선발하여 표창
구제사업 - 재난, 질병, 사고, 빈곤 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財施, 法施, 無畏施를 실천
기타 - 이상의 취지와 관련된 그 밖의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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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봉녕사 봉녕사 세주당 묘엄 명사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봉녕사 세주당 묘엄 명사- 작성자
-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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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3
1931년 1월 17일(음) 경남 진주시 수정동 540번지에서 출생
1945년 5월 4일(음) 경북 대승사에서 월혜 스님을 은사로 득도
1945년 5월 5일(음) 경북 대승사에서 성철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49년 2월 (음) 자운 스님을 계사로 식차마나니계 수지
1961년 2월 2일(음) 경남 통도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1949년 4월 15일(음) 경북 봉암사에서 수선안거 이래 3안거 성만 -
봉녕사 사찰음식 봉녕사 사찰음식 교육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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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봉녕사 사찰음식 교육 프로그램-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강의개요 1
사찰음식강의는 강의 및 시연, 조별 실습, 품평으로 이루어지며 약 3시간정도 강의가 진행됩니다.
한 강의당 정원은 40명이고, 4인 1조 조별구성 / 기본반 1년 과정이며 1월과 8월은 방학입니다.
기본반 사찰음식은 계절식이므로 사계절의 제철음식 재료를 바탕으로 강의메뉴가 정해지며 스님마다 강의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 강습비 : 월 20만원 (*재료비 포함)
- 교육기간 : 1년 과정 (10개월)
- 입금계좌 안내 : 기업은행 0312524128 세주불교문화원
선재스님의 사찰음식 : 매주 화요일 오전 10:00 ~ 오후 12:30
전문가스님의 실용과정 : 매주 수요일 오전 10:00~오후 12:30
사찰음식 필수 기초반 : 매주 목요일 오전 10:00~오후 12:30
강의개요 2
꽃꽃이는 불교에서부터 유래 되었습니다.
부처님께 꽃을 올리는 즉, 공화에서 유래되어 현재 체계화 이론화 된 꽃꽃이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불단에 꽃을 올리는 정성은 하나의 기도입니다. 꽃 공양은 부처님을 공경하는 것 중 최상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꽃을 인연으로 부처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소재비 : 10만원 (수강료는 무료입니다.)
봉녕사 사찰음식의 종류
저장식품 - 김치류 , 장류(된장, 고추장, 간장), 장아찌류, 초절임, 소금절임, 장절임
효소식품 - 식혜, 매실효소, 감효소, 구기자효소, 백초효소, 뽕잎효소, 산수유효소, 인삼효소, 포도효소, 오디효소
밥 - 감잎밥, 연잎밥, 감자밥, 무밥, 연근밥, 죽순밥, 취나물쌈밥, 곤드레나물밥
죽 - 갱죽, 구기자죽, 근대죽, 대추죽, 들깨죽, 아욱죽, 연자죽, 연근죽, 율무죽, 잣죽
면/만두 - 감자옹심이, 녹차칼국수, 삼색칼국수, 메밀국수, 미역옹심이, 뽕잎칼국수, 팥칼국수, 버섯만두, 연근만두
국/탕 - 가지냉국, 감자국, 곤드레된장국, 냉이국, 늙은호박국, 능이버섯국, 두릅냉국
찌개 - 강된장찌개, 고추장찌개, 청국장찌개, 순두부찌개, 전찌개, 호박찌개
조림/찜 - 고구마줄기조림, 고추조림, 곤양조림, 단호박찜, 콩나물표고버섯찜, 호두조림
쌈 - 곰취쌈, 근대잎쌈, 다시마쌈, 머위잎쌈, 상추쌈, 연잎쌈, 우엉잎쌈, 취나물잎쌈, 콩잎쌈, 호박잎쌈
천연앙념 - 감자녹말, 건고추, 계피가루, 고추, 고추씨, 고춧가루, 녹차가루, 다시마, 도토리가루, 들기름, 들깨, 들깨가루,들깨즙, 등겨가루, 말린참죽, 메밀가루, 메주, 제피잎, 죽염, 콩가루, 표고버섯가루
튀각/부각 - 가죽부각, 감부각, 감잎부각, 감자부각, 고추부각, 과일부각, 김부각, 깻잎부각, 다시마부각, 동백잎부각, 들깨송이부각, 미영튀각, 배춧잎부각, 쑷부각, 야생잎부각, 연근부각
장 - 간장, 고추장, 다시마고추장, 된장, 두부장, 등겨장, 맛간장, 매실고추장, 살구고추장, 쌈장, 쩜장, 초고추장
천연양념(52종) - 감자녹말, 건고추, 계피가루, 고추, 고추씨, 고춧가루, 녹차가루, 다시마, 다시마가루, 도토리가루, 들기름, 들깨, 들깨가루, 들깨즙, 등겨가루, 말린참죽, 메밀가루, 메주, 멥쌀가루, 방아잎, 백년초가루, 보리조청, 산초, 산초가루, 생강,생강가루, 솔잎, 수수가루, 식초, 쌀조청, 쑥가루, 연근가루, 연잎가루, 연잎즙, 옥수수가루, 울금가루, 잣즙, 제피가루, 제피잎, 죽염, 참기름, 참깨, 찹쌀가루, 채수, 천일염, 청각, 칡녹말, 콩가루, 통계피, 표고버섯, 표고버섯가루, 호두
튀각/부각(16종) - 가죽부각, 감부각, 감잎부각, 감자부각, 고추부각, 과일부각, 김부각, 깻잎부각, 다시마튀각, 동백잎부각, 들깨송이부각, 미역튀각, 배춧잎부각, 쑥부각, 야생잎부각, 연근부각
묵/두부 - 견과류묵, 녹두묵, 단호박묵, 도토리묵, 동부묵, 두릅묵, 메밀묵, 밤묵, 버섯묵, 옥수수묵, 우엉묵, 청포묵, 녹차두부, 서리태두부, 순두부, 연잎두부, 흑임자두부, 참깨두부
떡 - 가래떡, 감단자, 감자송편, 경단, 모시잎떡, 바람떡, 수수부꾸미, 연잎떡
다과 - 검은깨유과, 곶감호두말이, 깨다식, 매작과, 연꽃떡, 연잎다식, 인삼정과
음청류 - 감잎차, 뽕잎차, 구기자차, 냉이차, 솔잎차, 식혜, 수정과, 매화차, 모과차, 보이차, 산수유차, 연근차, 연잎차 -
봉녕사 사찰음식 사단법인 세주불교문화원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사단법인 세주불교문화원-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본 법인은 한국불교문화와 전통문화의 이해와 불교문화의 연구보존을 위한 학술적 연구와 행사기획 및 실행함을 목적으로 한다.
본 법인의 설립취지는 經律論 三藏을 전문교육으로 하며 한국불교문화의 전통을 계승발전 시키고 중생과 사회가 추구하는 모순과 고통을 해결할 선지식을 양성하며 불자의 자질을 갖춘 人天의 師表를 길러 널리 대중 속으로 포교하는 목적으로 설립을 하였습니다. 이런 취지를 계승하기 위하여 한국 최초의 비구니 강사이시며 봉녕사 승가대학장 이셨던 世主妙嚴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스님의 후학들과 불교 의례문화 전문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한국전통문화와 관련된 불교문화를 보존과 계승에 주력하고 후진양성과 연구활동에 매진하려 합니다. 이상의 설립취지와 연구활동을 위하여 사단법인을 설립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책임있게 불교문화와 전문화, 현대화,대중화에 힘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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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녕사 사찰음식 한국사찰음식의 역사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한국사찰음식의 역사-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경전에 나타난 사찰음식의 역사
사찰음식은 경전에 나타난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교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스며든 지혜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초기 경전에는 사찰음식이라기 보다는 음식을 섭생하는 자세와 방법 등을 중심으로 많이 언급하고 있다.
불가에서 식사(食事)를 공양(供養)이라 칭하는 이유는 그 음식을 차리는 데 있어 쓰인 모든 이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으로써, 공(供)의 뜻으로 자양(資養)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초기 불교 경전에서는 수행자들이 음식을 저장ㆍ조리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탁발(托鉢)하지 않고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곧 물(物)에 대한 집착으로써 무소유를 행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후에 수행하는 이들이 늘어나 교단이 형성되고 정사에서 정착생활을 하면서 사원에淨地(정지)를 만들어 묵힌 음식을 만들어 데우거나 익혀 먹을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음식이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때에 맞춰 먹을 수 있는 음식에 관해 자세히 제한하고 불비시식계(不非時食戒)를 정하는 등 수행자들만의 음식문화를 전개하였다.
살펴보면,하루 한 끼의 식사를 하되 정오가 지나서는 음식을 결코 먹지 못하게 규정하였으니(時食), 이는 수행자가 수행하는데 있어 최소한의 영양공급을 위한 계율이었고, 때가 아니고서는 먹을 수도 없는 시간상의 철저함이 있었다. 율장에서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時食(시식), 非時食(비시식), 非時藥(비시약), 七日藥(칠일약), 盡形壽藥(진형수약) 등으로 분류하여 그 쓰임을 매우 엄격히 하였다. 이것은 음식이 바로 약(藥)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러나 탁발 받은대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 반드시 아무 음식이나 먹으라는 의미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교화하실 당시 수행자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이들은 정성껏 음식을 공양 올렸을 것이고 또 육식을 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삼종정육(三宗淨肉)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 채식위주의 사찰음식이 형성된 것은 기원전 1세기 전후부터이며 이 시기는 대승불교의 흥기와 맥을 같이 한다. 대표적인 대승경전인 대승열반경(涅槃經), 능엄경(楞嚴經), 범망경(梵網經) 등의 경전에서 육식과 오신채(五辛菜)를 금하였고, 양나라 무제가 단주육문(斷酒肉文)을
지어 술과 고기를 금한 다음부터 보다 확고한 소식문화(素食文化)가 뿌리를 내렸다. 하루 한 끼, 불비시식(不非時食)을 행하던 스님들이 현재 하루 세 끼의 공양을 하게 된 것은, 당나라 중기 선풍을 일으킨 백장선사 (720~814)께서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
라는 자급자족의 적극적 생활불교를 실천함에 있어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으나, 이 또한 나름대로 율장을 근거로한 법도를 바탕으로 선원의 규율을 명문화 한 것이다. 음식을 대하는 데에 있어 한 치의 흐트러짐도 경계한 사찰의 음식문화는 나아가 현대 생활의 건강문화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한국사찰음식의 발전과정
사찰음식은 한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부터 더불어 정착하였다. 육식을 금하는 계율에 의거하여 육류보다는 채소류의 음식이 이때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삼국시대부터 일기 시작한 승려들의 음차생활(飮茶生活)은 신라에 와서는 대중의 생활로 이어졌다. 또 백제와 신라에서는 살생을
국법으로써 금하기까지 하였다. (훗날 원광법사의 세속오계(世俗五戒) 중 살생유택(殺生有擇)의 조항을 보면 어느 정도의 육식은 허용했던 것으로 생각 된다 : 세속오계는 재가자를 위한 계율, 국문방위 목적. 육식과 관련은 무근거) 불교의 융성기를 맞은 숭불(崇佛)의 고려시대에는 채소를 재료로 음식의 맛을 내는 법이 다각적으로 연구되어 식물성 기름과 향신료가 발달하였다. 다양한 재료의 떡, 조리법, 가공법이 특히 기술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현대의 동치미나 나박김치와 같은 침채(沈菜)형 김치류, 절임류 등의 저장음식이 개발되었다.
또한 팔관회(八關會), 연등회(煙燈會)와 같은 각종 불교행사가 많아짐에 따라 다례(茶禮), 다과(茶菓), 유밀과(油蜜果), 떡 등 의례음식을 크게 숭상하였고, 이와 더불어 헌다의식(獻茶儀式)이 유행했다. 억불의 조선시대에는 차(茶)문화가 쇠하였으나 조선의 식생활문화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다. 오히려 차(茶)문화가 쇠퇴하면서 향약(鄕藥)을 섞어 만든 탕(湯), 화채, 식혜, 수정과 등의 음청류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그리고 당시 문헌을 보면 대중의 식재료나 조리법 대부분이 사찰의 음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는 식재료, 약초 등의 사찰 음식물은 일제에 의하여 약재(藥材)로 개발되어 유통이 되기도 했다. 한국의 사찰음식의 발전과정 을 돌아보면 한국의 불교사와 흡사한 과정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불교의 발전이 그러했듯 토속음식과 어울리며 대중화 되는 과정 속에서 발전하였고, 불교의 기본 정신을 계승하여 공(供)에 대한 겸손과 탐하지 않은 맛을 가진 건강한 사찰음식문화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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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5교구 봉선사 봉선사 큰법당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봉선사 큰법당-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큰법당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신 법당이며, 절의 중심이 되는 전각이다
‘대웅전’은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 《법화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위대한 영웅 , 즉 대웅이라는 일컬은 데서 유래한다 .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의 좌우에서 협시불(脇侍佛)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인하거나 ,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기도 한다 .
이 밖에도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
봉선사는 특징적으로 운허큰스님께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경전을 한글번역작업을 하신분이라서 대웅전이라는 명칭을 큰법당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어서 편액을 달았다 .
봉선사는 6·25전쟁으로 1951년 3월에 법당 등 14동 150칸의 건물이 완전히 소실된 후, 59년에 범종각이 건립된 데 이어 63년에는 운하당(雲霞堂)이 세워졌다. 대웅전인 큰법당은 1970년 당시 주지였던 운허스님이 중건했다.
운허스님은 이때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 ‘큰법당’이라 이름 지어 한글 편액을 달았다. 불교 대중화의 뜻을 담은 상징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사찰의 한글 편액으로는 이것이 처음이다. 단정하면서도 원만한, 보는 이들이 모두 좋아할 글씨다.
큰법당 내부도 3면 벽에 한글로 된 화엄경 동판(125매)과 한문 법화경 동판(227매)을 함께 부착해 놓아 눈길을 끈다.
큰법당 편액 글씨의 주인공은 만년에 구미에서 활동한 운봉(雲峰) 금인석(1921~92)이다. 포항 출신으로 도쿄대 경제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운봉은 고등고시(행정과)에 합격, 국회 재경위 전문위원까지 역임한 관료 서예가다. 대구의 서예가 석재(石齋) 서병오(1862~1936)를 사사했다 한다. 큰법당 기둥에 걸린 네 개의 주련도 한글로 되어 있다. ‘온 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 큰 바다 물을 모두 마시고/ 허공을 재고 바람 얽어도/ 부처님 공덕 다 말 못하고’이다. 화엄경에 있는 보현보살의 게송을 운허스님이 한글로 옮긴 것이다.
이것은 석주(昔珠) 스님(1909~2004)의 글씨다. 서예 글씨를 잘 쓰는 스님으로도 이름이 높았던 석주 역시 역경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운허와 함께 경전 한글화에 매진했다. 그는 자신이 오래 머물렀던 서울 칠보사의 대웅전 편액을 자신이 쓴 한글 ‘큰법당’으로 바꿔 다는 등 한글로 된 편액이나 주련 작품을 많이 남겼다.
큰법당 뒤에 있는 조사전(祖師殿)의 한글 주련 4개도 눈길을 끈다. 내용은 ‘이 절을 처음 지어/ 기울면 바로 잡고/ 불타서 다시 지은/ 고마우신 그 공덕’인데, 운허와 석주의 합작품이다. 운허가 짓고, 글씨는 석주가 쓴 것이다. 아름다운 한 편의 시와 같은 글귀로, 한문 주련 글 못지않게 멋지다. 조사전 편액은 김천 출신으로 진주와 부산에서 활동한 서예가 청남(菁南) 오제봉(1908~91)의 글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