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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5교구 봉선사 봉선사 전각 선열당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봉선사 전각 선열당-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반지하의 후원(식당)을 신축하며, 그 위에 지은 당우이다. 애초에는 객실의 용도로 신축하였으나 객실로는 지속적인 관리가 어려워 수좌스님들의 해제철 해랑방사(解囊房舍) 등 다각적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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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5교구 봉선사 봉선사 전각 회랑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봉선사 전각 회랑-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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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사찰음식 봉선사 사찰음식 강의내용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봉선사 사찰음식 강의내용-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3~5월 봄
이론
봄은 역동의 계절로 겨울동안 몸안에 축적된 에너지의 신진대사가 활발히 시작되는 시기이므로 모든 영양소의 균형있는 공급이 필요하다 .
우리 몸에서 신진대사의 주축 역활을 하는 기관은 간이고 봄철에 쉽게 느끼게 되는 피로감도 간기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
실습
쑥이나 슴바귀 등의 봄나물은 씁슬한 맛이 간의 정상적인 활동을 도울 뿐 아니라 겨울내 부족했던 비타민과 무기질을 공급해준다 .
들나물, 나무나물들 물쑥뿌리, 냉이, 쑥, 참죽, 원추리, 죽순, 두릅, 아카시아꽃이나 꽃다지, 냉이꽃과 같은 겨울을 이겨낸 식물과 봄꽃들은 역동적인 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면역력을 올려주는 식품들이고 이러한 제철재료를 이용하여 사찰음식의 봄을 알게 한하고 다가오는 여름을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
6~8월 여름
이론
여름은 풍부한 일조량과 높은 습도로 인하여 체내의 소화 흡수 기능 및 신진대사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더위로 인하여 땀으로 소모되는 수분을 보충하고 체내에서 과도하게 열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오이, 수박 등 수분이 많은 채소를 충분히 섭취해야한다.
실습
여름은 그 영양분이 뿌리에 있지 않고 잎에 영양분이 있는 시기이므로 상추, 열무등 제철의 잎채소를 즐겨 먹어야 함으로 애호박이나 풋고추, 수분이 많은 과일 껍질이나 가지, 냉기와 열기를 달래주는 표고냉면이나 잣콩국수,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감자, 짭쪼름하고 아삭아삭한 더위에 지친 입맛을 살려주는 오이지등 여름에 풍성하게 나오는 건강을 지켜주는 식재료로 건강한 사찰음식을 배울 수 있다.
9~11월 가을
이론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식물들이 열매를 맺듯 이제껏 축적된 에너지를 이용해 정신활동이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
봄과 여름의 활발한 신진대사에 의해 몸에 축적된 여러가지 노페물을 배출해 세포와 장기를 청결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가을에 우리가 쉽게 구할수 있는 제철 재료들은 우리 몸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실습
감, 사과 배등 풍부한 영양을 안고 있는 과일들이나 우엉, 토란, 버섯, 연근, 늙은호박, 땅콩, 토란등 여러가지 풍성한 제철 재료등은 섬유질과 단백질, 무기질이 풍부한 식품이며 봄과 여름 동안 허해진 몸을 단단하게 추스릴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식재료등은 찬바람이 불면서 기관지와 폐가 건조할 수 있는데 봅, 여름동안 숙성된 맛있는 식재료로 찬바람이 불면서 건조해지기 쉬운 기관지와 폐를 윤택하게 하고 겨울을 대비하여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사찰음식을 배울 수 있다.
12~2월 겨울
이론
겨울은 추운 날씨로 인하여 순환계 기능의 저하가 일어나 중풍이 발생하기도 하고겨우내 필요한 에너지의 저장으로 단백질의 섭취가 더욱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영양분의 체내 축적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 콜레스테롤을 낮추어주고 동맥의 노화를 방지해 중풍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실습
두부, 비지, 청국장 등 콩음식과 팥죽이나 늙은 호박을 이용한 음식, 동치미과 홍시배추김치 , 된장 , 갓김치 , 호박김치 , 콩나물조림, 무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과 봄, 여름, 가을 동안 풍부하게 나오는 제철채소들을 말린 묵나물을 이용하여 음식을 하게 되고 특히 겨울은 바다나물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므로 겨울동안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 미네랄과 같은 영양소를 맛과 영양이 풍부한 김, 툿, 다시마, 파래, 매생이, 물미역과 같은 제철재료를 이용한 사찰음식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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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사찰음식 봉선사 사찰음식 강사 우관스님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봉선사 사찰음식 강사 우관스님-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3
강사 우관스님
- 봉녕사 승가대학교 대교과 졸업
- 봉녕사 승가대학교 수의과 졸업
- 인도 델리대학교 대학원(석박사) 수료
-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사찰음식교재편찬위원, 전문위원 역임
- 현재 : (사)마하연사찰음식문화원 원장, 대한불교조계종 교수아사리,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봉은사찰음식문화연구소 소장,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음식명장[저서]
- 대한불교 조계종 사찰음식 표준교재 공저(초급,중급,고급)
- 우관스님의 손맛 깃든 사찰음식, 우관스님의 사찰음식 보리일미,
- 최초 한국사찰음식영문책 Wookwan’s korean temple food
- 2014년 인천아시아게임 아시아음식문화축제 ‘사찰의 소박한 밥상’ 전시
- 2016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 봄나물, 김치 전시
- 2017년 서울 목동 국제선센터 향적세계 강의
- 2021년 주 벨기에 한국문화원 초청, 한국대사관 사찰음식 만찬, 강의 진행
- 2023년 한국관광공사 초청 한·인도 수교 50주년 기념행사 진행(뉴델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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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제2교구 용주사 용주사 가람 배치도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2
용주사 가람 배치도-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2
용주사는 불교가 정치적·사회적으로 억압을 당하고 있던 당시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여 세웠다는 점에 역사적 의미를 갖습니다. 조선전기에는 고려의 전통을 이어, 왕이나 왕실의 무덤을 수호하고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한 사찰이 간혹 세워지기는 하였으나, 조선후기에 와서 사림세력이 부각되고 성리학이 성행하면서 왕실에서의 사찰건립이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용주사를 마지막으로 하여 조선왕조에서의 왕실의 원찰은 더 이상 세워지지 못했으며 이처럼 사회적 여건이 좋지 못하던 시대에 거대한 왕실의 원찰이 세워지게 되었던 연유는 정조의 지극한 효성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용주사는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수호하고 그의 명복을 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용주사는 창건이후 지금까지 가람의 구조가 크게 변모되지 않고, 창건당시의 상량문을 비롯하여 발원문등 용주사의 창건과 관련된 문헌 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는 편입니다.
이와같이 칠성각과 제각, 대웅보전, 승당과 선당, 천보루와 외삼문을 중심골격으로 하여 가람이 구성되었고, 각 전각의 내용에 따른 의미를 살펴본다면, 먼저 절이 중심이 되는 건물을 대웅보전으로 하고 거기에는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하여 좌우에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를 모셔놓았습니다. 대영웅 석가모니불과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아미타불, 그리고 무병장수를 발원하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것은 당시의 보편적인 일이었기에 용주사가 능사이기는 하나 여타의 사찰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습니다.
대웅보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이 18세기 전형적인 양식적 특징을 보이고 수미단의 화려한 장식, 본존불 상부의 용두 조각, 닫집 주변의 비천상 조각 등은 세련미와 장엄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단부, 즉 기단과 초석은 장대석 기단에 방형과 원형이 이중초석으로 되어있어, 당시 일반사찰이 잡석 기단에 자연석 주초를 쓰고 있는 점과 크게 대조됩니다. 보통 장대석 기단과 이중초석은 관청건축에서도 비교적 격이 높은 건물에만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밖에 기단 상면을 전돌로 깔았고, 지붕의 취두와 용두, 학과 용을 새긴 막새기와 등에서 관 건축의 특성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사원 건축으로서의 일반적 보편성과 아울러 궁궐건축의 특수성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대웅보전의 왼편에는 6칸의 칠성각과 12칸의 향로전이 있었고, 오른편에는 6칸의 제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칠성각은 시방칠등각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향로전은 언젠가 소실된 후 본래 12칸이던 건물 규모를 6칸으로 축소하여 봉향각으로 다시 세웠다가 1993년에는 천불전으로 고쳐 지어졌습니다. 향로전은 노전(爐殿)이라고도 하는 불전의 부속건물로 불전의 일상예불과 주요 불교신앙행사의 준비를 하는 곳이며, 이러한 일상예불은 노전스님이 담당합니다. 대웅보전 오른편에 제각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던 곳으로 추측되는 건물이나, 한국전쟁때 불타 없어졌고, 지금은 서고로 쓰이는 새로운 건물이 세워졌으며 호성전, 또는 축성전으로 불리우던 이 제각의 소실은 용주사의 창건의미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다만 현재 대웅보전에 있는 목조감실이 위패를 모셔놓았던 것으로 생각되어 그 자취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두 번째 단에는 천보루와 승당 및 선당이 위치하고 있으며, 천보루는 아래층을 모두 돌기둥으로 쓰고 있으며, 누각의 2층은 삼면을 난간으로 돌리고 4각으로 반듯하게 다듬은 장초석과 지붕위의 용두 등은 조선시대 사찰건축에서 보기 어려운 요소로 관 건축의 취향을 느낄 수 있으며 누각건물 자체는 일반사찰의 누각과 그 유형을 같이하여 사찰건축과 관 건축의 모습이 절충된 외관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승당과 선당은 천보루의 좌우에 위치하여 대웅보전 앞 중정을 구획짓고 있으며, 천보루의 양옆에서 각각 통할 수 있는 행각과 문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절의 중앙부에 □모양의 건축구조로 쌍둥이처럼 대칭을 이루어 지어진 두 건물은 각각 39칸이나 되고 있어서 용주사가 선종사찰로서 적지않은 승려가 이곳에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승당과 선당은 지금 나유타료와 만수리실로 불리웁니다.아랫단의 삼문은 좌우로 줄행랑이 달려 있어 일반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를취하고 있는데, 이는 육상궁과 같은 별묘(別廟)의 삼문형태입니다. 또한 용주사의 가람구조는 조선시대에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던 능사로서 봉선사와 봉은사의 구조와 흡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
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 홍제사 홍제사 대웅전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2
홍제사 대웅전-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2
사찰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며, 석가모니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시는 법당.
왼쪽에는 관세음보살이 오른쪽에는 지장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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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 홍제사 홍제사 석가모니 부처님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2
홍제사 석가모니 부처님-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2
깨달은 사람이라 하여 줄여서 불佛이라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가운데 모신 이유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이기도 한 깨달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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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 홍제사 홍제사 지장보살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2
홍제사 지장보살-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2
육도(六道:지옥·아귀·축생·수라·하늘·인간 세상의 여섯 가지 세상)
중생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건져내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대원력을 세우신 보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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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 홍제사 홍제사 관세음보살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2
홍제사 관세음보살-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2
대자대비를 베풀어 현세에서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원을 들어주는 분으로 눈이 천이며, 손이 천이라 하여 천수천안관세음이라고 하는 대자대비하신 보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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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 홍제사 홍제사 신중단
-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2
홍제사 신중단- 작성자
- 두레박
- 작성일
- 2024-04-22
법당에 부처님이 계신 상단의 한 단 아래인 중단에 탱화로 모셔져 있으며, 개별적으로 신앙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무리(108위)로써 함께 신앙의 대상이 된다. 화엄성중(호법성중,신장)들은 부처님께 귀의하여 부처님과 도량과 불법을 수호하고, 이를 믿고 따르는 사부대중을 보호하는 선신의 대명사가 되었다. 음력 초하루부터 삼 일간 <신중기도>를 올리는 것은 매 월초 불보살과 호법선신들께 예불 공양을 드림으로써 한 달을 잘 열어가려는 신심의 발로이다. 사시 예불 때 보면 상단(불단)에 올렸던 마지(밥) 공양을 신중단에 옮겨 올리고 신중단을 향하여 반야심경을 봉독하면서 사시 예불을 마치는 데 이를 퇴공(退供)이라고 한다. 신중들이 퇴공을 받는 이유는 부처님과 보살들이 먼저 공양을 드신 후 그 물려받은 것으로 공양을 하겠다는 서원을 세웠기 때문이다.